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시선의 탄생 : 식민지 조선의 근대관광], 선인, 2011, (130517).

바람과 술 2013. 5. 17. 23:17

근대관광의 탄생을 논할 때 간과할 수 없는 것이 19세기 이후의 철도의 발달이다. 철도가 근대관광에서 의미를 갖는 것은 대량운송과 신속성, 그리고 안전성에 그 이유가 있다. 이는 곧 근대관광이 산업화되고 대중화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이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근대관광이 전근대의 그것과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19세기 후반 철도여행은 여행자들의 풍경의 지각 그 자체를 구조적으로 변용시켰다. 즉 달리는 기차 안에서 바라보는 창밖의 풍경은 마치 파노라마와 같은 것이므로 근대 이전의 여행에서는 느끼지 못한 것이었다. 즉 전체를 보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근대관광은 하나의 이미지를 보는 행위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볼 때 철도의 발달에 따라 성립하게 된 근대관광은 하나의 시선의 탄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근대관광은 제국주의의 발전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지역에서의 근대관광은 유럽이나 미주에서의 그것과 다르다. 왜냐하면 이 지역 근대관광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일본은 서구에게는 '보여지는' 객체였으나 조선과 중국과 같은 아시아 제국에게는 '보는' 주체로서의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제1장 개항 이후 근대여행의 시작과 여행자 * 황민호 


1. 머리말 

여행이 갖는 중요성의 강조는 부강한 근대국가를 만들고자 했던 지식인들의 의지에서 출발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었다. 


2. 관광의 의미와 어원 

3. 개항 이후 여행자들의 경험 

4. 일제시기의 여행자들의 경험 

5. 맺음말 

제2장 일본인의 조선여행기록에 비친 조선의 표상 

1. 머리말


일본인의 근대 여행은 제국주의 정책의 산물로 탄생되었다. 식민지 본국인에게 식민지로의 여행 혹은 관광은 제국주의 국가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강화시켰고, 피식민인에게 식민지 본국의 근대 문물을 일방적으로 소개함으로써 굴절된 열등의식을 심어주는 역할을 했다. 일본인의 근대 여행은 여행주체의 식민지 체험과 밀접히 관련되었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지적 탐구심이 아닌 '식민주의'의 표출이었다. 여행은 식민지 시장의 확보와 경제주의적인 '동화' 그리고 미개지 '개발'의 관점에서 이루어졌고, 동아시아 침략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를 내포하고 있었다. 

 
2. 일본의 풍경,일본의 국수(國粹) 

시게타카의 국수주의는 메이지정부의 서구화주의에 대항하여 일본 고유의 문화적 전통의 보존과 발양을 주장한 것으로 일본의 근대화 방향은 서양으로의 일방적 동화가 아니라, 선택적 섭취를 통해 서양문물을 일본으로 동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시게타카에 따르면 일본의 풍토, 지리, 환경의 영향 밑에서 고유한 동식물이 자라나고, 오랜 역사를 통해 이들의 과학적 반응이 이루어져 일본민족에 일종의 특수한 '국수(nationality)'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는 일본의 풍경이야말로 일본인의 최대 자랑거리였다. 


3. 나약한 조선,강건한 일본 

4. '도항 매뉴얼;로서의 여행기록 

5. 여행지 조선의 변화 

6. 여행과 식민통치의 영구화 

7. 맺음말 

제3장 러일전쟁 전후 일본인의 조선 여행기록물에 보이는 조선인식 * 윤소영 

1. 머리말 

2. 여행기록물의 저자,목적,여행일정 

3. 일본인 여행자의 흔들리는'제국 기분' 

4. 여행기에 보이는 식민지배 논리 

5. 조선 명소의 식민지적 재구성 

6. 맺음말 

제4장 한말 한국인 일본관광단의 조직과 성격(1909~1910) * 한규무 

1. 머리말 

2. 경성일보사 주관 제 1회 일본관광단의 조직과 여정 

3. 경성일보사 주관 제 2회 일본관광단의 조직과 여정 

4. 기타 각종 일본관광단의 조직과 성격 

5. 일본인 학국관광단의 내한 

6. 맺음말


경성일보사에서 주관한 제1회·제2회 관광단은 표면상으로는 '식산흥업'이나 '실업개발'이었다. 하지만 단원들의 다수는 전·현직 관리들이었다. 이들은 관광단이 해산된 뒤 요직에 임명된 경우가 많았다. 특히 선유사가 되어 정부 시책을 홍보하는 사례가 여럿 보인다. 표면상으로는 양국 간 민간 차원의 교류가 이어졌지만 실제로는 친일파 육성을 위한 일환이었고, 1910년 병탄 이후에는 '유공자'에 대한 보상 및 한국인 고위층·유력자에 대한 회유 차원에서 일본관광단이 계속 나타났다. 요컨대 이 시기의 '관광'은 일제의 대한정책의 일환으로 요긴하게 활용되었으며 나름대로 소기의 성과도 거두었던 것이다.  


제5장 1910년대 경주의 도시 변화와 문화유적 

1. 머리말 

조선총독부는 강점 직후에 충분히 이뤄내지 못했던 지방 지배를 달성하기 위해 1914년 군·면·동·리 통폐합 조치를 취하였다. 총독부는 1913년 12월 29일 총독부령 제111호로 '도의 위치, 관할구역 및 부·군의 명칭, 위치'를 정하고 이를 1914년 3월 1일부터 시행하도록 했다. 12개 지역에 부제를 실시하였는데 1910년도 12부제와 달리 부 밑에 면을 두지 않았다. 기존의 317개 군을 220개로 통폐합하였다. 면의 통폐합은 면의 구역 명칭의 변경이 도장관의 권한에 속하기 때문에 1914년 3월 1일 도별로 도령을 발포하고 4월 1일자로 실시했다. 그 결과 종래 4,336개의 면이 2,522개로 통폐합되었다. 1917년 10월부터 시행된 제령 제1호 '면제' 및 부령 제34호 '면제시행규칙'은 식민지 행정지배 체제를 완비하려는 일제의 1910년대 지방통치제도 정비과정의 한 귀결점을 이루는 것이었다. 면제는 면을 지정면과 보통면으로 나누었다. 이때 23개 면이 지정면으로 지정된다. 면제로 인해 총독부 권력이 면장·구장을 통해 사회 구석구석까지 미치기 시작하는 구조가 정착되기 시작한다. 1920년에 12개 부와 24개 지정면이 있었다. 조선시대 이래 전통적인 대읍 가운데 일본인 거주자가 적어 지정면으로 지정되지 못한 곳도 있었다. 1930년 12월 1일에 제령 12호에 의해 면제가 읍면제로 개정되었다. 1930년에 14개의 부와 41개의 지정면이 있었다. 


2. 읍성 성벽 철거와 읍성 지구의 변화 


성벽 철거는 도시 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가져오는 것으로 전통적 도시가 해체되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한국 읍성의 경우 지방제도의 개혁, 식민지화에 의해 성벽의 수리·보수 등의 손질이 가능하지 않고 존재가치가 없어진 것이 원인일 것이다. 자동차 사용의 보급에 의한 도로 신설·확장에 의해 부분적 파괴가 행해진 후 방치된 나머지 부분은 조선인 주민이 건축 재료로 사용하기 위해서 갖고 가버려 더욱 황폐화된 뒤에는 총독부에 의해 '개간'되어 택지나 농지로 전환되었던 것이다. 일부를 제외하고 대체로 읍성 성벽 철거에는 정치적 의미보다 철거 후에 얻을 경제적 이유가 우선되었다고 보여진다. 


3. 도로 개설ㆍ확장과 철도 개통 

철도건설과 치도사업은 토지조사 및 축항과 더불어 총독부의 4대 주요 식민지정책사업이었다. 신작로는 옛날의 길과 대비되는 뜻으로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었다. 


4. 문화유적의 보존 노력과 그성격 

5. 맺음말 

제6장 일본여행 협회(Japan Tourist Bureau)의 활동을 통해본 1910년대 조선관광 * 조성운 

1. 머리말


2. 일본여행협회의 설치 


근대관광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첫째, 여행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적·경제적 여유를 가진 계층, 즉 중산층이 탄생하였고 둘째, 철도라는 대량운송 수단이 발달하였으며 셋째, 제국주의적 발전에 수반하여 해외 식민지를 직접 보고자 했던 영국민의 열망 등 여러 조건들이 그 배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요시미 순야가 지적했듯이 박람회는 '제국'의 디스플레이, '상품'의 디스플레이, 흥행물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는 박람회가 제국주의의 발전과정에서 제국의 우수성과 근대문물을 선전하는 장치이면서 동시에 제국민의 오락물로서의 기능도 수행하고 있다는 의미라 생각된다. 그러나 이를 피식민지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박람회는 곧 피식민지의 야만성과 전근대성을 각인하는 장이며, 피식민지인을 제국 상품의 소비자로서 각인시키는 장이라는 의미로도 파악된다. 또한 박람회는 제국민과 마찬가지로 피식민지인에게도 오락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구에서 이루어진 근대관광은 일본에도 전하여졌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일본 최초의 단체해외관광여행은 러일전쟁의 승리 이후인 1906년 아사히 신문사가 주최하였던 만한순유단에서 찾을 수 있다. 만한순유단은 여행사가 아닌 신문사에서 주최하였다는 점이 특징이다. 만한순유단의 성공 이후부터 조선과 만주에 대한 일본인의 수학여행과 관광은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붐을 이루었다. 이 시기 일본인의 조선과 만주에 대한 시찰 혹은 여행은 주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통해 획득한 새로운 '영토'를 눈으로 확인함으로써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제국'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선전하고자 한 측면이 강하였다. 반면에 여행 참가자의 경우에는 사회의 유지 혹은 명사로서의 대접을 받게 됨으로써 사회적인 위치나 지위를 획득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 일본인의 조선과 만주여행은 제국주의로 성장하고 있었던 일본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강화하는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 시기 일본인의 조선과 만주여행에는 육군성의 역할이 매우 컸다. 일본의 근대관광은 20세기 초에 육군으로 대표되는 군부의 후원으로 시작되었다. 관광지로 볼 때 일본여행협회가 외국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장소는 주로 일본의 근대 문물과 관련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일본여행협회 설립 시 실무를 담당했던 기노시타 노시오가 일본여행협회의 설립 목적 중의 하나로 삼았던 서구인의 일본의식, 즉 이미 세계의 강국으로 등장한 일본을 (반)식민지에 불과하였던 다른 아시아국가와 동일시하고 있다는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한 활동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3. 일본여행협회의 조선관광 활동 

4. 맺음말 

제7장 철도의 부설과 근대관광의 형성 * 성주현 

1. 머리말 

근대문명의 산물인 철도와 그 위를 달리는 기차가 등장하면서 관광은 점차 대중화되었다. 뿐만 아니라 관광은 단체화, 상업화되면서 오히려 시공간에 얽매이게 되었다. 


2. 철도의 부설과 관광지의 탄생 

3. '테마관광'과 관광열차의 운행 

4. 맺음말 

제8장 일제시대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식민지적 성격에 대한 연구 * 김인덕 

1. 머리말 

2. 식민지 문화통치와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설립 

3.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조직과 운영 

4.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유물과 전시 

5.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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