한국현대사 교양총서를 펴내며 4
머리말 6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는 공식적으로 단 한 명의 기자만 동행취재를 하였다. 서울중앙방송국(현재의 KBS) 민재로 기자는 런던에서 개최된 제14회 하계올림픽대회를 취재하고 <런던오림픽>이란 기행문을 남겼다
1948년 런던올림픽 11
01 해방정국과 조선체육회의 활동 12
일본에서 농구 선수로 활약하고,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일본선수단 총무와 심판으로 참가하였으며, 여운형이 결성한 지하독립운동단체인 건국동맹과 건국준비위원회에도 참여하였던 이상백은 사방에 흩어진 체육인들을 모았다. 그는 여러 차례 회합 끝에 1945년 9월 20일 YMCA에서 조선체육동지회를 결성하고 그 자신이 위원장이 되었다. 당시의 체육계 활동은 체육인들 가운데 일부가 사회혼란에 대처하기 위해 치안유지에 힘을 보태고, 또 한편으로는 체육인들이 모이는 서클을 재조직하는 형태로 전개되었다. 조선체육회의 부활을 준비하기 위해 조직된 조선체육동지회는 '자유해방경축 전국종합경기대회'를 1945년 10월 27일 서울운동장의 전신인 경성운동장에서 개최하였다. 1945년 11월 26일, 조선체육회 재건과 함께 여운형은 조선체육회 제11대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부회장에는 유억겸이 추대되었으며, 이상백은 실무를 맡았다.
해방정국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조선체육회는 순수한 목적의 체육계마저도 그럴 수 없다는 취지에서 1946년 4월 15일 정치적 중립을 선언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미군정청은 1946년 3월 29일 군정법령 제64호로 중앙행정기구의 개편을 단행하여 종래의 국을 부로, 과를 처 또는 국으로 승격하였는데, 이에 따라 학무국은 문교부로 승격되었으며, 별도의 체육행정 조직은 없었다. 1946년 7월 10일자로 개편된 문교부 조직은 문교부장 밑에 차장을 두고 7국 1관 21과 20계로 개편되었고, 문화국에 독립된 행정체계로 문화시설과·예술과·체육과·교도과를 두었으며, 체육과에는 일반체육계아 단체체육계가 편성되었다.
02 런던올림픽에 참가하기까지 16
조선체육회는 1948년 제14회 런던올림픽대회에 어떠한 일이 있어도 출전해야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이에 대한 대책을 1946년부터 세웠다. 이러한 대책의 하나로 조선체육회는 올림픽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올림픽 참여를 원하는 나라는 먼저 NOC(국가올림픽위원회)를 구성해야 하며, 올림픽 종목 경기단체가 5개 이상 국제경기연맹에 가맹되어 있어야 IOC(국제올림픽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다. 올림픽대책위원회는 국내 경기단체가 구성돼 있는 육상, 축구, 복싱, 역도, 농구, 사이클 등 6개 경기단체의 정관을 영문으로 번역해 국내 아마추어 규정과 함께 각각의 국제경기단체에 제출해 IOC에 가입하기 위한 기본적인 준비를 하였다. 한편 조선체육회는 1948년 개최될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그동안 사용되었던 '전국체육대회'란 명칭도 바꾸는 극단의 조치까지 취하였다(1946년 10 16일부터 5일간 서울에서 개최되는 제27회 전국체육대회의 명칭을 월조선올림픽대회로 변경함). 이는 올림픽에 참가해야겠다는 염원을 그대로 표출한 것이다. 결국 국가의 독립과 올림픽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였기에 체육인들은 건국의 필요성에 대한 강한 의지를 지니고 정치계에도 보이지 않는 압력을 행사하였다.
1947년 6월 15일에 열리는 스톡홀롬 IOC 총회가 다가오고 있었다. 여기에서 대한민국이 승인을 받지 못한다면 런던올림픽 참가는 무산되는 것이었다. 1947년 6월 20일 IOC 총회에서 KOC 가입이 승인되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과테말라, 파나마, 트리니다드 등이 정식으로 승인되었으며, 특히 IOC 역사상 국가 성립 이전에 국가 단위의 올림픽위원회가 승인된 것은 우리나라가 최초였다.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이 런던올림픽에 참가하기로 하였지만 정작 국가는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우리나라가 IOC에 가입하자 이때부터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올림픽에 참가하려면 선수 한 명당 2천 달러 이상의 경비가 필요했다. 이제 막 일제 강점기를 벗어난 가난한 나라에서 이런 많은 돈을 충당하는 것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일이었다. 이때 KOC의 한 관계자가 복권을 발행하는 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1947년 당시 정부가 수립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복권을 발행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KOC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민정장관이었던 안재홍을 올림픽후원회 회장으로 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복권인 '올림픽후원권'을 발행하였다. 쇠고기 한 근값이 260원이었던 당시, 복권 한 장은 100원이었으며, 1등 당첨금은 100만 원, 2등 50만 원, 3등 30만 원, 4등 5만 원, 5등 1만 원씩으로 책정되었다. 서울과 각 지방에서 동시에 발매된 복권은 순식간에 매지되었으며, KOC는 총 140만 장을 발행하여 8만 5천 달러의 수익금을 모았다. 복권의 앞면에는 민족의 염원을 담아 스톡홀름으로 가다 불의의 사고고 유명을 달리한 전경무 부위원장의 사진이 새겨져 있다. 1947년 12월 1일 발행된 올림픽후원권은 우리나라 최초의 복권이기도 하였다. 이 후원권은 올림픽 참가에 대한 당시의 국민적 열망과 우리나라의 경제적인 상황을 간접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런던올림픽 참가 기념우표는 올림픽 개막 2개월 전쯤인 1948년 6월 1일 발행됐다. 태극기와 월계수 잎을 디자인한 5원 권과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성화를 든 선수를 그린 10원 권 두 가지를 발행했다. 아직도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확정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조선우표'와 'KOREA'를 병기하였다.
03 런던으로 가는 길 34
런던올림픽 공식문서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NOC 대표 1명, KOC 임원 7명, 선수단 대표 1명, 종목별 감독 7명, 선수 52명 총 75명이 참가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종목별로는 육상에 남자 8명·여자 1명, 농구 9명, 복싱 3명, 사이클 2명, 축구 11명, 역도 6명, 레슬링 5명, 총 45명으로 되어 있었다. 특히 축구는 다른 나라도 11명만 기재되어 있었다. 선수단 선발과 관련하여 많은 문제가 있었다. 52명 선수 가운데 30대 이상이 31명으로 60%나 되었고, 진짜 실력 있는 선수가 빠진 경우도 있었다. 일제강점기부터 이름을 날렸던 노장 선수들은 올림픽에 반드시 자신이 가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당시 대학에 다니던 젊은 선수들은 대부분 선발되지 못했다.
당시에 우리나라 선수들은 외국에 나가기 위해서 먼저 여권을 만들어야 하지만, 아직 정부가 수립되기 전이라 미군정청으로부터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했다. 그리고 장티푸스, 발진티푸스, 파상풍, 콜레라, 페스트 등 각종 유행병 예방접종을 받았다. 조잡하지만 대한민국이란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념품으로 버클과 페넌트 등도 가지고 나갔다. 또 대한민국 대표로서 입고 간 단복과 운동복은 요즘에는 누구도 입을 수 없는 두텁고 무거운 것이어서, 7, 8월의 단복과 운동복으로서는 적합하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태극기와 KOREA가 새겨진 옷을 자랑스럽게 입고 다녔다.
04 런던올림픽 경기 74
우리나라의 올림픽 도전사 99
01 근대올림픽의 발전사 101
02 일제강점기의 올림픽 도전사 108
03 대한민국 올림픽 도전사 111
04 대한민국 동계올림픽 도전사 139
05 장애인올림픽 도전사 147
장애인올림픽은 패럴림픽(Paralympic)이라고 부른다. 패럼림픽은 원래 척추 상해자들끼리의 경기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paraplegic(하반신 마비의)'과 'Olympic(올림픽)'의 합성어로 쓰인 것인데, 추후에 다른 장애인들의 경기도 포함되면서, 현재는 그리스어의 전치사 'para(옆의, 나란히)'를 사용하여 올림픽과 나란히 개최됨을 의미한다고 설명된다. 장애인올림픽, 즉 패럴림픽이란 모든 장애인을 대상으로 올림픽과 함께 치러지는 장애인 올림픽이라는 일반적인 의미를 가진다.
2012년 런던올림픽 151
01 런던으로 가기 위한 준비 152
02 런던올림픽 경기 160
03 장애인올림픽 195
나가는 말 199
참고문헌 211
각주 214
사진출처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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