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주체], 이정우/조광제/김석수/장미란/정수복, 산해, 2001, (220207)

바람과 술 2022. 2. 7. 01:36

작은철학총서를 펴내며

 

1. 나-되기 남-되기 우리-되기 : 이정우

 

인간으로 태어나 겪는 숱한 슬픔과 기쁨, 사랑과 미움은 근본적으로 '나'라고 하는 것에서 나오는 것 같다. '나'라는 존재가 없는 세계는 의미도 감정도 없는 세계일 것이다. 우리는 늘 '나'라는 것을 가꾸고 변형시키고 때로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고 하면서 한편생 '나'에 집착한다. 결국 인간의 삶이란 '나'를 둘러싸고 벌어지며, 모든 의미는 이 '나'를 둘러싸고 발생한다. 벗어나고 싶지만 죽는 그날까지 벗어날 수 없는 존재, 역으로 빠듯이 채우고 싶지만 결코 제대로 채워지지 않는 존재, 우리는 이런 '나'를 가리켜 '주체'라 부른다. 

 

주체란 무엇인가? 더 정확히 말해, 주체란 언제 성립하는가? 주체란 마음속으로든 명시적으로든 "나는 ○○이다"라고 언표할 때 성립한다. '나'는 하나의 개체성이다. '나'를 언표하는 것은 하나의 개체성이 존립함을, 자와 타가 구분됨을 전제한다. 따라서 나와 남(여기에서는 인간만이 아니라 자기 아닌 모든 존재들)을 가를 수 있는 의식 수준을 전제한다. 그것은 곧 자기 의식이다. 그러나 주체가 반드시 개체인 것은 아니다. '우리'로서의 주체, 즉 집단적 주체들도 존재한다. 하나의 집단이 공통의 규정성들을 가지는 한에서 그리고 오직 그만큼만 집단적 주체가 가능하다. 주체에 대한 이런 공간론적-집합론적 규정은 우리의 삶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곧 붕괴된다. 주체는 일정한 규정성을 통해 스스로를 정립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규정성들에 대해 끝없이 번민한다. 즉 주체란 "○ 되기"를 통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 되기"는 시간이라는 지평 위에서 성립한다. 주체가 시간의 지평 위에서 되어 가는 과정을 경험이라고 한다. 주체는 경험을 통해서 되어 간다. 경험이란 겪음이다. 주체는 살아 있는 한 끝없이 겪는다. 산다는 것은 곧 겪는다는 것이다. 겪음은 차이를 발생시킨다. 주체의 기억이 기억으로서 성립하는 것은 사건들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차이가 없는 동질적이고 정적인 의식은 기억으로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차이가 없을 때 등장하는 것은 적막하고 고요한 등질성일 뿐이다. 차이는 구체적인 존재함의 기본 조건이다.

 

주체의 겪음은 다양한 측면들을 내포하며 그 중에는 인식도 포함된다. 인식은 두 얼굴을 띤다. 인식은 인식 주체가 하는 것으로서 특정한 대상을 일정하게 구성한다는 것, 즉 그 대상에 일정한 의미를 투여해 객체화한다는 것을 뜻한다. 즉, 주체는 대상을 객체화함으로써 스스로를 주체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객체화된 대상은 거꾸로 주체를 객체화한다. 결국 자신이 객체화했던 대상에 의해 그 자신 객체화되는 것이다. 요컨대 주체는 자신이 객체화한 대상에 의해 결국 스스로를 객체화하게 되는 것이다. 주체화는 그 등 뒤에 객체화의 그림자를 달고 있다. 나-되기는 남-되기를 함축한다. 나-되기가 성립할 때 이미 남-되기가 준비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지각과 본능을 넘어 사물들을 인식하고 조작하는 단계에 이른다. 이게 그렇게 조작적 객체는 그 자체 주체를 객체화하는 상황, 문명, 제도, 기계 등으로 화한다. 인간은 기계를 만들어내지만 이번에는 기계들이 인간을 지배한다. 기술은 인간의 신체에만이 아니라 인식과 감성에까지 근본적인 변화를 강요한다. 기술을 통한 나-되기는 결국 남-되기로 귀착한다. 정보를 통한 세계의 객체화와 그 객체성에 의한 주체의 객체화에 있거, 가장 극단적인 경우는 인간이 자신의 생각/마음을 객체화함으로써 다시 정보망의 객체로 전락하는 경우일 것이다(알수 없는 알고리즘이 나의 존재를 규정한다). 인간은 대상을 개념의 수준에서 인식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지만, 주체가 만들어낸 개념들은 그 후 주체를 지배한다. 

 

인간은 세계를 인식함으로써 그리고 그 인식을 사용해 세계를 조작함으로써 주체가 된다. 그러나 결국 그렇게 객관화된 세계는 인간에게 복수하며 인간 자신이 객체화된다. 이런 변화를 모든 주체들이 원한 것은 아니다. 특정한 주체들이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다. 이 특정한 주체가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주체는 기득권 세력이며 다른 주체들이 힘을 미치는 경우는 미미하다. 세계는 수많은 '우리'들로 구성된다. 그러나 우리-되기는 곧 다른 우리의 객체화를 수반한다. 이렇게 객체화된 주체들이 고개를 들고 다시 주체화되려면, 다양한 '우리'들 사이의 대화와 협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성적 사회란 막연한 이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실질적 힘의 균형을 통해서 가능하다. 이성적 사회란 기득권 세력에 맞설 수 있는 저항 주체의 힘에 의해 가능한 것이다. 

 

'나'는 자기 규정을 통해 성립한다. 그러나 극히 내밀한 차원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나'는 '우리'로서 존재한다. 주체화란 결국 능동이자 수동이며, 나-되기이자 남-되기이다. 힘과 힘이 균형을 이룸으로써, 타자와 타자가 서로를 인정하고 공존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이것은 곧 한 개체/집단에게서의 주체화와 객체화의 균형이다. 나의 주체성을 인정하는 만큼 타자의 주체성을 인정하는 것, 타자를 객체화하는 만큼 나 자신도 자발적으로 객체화하는 것, 이러한 주체화와 자기 객체화 사이에 균형이 무너질 때 삶의 건강성은 무너진다. 

 

2. 주체의 신화를 넘어서 : 조광제

 

3. 21세기 시민 주체의 길 : 김석수

 

4. 여성 주체의 형성과 여성운동 : 장미란/정수복

 

독자성이란 자기의 생각과 판단력, 원칙뿐 아니라 자기 느낌을 존중하고 확신하는 것을 말한다. 자기 나름의 독특한 느낌, 생각을 가지려 하고, 그러한 자기의 독특함을 스스로 느끼고 인정하며 존중해 주는 것이다. 독자성은 자기에 대한 기본적 신뢰가 있을 때만 가질 수 있다. 그렇다고 독자성을 갖는다는 것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것은 아니다. 독자성을 가진 사람은 내가 독자적인 만큼 다른 사람의 독자성도 존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