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스미스
경제학의 패륜아들
애덤 스미스의 상생하는 삶
노동가치설의 원조는 애덤 스미스
「국부론」2권, 조세에 관한 부분에 유명한 조세의 4원칙을 언급한다. 애덤 스미스가 말한 과세의 일반원칙 중 제1원칙은 '과세의 평등'이다. 사람 따라 세율이 달라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누진세는 불평등한 과세니까 잘못 아니냐, 이렇게 반론을 펼 수 있다. 이에 대해 스미스는 "이런 것은 불합리하지 않은 불평등이며, 합리적인 불평등이다"라고 답한다.
생산은 쌓아놓기 위해서가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 하는 것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생산의 유일한 목적은 소비다."라고 분명히 언급합니다.
불의에 대한 단호한 처벌을 주장한 애덤 스미스
애덤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에서 말하는 법치는 '정의라는 원칙을 거스르는 행동에 대한 일종의 응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계약 질서 속에서 소유권을 보장'한다는 등의 내용을 일부 포함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정의 개념의 핵심은 "이를 어겼을 경우, 수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분노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원칙"을 말합니다. 「도덕감정론」의 한 구절인데 "분노와 증오가 나타나는 순간 사회의 모든 유대관계는 산산조각이 난다."고 애덤 스미스는 말합니다. 유대관계야말로 사회의 기본이기 때문에 애덤 스미스가 보기에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 자혜심 등이 중요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이기적인 사람들이 출현해야 맘대로 행동해 불의가 만연하면 자혜심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사회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에 국가가 개입해 법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애덤 스미스는 어쩌다 신자유주의의 아버지가 되었나?
@ 정치경제학은 어쩌다 경제학이 되었나?
서구에서 경제학이란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 오이코노미코스(oikonomilos)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가정(oikos)의 법, 관리(nomos 혹은 nem)를 의미하는 오이코노미아(oikonomia)에서 파생되었다. 즉 경제학이란 가정을 다스리고 관리하는 방법에 관한 학문이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가정이란 가장의 지배 아래 부모와 자녀, 노예들로 이루어진 대가족이었고, 이에 대한 통치술은 가장의 중요한 덕목이었다. 이 오이코노미코스의 주요 내용은 이윤 추구 방법이 아니라, 가정의 구성원들 사이의 도덕적 관계를 규율하는 가장의 통치술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경제학은 정치학의 일부였으며 윤리학의 성격도 띠고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경제학은 정치학의 일부였으며 윤리학의 성격도 띠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경제학이 부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화폐를 벌어들이려는 생활은 충동심에 따르는 생활이며, 부는 분명 우리가 추구하는 선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경제학을 폴리스의 통치를 다루는 정치학의 하위 분과로 설정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개인 혹은 기업의 이익, 효용을 극대화한다는 의미에서의 경제 혹은 경제학은 건전한 시민이 함께 토론할 만한 공적 주제로는 부적절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정치가 이미 재산을 지닌 자유시민들 사이의 공적 업무였기 때문일 것이다. 폴리스에서 논의되는 주제들은 참으로 '정치적인 것'들, 즉 시민들의 덕성과 정치적 탁월함, 외교와 같은 사안들이었다. 서구의 역사에서 경제에 대한 순수 공학적·실용적 접근은 오랫동안 배제되었다. 신학이 모든 학문을 지배하던 중세를 지나 근세에 들어와서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경제에 대한 이해에서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돈벌이, (효용, 이윤의) 극대화 같은 사고방식이 출현한 것은 17~18세기를 거치며 등장한 중상주의에 의해서였다. 중상주의자들은 경제가 국부의 기본이라고 인식하고 정치의 중심을 부의 증진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인구와 통상, 부에 대한 공학적으로 접근하는 정치산술의 발전은 주목할 만했다. 하지만 정치산술은 여전히 국가와 인구에 대한 통치에 관심을 기울였다. 경제는 여전히 정치의 손아귀 안에 있었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경제와 경제학 개념은 19세기 이래 경제가 통치와는 별개로 자동 조절되는 자연현상 같은 것이라는 인식이 성장하면서 나타났다. 특히 19세기 중후반 신고전파 경제학의 등장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국가, 국민, 집단 등이 개입되는 집합적 이해관계와 이에 대한 정치적·윤리적 판단을 완전히 배제하고 경제행위의 주체를 철저히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개인으로 설정했다. 이제 경제학이라는 명칭 아래서 경제는 개인의 합리적 선택에 의한 최적화=극대화 행위로 이해되고, 경제학은 그러한 선택의 형식과 논리를 탐구하는 독립적·자연과학적 학문으로 간주된다. 경제가 완전히 개인적인 법칙에 따르는 행위로 이해됨에 따라 집합적 요구를 수반하는 정치·사회 차원에서의 경제 개입은 재앙으로 간주되어 비판받는다. 무릇 모든 학문은 중요한 정의들, 공리들에 기반을 두게 마련이며, 경제학은 연역적 체계의 성격상 더욱 그렇다. 하지만 경제학 공부를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첫걸음, 고민의 출발점은 정의 이전에 학문의 명칭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카를 마르크스 1
신용공황과 현대 금융위기
한 성깔 하시는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창시자
자본가의 사촌이자 절친인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창시자
공황은 태양 흑점 탓?
기술적 뻥튀기, 자본주의 경제의 고질적인 모순
부시는 공산주의자?
세금을 퍼부어서 사기업들을 살렸습니다. 이익 났을 때 자본가들이 국민에게 돌려준 적이 있나요? 그런데 손해를 왜 세금으로 메웁니까. 한다미로 '이익은 사유화, 손실은 사회화'라는 것입니다. 일본이 1970~80년대 경제성장을 구가하던 시절, 도쿄대, 교토대 같은 명문대 경제학과에는 좌파 학자들이 더 많았어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득시글거렸습니다. 거기서 배운 학생들이 현대 일본의 경제성장을 이뤄냈어요. 한국 우파들은 자신감이 많이 부족합나다.
카를 마르크스 2
착취는 끝나지 않았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예니와 메리
노동력의 가치와 임금할증률
이윤의 마술
비정규직과 노동생산성
수탈과 식민지 근대화론
@ 노동이 아니라 쇼핑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이유
마르크스가 보기에 소외는 근본적으로 물질적인 현실 생활, 바로 노동에서 비롯되는 문제였다. 자본주의에서의 노동의 소외라는 물질적 현실에서 문제가 비롯되는 한, 소외의 극복 역시 자본주의의 극복이라는 현실의 차원에서만 가능하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주의경제 속에서 노동자는 네 가지 측면에서 노동의 소외를 겪게 된다. 첫째, 노동자는 자신이 생산한 생산물로부터 소외된다. 엄연히 자신이 생산한 생산물이지만 자본가의 것이 되어 마음대로 처분되기 때문이다. 생산물은 상품이 되어 돈이 없으면 살 수 없고, 노동자가 생산한 것이 오히려 노동자의 삶을 지배하게 된다. 둘째, 노동자는 일하는 과정 저체, 즉 노동과정에서 소외된다. 실제로 일하는 사람은 노동자지만, 노동과정은 철저하게 자본가의 지시에 따라 구상되고 조직된다. 따라서 노동자는 우리의 삶 중 가장 긴 시간을 차지하는 노동과정에서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를 발현할 수 없게 된다. 셋째, 노동자는 유적 존재로부터 소외된다. 마르크스가 사용하는 유적 존재하는 용어는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인류로서의 유적 특성을 지닌 존재임을 가리키는 말이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그저 생존을 위해서만 본능적으로 일하는 것은 아니다. 생존 욕구를 넘어서 자류롭고 창조적인 생산 활동을 수행하고 싶어하고, 노동 속에서 보람,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런 유적 본성을 거비당하는 자본주의적 노동은 오직 생존을 위한 수단적 활동으로 격하되며, 결국 부정적 고통을 안겨준다. 넷째, 노동자는 노동을 하면서 인간으로부터 소외된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서로 관계를 맺고, 관계 속에서 의미를 찾는 존재다. 인간의 노동 또한 당연히 타인의 노동과 협력 관계를 맺음으로써 의미와 가치를 가진다. 하지만 자본가의 일방적인 지시와 정교화된 분업, 경쟁 체제 속에서 노동하는 노동자들은 타인과의 관계로부터 소외된다.
막스 베버
개신교와 자본가
온건 모범생 좌파의 일생
베버는 마르크스의 대척점에 서 있나
사민당들이 공산당과 사민주의 계열 정당으로 분열하는 계기가 바로 1차 대전에 대한 태도였다. 원래 전쟁에 대한 사회민주당의 입장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따른 반전이었다. 자본가들이 노동자와 민중을 내세워 제국주의 쟁탈전을 벌이는 상황이라고 보았다. 그 때문에 당연히 고립되었고, 전쟁이 났는데 지금 무슨 소리냐는 압력을 받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상당수 사람들, 특히 당내 우파들이 애국 전쟁, 조국 수호 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전쟁 찬성으로 입장을 바꾼다. 전쟁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사민당으로 남고, 반대한 사람들은 이후 공산당으로 갈라서게 된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의의와 한계
개신교 자본주의보다 더 대담한 유교 자본주의론
@ 막스 베버의 서구중심주의
칼 폴라니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헝가리 최고의 살롱이 낳은 지식인
노동의 상품화는 파시즘의 원인
사회적 경제의 원조
문제는 다시, 민주주의
@ 인간 욕망의 무한성이라는 신화를 해부하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 1
저축에 저주를
지금 당장의 쾌락을 사랑한 천재
대중과 함께 오류에 빠져라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하려면 확실하게
장기 불황 시대, 케인스의 한계
존 메이너드 케인스 2
삽질과 수정자본주의
병역 면제와 인종주의 발언 논란의 실상
전쟁 케인스주의의 효과
전후 복지국가의 네 가지 모델
삽질과 창조경제를 넘어서
@ 화폐 신비의 해부와 경제위기의 근원
조지프 슘페터
자본주의의 몰락을 예언하다
슘페터의 귀족 코스프레
민주주의의 진전과 엘리트주의의 부상
창조적 파괴의 진짜 의미
진화하는 생물학이 경제학의 모델이다
슘페터에 대한 지독한 오독
신고전파 경제학의 오류
재벌은 혁신의 주체인가
@슘페터는 왜 그토록 마르크스를 칭송했을까?
소스타인 베블런
과시적 소비의 힘과 함정
이주 농민의 아들에서 나쁜 남자로
주류 경제학과 상극인 제도학파 경제학의 선구자
과시적 소비의 먹이사슬
명품, 외제차, 강남 아파트 속에서 옅어지는 주체성
@ 제도학파 경제학과 주류 경제학
마르셀 모스
선물 경제는 가능한가
폭력 혁명보다 협동조합에서 미래를 본 인류학자
쫄딱 망할수록 존경받는 경제
착해서가 아니라 왕따가 되지 않으려고 하는 연대
마이크로크레디트, 그라민 은행, 레츠, 그리고 협동조합
@ 선물의 역설과 불가능성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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