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한국 NGO의 사상과 실천], 김하영, 책갈피, 2009, (090929).

바람과 술 2009. 9. 29. 01:22

머리말

 

NGO의 영향력을 단지 특정 단체들의 영향력으로 환원할 수도 없다. 특정 단체를 지지하지 않는 많은 개인들, 특히 사회 변화를 바라는 청년들이 NGO가 제시하는 (온건한) 개혁 비전에 광범하게 공감한다는 것이 더 중요한 측면이다. 사실, 어떤 점에서 보자면, 시민운동 1세대가 '계급'에서 '시민'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던졌던 물음들 - 근본적 사회변혁은 불가능하지 않는가, 사회주의는 한낱 이상으로 드러나지 않았는가, 노동계급은 더는 변화의 주체가 아니지 않는가, 시장은 진보를 위한 틀이 될 수 있지 않는가, 국가를 대상으로 싸우기보다 삶을 변화시키는 게 중요하지 않는가 등 - 은 진보 진영 안팎에서 버전을 달리해 가면서 계속 등장하고 있다. 개혁주의가 위기인 동시에 여전히 강력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제1장 한국 시민운동의 등장

 

한국 NGO의 대략적 현황

 

한국의 시민단체는 대부분 1987년 이후 설립됐다. 그 전에도 흥사단(1913년 설립), YMCA(1903년 설립), 한국가정법률상담소(1956년 설립) 같은 시민단체가 있었지만, 군사독재 시절의 시민단체는 대개 정치적 이슈를 다루지 않았고 자선적 성격이 강했다.

 

한국 시민운동의 등장 배경

 

한국의 시민운동은 1980년대에 유력했던 체제 변혁 지향적 운동이 비현실적이 됐다는 생각을 반영해 1990년대 초부터 급격히 부상한 운동이다. 1990년대 초에 시민운동이 부상하는 데는 2가지 요인이 작용했는데, 하나는 1987년 대중투쟁의 결과 권위주의에서 자유민주주의로 불안하게나마 전환이 시작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옛소련 블록(이하 동구권)의 붕괴였다. 이 둘이 맞물린 상황은 운동진영과 활동가들에게 혹독한 시련을 안겨 줬다. 당시 진지한 활동가들은 동구권 붕괴에 심각한 충격을 받아 '성찰'과 '모색'의 시기를 겪게 된다. NGO 활동가 1세대는 대부분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노동운동.학생운동에서 시민운동으로 이동해 온 사람들이다. 시민운동은 동구권 붕괴에 따른 환멸감, 국내 상황 변화에 따른 변혁 전망의 상실(1980년대 후반 투사들은 곧 혁명이 일어난다는 기대나 조급증을 갖고 있었다)이 결합된 배경 속에서 등장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소련식 '마르크스주의' 또는 주체사상이라는 '유일한 척도'를 내려놓고, 하나의 대안으로 '시만사회'에 주목했다. '시민사회론'은 시민운동으로 옮겨 가는 사람들의 이론적 근거였다.

 

제2장 시민사회 개념의 재등장

 

시민, 시민사회, 마르크스

 

시민사회는 대략 18세기 후반부터 중세 봉건사회를 대체해 등장한 새로운 사회질서를 통칭하는 용어로 쓰이기 시작했다. 헤겔은 시민 개념이 근대 시민사회의 내적 이질성을 은폐한다고 봤다. 그 전에 계몽주의자들은 시민사회와 국가를 동일한 범주로 이해했다. 그들은 정부가 사회계약에 의해 수립된 것으로 믿었고, 정부를 수립한 이 계약에 의해 시민사회도 수립된다고 여겼다. 이와 달리 헤겔은 시민사회를 "근대 세계의 산물"로 봤다. 시민사회는 역사적 과정의 결과이지, 사람들이 모여 정부를 형성할 때마다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헤겔은 국가를 "지상 위에 구현된 관념"의 최고 형태로, 이를 통해 시민사회의 모순이 해결된다고 봤다. 국가는 시민사회의 이기적 개인들을 사회제도를 통해 하나의 정치 공동체로 통합한다. 마르크스는 헤겔처럼 국가와 시민사회를 구별했지만, 헤겔과 달리, 국가를 특정 계급의 지배 유지 수단으로 봤다. 마르크스는 프랑스 혁명으로 이룩된 정치적 해방의 제한적 성격을 비판했고, 시민사회의 자유의 허구를 들춰냈다. 시민사회의 불평등은 이와 같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서 비롯한다. 그리고 생산수단을 통제하는 계급이 국가도 통제한다. 토크빌은 자유주의적 시민사회론의 선구자로 평가된다. 프랑스의 역사가이자 정치인인 토크빌은 근대적 자유를 위협하는 환경을 사회.역사적으로 분석하면서, 민주주의 사회를 특징짓는 신념과 관습을 검토하는 데 집중했다. 그는 조건의 평등과 개인의 자유라는 2가지 주요한 근대적 가치 간에는 특유의 갈등이 존재한다고 봤다. 토크빌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중앙집중화의 원칙과 인민주권의 원칙"을 결합한 근대적 형태의 전체주의(중앙집권제 국가)를 우려했고, 정치제도의 작동 속에서 드러나는 '다수의 횡포'도 개인의 자유를 위협한다고 봤다. 시민들이 정치적 삶 속에서 적극적 구실을 하는 것, 즉 참여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직접민주주의에 관심을 기울였다.

 

시민사회 개념의 재등장과 그 함의

 

'시민'이 '계급'을 대체하는 지위로까지 '복권'되는 추진력을 제공한 것은 옛 동구권의 붕괴였다. 옛 동구권의 붕괴는 국가로부터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회복한 역사적 사건처럼 해석됐다. 국가는 이 시민사회 위에 군림하면서 시민들을 통치하는 별도의 주체가 아니라, 이 시민들이 행사하는 정치적 권리(참정권)에 의존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는 시민사회 내에서 다수의 공공적 여론을 형성하고 정치적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세력에 의해 일정 기간 동안 운영되는 것이다. 더 이상 국가는 국민을 지배하고 억합하고 이끌어 나가는 주체가 아니며, 그 통치자는 오로지 한시적인 권력 위임을 받은 존재에 불과하다. 2차대전 이후 서구에서는 다시 한동안 시민사회보다는 국가가 절대적 우위를 점하게 되는 역전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그 계기는 2가지였다. 1. 사회주의 국가의 등장 2. 복지국가 체제의 등장이다. 동구권 붕괴를 사회주의 실패로 여긴 당시의 대다수 좌파들이 이제 사회주의 사회라는 대안은 한낱 이상향일 뿐이므로 자본주의 내에서 민주주의를 확대해 진보를 추구하는 게 최선이라고 믿게 됐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론의 영향을 받은 일부 서방 좌파들은 동구권의 위기가 마르크스주의 '경제 환원론'의 문제점을 입증한 것으로 여겼다.

 

민주주의 문제

 

이제 대안 사회가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그 민주주의가 흔히 특정한 제도적 형태, 즉 근대 자유민주주의와 등치된다는 것이다. 시민사회론의 좌파적 버전은 자유민주주의의 한계를 인정하는 듯하지만, 정당과 의회 영역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감시.견제.견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민주주의를 경제 분야로까지 확대해야 한다며 자본의 이윤 논리가 지배하는 영역을 최소화해야 한다고도 한다. 권력 분산도 쟁점 가운데 하나다.

 

국가와 시장 문제

 

시민사회론은 국가가 시민사회보다 우위에서 시민사회에 개입하는 것을 현대 사회 위기의 중요한 원인으로 본다. 물론 시민사회론이 국가를 부정하거나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주의가 국가를 계급적대의 산물로 보고 궁극적 폐지를 주장하는 반면, 시민사회론은 국가가 시민에게서 "한시적으로 권력을 위임" 받은 것으로 가정하며(그래서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국가를 개혁하려 한다), 시민사회에 개입하지 않는 작은 국가를 원한다.

 

제3장 한국 NGO의 사상과 그 문제들

 

자유주의적 시민사회론과 경실련

 

경실련이 주장한 "경제 저의"는 자본주의적 경제 정의였다. 경실련이 생각한 평등과 정의는 민중운동에서 생각하는 평등과 정의와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분배의 평등이 아니었고 기회의 평등이었으며, 생산의 기여도에 비례한 차등 분배라는 개념은 자본가의 기여도 당연히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경실련의 운동 취지는 생산에 대한 기여도 없이 부를 취하는 불로 소득자를 만들어내는 잘못된 제도를 개혁하는 것을 통해 일한 만큼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국가로부터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강조할 때 그것은 시장의 자율성을 의미하기도 했던 것이다.

 

진보 진영의 시민사회론 수용

 

시민사회론이 진보 학계에서 본격 논의된 배경은 1. 김영삼 정권의 등장이었다. 진보 학계의 시민사회론자들은 김영삼 정권이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강제가 아니라 동의에 입각한 헤게모니적 문민 통치를 추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2. 경실련은 주가가 오른 반면 "민중운동의 목소리 반영도"는 현저히 감소한 듯했다. 일부 진보 학자들이 내린 결론은 민중운동도 이제 전과 같은 방식으로 해서는 안 되며 변해야 산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한편으로는 민중운동에 대한 과거의 부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대국민 동의 형성을 위한 이데올로기 전략과 시민사회에서의 헤게모니 전략이 마련되어야 한다. 조희연 교수는 비슷한 문제의식에서 "진보적 시민운동"을 주창했다. 그는 전투적 민중운동은 시민사회의 자율적 공간 확장에 결정적으로 기여해 놓고 막상 이 공간에 효과적으로 개입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온건한 시민운동이 부상하게 됐다. 경실련과 대비되는 좌실련"을 만들자는 흐름이 형성됐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참여연대다.

 

시민사회론의 그람시 해석 - 마르크스주의의 자유주의적 수정

 

당시 그람시 해석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지만 어쨌든 핵심은 - "시민사회를 통한 헤게모니의 형성.작용이 지니는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하자는 이유에서 였다. 그람시가 발전시킨 시민사회 개념은 시민사회와 그 기관들이 현존하는 "헤게모니"에 기여해 자본주의 국가의 안정성을 강화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의 시민사회 개념은 자본주의를 아래로부터의 혁명으로 전복하기 위해 전략 문제를 고민하는 문제의식의 연장선에 있었다. 반면, 시민사회론잗르은 직접적 투쟁이 아니라 '합리적' 비판과 정책 대안 제시 같은 이데올로기 투쟁의 중요성을 정당화하는 데 그람시를 활용하고자 했다.

 

그람시에 대한 곡해 바로잡기

 

그람시가 '시민사회'에 주목한 것은 시민사회가 국가에 대한 공격을 막는 강력한 방어벽 구실을 하고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시기에 혁명적 투쟁은 진지전의 형태, 즉 시민사회 내에서 영향력(헤게모니)을 다투는 투쟁 형태로 나타나고, 기동전은 '전술적' 중요성을 띠게 된다. 1. 흔한 왜곡과 달리 그람시는 헤게모니 투쟁을 단지 이데올로기 투쟁으로만 보지 않았다. 2. 그람시는 피억압 계급의 지지를 얻기 위한 투쟁에서 노동계급이 자신의 이익을 위한 투쟁을 포기해야 한다고 보지 않았다. 3. '진지전'의 중요성은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완전히 새로운 애기는 아니었다. 4. 그람시는 헤게모니 투쟁 자체로 국가권력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하버마스와 소통

 

하버마스는 17~18세기 서유럽의 부르주아 공론장을 고찰함으로써 서구 근대 이성에 도구적 측면뿐 아니라 의사소통이라는 면모도 있음을 보여 주고자 했다. 부르주아 공론장은 국가적 사안들을 논의하는 부르주아 사회의 토론 공간으로, 사적 영역에 존재하며 국가 영역을 비판하는 기능을 했다. 개인들은 공론장을 통해 국가에 영향을 미치는 여론을 만들어 내는 '공중'으로 전환된다. 공론장을 통해 근대 민주주의 원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19세기 중반 이래 국가 개입이 증대하면서 부르주아 공론장은 붕괴 위기를 맞게 된다. 국가 개입의 증대 과정은 '공론장의 탈정치화'뿐 아니라 정치적 정당성의 위기도 불렀다. 이런 상황에서 근대 민주주의는 실질적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서구 사회 내 민주주의 잠재력을 믿는 하버마스는 그것을 '생활세계'에서 발견한다. 하버마스는 사회적 영역을 크게 둘로 나누는데, 하나는 '체계(system)'이고 다른 하나는 '생활세계(life-world)'다. 체계는 행정과 경제를 담당하는 영역이고, 생활세계는 사회 구성원들의 사회화, 통합, 문화 전승을 담당하는 영역으로, 일상생활이 이뤄지는 곳이다. 하버마스는 체계를 도구적 합리성이 주도한다면, 생활세계는 의사소통적 합리성에 의해 조정된다며, 도구적 합리성을 막아 낼 일종의 방어 진지로서 생활세계의 의사소통적 합리성에 주목한다. 의사소통 행위 이론에 근거를 둔 하버마스의 사회 이론은 "강요되지 않는 동의를 이루고자 하는 지향"이라고 할 수 있다. 도구적 합리성은 '성공 지향적인 행위'에 적합한 형태의 합리성일 뿐이며, 의사소통적 합리성은 이해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코헨.아라토와 '영향의 정치'

 

코헨과 아라토는 하버마스의 주장을 변형해 국가-경제(시장)-시민사회의 3영역 모델을 제시한다. 시민사회를 사회변혁을 위한 시민 행동의 정의로운 공간으로 개념화하면서, 시민사회와 시장을 분리한 것이다. 사회운동은 두 가지 목표를 가져야 한다. 하나는 시민사회의 자유성을 증대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가 법적.제도적 개혁을 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코헨과 아라토는 권력 정치의 장으로 직접 뛰어들지 않고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데. 이것이 바로 "영향의 정치"다 또는, 시민사회가 국가와 시장 영역의 자율성과 고유한 합리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뜻에서 '자기 제한적 급진주의'라고도 한다. 시민단체들이 핵심적 활동으로 삼는 국가와 시장 '권력 감시 운동'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신사회운동론과 그것의 한국적 적용

 

신사회운동은 1970년대 말 이후 서구에서 새롭게 등장한 환경.평화.여성.대항문화.동성애.인종.반핵 운동 등을 가리킨다. 그러나 기존 운동이 이런 이슈에 관심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따라서 신사회운동의 중요한 툭징은 이슈 자체라기보다 주체문제(따라서 그 이슈들을 다루는 방법을 포함한다)라고 할 수 있다. 신사회운동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이론인 조절이론은 포드주의의 위기를 신사회운동의 배경으로 설명한다. 다른 한편, 포스트마르크스주의 신사회운동론(라클라우와 무프)은 전후 확립된 헤게모니 구성체가 상품화.관료화.획일화를 초래해서 새로운 적대들이 나타났다고 본다. 하버마스의 신사회운동론과 조절이론의 신사회운동론은 신사회운동의 주체로 신중간계급을 강조한다. 신중간계급에는 고등교육을 받은 사무.전문직 노동자들이 핵심적으로 포함되는데, 이들은 교육 수준, 직업적 숙련, 지적 노동. 시간적.금전적 여유 등 덕분에 정치 활동이 쉽다. 오페는 여기에 주변적 집단(가정줍, 고등학생, 실업자. 미취업자 등)을 포함시킨다. 새로운 주체는 기존 노동운동에서 배제된 "삶의 정치(기든스)" 또는 "생활정치"의 다양한 이슈를 다룬다. 신사회운동은 이슈의 초계급적 성격상 좌우 모두와 계급 연합 전략을 추구한다. 하버마스의 신사회운동론과 조절이론의 신사회운동이 그 주체로 신중간계급에 주목한다면, 라클라우와 무프(포스트마르크스주의)는 주체의 다원화를 강조한다. 그러나 노동계급을 핵심적 행위 주체로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둘은 핵심적 공통점이 있다. 라클라우와 무프는 계급투쟁에 기초한 사회주의의 가능성을 부정하고 "급진민주주의"를 대안으로 내놓는다. 그리하여 사회주의는 계급 해방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확장으로 여겨진다. 이 과정에서 "연대" 개념이 중요한데, 그 연대는 중심이 없는 연대다. 즉 노동계급이 중심이 아닌 한편, 서로 다른 투쟁들의 가치가 동등하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 신사회운동의 등장과 여전히 강력한 '구'사회운동

 

신사회운동론은 여성.환경.소비자 운동 등 특정 이슈에 주목하는 시민단체에는 더 잘 들어맞는다. 한국 시민단체들은 노동운동이 여전히 강력한 조건 속에서 노동운동과 공존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시민단체의 성장에 어느 정도 제약을 주는 조건이자 한국 시민운동의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 조건이었던 듯하다. 

 

제4장 한국 NGO의 실천과 그 문제들 (1)

 

시민을 대변하는 제도 개혁 로비

 

우리 나라 NGO 가운데는 대변형(advocacy) 단체가 많은 편이다. 대변형이란 정부 정책에 찬반 등의 의견을 적극 개진하는 시민운동의 경향을 뜻한다. 간단히 말하면, 시민을 대변해 중앙 권력을 감시.견제하고, 제도 개혁을 촉구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체제의 룰을 지키도록 감시하기

 

NGO와 근본적 변현 단체는 문제를 달는 방식이 다르다. 근본적 변혁 단체는 악행이 체제의 본질에서 비롯한다고 보는 반면 NGO들은 대개 악행이 체제의 룰을 지키지 않는 데서 비롯한다고 보며, 이 차이는 운동 방식, 전략, 대안 등에 영향을 미친다. 대변형 단체들은 "대의의 대행" 또는 "준(準) 정당"으로 불릴 만큼 정치적 성격이 강하다. 정치성 짙은 활동을 하면서도 정당 형태를 취하지 않는 것이 대변형 시민운동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즉, 자신을 정치 영역이 아니라 '시민사회' 속에 위치시킨다. 그래서 스스로 '정치운동'이 아니라 '사회운동'이라고 한사코 강조한다.

 

감시와 협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 - NGO는 국가로부터 독립적인가?

 

정부에 압력을 넣어 개혁을 이루려는 것은 NGO가 시민사회론과 신사회운동론의 영향을 받아 국가권력을 둘러싼 투쟁과 권력 장악이 목표인 정당을 거부하는 것과 관련 있다. 그런데 운동과 정당을 분리하고 정당 건설을 거부하는 정책 때문에 NGO는 결국 자신의 개혁 프로그램을 관철하기 위해 기성 정당들에 의존하게 된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런 접촉이 거듭될수록 자연스럽게 NGO는 상대적으로 '코드'가 맞는 기성 정당, 정치인들과 지속적인 협력을 추구하게 된다.

 

'비정치성' 구호의 이면

 

어느 방향으로 가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선을 넘듯이, 시민사회의 정책적 견해를 정부 정책에 더 효과적으로 반영한다는 구실로 국가 기구의 요직과 정당 행을 마다하지 않는NGO 지도자들이 많았다. NGO의 이 같은 활동을 보면, NGO가 국가로부터 독립적이며 NGO 활동이 시민사회의 확장을 통해 국가권력을 축소한다는 주장이 무색해진다. 국가권력 축소는 커녕 최악의 경우 국가 기구에 흡수돼 정권을 정당화하는 구실을 할 수 있다. NGO들은 종종 자신의 견해가 '공익' 또는 시민을 대변하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이 '공익' 또는 '비정치성'의 구호 뒤에 숨지 않고 자기 나름의 전략을 내놓고 운동 전망을 논쟁하는 게 운동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단일 쟁점 운동과 그 한계

 

단일 쟁점 운동의 문제는 그런 쟁점으로 운동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런 쟁점을 다루는 방식이다. 즉, 체제의 다른 문제들에서 떼어내 그 쟁점에만 주목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단일 쟁점 고수인가, 의제 확장인가

 

전략적 관점의 부재와 비민주성

 

대중행동 없는 운동

 

엘리트주의

 

제5장 한국 NGO의 실천과 그 문제들 (2)

 

복지서비스 제공자 NGO

 

'제3의 길'의 복지 정책

 

'사회투자국가' - 복지에 시장을 도입하라

 

사회적 기업 - 시장과 정의는 공존할 수 있는가?

 

NGO가 공유하는 신자유주의적 가정

 

아래로부터의 복지? 아래로부터의 투쟁?

 

거버넌스와 재정 의존의 사슬

 

돈 주는 정부와 기업을 제대로 감시할 수 있는가?

 

풀뿌리 운동이 대안인가?

 

자율적 공동체와 국가권력 문제

 

사회운동과 노동운동

 

공상적 사회주의

 

제6장 맺으며

 

시민운동의 위기와 대안 찾기

 

개혁주의의 위기

 

함께 행동하면서 비판적 대안 건설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