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아파트의 문화사], 박철수, 살림, 2006, (110424).

바람과 술 2011. 4. 24. 05:14

한국의 아파트, 현대사의 산 증인


'녹지 위의 고층주거(Tower in the Park)'라는 슬로건을 통해 아파트라는 새로운 형식의 주택을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모순으로 가즉 찬 사회의 일대 개혁과 비위생적인 생활환경의 획기적인 변혁을 추구했던 서구 근대건축가들의 꿈을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다 하겠다. 그들은 기술의 합리성에 기초한 건축의 힘으로 사회와 인간생활의 전반적인 구조를 한번에 바꿀 수 있다는 '환경가능론'에 근거하여 대지를 해방시키고(필로티) 그 위에 땅을 차지하고 있던 주택들을 수직으로 쌓아 올렸다(적층주택의 실현). '아파트'를 매개로 한 근대건축가들의 사회개혁 프로그램은 이렇듯 이상을 향한 '꿈'으로 가득한 것이었으며, 녹지 위의 획기적인 개혁 프로그램이었다. 근대건축가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이 모여 사는 도시란 결국 녹지 위의 고층주거로 구성되는 주거공간(주거지역)과 함께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아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기 위한 일터(상업지역 혹은 공업지역), 하루 혹은 일주일의 노동으로 쌓인 피로를 풀 수 있는 여가공간(녹지지역), 그리고 이렇게 나뉜 공간들을 자동차를 이용하여 빠르고 쉽게 오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교통망(도로)의 4가지 구성요소로 제한하여 해석하기에 이른다. 


서울의 을지로4가와 청계천4가 사이에 있는 주교동 230번지에 주식회사 중앙산업이 1956년에 건설한 중앙아파트가 우리나라에서는 제일 처음 만들어진 아파트인데, 집안에 방이 하나뿐이라는 것과 말로만 듣던 수세식 화장실과 입식부엌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중앙아파트가 하나의 주거동을 세워 아파트라는 새로운 형식의 주택을 처음 시도한 최초의 사례였다면, 마포아파트는 여러 개의 아파트 주거동이 도시의 한 귀퉁이를 넓게 차지하면서 주위를 담장으로 두르고 그 안에는 서구의 근대건축가들이 주창했던 그래도 넓은 공지와 주차장 그리고 어린이 놀이터 등과 같은 생활편익시설을 함께 만든 최초의 사례이다. 1962년에 도화동에 만들어진 마포아파트는 '단지식 아파트'의 최초사례로 볼 수 있다. 마포아파트는 당시 권력의 중심부에서 볼 때는 소위 조국 근대화의 상징이자 생활혁명의 시금석이었으며, 전 국민의 문화시민화를 추동하기 위한 생활혁명의 전시장이었다. 아파트와 박정희의 군사적 정변의 결과를 등가가치로 취급하려는 당시의 정치적 의도는 이미 박정희 정권의 혁명공약에서도 드러난 바 있으며, 그 결과 박정희라는 인물과 그의 시대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아파트'를 박정희 시대의 대표적 유산 가운데 하나로 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아파트단지는 서구와는 달리 정치적 유산이기도 한 셈이다. 


공간은 행태를 규정하고, 그 행태는 공간의 생산방식에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 2000년 7월 6일 독일의 베를린에서는 전 세계의 100여 개 국가를 대표하는 건축가와 도시계획가 등의 전문가들이 모여 'Urban 21'이라 불리는 선언문을 채택한 바 있다. 그 선언이 담고 있는 올바른 시민사회나 사회경제적 정의의 실현은 자폐의 건축에서 이탈하고 분열의 도시를 다시 봉합하려는 노력, 즉 도시건축에서의 공공성 추구를 통해 가능하다는 것이다. 

 

세 장의 사진, 그리고 아파트 문화

 
대중소설을 통해 본 아파트의 이미지


1980년대는 정치경제적 위기상황으로 시작된다. 유신체계의 붕괴와신군부에 의해 만들어진 국보위 입법회의는 도시의 주택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이한 공공주택건설 및 택지개발계획안을 수립하는데, 그 골자는 1981년부터 191년까지 주택 5백만 호를 건립함으로써 주택보급률을 77%에서 90%로 높인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정책의 목표가 효과적으로 추진되지 못하였으며 정부의 강력한 물가억제 정책과 그로 인한 투기자본의 위축과 미분양 사태 발생 등은 1980년대 후반까지 지속되었다. 500만 호 주택건설계획은 수차례 수정되었지만 그동안 5년을 기간으로 하는 임대주택의 공급확대가 일부 이루어지고 전두환 정권을 이은 노태우 정권에 의해 주택 200만 호 공급계획이 재차 수립된다. 여기에는 계층별 주택공급 빈곤층 주택지원대책이 포함되면서 처음으로 영구임대주택과 사원임대주택 등이 건설된다. 또한 민간개발업자에 의한 주택재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합동재개발 방식이 도입되어 불량주택지를 철거하고 주합에 의한 아파트건설을 촉진하기 위하여 각종 규제가 완화되면서 소위 합동재개발방식으로 지어지는 아파트가 도심의 불량주거지를 대체하는 양상이 전개된다. 공영개발과 분양가 규제 등을 통한 국가권력의 개입 강화와 함께 이 시기를 거치며 아파트는 대량공급계획을 지원하기 위한 표준설계방식의 채택, 토지이용효율 극대화를 위한 층고제한과 허용요억률의 완화, 합동재개발방식에 의한 밀집주거 지역의 아파트단지로의 전환, 대단위 신시가지와 신도시개발에 의한 아파트 중심 주거지의 도시외연부로의 확대와 영구임대주택의 건설 등이 이루어졌고, 다세대 다가구 주택 등 도시 지역 내 자투리땅을 이용한 주택공급의 확대가 여기에 동반되기에 이르렀다.


1990년대는 초기에는 부동산 안정대책 등이 적극 실시되면서 각종 기준이 강화되는 등의 조치가 계속되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아파트단지의 고밀화, 초고층화가 급소기 심화된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가속된 불량주택 재개발은 더욱 확대되었고, 1993년 이후에는 노후 아파트 재건축 허용기준이 완화되면서 재건축에 의한 아파트단지개발이 급속하게 확대되었다. 서울특별시의 경우, 1994년 7월을 기준으로 할 때 모두 237개 재건축조합이 설립되어 재개발사업과 함께 아파트 개발사업의 주된 동력원이 되었다. 1990년 중반까지는 재건축이 상대적으로 아파트 공급의 주된 수단으로 자리하였던 시기였다. 재건축의 보편화는 우선 건설업체의 사업성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으로, 택지비 절감을 위한 고밀화와 주택공급량 확대가 과제였던 정부는 한정된 택지에 주택건설량을 늘려야 한다는 압박 소에서 인동거리 규제 완화 등의 고밀정책을 지원하게 되었다.


조합과 건설사에 의한 아파트 재건축은 결국 주민의 기대이익이 분춣하는 욕망의 현장이라 할 수 있다.  

 
상품으로서의 아파트를 넘어


2000년에 새로 지어진 주택 가운데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85%를 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주택건설은 민간주도형으로 하고 정부는 이를 지원한다'는 정책목표가 1960년대 후반에 공식화되면서 우리의 주택정책은 민간 의존적이며 시중자금 의존적인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었고, 그 후 4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주택부문은 우리 경제의 침체와 부양에서 중요한 영역으로 취급되었고 상당한 역할을 해내며 그 자리를 지탱해 왔다. 그러나 주거공간이 생활양식을 규정한다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또 우리의 선대가 이루어온 경제성장의 과실로 우리의 소득과 소비수준이 향상되었다고 한다면 그 결과로 빚어진 고밀도와 초고층의 주거환경에서 개인적 차이 없이 규격화된 형태와 양식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귀결이며, 비판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삶의 전제조건인가를 되묻게 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고층아파트의 출현 이념은 '공원 속의 고층주택'을 상정한 것이었다. 산업화와 공업화의 결과로 빚어진 도시공간의 비위생적인 환경으로부터 탈피하여 푸르른 녹색의 공원 속에 일조와 채광, 통풍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건강한 삶의 보장을 위한 고안품인 것이다.  

 
자폐증과 우울증의 치유를 향하여


아파트에 담장이 설치되기 시작한 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단지식 아파트인 마포아파트가 만들어진 1962년부터이다. 이후 우리나라의 아파트는 당연히 담장을 두르는 것을 관행으로 여겨왔고, 아파트가 보편적인 주택형태로 자리하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에는 상가분양을 잘하기 위한 방편으로 입주자를 한 곳으로 모아야 한다는 사업자의 주장이 이러한 관행을 더욱 견고하게 하였다. 또한 주택공급 확대를 위한 대규모 택지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소형과 중형, 대형아파트단지가 인접하여 개발되고, 소득수준이 다른 주민들이 사이좋게 어울려 살기보다는 반목하는 현상이 심화되면서 서로가 서로를 경원시하는 풍조가 퍼졌다. 이는 곧 관리의 효율화를 위한다는 명분을 한층 강화시켰고, 아파트단지마다 스스로를 폐쇄하며 고립된 집단화를 통해 위안을 얻는 상황으로 변질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