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청소년이 읽는 오자서와 손무],조병덕,운디네,2004년,(061119).

바람과 술 2008. 6. 15. 04:25

머리말

 

01 며느리를 취한 평왕

 

02 비무기의 농간

 

03 도망치는 오자서

 

04 전제(專諸)

 

05 공자 광(光)

 

06 손무(孫武)

다섯 가지 기본 조건과 일곱 가지 실정을 비교해 보면 승자와 패자를 미리 알 수 있다. 다섯 가지 기본 조건 1. 대의 명분 2. 기상과 기후 3. 지리적 이점 4. 장수의 능력 5. 군대의 질서와 규율 / 일곱 가지 실정(實情) 1. 군주는 누가 더 법도가 있는가 2. 장수는 누가 더 유능한가 3. 천시(天時)와 지리(地理)는 누가 더 얻고 있는가 4. 군대는 누가 강한가 5. 병사는 누가 더 훈련되었는가 6. 상벌은 어느 쪽이 엄정한가 7. ? (책에 안 나옴)

 

07 요리(要離)

동해에 사는 치구흔이라는 용사는 무예가 뛰어나고 용맹스러워 세상에 자기를 대적할 용사는 없다고 자부하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가 신연(神淵)이라는 연못을 지나다 하인을 불러 말에게 물을 먹이게 하였다. 하인이 말에게 물을 먹이고 있는데 신연에 산다는 수신이 말을 쑥 빨아 연못으로 가지고 들어가자. 이것을 본 치구흔이 입고 있던 옷을 벗고 칼을 빼들고 연못으로 뛰어들어 수신(水神)과 싸�는데 사흘 밤낮을 싸워 마침내 교룡 세 마리와 용 한 마리를 잡아 가지고 연못 밖으로 나오자 이번엔 뇌신(雷神)이 참을 수 없어 천둥방망이로 치구흔을 내리치고 번갯불로 태우려 열흘을 계속했지만 치구흔의 한쪽 눈만 멀게 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요리가 이 소식을 듣고 치구흔이 정말 용사인지 알아보려 그의 집으로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하고 집을 나오다 마을 어귀 상가에서 물귀신과 벌였던 일을 거만스럽게 이야기하며 자못 의기양양해 하는 치구흔을 만나게 되었다.요리는 "내 그대가 천하의 용사라 하기에 천 리를 마다않고 이렇게 달려왔는데 와서 보니 그 소문이 모두 잘못되었소이다. 무릇 하늘에 진 원수라면 하루를 넘기지 않는 법이요, 인간에게 진 원수라면 발뒤꿈치 돌릴 여유도 주지 않고 즉시 갚아야 하는 것쯤은 누구나 잘 아는 바이오. 그대는 비록 수신과 싸웠다고는 하나 말과 하인을 잃었고 게다가 한쪽 눈까지 잃어 불구의 몸이 되었거늘 자중하고 부끄러워할 줄은 모르고 거만스럽게 뽐내는 걸 보니 그대가 용사라는 말은 모두 거짓이오"라고 말 하면 떠나왔다. 집에 온 요리는 집 사람들에게 "내가 오늘 치구흔이라는 용사를 여러 사람 앞에서 모욕을 주었소. 그는 틀림없이 오늘 안으로 나에게 복수하러 올 것이오"라고 말하며 사람들을 친척네 집으로 보내고 자신은 대문을 활짝 열어 놓고 방문을 잠그지 않은 채 잠을 청했다. 한밤중이 되자 요리의 예상대로 치구흔이 찾아왔다. 담을 넘으려던 치구흔은 대문이 열려 있자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방문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당연히 잠겨있어야 할 방문이 스르르 열리는 것이 아닌가? 치구흔은 허리춤에서 칼을 꺼내 요리의 목에 바싹 가져다대고 입을 열었다. "너는 죽어야 할 잘못을 저질렀다. 무엇인지 아느냐"하자 요리는 "잘 모르겠다. 무엇이냐"라고 대꾸하자. 치구흔은 "1.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에게 모욕을 주었고 2. 밤이 되었는데도 대문을 열어 놓은 잘못이며 3. 방문을 닫아걸지 않은 잘못이다"라고 치구흔이 말하였다. 그러자, 요리는 "너는 세가지 못난 행동을 범하고 있음을 아느냐"라고 말하자. 치구흔은 "못난 행동이 무엇이냐"라고 하자. 요리는 "1. 여러 사람들 앞에서 모욕을 주었을 때 그 자리에서 반박하지 못하고, 이렇게 도둑고양이처럼 한 밤중에 남의 집을 찾아온 것 2. 용사가 칼을 뽑아놓고도 찌르지 못 한 것 3. 죽이려 칼을 빼놓고도 쓸데없는 말을 한 것"이라 대답하였다. 이 말에 치구흔은 칼을 땅에 떨어뜨리고 "천하에 내가 못 따라갈 사람은 요리뿐이로다"라고 말 하였다고 한다.

 

08 채부인을 모셔오다

  

09 평왕 죽다

 

10 전제, 요왕을 죽이다

 

11 동병상련(同病相憐)

 

12 요리, 경기를 죽이다

 

13 일벌백계(一罰百戒)

 

14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全不殆)

간첩에는 다섯 종류가 있는데 적국의 백성을 시켜 정보를 제공하게 하는 향간(鄕間), 적국의 관리를 매수하여 정보를 제공하게 하는 내간(內間), 적국의 간첩을 역이용하는 반간(反間), 죽음을 각오하고 적국에 잠입하여 아군에 대한 거짓 정보를 유포시키는 사간(死間), 적국에서 살아 돌아와 정보를 제공하는 생간(生間).

 

15 낭와의 전횡

 

16 전화위복(轉禍爲福)

 

17 출병(出兵)

 

18 공명심에 일을 망치다

 

19 심윤술 죽다

 

20 입성(入城)

 

21 편사시(鞭死屍)

 

22 일모도원(日慕途遠)

 

23 어대부(漁大夫)

 

24 연합군

 

25 반란

 

26 합려 죽다

 

27 회계지치(會稽之恥)

 

28 월왕, 마부가 되다

 

29 상분(嘗糞)

 

30 상담(嘗膽)

"구천아, 너는 회계산에서의 치욕을 잊었느냐?" 어찌나 이를 갈았던지 이가 모두 닳을 지경이었다. 이처럼 자신에게 혹독했던 만큼 백성들에 대한 법령도 철저했다. 젊은 남자는 늙은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지 못하며 늙은 남자는 젊은 여자를 아내로 삼지 못하게 했고, 여자 나이 열일곱 살이 되어도 결혼하지 않는다거나 남자 나이 스무 살이 지나도록 결혼하지 않으면 당사자는 물론 그 부모까지도 엄하게 처벌했으니 이는 모두 튼튼한 아들을 낳기 위한 조치였다. 또 여자가 아이를 낳으면 반드시 관에 신고를 해야 �으며 사내아이를 낳으면 개 한 마리를 주고, 여자아이를 낳으면 돼지 한 마리를 주어 임산부의 영양을 보충하게 했다(약간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 아들 셋을 낳으면 나라에서 둘을 길러주고 아들 둘을 낳으면 하나를 나라가 길러 주었다.

월나라의 원수를 갚고 대왕의 수모를 씻는 방법에는 일곱 가지가 있습니다. 재물로 오왕과 신하들을 기쁘게 하여 방심하게 하는 것이 첫째요, 곡식을 빌려 창고를 비게 하는 것이 둘째이고, 미인을 보내어 오왕의 마음을 흐리게 하는 것이 셋째이며, 뛰어난 목공과 좋은 재목을 보내 궁실을 짓게 함으로써 재물을 탕진하고 백성들의 원망을 사게 하는 것이 넷째이며, 간첩을 이용하여 오나라 조정의 내부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 다섯째요, 오나라의 충신들을 자살하게 하거나 물러나게 하는 것이 여섯째이며, 불시에 기습하여 무찌르는 것이 그 일곱 번째입니다.

 

31 서시(西施)와 정단(鄭旦)

 

32 자공(子貢)

 

33 촉루검(囑鏤劍)

 

34 복수(復讐)

 

35 토사구팽(兎死狗烹)

 

주요 등장 인물 소개

 

구천(句踐) : 월왕 윤상의 아들로 BC 496년 오왕 합려의 군사를 맞아 취리에서 죄수 300명을 이용하여 오나라 군사들이 보는 앞에서 차례로 목을 찌러 자결하게 하는 전대미문의 계책으로 오나라 군사들의 혼을 뺀 뒤, 기습 공격으로 대승을 거두고 오왕 합려에게 상처를 입혀 죽게 만들었다. 이후 승리에 취해 방심한 결과 3년 후 합려의 아들 부차에게 패배하여 망국 직전의 처참한 수모와 치욕을 당하였다. 날마다 쓸개를 핥으며 복수를 준비한 결과 마침내 20년 뒤인 BC 473년 오나라를 멸망시켜 치욕을 갚고 춘추시대 두 축이었던 오월전쟁을 종식시켰다. 대부 문종과 범려의 도움으로 내정과 외교에 힘써 월나라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낭와(囊瓦) : 초나라 최고 벼슬인 영윤의 지위에 있었다. 초기에는 비무기의 언행에 제동을 걸며 나라를 위해 힘썼으나 후에 비무기의 꾐에 빠져 충신 백극완을 죽이고 제후국을 핍박하며 전횡을 계속하다 오자서와 손무가 이끄는 대군을 맞제 되었다. 공명심에 앞서 심윤술과 양동 작전을 깨면서 연이어 대패를 당하고 정나라로 망명하였다. 그 후 초를 점령한 오자서가 소왕을 찾아 정나라에 들렀을 때 자결하였다.

 

맹영(孟瀛) : 진애공의 딸로 초나라에 출가한 여인, 흔히 무상공주로 불린다. 처음 초나라 태자 건의 부인으로 간택되었으나 간신 비무기가 평왕에게 아첨할 목적으로 평왕에게 바쳐 부인이 되게 했으며 평왕은 정실 채부인을 버리고 그녀를 맞아 왕비로 삼고 아들 진을 얻었다. 평왕 사후 아들 진을 즉위시켜 소왕이 되게 하였으며 오왕 합려의 침략에도 꿋꿋하게 절개를 지켰다.

 

문종(文種) : 자는 자금이며 초나라 평왕 때 초나라 완읍의 현령이었다. 당시 완읍의 삼호라는 작은 마을에 살던 범려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막역한 사이가 되었고 후에 월나라의 대부로 윤상과 구천을 섬겼다. 구천이 회계산에서 위험에 처하였을 때 그를 위해 화평을 성사시켰으며 구천과 범려가 3년간 오나라에 억류되어 갖은 수모와 치욕을 겪고 있을 때 월나라의 내정을 맡아 빈틈없이 이끌었다. 구천이 돌아오자 일곱 가지 계책을 내어 오나라의 국력을 약하게 하고 오나라를 망하게 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범려가 구천의 사람됨을 파악하고 일찍 벼슬을 버리고 떠나며 문종에게 떠날 것을 충고했으나 듣지 않았다가 구천에게 촉루검을 받고 자결하였다.

 

백비 : 초나라의 충신이었던 백주리의 손자이자 백극완의 아들로 간신 비무기에 의해 부친이 억울하게 처형 당하자 오나라로 망명하여 동병상련의 처지인 오자서에게 의탁하였고 그의 추천으로 대부가 되어 오왕 합려와 부차를 섬겼다. 감언이설과 아첨에 능해 곧은 충정을 지닌 오자서와 대립하게 되었고 결국 월나라 범려와 문종에 꾀에 넘어가 부차를 자만에 빠지게 하였으며 충직한 오자서를 참소하여 자결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오나라는 국력이 약화되어 BC 473년 구천에게 멸망되는 빌미를 제공했으나 그 자신과 가족은 오히려 월왕 구천에게 도륙되었다.

 

범려 : 월나라의 충신으로 천문.역법.지리.전략.재정 등 모든 방면에 통달했던 박학지사였다. 문종과 더불어 월왕 구천을 보좌하는데 견마지로를 다하여 마침내 오랜 숙원이던 오나라를 멸망시킨 뒤 토사구팽의 세태에 따라 구천이 오나라 토벌에 공이 큰 공신들을 탄압할 것을 미리 감지하고 관직을 사퇴한 다음 처자와 함께 제나라로 떠났다. 이후 치이자피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여 제나라 도산에서 목축업을 하여 천금을 벌어들이는 탁월한 이재 능력을 발휘하여 춘추시대 최고의 거부가 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도주공이라 부르고 존경했으며 후대에도 그의 이재술은 경제학의 묘책으로 회자될 정도였다. 사기에 등장하는 화식열전에 등장하는 도주공이 바로 범려를 말한다.

 

부개(夫槪) : 합려의 동생으로 왕이 되고 싶은 야심을 가진 인물이었다. 합려 몰래 장수를 모으고 때를 기다리나, 관상가 피리에게 '부개는 얼굴에 잔털이 많고 털끝이 거꾸로 자라니 자기 윗사람에게 반역을 도모할 상'이라는 조언을 들은 손무와 오자서의 견제를 받는다. 초나라를 점령한 합려가 연합군의 공격을 받는 사이 군사를 거느리고 회군하여 스스로 왕이라 칭하였으나 급히 귀국한 합려와 백비에 의해 패퇴하고 송나라로 도망하더니 후에 초나라에 귀순하여 당계 지방을 하사 받고 당계씨의 시조가 되었다.

 

부차(夫差) : 합려의 아들로 오나라의 마지막 군주가 되는 사람이다. BC 496년 월나라의 공격을 받아 부친 합려가 죽자 날마다 딱딱하고 차가운 장작더미 위에 누워 자면서 부친의 복수를 다짐하다가 3년 뒤인 BC 493년 마침내 월나라를 대파하고 궤멸시키기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이후 자신의 공적에 스스로 도취되어 국방과 군사를 소홀히 하고 애첩 서시와 함께 향락을 일삼으며 간신 백비의 말만 믿고 오자서를 멀리하더니 급기야 오자서를 자결하게 만든 후, 쓸개를 맛보며 복수를 준비한 구천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아 BC 473년 나라마저 잃고 자결하였다.

 

비무기(費無忌) : 초나라 평왕과 소왕 사이를 살았던 간신으로 아첨과 음모, 술수에 능해 언장사와 모의하여 투성연을 죽이고 조오를 추방하였다. 평왕에게 며느리가 될 무상공주를 바친 것으로 신임을 얻은 뒤 후환이 두려워 태자를 송나라로 쫓아내 정나라에서 죽게 하고 태자의 스승이었던 오사와 그의 아들 오상을 죽게 하였으며 평왕 사후 소왕을 옹립하고 정적이며 충신이었던 백극완을 죽이는 만행을 저지르다 결국 영윤 낭와와 심윤술에 의해 처형되었다.

 

서시(西施) : 춘추전국시대 절강의 저라산에서 태어났으며 춘추시대 최고의 미인으로 통한다.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를 홀려 타락시킬 목적으로 정단과 함께 오나라에 진상되어 부차가 가장 총애하는 비가 되었다. 서시는 부차를 미혹에 빠뜨려 백성들이 반란을 꾀하고 오자서 등 충신들을 죽이거나 조정에서 멀어지게 함으로서 구천이 오나라 부자에게 당한 수모를 갚고 복수할 수 있게 하였다. 일설에 따르면 오나라를 멸망시킨 구천이 서시를 월나라로 데려가려 하자 태호를 지날 때 월부인이 구천 몰래 돌에 묶어 빠뜨렸다고도 하고, 서시를 사모했던 범려가 구천을 떠나면서 데려갔다고도 한다. 서시는 양귀비, 왕소군, 초선과 함께 중국 4대 미인으로 불리며 미인의 대명사가 되었다.

 

손무(孫武) : 오나라 출신의 천재 병법가로 춘추시대 뿐만 아니라 중국 전체를 통틀어 가장 손꼽히는 전략가이다. 오자서의 천거로 오왕 합려에게 기용되어 단기간내에 오나라를 군사대국으로 만들었다. BC 506년 초나라를 공격하여 신출귀몰한 작전을 펴 초나라의 수도 영성을 점령하고 초를 망국 일보직전까지 이르게 하였으나 진의 원군과 오나라의 내분으로 부득이 회군하였다. 합려는 그의 공을 높이 사 많은 금은보화와 벼슬을 내렸으나 끝내 마다하고 산 속에 은거하며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저서 [손자병법] 13편은 병가의 최고 경전으로 칭송받고 있다.

 

신포서(申包胥) : 오자서의 둘도 없는 친구로 언변이 좋아 일찍이 사신으로 발탁되어 여러 제후국을 돌아다니느라 평왕에 의해 아버지와 형이 죽은 오자서의 불행을 모르고 있다가 후에 오자서가 오왕의 군대를 이끌고 초나라를 점령하여 사직을 허물고 평왕의 시체를 매질했을 때 혈혈단신으로 진나라로 달려가 애공에게 눈물로 호소하여 지원군을 이끌어 내었다. 후에 초나라와 수나라, 진나라 연합군의 장수가 되어 초나라를 회복하는데 일등 공신이 되지만 친구 오자서를 막지 못한 원죄를 생각하며 벼슬을 버리고 처자와 은둔한다.

 

심윤술(沈尹戌) : 초나라의 맹장이며 충신의 전형으로 영윤 낭와와 함께 전횡을 물러 비무기를 처형했다. 오나라 합려의 대군이 쳐들어 오자 낭와와 양동 작전을 세우고 적의 배후로 갔으나 낭와의 공명심으로 일을 이루지 못 하였다. 늦게 돌아와 위사와 합류했으나 사태가 기울자 최후까지 항거하다 시종 오구빙게 자신의 목을 치게 하고 죽는다.

 

오자서(伍子胥) : 초나라의 명문가 태생이며 아버지와 형이 간신 비무기의 흉계로 억울하게 처형되자 초나라를 깨뜨려 부형의 원한을 갚겠다고 맹세한 후 오나라로 망명하여 공자 광의 책사가 되었다. 전제로 하여금 오왕 요를 시해하도록 배후에서 조정하여 광을 오왕으로 옹립하였으며 손무와 함께 오나라를 군사대국으로 성장시켰다. 10년이 넘는 치밀한 준비로 BC 506년 초나라를 공격하여 단시일에 수도 영을 점령하는 전과를 올렸다. 개인적인 원수였던 평왕의 묘를 파헤치고 시신의 눈알을 뽑고 300대나 매질을 하여 원한을 풀었으나 진나라의 개입과 오나라의 내분으로 초나라를 망하게 하지는 못하고 회군하였다. 이후 자만에 빠진 합려가 월나라와의 전투에서 사망하자 그의 아들 부차를 도와 BC 494년에 월나라 구천의 항복을 받아 선대의 치욕을 씻었으나 월나라 대부 범려와 문종의 계책에 넘어간 백비의 농간으로 BC 484년에 부차에게 자결을 명받아 죽었다. 오자서 사후 오나라는 계속 국력이 약해져 BC 473년 월나라 구천에게 멸망 당하였다.

 

요리(要離) : 오나라의 협객이며 오자서의 천거로 합려의 신하가 된 인물이다. 용모는 왜소하였으나 자신의 팔을 자르고 처자를 죽이면서까지 합려의 최대 정적이던 경기를 죽여 임무를 완수하였다. 그러나 목적만을 위해 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도덕도 돌보지 않아 어리석은 협객의 전형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자공(子貢) : 공자의 뛰어난 제자 열 사람 중 한 사람으로 공문십철이라고 하며 제아와 더불어 언변에 뛰어났다. 제나라가 노나라를 치려고 할 때 공자의 허락을 받아 오나라와 월나라를 설득하여 노나라를 구함과 동시에 월왕 구천을 춘추시대 패왕으로 만드는데 일조를 하였다. 공자가 죽은 뒤 노나라를 떠나 위나라에 가서 벼슬을 하였으며, 제나라에서 죽었다.

 

전제(專諸) : '진저'라고도 불리우며 오자서가 오나라로 망명하여 사귄 인물이다. 힘이 장사였으나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손수 음식을 만들어 봉양할 정도였다. 오자서와 교유하며 공자 광을 위하여 포인으로 위장하여 농어 뱃속에 숨긴 칼로 요왕을 살해하였다. 전제가 사용한 칼은 훗날 어장검으로 불리게 되며 공자 광은 오나라 24대 합려왕으로 등극한다.

 

평왕(平王) : 초나라 27대 군주로 형들을 죽이고 왕위에 올라 초기에는 내치와 외교에 힘써 초나라를 부흥시키는데 노력했으나 간신 비무기의 농간에 넘어가 세자를 내쫓고 며느리 될 여인을 취하였으며 충신 오사 부자를 처형하여 오자서의 원한을 사는 등 실정을 저질렀다. 결국 오자서가 이끄는 오나라 군대의 침략 동기를 부여하였으며 죽은 후에 눈알이 뽑히고 시신이 매질당해 뼈가 벌판에 드러나는 수모를 겪었다.

 

피리(被離) : 사람의 관상을 잘 보아 특별히 오왕 합려와 가까워진 인물로 이제껏 관상을 보아 틀린 적이 없을 정도였다. 오나라로 망명한 오자서를 추천하였으며 오자서에게 백비를 중용하지 말 것과 부개가 반역할 상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두 가지 일 모두 적중했으며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합려(闔廬) : 오왕 제번의 아들이며 부차의 아버지로 재위 기간은 19년(BC 514 ~ 496년)이었다. 사촌형인 요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올랐으며 손무와 오자서를 중용하여 초나라를 깨뜨리는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곧이어 연합군의 저항과 아우 부개의 반란으로 초나라에서 급히 귀국하였으며 월나라의 국상을 계기로 침략했다가 구천에게 패하여 죽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