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청구회 추억], 신영복, 조병은(영역), 김세현(그림), 돌베개, 2008, (190402).

바람과 술 2019. 4. 2. 01:53

나보다도 훨씬 더 성실하게 그날의 일들을 기억하고, 또 간직하고 있었구나 하는 나의 뉘우침, 그 뉘우침은 상당히 부끄러운 것이었다. 


그 소풍 이후 약 보름 가량을 나는 그들을 결과적으로 농락해오고 있었으며, 그날의 내 행위 그것마저도 결국 어린이들에 대한 무심한 '장난질'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 왈칵 나의 가슴 모서리에 엉키어왔다. 


과연 길 저편의 전봇대 뒤에 꼬마 둘이 서 있었다. 우리들의 시선이 그들에게로 쏠리자 그 두 명의 꼬마는 무슨 잘못이라고 저지른 사람같이 전봇대 뒤로 몸을 숨시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두 명의 아이가 틀림없이 '좋은 아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삶은 계란은 자기들끼리 나누어 먹었겠지만 그들이 그렇게 벼르고 별렀던 서오릉 소풍 때에도 계란을 싸가지고 갈 수 없었던 가난한 형편을 생각하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문화동에서 멀리 병원까지 걸어서 왔다가 걸어서 돌아간 것이었다. 


'청구회'의 정체와 회원의 명단을 대라는 추상 같은 호령 앞에서 나는 말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어떠한 과정으로 누구의 입을 통하여 여기 어처럼 준열하게 그것이 추궁되고 있는가. 나는 그런 것들을 아랑곳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