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복권의 역사], 데이비드 니버트, 신기섭, 필맥, 2003, (070802).

바람과 술 2008. 6. 15. 04:44

1장. 로또 광풍

 

다시 부활한 정부 복권사업

: 미국의 경우 사람들이 순전히 운으로 상품이나 상금을 획득하는 복권과 같은 게임은 19세기 말에 불법으로 규정되었다. 미국에서 복권사업이 다시 부활한 것은 1964년 3월 13일 금요일, 뉴햄프셔주에서부터이다. 미국에서는 이처럼 복권사업의 합법화가 비교적 최근에 이뤄졌다. 하지만 다른 많은 나라들에서는 복권사업이 새로운 게 아니다. 전 세계 140개 나라가 이런저런 형태의 도박을 허용하고 있고, 복권사업이 합법인 나라도 100개국이 넘는다. 영국의 경우에는 1994년에 드디어 국가 차원에서 복권사업을 168년만에 재개하였다.

복권 게임의 진화

: 복권 관련 물품 공급업체인 '사이언티픽 게임스'는 어떤 식으로든 복권 구매자를 능동적으로 참여시키는 방식이 흥미를 더 많이 끌어 판매를 늘릴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개발된 것이 복권 표면의 라텍스 코팅을 벗겨내면 바로 당첨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방식의 즉석복권이었다. 복권 구매자에게 스스로 통제한다는 느낌을 줌으로써 소비자들을 유혹하는 방식의 복권은 그 잠재적 시장 규모가 워낙 컸다. 때문에 복권 판매를 늘리려고 안간힘을 쓰던 주 정부들이 이런 숫자 고르기 방식의 복권 도입을 거부하기가 어려웠다. 로또는 1978년 뉴저지주가 처음 도입했다. 일반적으로 복권의 당첨금이 클수록 흥분되고,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복권을 사게 된다.

복권으로 이익을 얻는 자는?

: 복권사업으로 이익을 챙기는 곳은 주 정부들만이 아니다. 복권장비 및 복권 관련 상품 제조업체들도 엄청난 수익을 거두고 있다. 또한 복권 판매소는 물론, 복권용 컴퓨터 단말기를 갖추고 복권을 파는 상점, 주유소, 술집, 식당 등도 복권으로 큰 이익을 얻는다. 광고업계는 주 정부들의 복권사업 덕책에 상당한 규모의 이익을 챙겨왔다. 

필요한 건 1달러와 꿈뿐

복권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

 

2장. 미국 역사 속의 복권

 

1612년 영국 왕 제임스 1세는 어려움에 처한 북미 현지의 식민지(제임스 타운)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버지니아 컴퍼니에 복권을 이용을 허락하는 칙령을 내렸다. 이 복권은 영국 전역에 걸쳐 홍보됐다. 홍보 전단에는 이런 시구가 적혀 있었다. "왕국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라네, 미개인들이 사는 땅에. 신은 기독교인들을 여전히 도우시리, 그들의 목적을 기꺼워하시리. 용기를 갖고 혼쾌한 마음을 품어라, 손과 가슴이 합일하게 하라. 이보다 더 용감한 사업은 그 어디에도 없으리." 1620년까지 식민지 제임스타운의 경영에 필요한 자금의 거의 절반이 복권 수익으로 충당됐다. 16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제비뽑기'는 종교의식 도중 어떤 결정을 내릴 때나 하는 것이었다. 당시엔 신의 의지를 발견하기 위해 제비뽑기를 주기적으로 실시했다. 따라서 복권 놀음은 신성모독이자 신의 섭리에 도전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비난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16세기에 이르러 경제 및 사회 체제가 변화함에 따라 재정이 급속도로 어려워졌다. 1569년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국고를 유지하기위해 복권을 허용했다. 이 시절, 출생과 전통에 따라 사회적 신분이 결정되는 농업 기반의 봉건제가 쇠락함에 따라 복권에 대한 대중의 요구는 강화됐다. 신분사회는 경제적 자유경쟁이 지배하는 계약사회에 자리를 내줬다. 지위 향상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사람들과 그저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상당한 규모의 복권시장을 형성하는 밑바탕이 됐다. 이리하여 복권이 금융자본을 형성하고 정부 세입을 늘리는 데 이용됐고, 권리를 박탈당하고 착취당하던 대중에게는 영국 자본주의 초기의 험난한 시절에 재산을 불릴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했다. 영국인들은 아메리카 식민지의 약탈을 통해 이익을 얻으면서도 그 기반시설 건설에는 자금을 대길 꺼려했다. 이 때문에 북미에서도 복권이 굳게 뿌리내리게 됐다. 북미에서는 식민지 시대를 통틀어 복권이 부두, 도로, 다리, 교회, 학교 등을 짓는 데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필수적인 수단이었다. 18세기 후반에 독립한 뒤에도 미국은 과거와 다름없이 부도덕한 방법으로 재화를 계속 창출해 주로 특권층끼리 나눠 가졌다. 새로 탄생한 국가 미국에는 금융기관이 거의 없었고, 공공사업을 하기 위한 자본도 부족했다. 유럽 대륙의 엘리트들처럼 미국의 엘리트들도 공공사업을 하는 데 자신의 재산을 내놓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1790년대에 워싱턴시는 시설 개선 및 건설 자금 마련을 위한 복권을 잇따라 발행했다. 1790년부터 남북전쟁 때까지 복권은 럿거스, 컬럼비아, 브라운, 다트머스, 프린스턴, 예일, 하버드 등 47개 대학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는 데 이용됐다. 복권은 공공시설 개선사업의 재원 조달, 새로운 사업자금 마련, 교회와 학교 건설, 대규모 자산의 처리 등을 위해서도 쓰여졌지만, 전쟁 자금 조달 수단으로도 활용됐다. 복권이 널리 이용되는 데 대해 일부 종교인들은 반대를 외쳤지만, 많은 교파들은 교회 건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복권을 활용했다.

유럽의 복권 문제

: 북권을 정당화하고 부추기거나 도박에 대한 오래된 반감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종교도 동원됐다. '가난하지만 정숙한 여인'들의 결혼지참금 마련을 돕기 위해 발행된 자선복권의 1등 당첨 복권에 "하느님이 당신을 선택하셨다"는 문구를 적어 놓았다. 복권 추첨은 종려주일에 시행됐고, 교황 섹스투스 5세는 이 복권을 운영하는 이들의 죄를 사면해줬다. 1776년에 이르면 심각한 재정적자에 시달리던 정부가 복권사업을 독점하면서 민영 복권을 불법화했다. 프랑스 혁명정부는 1793년에 모든 복권을 폐지했다. 그러나 새 정부의 도덕적 우월성은 1799년에 복권이 다시 발행되면서 무너졌다. 정부가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는 상황 속에서도 프랑스인들이 불법적으로 외국 복권을 사기 때문에 프랑스 국내 자산이 해외로 유출된다는 점을 알게 된 정부가 다시 복권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미국 내 복권의 쇠퇴

: 가난한 이들을 상대로 한 사기와 착취는 19세기 중반에 복권의 쇠락을 부른 주된 요인이었다. 그러나 이보다 한 세기 전에도 복권 비판자들이 비슷한 문제점을 제기했던 데서 알 수 있듯이, 사기와 착취 자체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었다. 복권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킨 더 중요한 요소는 복권 이외의 다른 자본형성 방법들이 등장했다는 사실이었다. 당시는 서서히 금융기관들이 발전되고 있는 중이었다. 19세기 전반에 뉴욕 증권시장의 규모나 합법성 면에서 괄목한 만한 성장을 했고, 보험과 저축대부조합들이 자금융통에서 은행을 보완하게 되자 복권을 통한 자금 조달의 필요성이 줄어들었다. 복권보다 휠씬 더 많은 자본을 확보할 수 있게 해주는 금융기관들이 등장하고 복권 관련 음모와 사기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 상실이 여기에 맞물리면서 19세기 중반에 복권이 몰락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복권에 대한 반대 목소리 가운데 일부는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데 대한 걱정 때문이라기보다는 가난한 이들이 '자신들의 의무'를 져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나온 것이다. 

20세기의 복권

: 미국에서 복권 재도입의 이점에 대한 논의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 세금 인상을 밀어붙여 성사시킨 뒤에 잦아들기 시작했다. 1940년대와 1950년대에는 전후의 경제팽창 덕분에 복권의 합법화가 저지됐지만, 행운을 노리는 다른 형태의 게임에 빠지는 사람들은 극저으로 늘어났다. 1930년대의 경제 황폐기에 도박이 크게 확산된 사실은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1931년 매사추세츠주에서 처음으로 법적으로 허용된 빙고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이 게임기 자선기관과 종교기관의 기금조성 수단으로 활용됐다. 이어 1933년에는 패리뮤추얼 경마가 처음으로 합법화됐다(햄프셔주, 오하이오주, 미시간주). 복권은 여전히 불법이었으나, 다양한 형식의 콘테스트와 추첨식 판매가 상품판촉과 사업촉진 활동에 널리 활용됐다. 

복권 합법화를 뒷받침한 요인들

: 많은 사람들이 복권을 지지한 것은 복권이 부의 희망까지는 아니더라도 경제적 안정을 획득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 때문이었겠지만, 복권을 세금의 대체물로 보고 지지한 측면도 있었다. 1960년대 말 '풍요로운 사회'가 시들어가면서 복권의 유혹에 대한 저항도 약해졌다. 1970년대 들어 미국 경제는 김각한 문제에 직면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세금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휠씬 낮은데도 중산층들은 세금에 대해 반감을 표시했다. 잘사는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루스벨트가 정착시킨 누진세율을 적용한 소득세 제도가 불공평하다고 불만들이었다. 사실 그들 중 상당수는 허점을 틈타 요리저리 누진세율을 피해가며 세금 납부액을 줄여왔으면서 말이다. 그 결과 잘사는 이들에 비해 중산층 시민들이 오히려 공정 예산에 필요한 세금을 상대적으로 과도하게 부담했다. 이는 세금에 대한 반감이 광범하게 퍼져나가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산업 침체와 일자리 감소에다 세금 인상에 대한 반발에까지 직면한 각 주 정부는 줄어든 금고를 채우려고 복권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듀크대학 경제학자인 찰스 T. 클로프펠터와 필립 J. 쿡은 이렇게 말했다. "세수 문제가 요즘 주 정부 복권사업의 존재이유다. 복권을 도입한 모든 주 정부가 세수 증대 가능성을 주로 강조했다."

경제적 힘과 복권사업

: 유럽과 미국에서 복권이 역사적으로 변천해온 과정, 특히 최근에 그것이 재등장하고 확산돼온 과정은 경제적 힘이 도덕의 변화를 포함한 각종 사회현상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사례연구를 할 기회를 제공해준다. 게다가 복권의 변천사는 개인이 기회를 얻거나 박탈당하는 것, 그리고 그와 관련된 개인의 경험은 사회가 조직된 방식에 의해 틀지어지며, 그 과정에서 경제 질서가 다른 사회 제도들을 규정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단순하게 이해하고 싶은 욕망은 이해하지만 단순하게 이해하면 절대 안 된다). 현대적인 복권의 재등장에는 세금 신설이나 세율 인상에 대한 대중적인 저항, 예산 문제에 시달리던 주 정부들로 하여금 복권을 도입하게 하는 데 상당히 기여했다. 공정 예산을 확충하는 방안과 관련된 윤리적인 문제 제기는 경제적 압력에 부닥치면서 대부분 힘을 잃었다.

사람들은 왜 복권을 사는가?

: 자본주의 사회는 노동의 윤리와 개인적 결단을 강조하지만 기회는 제한적으로만 제공한다. 이런 사회에서 도박은 두 가지 효과를 낸다. 그 중 하나는 도박이 경제적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잠재적 도구가 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도박이 절망감 속에서도 개인이 일정하게 주관적 만족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복권이 다시 등장한 것을 '소비자 수요' 측면에서도 봐야한다고 하지만, 복권 수요에는 통상적인 '소비자 수요'나 오락보다는 경제적인 좌절감과 불안, 절망이 휠씬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복권에 대한 대중의 수요는 우리 시대의 강압적이고 심지어 강제적이기까지 한 경제사회 제도와, 거기서 비롯된 경제 환경 또는 생존에 대한 우려가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낸 산물이다. 복권의 경우에는 경제정책과 그 밑바탕에 깔린 가치는 경제상황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날의 복권이 비록 상당한 규모의 추가 투자자본을 창출할 수 있기는 하나, 본질적으로 상업적인 기업 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해주기 위한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복권은 기업의 구조조정과 사유재산의 집중화가 심화하는 와중에서 빈털터리가 된 정부를 지원하기 위한 수단으로 도입됐다. 이처럼 20세기에 복권이 다시 등장하게 만든 요인은 금융제도가 발달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권력과 부의 불공평한 분배가 유지되는 것이 특징인 경제조직 그 자체에 있다. 

 

3장. 복권, 의문스런 정부 정책

 

세금은 본래 정부가 공적인 목적에 사용하기 위해 거두는 돈이다. 대중이 주 정부의 복권을 세금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건 정부 관리들이 그런 분위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 정부의 복권은 '고통 없는 세금'으로 불리곤 한다. 클로펠터와 쿡 교수도 복권에 참여하는 이들 중 압도적인 다수가 저소득층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복권 비판자들은 정부의 복권이 불공평한 것은 주로 이것이 역진적인 형태를 띠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역진적이라 함은 고소득층보다 저소득층의 부담비율이 더 높다는 뜻이다. 공적 자금을 조성하는 방법으로 복권이 지닌 형평성의 문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복권은 다른 세금 형태에 비해 정부로 귀속되는 비율이 아주 낮다는 점에서도 비판을 받고 있다. 정부귀속 비율이 낮은 것은 관리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정부, 복권 홍보에 나서다

: 정부 복권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역진성 문제 제기에 대항해, 복권은 전적으로 선택의 문제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아무도 복권을 사도록 강요하지 않는다는 건 사실이다. 1979년 델라웨어주의 도박문제위원회가 실시한 연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주 정부 복권위원회는 실업률이 가장 높고 생활수준이 가장 낮으며 사회복지 수혜자 비율이 가장 높은 빈민지역에 복권판매 기계를 의도적으로 설치했다." 온갖 현대적 광고 기법과 방식을 이용해 복권 판촉에 나서는 것은 정부가 할 일이 못된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돼 왔다.

사기성 판촉

: 정부 복권은 사기성 판촉활동을 한다는 혐의까지 받고 있다. 복권 당첨금 광고 또한 사람들을 오도한다. 각 주 정부는 다른 모든 형태의 도박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시행하는 복권에 비해 휠씬 엄격한 지급 기준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정부가 시행하는 복권이 절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데 대한 증거도 있다. 복권 관련 비리의 발생을 방지하려는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복권과 관련된 사기와 부정부패가 발생한 사례가 있었고, 비리 의혹도 적잖이 제기됐다. 복권 공급업자와 광고대행사 선정과 관련된 의혹도 제기된 바 있다.

교육예산 지원, 주머닛돈이 쌈짓돈

: 교육재정 확출을 약속하면서 복권 판촉에 열을 올리는 정부의 형태에 대해 플로리다공대의 사회학과 교수 로이 캐플런은 이렇게 평했다. "교육재정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가장 가난하고 교육을 못 받은 계층에게 복권을 더 사도록 부추기고 심지어 복권에 손대지 않는 이들까지 끌어들이는 정부의 형태는 잔인하리만치 잘못된 것이다." 게다가 다른 과세방법과 비교할 때 복권은 '변덕스런 재원'이다. 복권 매출은 변동이 심하다.

복권과 도박

: 복권에 대해 그 광고의 호소력, 오도 가능성, 범죄와의 관련성 등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지만, 복권이 도박을 부추기고 도박 습관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부도덕한 수단은 결코 도덕적인 목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국가로서의 주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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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정부는 왜?

: 왜 정부는 대중에 해를 끼치고 공평하지도 않은 복권사업을 20세기 후반에 다시 도입했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의 기능에 대한 비판적인 해석은 곧 진실과 통한다. 특히 가난하고 천대받는 사람드르이 삶과 역사를 생가해보면 더욱 그렇다. 비판이론은 정부가 왜, 그리고 어떻게 20세기 말 자본주의의 공공예산 위기를 심화시키고, 그래서 복권 광풍을 불러일으켰는지를 설명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국가, 자본가와 자본주의의 수호자

: 연방 정부의 많은 행정활동과 정책들은 경제적으로 힘 있는 세력의 이익을 촉진한 반면, 대중에게는 직간접적으로 해를 끼쳤다.

주 정부는 누가 통제하는가?

: 탈공업화와 강력한 세금반대 정서가 퍼져있던 상황에서 재정의 건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기업유치 경쟁에서 다른 주에 밀리지 않기 위해 각 주 정부와 지방 정부는 서로 기업 친화적인 환경을 만들려고 애를 썼다. 주 정부 입장에서 보면 부유층의 거부에 직면하지 않는 몇 안 되는 과세수단 중 하나가 바로 복권이다. 사유재산과 부의 수호자인 자본주의 국가는 체제가 도전을 받거나, 경제적으로 힘 있는 세력이 밑으로부터의 정치적 도전에 직면하게 될 때는 부도덕하거나 심지어 불법적인 행동까지도 할 수 있다.

 

제4장. 복권,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수단

 

체제 정당화 과정

: 정당화 과정은 두 가지 차원에서 진행된다. 하나는 미시적인 또는 사회심리적 차원이고, 다른 하나는 거시적 또는 구조적 차원이다. 이 두 가지 차원의 관계는 변증법적이다. 다시 말해 상호의존적이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진정 새로운 기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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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를 획득하는 유일무이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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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전환으로서의 복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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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 이상 일하지 않겠어

:

복권, 미신을 부추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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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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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변화의 걸림돌, 복권

 

정부가 시행하는 복권을 용인하고 수용하는 문화적 태도는 복권이 해롭지 않으며 공교육을 지원할 자금을 마련해주는 오락이라는 신념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 특히 소득과 교육 수준이 낮은 이들은 복권이 자신의 꿈을 실현시켜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수단이라고 믿고 있다. 부를 장악한 이들의 이익을 위해 사회적 병폐의 책임은 다른 사람들, 특히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자신을 방어할 힘도 약한 사람들에게 떠넘겨졌다. 부유함의 중요성과 가치가 대중 앞에 과시되고, 가난한 이들은 매일같이 헐뜯긴다. 복권 판촉을 하는 사람들은 특권층에 낄 수 있는 기회에 운을 걸어보라고 대중의 등을 떠민다.

빈곤층을 상대로 한 새로운 전쟁

: 연방 정부가 지속적으로 부유층의 이익을 옹호하는 조처를 취하자 자본집중이 심화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실질적인 사회변화, 진정으로 대중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변화는 광범하고 지속적인 시민의 항거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6장. (번역자 보론) 한국 복권의 현황과 문제점

 

로또 열풍, 한국에 상륙하다

한국 복권의 역사

: 한국의 복권 역사는 1969년부터 정기적으로 발행된 주택복권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주택복권 이전의 복권들은 특수한 목적을 위해 일시적으로 발행된 것들이었다. 1947년 12월에는 다음 해에 열릴 제14회 런던 올림픽대회 참가 경비를 마련하기 위한 올림픽후원권이 발행됐다. 1947년부터 1949년까지는 복권이 전국 규모로 발행되기도 했고 지방자치단체별로 발행되기도 했다. 학교 등 개별 기관에서 복권을 발행할 경우도 있다. 한국전쟁 뒤인 1956년 2월부터 정부는 산업 및 사회복지 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매달 애국복권을 발행했다. 그 후 1962년에 산업박람회복표가 등장했고, 68년에는 무역박람회복표가 한시적으로 발행되기도 했다. 이어 1969년에 주택복권이 시작되면서 정기적으로 발행되는 복권의 시대가 열렸다. 1983년은 올림픽 개최를 위한 기금 마련을 이유로 복권 발행액이 크게 증가한 해로 기록됐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 개최를 위해 4월 1일부터 주택복권 발행이 중단되고 대신 올림픽복권이 발행됐다. 이 올림픽복권은 올림픽이 끝난 후 없어지고 1989년부터는 다시 주택복권이 발행된다. 1990년에 들어서면서 복권시장도 한 차례 큰 변화를 맞게 된다. 한국주택은행이 복권 발행을 독점하던 시대가 끝나고 복권에도 본격적인 경쟁시대가 온 것이다. 2002년 12월 2일 로또복권이 처음으로 발행된다.

한국 복권, 이것이 문제다

: 기본적으로 한국에서는 미국 등과 달리 복권을 정부가 공공재원을 마련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것인가를 놓고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진 적이 없다. 그리고 지금도 복권이 과연 문제가 많은 것인지, 만일 문제가 많다면 그럼에도 계속 유지해야 하는지를 공개적으로 따지고 재검토할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