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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와 문화 - 세계문화기구를 위한 연대회의

바람과 술 2008. 6. 15. 07:28

GATT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 : 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미국이 주도하여 1947년 만든 다자간 국제무역협정을 말합니다. 상품이 국경을 넘어 좀 더 자유롭게 유통될 수 있도록 개별 국가들의 관세를 낮추자는 의도에서 만든 것입니다. 처음에는 23개 국가들이 참여하여 이 협정에 합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GATT에서 일정기간을 주기로 중점 분야별로 무역자유화 논의를 진행하는데, 일정 기간의 각 주기를 라운드라 부르고 있습니다.

 

WTO (세계무역기구 : World Trade Organization)

 

1995년 1월 1일 GATT를 모태로 만들어졌습니다. WTO는 분쟁해결을 위한 의결권과 집행권을 갖고 있고, 포괄범위가 비약적으로 확대되었으며, 관세뿐 아니라 '비관세장벽'이라는 명목으로 각국의 국내정책에 개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GATT와는 확연히 구별됩니다. 현재 144개 국가들이 가입되어 있는 WTO는 인간의 모든 영역을 자유무역의 범주에서 다루려 하고 있기 때문에 전세계 시민사회단체의 표적이 되고 있기도 합니다. WTO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WTO가 민주적 통제 없이 자본의 무제한의 자유만을 보장하고 있고, 특히 교육, 문화, 환경, 보건 등 공공적인 분야까지 이윤창출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GATS (서비스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 General Agreement on Trade in Services)

 

1993년 WTO의 부속협정으로 체결된, 서비스분야에 대한 최초의 다자간 무역협정입니다. 서비스분야는 경제규모나 교역의 비중을 고려해볼 때 굉장히 중요한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GATS가 포괄하고 있는 서비스 분야는 전문직, 커뮤니케이션(우편, 통신, 시청각 등), 건설, 유통, 교육, 환경, 금융, 보건, 관광, 오락, 스포츠, 운송 등으로 굉장히 방대한 영역입니다. 특히, 문화의 영역도 서비스로 분류되어 GATS에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문화생산물(문화상품과 문화서비스)의 이중적 성격

 

공동체 구성원들은 자신들만의 표현수단을 통해 문화적 표현을 함으로써 존재가치와 사회구성원의 의미를 확인해 갑니다. 문화적 표현은 사회공동체의 문화적 산물이지만 상품으로서의 가치도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자본주의의 발달로 인하여 문화상품과 서비스의 가치는 더욱 중요해졌고, 정보통신의 발달은 문화적인 표현이 사회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크게 확대하였습니다. 이렇게 문화생산물이 문화적 가치와 산업적 가치를 함께 지니고 있고, 두 가지 가치 모두가 공동체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에 개별국가들은 문화정체성 유지와 문화산업의 보호를 위해 자신들의 현실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문화정책들을 시행하고 자국문화에 대해 지원할 의무와 권리가 있습니다.

 

WTO와 문화

 

WTO는 상품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도록 국경간 관세나 비관세장벽을 철폐하고, 자유무역을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화는 상품적 가치뿐만 아니라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일반상품과 동일한 범주에서 자유무역의 대상으로 취급되어서는 안됩니다. 만약 문화가 자유무역의 대상이 된다면, 문화적 표현을 장려하기 위한 개별국가의 역할은 비관세장벽이라는 명분에 의해 제한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 GATT를 만들 때, 문화를 GATT의 대상에서 제외시켰던 것입니다. 이것을 '문화적 예외'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1993년 GATS 협상 과정에서 문화분야에 대한 의견대립이 격화되어 문화상품과 서비스가 중요한 쟁점이 되었습니다. 특히 미국 등 몇몇 나라를 제외한 대다수 국가들이 자유무역의 확대로 인해 문화정체성을 위협받고 문화다양성이 파괴되고 있다는 심각한 우려를 제기하면서, 개별국가들의 문화주권을 침해하는 문화분야의 자유무역을 반대한 것입니다.

 

WTO 뉴라운드 GATS 협상

 

2001년 11월, WTO 뉴라운드(일면 도하개발의제 : Doha Development Agenda)가 공식 출범하였습니다. 뉴라운드에서는 서비스상품에 대한 시장개방협상을 2004년까지 끝마치기로 하고, 이에 따라 GATS의 협상이 구체적인 일정을 가지고 진행되고 있습니다. GATS의 협상일정을 살펴보면, 지난 2002년 6월 30일이 '1차 양허요청한(Initial Request)' 제출 마감시한이었고, 2003년 3월 31일이 '1차 양허안(Initial Offer)' 제출 마감시한입니다. 그리고 2005년 1월 1일부터는 협정이 공식 발효되어, 이때부터는 합의내용이 국제법적인 강제력을 갖게됩니다. 양허요청안은 각 나라들이 다른나라들에 대해 개방해줄 분야를 요청하는 개방요청입니다. 그리고, 각국은 자국에 대한 양허요청안들을 검토하여 개방분야를 결정하고, 개방계획을 제출하는데, 이를 양허한이라고 합니다. 즉 양허안은 개방에 대한 약속의 증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분야의 양허요청안을 제출한 우리나라 정부

 

우리나라 정부는 지난 6월 30일, 문화분야에 대한 양허요청안을 WTO에 제출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양헝요청안에서 스크린쿼터를 제외한 영화서비스, 음반서비스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시장개방을 요구하였다고 합니다. 반대로 미국 등 이미 문화 시장의 대부분을 개방한 나라들이 우리나라에게 영화상영(스크린쿼터폐지), 방송 등의 분야에 대해 개방을 요구해왔다고 합니다. 다른 나라에 대해 문화시장 개방을 적극적으로 요구했다는 것은 문화를 WTO 내에서 일반상품과 같은 논리로 취급하여, 자유무역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입니다. 문화분야의 자유무역이 본격적으로 진행된다면 상업적 경쟁력을 갖춘 소수의 문화상품이 세계시장을 장악하여 결국 소수민족의 문화나 산업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모든 문화가 말살 당하는 끔찍한 재앙이 닥쳐올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캐나다, EU 등 많은 나라들이 문화분야에 관한 한, WTO에서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고, 요구받지도 않겠다는 원칙을 가지고 지난 6월 30일 문화분야에 대해 양허요청안을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문화의 획일화

 

자유무역의 질서는 미국 등 소수국가가 생산한 문화상품의 세계시장 독점현상을 심화시켜 각 나라의 문화정체성과 인류의 문화다양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습니다. 특히, 영화산업의 경우 할리우드의 독점현상은 심각한 수준을 넘어 잔혹한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스크린쿼터를 실시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강력한 자국영화 진흥정책을 실시하고 있는 프랑스에서도 미국영화의 시장 점유율은 절반을 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정책이 미비 되어 있거나, 이미 영화시장을 전면 개방한 나라들의 상황은 할리우드 시장독점을 넘어서서 시장점령의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베네룩스 3국의 영화가, 호주, 캐나다, 아르헨티나, 인도네시아의 영화가 할리우드라는 거대 공룡에 밀려 인류의 문화환경에서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영화와 함께 산업적으로 발달한 방송, 애니메이션, 음반 등이 포함된 시청각서비스에서도 미국 문화산업의 독점현상은 심각한 상황입니다. 자유무역의 확대가 미국문화의 일방적 점령으로 이어지면서 다양한 인류의 문화가 자본의 논리 앞에 멸종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WTO를 위시한 무역협정들이 인류의 문화정체성과 다양성을 파괴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이에 맞선 대응 역시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다양성 선언'

 

2001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었던 유네스코 총회에서는 당시 186개 회원국들의  합의로 '세계문화다양성 선언문'을 채택하였습니다. 선언문은 8조에서 문화는 절대로 단순 생활용품이나 소비자 상품으로 취급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9조에서 각국 정부에게 자신들의 실정에 맞는 문화정책을 수립.운영할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선언문은 또한, 문화다양성의 증진은 인류의 윤리적 의무이자 인간 존엄성으로부터 분리할 수 없는 문제라고 천명하였습니다.

 

세계문화부장관회의와 '문화협정'

 

1998년 OECD 회원국들이 체결하려고 했던 '다자간 투자협정(Multilateral Agreement on Investment)'이 문화에 대한 의견대립으로 결렬되면서 문화다양성의 문제는 국제사회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세계문화부장관회의(INCP : International Network on Cultural Policy)가 설립됩니다. 현재 47개국 문화부장관들이 참여하고 있는 세계문화부장관회의는 국제 문화 NGO들의 회의인 '문화다양성을 위한 국제네트워크(INCD : International Network for Cultural Diversity)'와 연계하여 매년 총회를 갖고 있는데, 무역협정을 대신하여 문화교류의 문제를 다룰 '국제문화기구'의 창설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지난 2002년 10월에 열렸던 제3차 INCD총회와 제5차 세계문화부장관회의에서는 각국의 문화정책 확대와, 국제 문화교류의 규범인 '문화협정'에 대한 집중적인 논의를 진행하였고, GATS가 발효되는 2005년 1월 1일 이전까지 '문화협정'을 체결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문화협정'은 WTO의 틀을 벗어나 문화의 가치를 지키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이 구체화 된 것으로 인류문화사에 커다란 전기를 마련할 것입니다.

 

미국의 문화침략

 

미국의 문화침략은 항상 영화로부터 시작되어 왔습니다. 특히 미디어의 발달로 영화콘텐츠의 활용범위가 확대되면서, 미국 문화산업에서 영화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대한 미국 문화산업의 공세적인 진출도 영화분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85년 미국은 우리나라에 대해 영화시장 개방을 요구하였고, 정부는 이에 굴복해 할리우드 영화의 직배를 허용하였습니다. 할리우드 영화의 직배로 한국영화산업은 심각한 위기를 맞습니다. 직배영화의 시장잠식이 확대됨에 따라, 한국영화의 시장점유률은 급격히 하락하여 1985년 33%에 이르던 것이 1993년에는 16%의 수준까지 추락하게 됩니다.

 

우리 정부의 문화정책

 

이처럼 우리 문화를 방기하던 정부가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국제경제에서 문화산업이 가지는 중요성이 점점 커지면서 육성해야할 산업으로 문화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죠. 그러나 정부의 문화정책은 철저하게 산업적 가치만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무책임한 문화시장 개방으로 문화산업의 위기를 초래했던 정부가 이제는 산업논리를 주장하면서 문화분야의 자유무역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정책이 문화본영의 가치를 중시하는 진정한 '문화' 정책으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우리 문화의 미래는 없을 것입니다.

 

자유무역과 상호교류의 갈림길

 

GATS 협상이 본격화되면서 우리는 이제 문화의 자유무역이냐, 공존과 교류냐하는 갈림길에서 분명한 선택을 해야할 시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GATS는 시청각서비스뿐만 아니라 광고, 사진, 인쇄.출판, 엔터테인먼트, 뉴스에이전시, 심지어는 도시관.박물관 관련 서비스에 대한 시장개방협상까지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금 진행되는 협상에서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문화의 획일화라는 대재앙을 맞느냐, 공존과 교류의 가치가 지켜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느냐가 결정될 것입니다.

 

양허요청안 철회

 

정부는 우리가 이미 문화시장을 많이 개방했기 때문에 문화산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개방수준이 낮은 나라들에게 우리만큼 개방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논리대로라면 문화시장을 전면 개방한 미국은 우리나라에 대해 자신들만큼 개방할 것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제출한 문화분야의 '양허요청안'은 즉각 철회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양허요청안은 다른 나라에 대해 일차적인 개방요구를 한 것으로, 우리나라 시장의 개방약속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정이나 철회를 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공동제작협정의 확대

 

문화산업의 진흥도 문화교류의 차원에서 모색되었을 때, 실질적인 대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문화분야의 공동제작협정은 교류의 확대와 산업의 발전 모두를 이룰 수 있는 방안입니다. 만약 우리나라가 영화분야에 있어서 프랑스와 공동제작협정을 체결하게 된다면 한국과 프랑스가 공동제작한 영화는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영화로 분류되어 스크린쿼터의 보호를 받을 것이고, 프랑스에서 프랑스 영화로 분류되어 프랑스 정부의 각종 지원혜택을 받게 될 것입니다. 공동제작협정은 시장개방 요구로 다른나라의 문화정책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도 실질적인 시장확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안입니다. 공동제작협정과 같이 문화의 일방적 침략이 아닌 상호교류를 위한 정책을 적극 확대해야 할 것입니다.

 

'문화협정' 비준

 

'문화협정'은 각국 문화생산물의 제작과 유통을 보장하고, 문화생산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며, 자국문화 발전을 위한 각국 정부의 문화정책을 확대하기 위한 협정입니다. 우리 정부는 '문화협정'을 비준하고 문화정체성을 지키고 문화다양성을 확대하기 위한 국제적인 연대에 적극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이 모아질 때, 인류의 문화는 지금까지의 문화 획일화에서 벗어나 다양한 문화가 평화롭게 공존하고,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진정한 '문화의 세기'를 맞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