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김봉렬의 한국건축 이야기 1],김봉렬,이인미 사진,돌베개,2006,(080901).

바람과 술 2008. 9. 1. 04:48

개정판 서문

 

 

초판 서문 - 폐허 앞에서

 

 

추천의 글 - 가슴으로 읽는 건춘

 

 

1. 세계적 유산의 또 다른 이야기 불국사와 석굴암

 

불국사와 석굴암론의 쟁점들

 

쟁점들을 통해서 입증된 과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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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석굴암 파동

:

 

불국사 복원의 쟁점들

: 현존하는 댕우전과 극락전 역시 임진왜란 이후의 조선 중기 건물이다. 물론 기단부와 초석은 신라 때의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신라 건물과 조선 건물의 구조체계는 너무나 달랐다. 신라 건물들은 한 칸의 폭이 넓은 장스탠구조(스팬이란 건축물에서 기둥과 기둥 호가은 각 지점<받침점>과 지점 사이의 거리로, 장스팬구조란 기둥 간격이 멀어 넓은 실내공간을 만드는 구조를 말한다)가 일반화되었던 모양이다. 두 건물 모두 가운데 칸이 다른 칸의 두 배에 가깝다. 고려 중기 이후의 건물들에는 나타나지 않은 칸살잡이 방법이다. 그럼에도 상부구조는 조선 중기의 다포식(기둥머리 위와 기중 사이에 포가 놓인 공포 형식으로, 주심포에 비해 형식이 화려하고 아름다워 격식 있는 건물에 주로 사용된다)을 따랐다. 하부와 상부의 구조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무리가 생긴다. 가운데 칸의 창방(기둥과 기둥 사이 윗부분을 가로질러 연결하는 사각형 목재, 기둥들의 좌우 흔들임을 막고, 그 위에 올라갈 지붕틀의 무게를 지지한다)과 평방(창방 위에 다시 수평으로 겹쳐 올려 놓은 넓적한 부재로 기둥과 기둥 사이에 놓이는 공포<주간포>를 받치는 역할을 한다. 다포집에는 반드시 설치해야 하는 부재이며, 보통 두껍고 굵은 각재를 쓴다)들은 지붕의 하중을 견디지 못해서 밑으로 쳐지기 마련이고, 이를 받치기 위해 어울리지 않는 샛기둥을 세워 보강할 수밖에 없었다.

 

최고의 하이테크 건축

 

최초의 지식인 건축가, 김대성

: 석굴암의 수학적인 계획과 과학적 시공은 물론이고, 불국사도 통일 이후 실험되어온 쌍탑식 가람의 새로운 전기로 엄격한 기하학적 계획에 의해 이루어졌다. 여기에는 엄격한 수학적 원리와 심도 깊은 불교의 핵심적 교리가 바탕에 깔려 있다.

 

하늘로 통하는 왕실의 창구

: 불국사와 석굴암은 국가적인 대사업이었다. 무엇보다 두 절이 있는 토함산은 신라의 가장 중요하고 신성한 국유지였다. 당시 유명 사찰들은 경주 도심의 평지에 지어야 많은 신도들을 유치할 수 있었고, 사찰의 경제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었다. 토함산록과 같이 외진 곳에는 국가적인 지원 없이 사찰을 짓기도 어렵고 경영하기도 어려웠다.

 

최첨단의 하이테크 건축

: 석굴암은 엄밀한 의미에서 석굴이 아니라 '석실'이다. 석굴은 자연 암벽을 파고 들어가 네가티브한 인공 공간을 구성하지만, 석실은 돌과 벽과 천장을 만들어 포지티브한 내부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석굴암은 비록 석실이지만, 그 위에 산과 같이 흙을 덮어 석굴의 모습으로 환원된다. 설굴의 반구형 천장을 이루기 위해서 특별한 고안이 필요했다. 반구형 공간은 기본적으로 돔(dome) 구조법을 채용하고는 있다. 그러나 외국에서 들어온 신공법인 돔 구조의 안정성이 아직은 의심스러웠던 모양이다. 특히 기존의 돔 구조는 외부로 노출된 천장을 만드는 공법이지, 석굴암과 같이 땅속에 묻기에는 불확실한 점이 많았다. 따라서 요소요소에 머리가 튀어나온 긴돌들-이 돌들을 '팔뚝돌'이라 부르기도 한다-을 배열하고, 그 사이에 가공한 판석들을 끼워 넣는, 돔과 가구식 구조가 혼합된 독특한 구조법을 개발했다. 

 

자연 제습법의 과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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