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프록코트를 입은 공산주의자 엥겔스 평전], 트리스트럼 헌트, 글항아리, 2010

바람과 술 2011. 1. 13. 02:26

왜 지금 다시 엥겔스인가? 

1장 청소년 시절―시온의 지크프리트 


바르멘의 경건주의 가문

 

유머 감각 뛰어난 행동파 


청년독일파, 그리고 셸리의 영향


필명 ‘프리드리히 오스발트’의「부퍼탈 통신」


슈트라우스주의자에서 헤겔 철학으로 

2장 베를린 시절―헤겔 좌파와의 만남 

헤겔의 체계냐 변증법이냐


포이어바흐의 기독교 비판


바우어, 슈티르너, 쾨펜 등과 교유


‘시커먼 트리어 친구’ 카를 마르크스


생시몽과 푸리에의 사회주의


1830년대와 1840년대 초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용어는 서로 넘나들려 사용되기도 했지만 나름의 독특한 철학적 전통과 독자적인 지적·정치적 계보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논하는 프로이센 출신의 두 주인공이 등장하기 휠씬 이전부터 상당한 인기를 누리던 개념이었다. 1830~40년대 프랑스에서는 생시몽과 샤를 푸리에 추종자를 대개 사회주의자라고 했다. 반면에 에티엔 카베와 루이 오귀스트 블랑키(1789년 프랑스 혁명에서 영감을 얻었다)의 사상을 중심으로 파리에서 조직된 비밀결사들은 공산주의자라고 했다. 1840년대 초반에서 중반까지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당시 관행대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단어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사용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급진파 노동계급을 주축으로 한 공산주의자동맹 및 좀 더 "프롤레타리아적인" 형태의 사회주의 신조와 관계를 맺으면서 1840년대 말 두 사람은 한동안 공산주의자([공산당 선언]이라는 제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를 자처했다. 중산층에 가까운 푸리에, 생시몽, 로버트 오언의 공상적 사회주의와 구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에는 공산주의 하면 대중은 봉기를 연상했고(특히 1871년 파리 코뮌 이후 그랬다), 미하일 바쿠닌이 공산주의라는 이름으로 주창한 무정부주의가 득세했기 때문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다시 "사회주의자"를 자처하곤 했다. 때로는 공상적 사회주의와 대비해 "과학적 사회주의자"로 지칭하기도 했다. 공산주의자라는 표현이 부활해 전면에 등장한 것은 러시아 혁명 이후 1918년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이 러시아공산당(볼셰비키)로 으로 당명을 바꾸고 유럽 사회민주주의와 완전히 다른 노선을 걸으면서부터였다. 


생시몽과 푸리에는 한 번도 급진적인 평등(푸리에는 이를 "사회적 해독"이라고 했다)을 주창하거나 "인민"의 이름으로 폭력을 통해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고 한 적이 없다. 두 사람의 사회주의는 인간의 완성에 관한 고상한 비전이었다. 그것은 종종 이상해 보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를 고무시키는 열정이었다. 실제로 유혈과 공포로 얼룩진 프랑스 혁명 체험이나 그에 대한 입장을 고려할 때 두 사상가는 기존 사회체제를 폭력적으로 변화시키는 데에는 거의 관심의 없었다. 오히려 기존 사회의 불평등이나 부정의와는 다른, 조화로운 공동체를 통한 점진적인 도덕적 개혁이라는 프로그램을 추구했다. 19세기 초의 프랑스에는 에티엔 카베와 루이 오귀스트 블랑키를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자들은 1830년대에 파리의 이런저런 정파를 평정하고, 사회 분석보다는 직접적인 정치 변혁에 열정을 쏟았다. 불만에 가득한 파리 노동자 계급의 지지를 토대로 팔랑주나 코뮌 같은 공동체 설립 운동 수준에 머물지 않고 기존 사회의 구조 자체를 바꾸고자 했다. 그들은 혁명적 공화파 전통을 되살려내야 한다고 외치면서 상속제와 사적 소유의 폐기를 요구하고 혁명 이후 추구해야 할 "국가 단위의 위대한 자산 공동체"를 구상했다. 


‘공산주의자 랍비’ 모제스 헤스 

3장 맨체스터의 빛과 그늘 

면직도시의 지옥 같은 풍경


가족회사 ‘에르멘 앤드 엥겔스’


차티스트 운동의 실상


또 하나의 멘토, 토머스 칼라일


여성 노동자 메리 번즈와의 특별한 인연


역작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


거주 구역상의 계급 분리


“혁명은 반드시 온다”


과학적 사회주의의 근간 

4장 마르크스를 만나다―『독일 이데올로기』에서 『공산당 선언』까지 

애정 넘치는 사촌 같은 사이


『독일 이데올로기』를 탈고하다


의인동맹, 바이틀링, 프루동


여성 편력과 헤스 부인


『공산당 선언』의 탄생 

5장 1848년―풍성한 수확의 해 

전유럽을 휩쓴 혁명의 폭풍


반혁명 세력의 발호


코슈트가 주도한 헝가리 봉기


엘버펠트에서의 바리케이드전


라슈타트 전투를 지휘하다 

6장 맨체스터 시절―시련과 좌절 

런던 소호의 마르크스 일가


에르멘 앤드 엥겔스사로 복귀하다


『자본론』 집필을 위한 서신 교환


두 세계에서의 이중생활


체셔에서의 여우사냥 대회


건강 악화로 퇴사하다 

7장 맨체스터 시절을 접다 

‘장군’이라는 별명의 군사 전문가


식민지 저항투쟁의 옹호


영국 노동계급과 아일랜드 문제


마르크스의 딸 예니가 빅토리아 시대 중기에 크게 유행한 "진실 게임"을 통해 엥겔스의 내면의 비밀을 끌어낸 것도 그런 다정다감한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좋아하는 미덕은? - 쾌활함. 남자라면? - 일에 집중하기. 여자라면? - 물건 어디다 두고 깜빡하지 않기. 본인의 특징은? - 무엇이든 어진간히는 안다. 행복은? -샤토 마고(프랑스의 최고급 포도주) 1848년산. 불행은? - 치과 갈 때. 악덕이지만 봐주는 것은? - 모든 종류의 지나침. 악덕이고 봐주지도 않는 것은? - 위선적인 언사. 혐오하는 것은? - 거만하고 잘난 체하는 여자들.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 찰스 하돈 스펄전(영향력이 큰 침례교 설교가. 심심할 때 좋아하는 것은? - 남한테 농담하고 남이 내게 농담하는 것. 좋아하는 영웅은? - 없음. 좋아하는 여걸은? - 너무 많아서 한 사람만 꼽을 수 없음. 좋아하는 시인은? - 여우 레나드(종세 유럽 우화에 자주 등장하는 꾀 많은 여우), 셰익스피어, 아리오스토(르네상스를 대표하는 16세기 초 이탈리아 시인). 좋아하는 산문 작가는? - 괴테, 레싱, 새뮤얼슨 박사. 좋아하는 꽃은? - 블루벨. 좋아하는 색은? - 아닐린(면직물에 사용하는 합성염료) 빼고는 모두. 좋아하는 요리는? - 찬 것은 샐러드, 뜨거운 것은 아이리시스튜. 좌우명은? - 무소유. 모토는? - 쉬엄쉬엄 하자. 


『자본론』 제1권의 홍보 전략


가족회사로부터 마침내 해방되다 

8장 런던 리전트 파크 로드의 달라이라마 

런던 프림로즈 힐의 새 아지트


1871년 파리 코뮌


미하일 바쿠닌과의 노선 투쟁


라살, 베벨, 리프크네히트


‘세계의 중앙은행’ 런던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난제


마르크스의 죽음 

9장 마르크스의 불도그 

다윈의 진화론에 매료


일찍이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에서 맨체스터 프롤레타리아의 참상을 상세히 기록한 것처럼 엥겔스는 항상 자본주의의 가장 큰 범죄는 인간을 동물 수준으로 퇴보시킨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자연과학과 변증법


과학에 대한 엥겔스의 설명은 분명한 한계가 있지만 그가 남긴 유산 가운데 20세기 들어 시효가 가장 오래간 것이었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해악도 많았다. 여러 세대의 공산주의자들에게 자연과학과 물리과학에 관한 엥겔스의 저작은 실험실 안팎에서 학문 연구를 하는 데 하나의 지침이 되었다. 


『공상적 사회주의와 과학적 사회주의』


『자본론』 후속권을 출간하다


결혼과 성의 정치학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엥겔스의 접근법에 탄복하는 것은 그가 양성의 차이를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산출된 문제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뉴욕이라는 별세계 

10장 마침내 주연으로 서다 

영국 사회주의의 부활


에드워드 에이블링, 윌 손, 키어 하디


국제 사회주의 운동의 중심


독일사회민주당 에어푸르트 당 대회


제2차 국제 노동자 대회


변함 없는 탐구 정신


“그는 정신의 거인이었다” 

에필로그 


노동자들이 스스로 계급의식을 통해서 그런 단계에 도달하는 건 기대도 안 하지?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대뜸 노동자들의 목구멍에다가 교리를 쑤셔 넣는 식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