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건축, 사유의 기호], 승효상, 돌베개, 2004, (080609).

바람과 술 2008. 6. 15. 06:45

"당신은 왜 시(詩)를 쓰는지 아는가"

 

혁명의 건축을 조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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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우리의 삶을 짓는 것

: 물리적 행위가 아니라면 집을 짓는다는 뜻은 무엇인가. 바로 삶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즉 사는 방법을 만드는 것이 바로 건축이라는 뜻이다. 좋은 건축이란 어떻게 지어야 하나. 1. 합목적성에 대한 문제이다. 즉 그 건축이 소기의 목적과 기능을 잘 표현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2. 시대와 관련이 있다. 건축은 대단한 기억장치이다. 19세기 말, 소위 세기말의 위기에 처한 유럽의 건축과 예술의 지식인들이 모여서 그 위기의 시대를 구하고자 세쎄션(Sezession) 운동을 일으킨다. 그들은 빈 시내에 그들의 새로운 작업들을 전시하는 전시관을 세움으로써 그들의 신념을 실천하였다. 요셉 마리아 올브리히가 설계한 이 세쎄션관의 머리말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Der Zeit Ihre Kunst, Der Kunst Ihre Freiheit 그 시대에 그 예술을, 그 예술에 그 자유를) 3. 건축과 장소의 관계이다. 건축은 반드시 땅 위에 서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 점이 건축을 다른 조형예술과 구분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러한 공간적.시간적 성격이 한 땅의 특수한 조건을 만들고 그런 지리적.역사적 컨텍스트를 가지게 된 이 땅을 우리는 '장소'라고 부른다. 이렇게 생각하면 건축은 집을 짓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집은 하부 구조이며 그 집 속에 담기는 우리들의 삶이 그 집과 더불어 건축이 된다. 우리의 삶을 짓는다는 것이, 건축의 보다 분명한 뜻이라는 것이다.

이 시대 우리의 건축

:

당신은 건축을 왜 하는가 아는가

: '당신은 시를 어떻게 쓰는지 알지만, 나는 시를 왜 쓰는지 안다.

20세기 불멸의 건축들에 대한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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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카엘 광장에 세운 시대정신 - 아돌프 로스와 로스 하우스

 

"옛날에는 어느 곳에 모뉴멘탈한 건물이 들어서면 이를 위해 침묵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어떠한가. 모두들 죄다 소리지르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도시는 아우성 속에 신음하고 있다."

 

2. 이상주의자가 빚은 기념비 - 주세페 테라니와 코모 파시스트의 집

 

주세페 테라니가 밀라노 공대 건축학과를 졸업하면서 다른 6명의 건축 동지들과 함께 '그루포 세떼(Gruppo7)'라는 모임을 결성하게 되는데, 역사가들은 이 그룹의 결성을 이탈리아 합리주의의 첫 결성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렇듯 이탈리아 근대건축의 전환점이 되는 일대 사건이 이들 젊은이들에 의해 일어났던 것이다.

 

3. 슈투트가르트에서 일어난 혁명 - 바이센호프 주거단지 

 

하이데거의 말을 빌리면 우리의 '존재함'이란 '거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주거 자체가 우리 자신이라는 말인데 우리 자신을 매매나 요행의 가치로 취급하고 있으니 지속되지 못하는 우리의 삶에 문화가 생겨날 리 없고 건강한 공동체가 형설될 리 만무하다.

 

4. 아름다운 건축 산책로, 서구주택의 완성 - 빌라 사보아

 

르 코르뷔지에는 새로운 기계미학의 시대에 맞는 개념을 찾기 위해 수년간 몰두한 결과 1926년 '새로운 건축의 다섯 가지 원칙'이라는 개념을 발표한다. 1. 토지를 건축에서 해방시키자는 의도에서 출발된 '필로티(piloti)'라는 개념이다. 즉 건물을 공중에 띄우고 이 건물을 지지하는 기둥만 땅과 접하게 함으로써 비워지게 된 건물 밑의 땅을 공공용지나 정원 등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2. '자유로운 평면'이라는 개념인데 건물의 내부, 특히 칸막이 등이 건물의 구조나 기둥에 영향을 받지 않고 공간의 쓰임에 따라 수시로 자유롭게 구성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3. '자유로운 입면'에 대한 주장이다. 즉 벽면이 건물을 지지하는 하중이나 구조로부터 영향받지 않고 다른 특별한 개념을 표현할 수 잇어야 한다는 것이다 4. '수평의 긴 창'을 만들자는 개념이다. 이는 우리의 두 눈이 만드는 시각 구조가 그렇기도 하겠지만, 창으로 접속되는 주변의 풍경이 무한한 수평의 프레임을 통해 내부에 전달되어 내부 공간을 확장시킨다 5. '옥상정원'에 대한 개념이다. 중세의 봉건 영주처럼 더 이상 넓은 정원을 가질 수 없게 된 현대주택의 거주자들에게 이 공중 정원은 유효한 방법이 된다.

 

5. 진실의 건축 - 르 토로네 수도원과 라 투레트 수도원

 

종교 건축의 형식을 결정짓는 중요한 전제는, 인간의 절대자에 대한 관계의 정의에서 비롯한다.

 

6. 태양의 도시 - 르 코르뷔지에의 찬디가르

 

찬디가르의 중심 광장 뒤편에는 '열린 손(Open Hand)'이라는 상징물이 있는데, 르 코르뷔지에는 이 조형물을 두고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찬디가르에 솟은 이 손은 평화와 화해의 표시이다. 창조적 풍요함을 받아 이를 세계인에게 건네는 이 손은 새로운 시대의 상징이다." 

 

7. 마을의 풍경 - 한스 샤로운의 베를린 필하모니 홀

 

시민의식이 싹트기 전에는 지배계층의 권력이 도시와 건축을 만드는 중요한 동기였다. 우리의 삶을 지배하기도 하는 도시와 건축이 그러한 절대권력에 의해 만들어지면 그 건축적 공간은 대부분 주종의 관계를 설정하고야 만다. 결국 그러한 계급적 공간 속에서 인간의 참다운 모습을 발견하는 일이란 쉽지 않다.

 

8. 시적 진실로 이룩한 20세기 건축의 대혁명 - 베를린 국립미술관 신관

 

과거의 건축, 특히 서양의 건축에서 벽체는 두 가지 목적으로 쓰였다. 하나는 지붕을 지지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공간을 구획하는 것이다. "우리 인류의 전엄성의 이름으로, 우리들 마음의 변화와 우리들 손들의 치켜세움, 이것을 나는 혁명이라 부른다(Ich nenne Revolution die verwand lung aller Herzen und die Erhebung aller Haenden in den Namen der Ehrdes Menschen)" - 칼 마르크스

 

9. 침묵의 메시지 - 루이스 칸과 루이스 바라간의 건축정신

 

 바라간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죽음의 확실성이 행동의 원동력이며, 사는 것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예술 작품은 조용한 기쁨과 정신의 평온을 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10. 벵갈의 빛과 침묵 - 루이스 칸과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

 

루이스 칸이 여기에 만들고자 했던 것은 건축이 아니라 풍경이었다고 한다.

 

11. '큰 기술'이 만든 '반(反)건축' - 파리 퐁피두 센터의 시대적 성취

 

건축의 역사에서 우리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 가장 큰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첫번째 사건은 재료적 관점에서 이루어졌다. 바로 로마인들의 콘크리트 발명이다. 콘크리트는 오늘날에도 건축의 주재료로 쓰일 만큼 필수적인 재료인데 이 재료를 이미 2,000년 전 로마인들이 만들었다는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콘크리트는 두 가지 이상의 자연 재료를 채취하여 가공하고 이를 물과 혼합하여 화학반응을 일으킨 후 적정의 강도를 얻어 사용하는 '제품'이라는 사실이 원시적 재료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 재료는 반죽 상태인 콘크리트를 부어서 넣을 형틀만 있으면 재료의 사용이 장소에 구애되지 않으며 크기나 모양도 무한정이다. 이는 중요한 문제인데, 재료의 의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작가의 의지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적 개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많은 건축가들이 이 재료를 선호하게 된다. 두번째의 대사건은 중세 고딕 양식의 완성이다. 이런 화려한 양식을 이룰 수 있게 한 것은 무엇보다도 플라잉 거다라는 구조적 요소를 만든 구조 형식의 완성이다. 건축은 중력과의 싸움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내부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벽을 쌓고 지붕을 올리는 일은 다름 아닌 중력에 대한 저항인 것이다. 중력에서 자유로워진 벽은 단순히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기능만 담당하면 되었으니 자연스레 큰 창문이 생겨나고 �은 자유로이 내부로 흘러 오히려 밝은 빛을 조절할 필요가 생겼다. 바로 건축이 중력에서 해방된 것이다.

 

12. 세계를 향한 열린 창 - 요한 오토 폰 스프렉켈슨의 라 그랑 아르세

 

여기에는 형태도 없고 색채도 없으며, 모양도 없고 재료도 없다. 오로지 공간만이 있을 뿐이다.

 

13. 건축과 기억 - 프랑크푸르트 뢰머 광장과 쉬른 미술관

 

게오르그 루카치, "바른 진보란 백지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앞선 시대의 업적을 흡수하여 이루어지는 누적적인 일이다." 건축은 강력한 기억장치이며 우리의 정체성은 총체적 문화인 건축을 통하여 확인될 수밖에 없다.

 

14. 지식의 도시 - 프랑스 국립도서관

 

이 걸출한 건축은 무엇보다도 네 개의 타워가 만든 공허부에 그 가치가 있다. 이 공허부는 하늘과 구름을 담기도 하지만 파리의도시를 그 안에 껴안았다.

 

15. 귀엘 공원의 재발견 - 안토니오 가우디의 이상도시

 

'건축적 조경'이라는 말은 외부 공간에 단순히 나무나 꽃을 심어 채우는 게 아니라 땅을 건축처럼 다시 만드는 것이며, 그 땅에 세워지는 건축이 그 땅의 형국을 닮게 만드는 것이다. 즉 건축과 조경 혹은 건축과 장소가 달리 있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합일을 이루는 것이다.

 

16. 성서적 풍경 - 시구르트 레베렌츠와 우드랜드 공동묘지

 

이 메세지는 채움을 목적으로 두는 전통적 서양건축이 더 이상 우리의 목표가 아닌 것이며, 비움이 현대 건축의 이상이라는 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