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1. 거지에 흘린 선비, 추문속에 꽃을 보다
청춘 거지에 홀려 풍류판을 펼치다 - 성대중의 개수전
작가 성대중은 혼잣말에 숨은 짧은 한숨처럼 자신의 생각을 이 패두의 생각 너머로 불어넣는다. 수줍고 소심한 책 읽는 선비, 가난 속에 식솔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선비가 거지를 통해 다른 세상을 보았다. 성대중은 이 패두라는 인물의 뒤에 숨어서 정체를 숨기고 거지의 세상을 관조해 본다. 성대중 역시 서얼이라는 신분적 한계 때문에 자신이 가진 능력만큼 인정받지 못한 한을 간직한 사람이었다. 서얼이기 때문에 세상을 보느 눈을 날카롭게 벼리기보다는 오히려 온건한 시선으로 감싸 안으며 수양하는 선비로서의 길을 걸어가려 한 사람이었다. 자기 수양과 온건함은 서슬 퍼런 저항 대신에 자기 삶을 단단히 지켜 준 내적인 버팀목이 되었다. 패두의 눈으로 거지를 바라보는 성대중의 필치 속에서 숨길 수 없이 드러난 선비의 눈빛이 살아서 빛난다.
풍문 속의 떠돌이 거지 - 박지원의 광문자전
누명은 계획된 오해다. 명예와 체면을 중요하게 여긴 조선 시대에 웃음은 점잖은 어른의 몫이 아니었다. 사진을 찍을 때 미소를 지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사진기가 발명된 뒤의 일이다. 조선 시대 초상화에서는 웃는 표정을 한 선비를 찾아보기 어렵다. 영조 때는 나이가 차고도 총각 차림새를 한 자들을 단속하였다. 나이가 들러도 혼인하지 않는 자는 사회의 대세를 위반하는 자였던 것이다. 광문은 떠돌이 거지인데 그의 가족이라고 사칭해서 덕을 보려 한 자가 있는 것을 보면, 광문은 분명히 유명 인사였다.
거지 예술가, 신선이 되다 - 김려의 장생전
망태 속에 감춘 인생 - 김려의 삭낭자전
망태 거지는 바둑을 잘 둔다. 하지만 겨루기는 좋아하지 않는다. 서울 사대부들이 그를 불러 에워싼 가운데 그중 가장 잘 두는 사람과 겨루게 하면, 언제나 한 수 차이로 이긴다. 가장 못하는 사람과 겨루어도 한 수 차이로 이긴다. 당시 바둑에서 한 수 차이 승부를 '망태 거지 바둑 두기'라고 했다.
2. 가릴 수 없어 쏟아진 재능, 세상을 울리다
취기에 젖어 세상을 조롱하다 - 남유용의 김명국전
김명국은 화가다. 그의 그림은 옛것을 배우지 않고 오로지 마음에서 얻은 것이었다. 인조 때 조정에서 머리 손질에 필요한 빗.빗솔.빗치개 같은 것을 넣어 두는 화장구인 빗접을 노란 비단으로 만들어 주면서 명국에게 거기에 그림을 그리라고 했다. 그가 열흘 뒤에 바쳤는데, 그림이 없었다. 인조는 노해 그를 처벌하려 했다. 그러자 명국이 말했다. "정말 그렸사옵니다. 나중에 자연히 아시게 될 것이옵니다." 어느 날 공주가 새벽에 머리를 빗는데 이 두 마리가 빗 끝에 매달려 있었다. 손톱으로 눌러도 죽지 않아 자세히 보니 그림이었다.
타고난 재능으로 세상을 물들이다 - 조희룡의 예인전
예술적 재능은 타고난 것일까, 배워 익힌 것일까? 조선 시대에는 이에 대한 의견이 '타고난 것'이라는 쪽으로 모아졌다. 그것은 가르치거나 배울 수 없는 것이다. 타고난 것이니 빼앗을 수도, 빼앗길 수도 없었다. 그것은 다만 '표현'하거나 '감탄'해야 하는 낯설고 이질적인 어떤 것, 하지만 내면에서 횃불처럼 타올라 그 사람의 시간을 주조해가는 에너지, 그것을 마주한 사람을 어떤 식으로든 비추지 않을 수 없는 빛과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벙어리 칼의 장인, 소리 없는 날카로움을 베다 - 이옥의 벙어리 신씨전
탄재의 시대에도 수화가 있었다.
기억의 조각으로 이은 천재 시인의 생애 - 이상적.김조순.이덕무.박지원의 이언진전
이언진의 자는 우상으로 서울 사람이다. 통신사로 이언진이 일본에 갔을 때, 일본 사람들이 언진에게도 찾아와 한꺼번에 부채 500개를 가져오더니 그것에 오언 율시를 써 달라고 했다. 언진은 즉시 먹을 여러 되 갈더니 시를 읊조림과 동시에 써 나갔다. 얼마 되지 않아 모두 완성하자 일본 사람들은 언진을 빙 둘러싸고 앉아 서로 돌아보며 놀라고 기뻐했다.
3. 이 여자의 파란만장한 생애, 상식을 뒤바꾸다
살인자인가, 열녀인가 - 이덕무의 은애전
조선 시대는 윤강의 시대였다. 열(烈)을 지키기 위해 살인도 불사한 여인을 사면한 것은 삼강오륜을 무엇보다도 존중한 시대에만 있을 수 있는 판결이다.
궁녀 수칙이 숨어 산 까닭 - 성해웅.이건창.이옥의 수칙전
이 여자가 독신으로 살아간 사연 - 조구명의 매분구전.옥랑전
남편을 따라 생사를 결정하는 여성에게 칭찬이 쏟아진 것과 21세기에도 독신자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조선 시대에 혼인하지 않고 사는 여인에 대한 세론이 혹독했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영월의 빛, 어린 기생의 절의 - 홍직필의 기생 경춘전
4. 호협한 풍류 남아, 세상을 들썩이다
도박장의 협객, 시인이 되다 - 조희룡의 김양원전
모두가 벌벌 떠는 싸움꾼 - 조희룡의 장오복전
미인을 돌처럼 본 미소년 - 조희룡의 천홍철전
협기를 버리고 착실히 살다 - 유재건의 박원묵전.정래교의 김택보 묘지명
5. 비천한 골목의 선비, 그늘진 어둠을 걷다
사람의 훈향으로 날씨같이 물들이다 - 홍직필의 서석린전
서석린은 달성 사람이다. 과거 공부를 해서 일찍 진사에 올랐는데, 의를 행하는 것으로 온 거리에 알려졌다. 희유 스님과 좋게 지냈는데, 그 역시 계율로 이름난 사람이다. 어느 날 그가 희유 스님과 함께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어 길을 잃고 깊은 계속에 들어갔다. 그곳은 도적의 소굴이었다. 도적들이 서석린의 옷을 빼앗으려 하자 희유 스님이 말했다. "언양의 서 진사님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는가?" 도적들은 죽 늘어서서 절하며 말했다. "서 진사님이라고요? 그분이시라면 저희가 감히 어찌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스님이라면 옷을 빼앗아도 되겠지요?" 석린이 말했다. "안 되오. 이분은 희유대사님이시오." 도적들은 또 한 번 탄식하며 말했다. "스님의 이름도 오래전부터 듣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어찌 감히 나쁜 일을 하겠습니까?" 그러고는 도적들이 계속 밖까지 두 사람을 호위해 주었다.
신분이 낮다고 인품도 낮을까 - 조희룡.김희령의 박영석전
아버지의 성을 버리고 어머니의 성을 따른 생원 - 김낙서의 문김 생원전
6. 몸의 역사를 읽는 명의, 희망의 불꽃이 되다
독학자, 백광현 - 정래교의 백태의전
평등한 몸의 교신자 - 홍양호의 조광일전
아픔이 아픔에게 - 김려의 안황중전
7. 이름없는 소년 소녀, 언어의 집 속에서 영생을 얻다
효도의 길에 묻힌 소년 절명기 - 홍양호.유재건의 홍차기전
법의 마음을 움직인 효심 - 정래교의 취매전
유괴된 서울 소년, 무전여행을하다 - 조희룡의 유동자전
'전'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현재 기억의 환기 작용으로 완성된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전'이라는 문학 양식이 허용할 수 없던 것이 오직 '회상'만 할 수 있는 '어린이기'다. 있는 그대로의 어린이는 그들이 삶을 지속하던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다. 조선 시대에 어린이기는 학문과 수양을 통해 '물리쳐야 할 어둠의 시기'였으며, 단지 '계몽'의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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