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어머니 품을 설계한 건축가 가우디], 하이스 반 헨스베르헌, 양성혜, 2002, (200414).

바람과 술 2020. 4. 14. 01:58

지은이의 말 ... 4

가우디의 작품 세계 ... 10

들어가는 글 ... 50

카탈루냐 사람들은 가우디 천재성의 원천이 되었던 '변함 없는 고향에 대한 사랑'을 쉽게 찾아낼 것이다. 이러한 애향심은 가우디의 전 생애를 지탱하는 자양분이었다.   


공간감을 타고난 사람들 ... 63

빛은 가우디 작품 세계의 반복되는 주제이다. 


가우디의 간헐적인 발병이 학업에 장애물이었고, 그가 암기를 혐오했다고 전한다. 


광야의 목소리 ... 82

가우디의 사상은 복고 스타일이다. 혁명적이며 혁신적이라고 알려진 가우디의 명성을 생각해 볼 때, 그의 사상이 원형적이며 보수적인 것은 놀랍다. 


경이로운 도시 ... 91

가우디는 스스로를 장인으로 여겼지 사상가로 여기지 않았다. 가장 행복한 순간은 혼자 있을 때였고, '제자들이나 충실한 직공들과 함께 있을 때만 편안하게' 느꼈다. 가우디 역시 조수 베렝게르를 가리켜 없어서는 안 될 오른팔이라고 애정어린 말을 했으며, 조각가 마타말라를 칭찬하였다. 


가우디는 대학 1학년 때 과제를 위한 주제를 모색하다가 요한계시록을 선택한다. 성서와 가톨릭 의식을 한 단어 한 단어 재해석하였고, 이를 토대로 작업의 주요 방향을 잡았다. 


건축 실습생 ... 119

1876년 가을, 가우디의 형 프란시스코가 죽었다. 두 달이 채 안 되어 9월 6일, 사랑하는 어머니마저 아들의 뒤를 따랐다. 이제 가문에 유일하게 남은 아들로서, 가문의 흥망성쇠를 짊어지게 된 것이다. 이로부터 두 달리 지난 후부터 가우디가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예사롭지 않다. 이것은 가우디의 일상 생활에 대해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다. 


가우디는 건축과 디자인에서 장식물의 배치를 결정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가우디의 책상은 가우디 건축 이론의 발달상을 보여 준다. 가우디의 책상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이 책상은 세니사 거리에 있는 에두아르도 푼티의 작업실에서 제작되었는데, 가우디는 그곳에서 어느 날 우연히 들른 갑부 에우세비 구엘을 소개받는다. 이 두 사람은 곧 친구가 되었다. 이들의 우정은 급속하게 발전하였고 예술가와 후원자의 각별한 관계를 맺는다. 에우세비를 만나기 전에 가우디가 완수한 프로젝트는 네 개에 불과했다. 자신의 책상과 엔리케 히로시를 위한 철재 꽃가판이었는데, 후자는 원래 대량 생산이 목적이었지만 의뢰인이 파산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천국과 하렘에서 바라본 광경 ... 143

19세기 말, 당대 대다수 지식인에게 가톨릭의 부활은 에술을 위한 예술, 상징주의, 데카당스, 댄디즘, 동성애, 사디즘이 섞인 이상한 잡종 예술을 의미했다.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가톨릭 교회는 '지성주의(주지주의)와 관능주의를 결합한' 데카당스와 한솥밥을 먹는 셈이었다. 양자에겐 물질주의라는 공통의 적이 있었다. 당시 물질주의는 사회의 무감각 속에 팽배해 있었고, 반면 유미주의는 무자비한 산업화의 폐해로부터 빠져 나올 수 있는 돌파구를 제공했다.  


성스러운 사제들 ... 163

새로운 예루살렘을 향하여 ... 199

가우디를 흥분시켰던 것은 영화 매체가 지닌 최면력과 직접성, 발터 벤야민이 지칭한 '변화무쌍하면서도 간파해 내는 기호'의 속성이었다. 가우디는 무엇보다 집단 의식에 깊은 여운을 남기고 대부분이 문맹자인 대중의 관심을 낚야채는 영화의 능력에 탄복했고, 이것이 그가 앞으로 건축에서 추구해야 할 목표가 되었다. 


낙원에서 ... 237

뼈로 된 집 ... 251

포위된 요새 ... 256

피안의 동굴 ... 286

검은 먹구름 ... 295

비극의 주 ... 306

조약돌 던지기 ... 322

나무와 같은 심오한 상징 ... 327

가난한 자들의 성당 ... 357

주 ... 390

가우디 연보 ... 412

바르셀로나와 카탈루냐의 가우디 작품 ... 420

참고문헌 ... 422

찾아보기 ... 426

옮긴이의 말 ... 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