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부의 역사], 권홍우, 인물과사상사, 2008, (160228).

바람과 술 2016. 2. 28. 00:05

머리말 004

Ⅰ장 황금 제국과 유대인

1. 역사의 갈림길, 1492년

1492년, 어떤 일이 일어났다 015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말고도 두 가지 사건이 더 숨어 있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 따져보면 신대륙 발견보다 더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 두 가지 사건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레콘키스타(Reconquista)의 완성'과 '유대인 추방령의 선포'이다. 먼저 '케론키스타'는 단어 그대로 해석하면 '재정복'이지만, 8세기부터 15세기에 걸쳐 지금의 에스퍄냐와 포르투갈 지역인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하고 있던 이슬람 왕국을 몰아낸 기독교 세력의 국토회복운동을 말한다. 또 하나의 사건은 '유대인 추방령의 선포'이다. '알람브라 칙명'이라고 불리는 유대인 추방령으로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슬람 무어족 수십만 명이 에스파냐에서 강제로 쫓겨났다. 중요한 점은 알람브라 칙령이 수천 년에 걸친 유대인 방랑사의 일부에 그치는 게 아니라 두고두고 경제사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독립과 영국의 발흥, 15세기 말부터 19세기 말까지의 삼각무역, 미국의 성장 등이 에스파냐에서 쫓겨난 유대인이라는 키워드로 설명될 수 있다. 1월 레콘키스타의 완성과 3월 알람브라 칙령의 선포, 10월 신대륙의 발견으로 숨 가쁘게 이어진 1492년의 사건들은 시기적, 지리적 공통점과는 또 다른 세 가지 영역에서 교집합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종교 이데올로기와 돈 그리고 사람이다. 


세기의 결혼으로 781년 만에 이룬 숙원 019 

 
알람브라 칙령의 비극 024

2. 에스파냐의 풍요와 밑 빠진 독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이유 033


아메리카 대륙의 수난과 약탈 042

 
패권국가로 발돋움하게 한 '세기의 결혼' 048


정략결혼이 만든 초강대국 051 

'밑 빠진 독' 에스파냐의 오만과 전쟁 056


주체하지 못한 부와 쫓겨난 유대인 064

3. 종교적 갈등을 넘어선 유럽

프랑스를 등지게 만든 종교 071


피로서 얻은 종교의 자유 080

4. 사상 최고의 부자나라 네덜란드

탄압과 거친 환경을 이긴 원동력, 자유 084


근면으로 일군 땅과 행운 088 

성장률 0.52퍼센트를 이룬 기적의 바탕 090


일본을 눈 뜨게 한 네덜란드 094

5. 유대인의 유랑과 부의 이동

떠나버린 기회, 네덜란드의 쇠퇴 098


영국의 발흥과 유대인 101

유대인의 유랑과 부의 이동 108

Ⅱ장 광기와 탐욕, 팽창과 거품의 시대

1. 17∼18세기 '버블 쓰리'

자본주의 최초의 버블, 튤립 투기 114


남해회사 버블과 잉글랜드 은행 123


미시시피 버블과 무너진 프랑스의 꿈 135


좋은 돈과 나쁜 돈 140

2. 대항해와 금을 향한 행진곡


700년 만에 다시 등장한 금화 146


포르투갈의 금을 향한 갈망 149 


약탈한 황금의 약탈 전쟁 156


아프리카의 비극, 노예사냥과 삼각무역 169

약탈과 무역에서 싹튼 금융산업 180

3. 투기와 독점의 시대
투기로 시작한 미국의 역사 186


권력형 투기, 재무부 차관과 부통령 190

 
월스트리트의 도둑 귀족들 198


달러 공주와 재산 사냥꾼 223

4. 산업스파이로부터 시작된 산업혁명

산업스파이 롬브 형제와 암살단 231


미국 제조업의 아버지는 영국의 반역자 236

광기에 묻혀버린 거장, 보캉송과 폴햄 244

5.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대 


산업자본의 승리, 곡물법 폐지 251


맬서스는 케임브리지 대학을 나온 뒤 영국 동인도회사가 세운 동인도대학에서 개설한 '정치경제학' 강의를 맡은 역사상 최조의 '경제학 교수'였다. 이전가지는 경제학이라는 독립 학문이 아예 없었다. 애덤 스미스도 '도덕철학'을 가르쳤다. ,


'황금의 십자가'와, 금융과 산업의 약진 256

 
거대 독점기업과 독점자본가의 등장 261


미국식 대량생산의 시작 268 

포드는 1914년 하루 최저 임금을 2.35달러에서 5달러로 올리고 작업 시간을 9시간에서 8시간으로 줄인다는 파격적인 임금 인상과 작업 시간 단축을 단행하였다. 임금을 올리고 작업 시간을 줄여도 생산성이 그 이상 올라가면 차의 가격을 내릴 여유가 생긴다는 믿음에서다. 자동차업계에서는 포드의 임금 인상 소식을 듣고는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했지만 실은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발상이 갈려 있었던 것이다. 컨베이어시스템에 의한 대량생산 체제를 갖춘 되 결근율이 10%, 이직률은 370%로 각각 두 배 이상씩으로 올랐다는 보고서를 받고는 단행한 게 임금인상이었다. 포드의 계산대로 포드자동차는 임금 인상 이후 창사 이래 최대의 실적을 거뒀다. 임금 인상은 또 다른 생산성 극대화 노력이었던 셈이다. 


미국식이냐, 독일식이냐 283


미국식 대량생산의 상징으로 포드자동차의 모델 T 승용차를 꼽지만 진짜 중인공은 따로 있다. 모델 T와 견줄 만한 차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독일 폴크스바겐 비틀의 생산량은 모델 T보다 훨씬 많다. 분업과 속도, 대량생산을 특징으로 삼은 미국식 생산양식의 대표 품목은 자동차가 아니라 선박이다. 그 선박의 이름은 '리버티(Libetty)선'이다. 1941년 9월 초도선인 재화중량(화물을 적재했을 때 중량) 1만 920톤짜리 '페트릭 헨리'가 건조된 이래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2718척이나 건조된 화물선이다. 보다 고급형인 빅토리선 550척과 유조선인 T2선 533척까지 합치면 총 건조물량은 무려 3801척에 이른다. 이를 날짜로 나누면 전쟁 중에 하루 평균 3.5척씩 건조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Ⅲ장 유한한 자원, 무한한 욕심 


1. 자원 확보와 석탄의 등장

삼림 고갈과 산업혁명 291


대항해와 전쟁은 숲을 더욱 빠르게 황폐화시켰다. 무기며 농기구 제작, 선박의 철재 부소품 제조에 들어가는 철 1톤을 생산하려면 목탄 1000톤이 필요했다. 철이나 구리 같은 금속을 녹이는 데 필요한 고온을 낼 수 있는 연료는 나무를 밀폐된 가마에서 태운 목탄밖에 없었다. 선박 건조에는 특히 많은 목재가 필요했다. 국가 방위에 필요한 군함 건조용 목재마저 부족해지자 영국은 1558년 수목 벌채를 제한하는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국토의 30% 이상을 차지하던 삼림지대가 16세기 중반 이후 16% 이하로 감소하자 벌목 금지령을 내린 것이다. 전쟁이 빈발해지며 군함과 민간 상선의 수요도 늘어나 영국에서 목재는 점점 귀해졌다. 영국이 아메리카 식민지에 제조업을 육성하지 않으려던 당초 방침을 바꿔 식민지 동부 해안에 목재가공업과 조선소를 세워 선박을 건조했던 것도 목재 부족 때문이다. 1714~1763년 사이에 두 배로 커진 영국 해군의 신규 군함 건조에 들어간 목재의 대부분은 아메리카 식민지의 울창한 살림에서 벌목된 것이었다. 산업혁명과 제철 기술의 발달은 바로 이런 토양에서 비롯됐다. 기술 혁신의 주역은 가장 먼저 살림자원이 고갈돼 나무 대신 석탄을 땔감으로 사용한 영국이었다. 석탄을 사용하는 처지의 영국을 다른 나라들은 거지처럼 여겼다. 유황이 섞여 있어 매캐한 연기를 내며 빨래를 검게 만드는 오염 덩어리인 석탄을 때는 계층은 빈민들이었다. 빈민가에서 사용하는 석탄 때문에 13세기부터 런던은 뿌연 연기로 뒤덮였다. 나무가 귀해진 17세기 후반부터는 부유한 사람들도 석탄을 연료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변방으로만 여겨졌던 러시아가 유럽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도 표트르 대제의 근대화 개혁 노력도 있었지만 다른 나라들에는 없었던 풍부한 목재와 철 등의 지하자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자원 확보전과 알자스로렌의 역정 296

 
독일의 경제발전과 석유 확보 계획 302

1차 세계대전의 배경에는 독일에게 석유 에너지라는 날개를 달아주고 싶지 않았던 영국과 에너지 자립을 향한 독일의 갈등과 대립이 깔려 있었다. 영국의 3C 정책과 독일의 3B 정책의 충돌 역시 처음에는 해외 진출과 세력 확대 경쟁이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석유의 효용성이 부각되면서 에너지 문제까지 포함하는 복잡한 사안으로 발전했던 것이다. 


2. 검은 황금, 석유의 시대

석유시대를 연 3인방 308


검은 황금을 향한 질주, 오일러시 314

 

고갈 위기론과 미국 석유의 전성시대 318


중동 석유시대의 개막 322 

전함 한니발호의 실험과 윈스턴 처칠 328

3.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독일의 계획을 무너뜨린 파리 택시부대 333


석유 부족으로 무너진 독일 338

 
전쟁의 손익계산서 340


전간기, 피폐해진 독일과 번영을 맞이한 미국 345

 
세계 대공황과 관세법, 경제의 블록화 351

4. 석유와 금융을 장악하라

석유와 돈으로 싸운 2차 세계대전 360


독일과 일본이 아직까지 중립을 유지하는 미국을 자극시킬 수 있다는 위험을 마다하지 않고 삼국 협정을 군사동맹으로 끌어올린 이유는 서로 '제2전선'을 원했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일본이 시베리아를 공격하기를, 일본은 독일이 미국을 견제해주기를 바랐다. 독일과 일본의 계산은 바로 어긋났다. 두 가지 요인에서다. 첫 번째 요인은 석유다. 석탄에서 추출한 합성석유를 생산해 석유 수요의 절반 이상을 충당한 독일은 계획대로 밀고 나갔지만 일본은 미국의 석유 금수로 장비 가동이 어려워지자 시베리아 대신 보르네오 유전을 차지하기 위해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두 번째 요인은 바로 경제력이다. 1939년 주축국(독일/이탈리아/일본)의 국내총생산(GDP, 1990년 가치로 환산) 5990억 달러로 영국과 프랑스의 4860억달러 웃돌았다. 일본이 삼국동맹에 가세하고 프랑스가 점령된 1940년 주축국의 국내총생산은 9170억 달러로 외롭게 남은 3170억 달러의 영국을 압도했다. 경제력에서도 오히려 연합국보다 우위세 섰던 이 시기가 바로 주축국의 최전성기였다. 미국과 소련이 참전한 다음해인 1942년, 양 진영의 국내총생산은 연합국이 1조8620억 달러이고 주축국이 9020억 달러로 역전되고 종전 무렵에는 2조4340억 달러와 4660억 달러로 벌어졌다. 자본력 추이와 전쟁의 양상은 정확하게 일치했다. 베트남 같은 예외가 있지만 경제력 없는 전쟁의 종말은 패망으로 귀착된다는 사실이 2차 세계대전에서도 증빙된 것이다.             


독일의 생명줄, 합성석유 366

 

진주만 기습의 숨은 이유 370


승리와 패권을 보장한 세 가지, 무기·돈·석유 372


20세기 초반까지 말의 머릿수로 표시되던 미군 1개 사단의 기동력은 1차 세계대전을 지나며 4000마력으로 높아진 뒤 2차 세계대전에서는 18만 7000마력으로 뛰었다. 요즈음 그 10배가 넘는다.  


5. 석유를 향한 탐욕과 음모 


잘못 끼워진 단추, 아작스 작전 381


석유 메이저와 반항아 마테이 388

닉슨 쇼크와 철 본위제도 396

맺음말 400
참고문헌 405
찾아보기 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