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 해제_ 경제사가 카를로 마리아 치폴라와 미시사
미시사를 특징짓는 말 중의 하나인 '예외적인 규범'.
카를로 마리아 치폴라의 저서와 논문 목록
1. 무법자
중세 초(개략적으로 말해 7세기에서 10세기 사이), 즉 장원 경제 체제가 유럽 대륙을 장악했던 때에 콤파니아나 은행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유럽의 사회와 경제는 원시적이었기 때문에 상업은 주로 메르카토레스가 주도해 나갔다. 이동성이나 변화가 전무하던 세상, 다시 말해 모두라고 하기에는 좀 과장되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땅 몇 마지기에 들러붙어 각자의 영주를 섬기며 살던 세계에서 상인은 일탈한 개체, 그릇된 존재였고 조국도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방랑자의 대명사였다. 그러므로 중세 초의 메르카토레스는 어딜 가나 근본 없는 사람으로 인식되었으며 모든 사람으로부터 의심을 받았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오늘날의 집시와 비슷했다. 그리고 가톨릭교회의 성직자는 메르카토레스가 돈밖에 모르며 물질적 이익만 좇는다는 이유로 이들을 기탄 없이 비판하였다. 오직 이들만이 가톨릭교회에서 퍼붓는 온갖 비난을 감히 무시하고 살았으며, 산길에 도사리던 수많은 위험과 죽을 고비에 맞설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당시 상업을 한다는 것은 산적 행위를 한다는 의미를, 뱃사람이 된다는 것은 해적 행위를 한다는 의미를 내포했다. 이렇게 몇 세기 동안 무법자는 모진 삶을 살았다.
그러나 11세기로 접어들면서 상황은 바뀌기 시작하였다. 이 변화를 일컬어 상업혁명이라고 한다. 즉, 상품을 자신이 직접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주요 도시에 지점을 마련해 두고 상품을 이동시키는 양상을 띠기 시작하였다. '상업혁명'은 대부분의 서유럽 사회를 바꿔 놓은 일종의 사회혁명이기도 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이와 같은 새로운 형식의 경제 조직체가 육지 무역쪽에서 형성되었는데, 이른바 '콤파니아'라고 불렸다. 콤파니아의 탄탄한 기반은 전형적인 가부장제 형태의 가족이었다. 이것도 새로 생겨난 요소였다. 그 이유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7세기와 11세기 사이의 상인은 근본 없는 사람이었으므로 이들을 후원해 주거나 책임져 주는 가족이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 살았던 대부분의 상인은 자신들에게 가족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몰랐다.
중세에는 수/출입을 고려해서 화폐를 새로 찍어 냈지 국내 시장을 고려해서 화폐를 찍어 내는 경우는 드물었다.
2. 17세기의 사기 사건
3. 18세기 사바리 부자가 본 유럽
모순된 사실이지만 프랑스에는 상업과 관련해 내세울 만한 전통이 없었을뿐더러 상업과 귀족 신분을 병행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신념이 당시 프랑스 사회를 강하게 지배했다. 사회적으로 신분이 낮거나 역량이 부족한 사람만이 상인이 된다고 생각했다. 돈을 수억 벌었다 하더라도 상인과 그의 후손은 천민 혹은 아주 낮은 사회 계층에 속하는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해상 무역만은 예외에 속했다. 귀족이라 하더라도 귀족 자격 상실 문제를 걱정할 필요 없이 원한다면 누구나 해상 무역에 종사했다. '귀족 자격 상실'은 귀족 신분과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에 종사할 경우 귀족으로 누리던 특권이나 작위를 박탈당하는 관습을 말한다. 당시 해상 무역이라 하면 해적 활동과 혼동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을 감안해 볼 때 귀족은 해적이 될 수는 있어도 정직한 상인이 되면 안 되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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