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대한민국 기업사], 중앙books, 2008, (130311).

바람과 술 2013. 3. 12. 00:01

책을 펴내며/ 한국 기업사는 전진의 역사 


제1편 / 도전과 시련(개항부터 해방 전까지) 

프롤로그-근대 기업의 탄생과 진화 

한국에 최초로 근대적인 기업들이 출현한 것은 1876년 개항 직후 일본게 기업들이 진출하면서부터다. 미츠이 쿠미와 코니시키 쿠미의 등장을 비롯하여, 1878년 일본 제일은행 부산 지점이 개설되었는데, 이것이 국내 최초의 은행이다. 한편 회사 조직을 갖춘 민족계 기업들이 출현하기 시작한 것은 1880년대 중반 이후부터다. 1883년 '한영수호통상조약' 체결을 계기로 외국 상업 자본들이 개항장을 벗어나 지방 소도시까지 직접 진출하자 이에 위협을 느낀 객주, 여각, 보부상 등 전통적 상업 조직들이 외국 상인들에게 효과적으로 대응할 필요성을 느껴 상업조직은 물론 상업 방법의 혁신을 모색했던 것이다. 그러나 민족계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1890년대 중반부터다. 청일전쟁을 전후하여 일본, 중국 등의 외국 상업 자본들이 경쟁적으로 한국에 진출, 경제 침탈이 격화되자 이에 자극받아 토착 자본가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형태로 자본을 결집시켜 산업 각 부문에서 왕성한 기업 설립 활동을 전개했던 것이다. 당시 민족계 기업 설립 활동을 주도한 자본가 계층은 귀족·관료 출신형 기업가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전·현직 고위 관료들로서 후일 일본의 한국 강점 후에는 일본 정부로부터 귀족 작위를 받는 등 속칭 친일파 귀족들이었다. 주로 은행, 운수업, 제조업 등 기간 산업체의 발기인, 주주, 취체역(예전 주식회사의 이사) 등으로 참여했는데, 그들은 여러 정황으로 짐작해 볼 때 기업 경영에는 적극 가담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민족계 기업 설립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한 것은 1910년대 말부터다. 러일전쟁 이후 한국에 대한 실질적 지배권을 일본이 장악하면서 일본의 다수 자본들이 경쟁적으로 한국에 진출, 새로운 기업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민족계 기업들은 자본 회전율이 높고 식민지적 초과 이윤이 보장되는 유통업, 식료품공업, 농수산업, 운수창고업, 금융업 등에 집중적으로 종사했는데, 이 산업 부문들은 일본의 지속적인 식량 및 원료 공급 기지화 정책, 자국 상품의 판매 시장화 정책 등에 의해 호황을 누리던 업종이었다.


episode 인천 스타사이다와 칠성사이다 


개항 이전의 상업 활동 

episode 근대 병원과 최초의 개업의 

개항과 외국 상인 

episode 한국 최초의 근대식 호텔과 전문 요릿집 

근대기업의 발흥 

episode 전차의 등장 

상인 이익 단체의 설립과 활동

 
episode 멋쟁이의 상징 '박가분과 ABC 포마드' 

식산흥업 정책과 제1차 공기업의 출현 

episode 최초의 젖소 수입 

1883년 미국에 파견된 사절단의 일원이었던 최경석은 온실 재배 등 미국의 최신 농법과 낙농에 매우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를 조선에 도압하기 위해 고종으로부터 '농무목축시험장' 설치를 허가받아 1885년 각종 농작물(3백44종)과 가축(64두)을 도입하면서 미국산 암소 2마리와 수소 1마리를 들여와 사육한 데사 근대 한국의 낙농 역사가 시작됐다고 한다. 고종도 이 시험장에 큰 관심을 갖고 왕실 직속으로 관리했으나 얼마 되지 않아 최경석이 갑자기 죽어 이 사업은 중단되었다. 1902년 당시 농·상공부 기사로 근무하던 프랑스인 쇼오(Shorte)가 젖소 20마리를 도입, 지금의 서울 신촌역 부근에 우사를 지어 젖소를 사육하여 우유를 외국인 상대로 판매한 것이 우리나라 유가공업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2년 뒤에 이들 젖소는 병으로 모두 죽어버려 유가공업도 무산되었다. 1908년(융희 2년), 수원에 있는 '권업모범장(1906년 일제가 한국의 농축산 기술 향상과 종자 개량을 목적으로 설치한 관청)'에서 홀스타인, 에어셔, 저지 등 우수한 젖소 품종을 도입, 개량 증산하여 1910년에는 젖소 사육 두수가 4백52두에 달했다. 1910년 전후로 우유 판매 광고가 시작되었으나 목장에서 생산된 우유를 끊여 판매하는 정도였다. 1935년 일본의 대규모 유업 회사가 국내에 진출하고, 1937년 '경성우유협동조합'이 서울 정동에 설립되면서 제대로 위생 처리된 우유를 적당한 분량으로 포장하여 판매하기 시작했다. 즉, 우유의 산업화가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해방 직후 낙농 자본과 기술을 가진 일본이 물러나자 낙농업은 크게 위축되었다. 더욱이 한국전쟁은 국내에 그나마 남아 있던 낙농 기반을 붕괴시켰다. 이후 1962년까지는 수공업 수준의 우유가 생산되다가 1962년부터 뉴질랜드에서 매년 젖소를 들여옴으로써 우리나라의 낙농업도 본격적으로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은행의 탄생

 
화폐 개혁과 공황(恐慌) 

episode 원화의 역사 

'회사령' 시대 

개성의 민족 기업 

토지 조사와 지주 자본가의 탄생 


토지 조사 사업으로 조선에 자본주의가 발달할 수 있는 중요한 제도적 기초가 확립되었다. 첫째, 토지 소유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토지 소유권을 확실하게 보장받았을 뿐 아니라 토지에 대해 부과되는 세금 또한 지가의 일정 비율로 고정됨으로써 토지 개량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가 존재하게 되었다. 둘재, 토지에 관한 법적 권리가 명확해짐으로써 토지 거래도 활성화되었으며, 토지를 담보로 한 금융 대부도 활발해졌다.


episode 토지왕 김기덕의 부동산 투자 비결 

경성방직 창업과 면방직 공업의 발달 

평양의 상공업 발달 

제2차 기업 설립 붐과 회사령의 폐지 

지방 은행에서 전국 은행으로 재편 

재벌의 맹아 

episode 유전무죄 무전유죄 

조선 기업 정비령-민간 기업 몰락 

독립운동과 저항 기업가들 

episode 생명을 살리는 물 '활명수' 

기업가 유형 

기업가들의 육영사업 

초기의 기업가 정신 

제2편 / 위기와 기회(해방 후부터 5·16 이전까지) 

프롤로그-수입 대체 공업화 착수 

마카오 홍콩 무역의 큰손들 

episode 앵도환(櫻島丸) 사건 

무역·방직협회 발족 


episode 대일 수출 1호 가마니 

미군정의 적산 기업 대책 

한진의 탄생 

금호의 칠전팔기 기업 정신 

LG, 60년 도약의 역사 

건설업으로 자본·경험 축적한 현대 


episode 건설 5인조의 승승장구 

귀속 재산 불하 

episode 최초의 정경 유착 의혹, 중석불 사건 

제2차 공기업 러시 

episode 조합 주택의 효시 

삼성의 성장 

episode 마카오 신사 

농지 개혁과 지가증권 

농지 개혁의 수혜자는 종래 소작농이었던 농민층이 다수였지만, 시행 주체인 정부 또한 수혜자의 하나였다. 정부가 농민들로부터 받은 상환액과 지주에 대한 보상액은 1950년에는 동일했지만, 농민들로부터는 현물로 상환을 받고, 지주들에게는 1950년도 가격에 해당하는 현금으로 보상했기 때문에 급속한 인플레이션이 진행되던 당시의 사정을 고려하면 큰 차익을 남길 수 있었다. 정부는 이 차액을 농촌 위생, 농사 개량, 사방 조림 등의 사업에 사용함으로써 농업 생산력 기반 확충에 일조를 했다. 반면 지주층은 농지 개혁의 최대 피해자였다. 첫째, 정부는 농지 개혁 사업 시행에 필요한 행정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보상 액수가 75석이 넘는 지주에 대해서는 누진적으로 체감률을 적용하여 보생액을 공제했다. 체감률에 따라 공제된 액수는 전체 보상액의 9.3%에 달했다. 둘째, 인플레이션에 따른 곡가 상승분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보상금 지불의 지연에 따른 손실을 들 수 있다. 지주 계급에게는 불행이었지만, 농지 개혁은 한국 자본주의 발전의 초석이 되었다는 점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농업 경영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생산자인 농민의 수중에 상당 부분 남겨둠으로써, 그 잉여를 생산 방식을 개선하는 쪽에 투자하여 농업 생산성을 증가시켰을 뿐만 아니라, 자녀의 교육비로 충당하여 훗날 고도성장을 가능케 했던 인적 자본을 육성할 수 있었다. 둘째, 한국전쟁과 동시에 이루어진 농지 개혁은 전통적인 사회 관계를 크게 변화시켰는데, 농촌 사회에 존재했던 토지를 매개로 한 종속 관계가 해체됨으로써 도시로의 인구 이동을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는 노동 공급의 증대로 이어졌다. 농지 개혁의 직접적인 효과로서 반드시 언급해야 할 것은 지가증권을 매개로 새로운 산업 자본가층이 탄생했다는 점이다. 이는 이후 한국 자본주의를 이끌어갈 신흥 자본가군의 탄생을 알렸고, 재벌 형성의 초기 거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큰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episode 경영 대학의 설치 

제2의 영토, 하늘과 바다 개척 

episode 비상의 꿈을 이룬 선구자들 

군수(軍需)와 군납 

episode 엄동설한의 푸른 잔디 

해방 후 혼란기의 부산 기업 

episode 원양어업 효시, 지남호와 마도로스 

두산의 탄생 

원조 경제 시대 

episode 중소기업이란 용어의 유래 

삼백(三白) 공업 전성기 

episode 불가근불가원 

기간산업의 재건 

episode 석탄 유용 방지 대책과 디젤 기관차 

은행 제도 정비와 산업은행의 설립 

SK의 기업 진출 

화약 산업 개척한 한화 

자동차 산업의 태동 

episode 최초의 자동차, 그리고 버스와 택시 

은행의 민영화 

episode 조방낙면(朝紡落綿) 사건 

대기업 출현과 재벌 형성 

episode 한국판 쉰들러, '반민특위' 1호의 항변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