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장 문치주의의 꽃
역사의 쓰임새
역사 연구와 그 효용은 보편적이라고 생각한다. ① 과거의 이러저러한 사실들을 알고자 하는 욕구, ② 삶에 필요한 유용한 교훈을 얻고자 하는 욕구, ③ 과거 사실을 통해 현재 사실(문제)의 기원을 찾고자 하는 욕구가 그것이다. ①은 호기심이자 박물학적 취미일 것이며, 언제 어디서나 생길 수 있는 욕구이다. ②는 '교훈을 찾는 도덕주의'로 해석될 수 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연구대상에 대한 특정한 목적과 이유를 수반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보편성에 기반한 관찰이다. ③은 우연과 필연을 탐색해 인과성을 찾는 노력이다. 시대적 인접성 또는 내적 연관성이 전제가 된다.
제도사는 재미없다?
왕정은 '전제적'인가
정치제도의 두 유형
국가라는 제도의 유지와 관리에 의해 기초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정부조직이 그 하나라면, 어떠한 국가가 사회를 지향하는가를 보여주는 조직이 다른 하나이다. 전자를 행정형 조직이라 한다면, 후자는 이념형 조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조선 정치제도의 특징인 언관 및 경연이나 사관제도는 유가적 문치주의를 추구하는 이념형 조직이었다. 여기서 '문치주의'란, 먼저 '외적 방어를 위해 조직된 군대를 자국 인민들에 대한 통치의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둘째, 적극적인 의미의 문치주의는 국가의 정책 방향이나 의사결정, 집행에서 논의와 설득에 기초한 일련의 제도적 장치가 현실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문치주의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역할이 달랐던 언관을 제외하고, 경연이나 사관제도 등 주요 문서 작성이나 정책 논의를 맡던 관청을 합해 흔히 '문한관서'라고 불렀다. '붓을 들고 일하는' 관서라는 의미였다.
겸직의 의미
조선의 정치제도는 고려시대의 연장이며, 더 멀리는 유교정치의 제도적 전범이라고 할 수 있는 <주례>에 기초했다.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을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한 사람이 다른 관직을 동시에 같이 맡는 겸직제이다. 조선시대에도 국가비용 절감이라는 차원에서 겸직이 논의되고 있음을 종종 확인할 수 있다. 정치권력의 배타성에 주목하는 학자들은, 지배층이 권력을 장악하고 유지하는 데 겸직제가 유효한 수단이었다고 해석한다. 양반 중심의 권력유지라는 지상 목표를 효율적으로 수행해준 것이 겸직이라는 뜻이다.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이는 이 해석은 다소 재고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겸직을 통해 다른 계층이 권력중심으로 진입하는 것을 차단하려 했다고 해석하기에는, 겸직에 해당하는 관원이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한관서의 구조
조선시대에도 현재 행정부에 해당되는 의정부와 육조가 있었던 한편에, 경영관·언관·사관이 그 시대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기능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세 관서 사이에도 중층성이 눈에 띤다. 경영관과 언관은 당대의 현실에 주된 관심을 갖는 데 비해, 사관은 인간 삶의 연속성과 그 연속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평가에 관심을 갖는다. 이렇듯 경영관·언관과 사관은 횡·종으로 얽혀 기능하도록 짜인 정교한 구조였다. 제도 일반의 성격을 '행정의 실현'과 '이념의 구현'이라는 두 측면으로 갈라볼 수 있다면, '행정의 실현'은 역사적으로 장기지속적이며 각 시대별 구조를 비교해보아도 차이보다는 유사성이 눈에 띤다. 한편, '이념의 구현'은 조직의 성격이나 운영 방향, 그리고 궁극적으로 조직의 존재 목적을 드러내주는 경향이 있어 해당 사회의 성격을 드러낸다.
경연, 성경을 공부하는 자리
어떤 이상주의
흔히 유가의 학문을 치자의 학이라고 하기도 하고, 그렇기에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라고도 이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불문하고 치자에 대한 엄격한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연, 세살 버릇 여든까지
경연을 보기 전에 살펴봐야 할 제도가 서연이다. 서연 제도는 세자, 즉 장차 국왕이 될 왕자를 교육하는 것이다. 세자는 장차 국왕이 될 것이므로, 서연의 연장이 경연이라고 할 수 있다. 종신 임기가 보장된 왕조체제에서는 서연이 경연만큼이나 중시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연은 세자를 교육하는 곳이기에 아무나 임명하지 않았다. 우선 문신이어야 했다. 여기서 문신이란, 무신과 대비되는 문신이 아니라 과거급제자를 말한다. 또 문신에서 사는 영의정이 맡고, 부는 좌·우의정이 나누어 맡는다. 흔히 우리가 '싸부님'할 때의 사부가 바로 여기서 보는 '사'와 '부'를 합한 말이다.
경연의 조직
주무관서 홍문관
성인 만들기
'귀하'는 일본식 표현이고, 우리는 '안하'나 '좌하'라는 표현을 썼다. 이것은 상대방을 직접 지칭하기가 편치 않는 경우에 쓰는 표현이었다. 즉 웃어른이 사용하고 있는 서안(책상)이나 앉은 자리 밑에 드린다는 의미이다. 전하라는 말은, 대개 임금이 정사를 보던 경복궁의 근정전이나 창덕궁의 인정전 같은 '전'에다가, 아래 '하'자를 붙여 부르는 이를 낮추고 듣는 이를 높이는 말이 되었던 것이다.
세습과 시험의 공존
귀족제(세습)에서 관료제(시험)로의 변화는 동아시아 공통의 세계사적 의미를 지니는데, 흥미롭게도 그 속에서 변화하지 않았던 것이 있다. 바로 정치권력의 가장 정점에 있는 국왕의 세습이었다. 어떤 역사적 조건이 국왕을 과거시험을 통해 뽑는 일을 막았든지 간에, 이들은 이러한 추세 속에서 국왕도 예외일 수 없는 장치를 만들어냈다. 즉 과거시험을 통해 뽑힌 사대부들이 추구한 민본주의와 왕도정치의 이상에 국왕이 동의하게 하는 장치, 그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경연이었다.
교과서, 몸의 훈련
경연의 한 모습
전쟁 중에도
2장 실록, 그 돌덩이 같은 저력
실록 맛보기
실록의 탄생과 진화
개념으로 따지면 실록은 등록의 일종이다. 그러니까 책보다는 문서(또는 문서 모음)쪽에 속한다. 보존하는 문서이다. 흔히 실록을 역사서라고 하는데, 이는 오해할 수 있는 부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실록이 편찬 과정, 즉 등록 과정을 거쳤다고 해서 학계에서는 이를 2차 사료라고 하는데,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실록 편찬은 조선시대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실록은 중국 당나라 태종 때 편찬되기 시작했다. 한국사에서는 통일신라 말 9세기쯤부터 편찬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 태종은 고조 이래 당대까지의 기록을 편찬하게 했는데, 그것이 실록 편찬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군주가 세상을 뜬 뒤 실록을 편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실록이 처음 만들어질 무렵에는 재위 중에도 편찬했다. 대개 당나라 중엽까지 그러했다. 연호 단위로 편찬하기도 하다가, 이후 재위 기간 단위로 편찬했다. 아무래도 시기를 나누는 것이 가장 편한 기준이 아니었을까. 실록은 국사의 대명사였다. 한 나라의 역사라는 말이다. 이런 위상 때문에 실록은 자연스럽게 마치 사회의 신분처럼 그 시대 기록의 위계에서 '첫머리를 차지하는 등록'이 되었다.
죽음과 역사
종종 장난삼아 '국왕의 즉위가 흉례인가, 길례인가'하고 묻는다. 답은 흉례이다. 선왕의 장례식 과정에서 즉위하기 때문이다. 그 장례식 절차 중에 줄곡(삼우제 뒤에 지내는 제사)이 있는데, 이 줄곡을 기점으로 실록 편찬이 시작됐다. 줄곡은 국왕이 마냥 상주로 남아 있으면 국정을 담당할 수 없기 때문에, 상복이 아닌 평복으로 갈아입고 국정을 보기 시작하는 단계로, 상주의 역할과 국정 담당자의 소임을 다하게 하기 위해 마련된 절차였다. '대간이 한 시대의 공론이라면, 사관은 만세의 공론'이라는 말은 실록 편찬을 두고 자주 했던 말이다.
배제와 비장
실록은 함부로 볼 수가 없었다. 기록부터 편찬과 보존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으로 관리되면서 '배제와 비장'이라는 원칙이 생겼다. 해석의 장에서는 언제나 사실과 가치판단이 만난다. 그런데 <춘추>를 제외하면, 모든 역사 편찬물은 예외 없이 사실과 사론을 분리해 서술하는 방법을 택했다. 전통 역사 편찬에서는 주관과 객관, 해석과 사실의 문제를 아주 단순한 방법으로 해결했다. 사실은 사실대로, 해석은 사론으로! 실록은 같은 방식을 치했다.
선입견의 재음미
실록 기사에서 보이는 '국왕 중심성'은 바로 중앙집권적 관료제의 위계가 반영된 것이었다.
상상의 추체험
실록청의궤
편찬 프로세스
풀리지 않는 의문
실록청의 정보 보안이 가능했겠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사실 이 문제는 실록 편찬이 시작되었던 초기에 세계 최초의 역사학개론인 <사통>을 저술한 유지기가 지적했던 것이다. 조선은 무오사화를 일으켰던 이극돈의 사례로부터 얻은 교훈으로, 중종 초판에 편찬 과정에서 기록을 누설할 경우에도 사초 훼손에 버금가는 처벌을 받게 하는 법령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법령이 있다는 것과 그것이 준수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그런데도 이 편찬 과정에서 기록이 누설됨으로써 불거진 소동이나 사건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세초와 상전
실록과 정통성
3장 헌법과 강상
트랙터와 호미
역사를 이해하는 데는 현재 우리가 지닌 관념이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빚어지는 오류를 아나크로니즘(Anachronism), 즉 '당시의 시대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역사인식'이라고 부를 수 있다.
진화와 적응
『경국대전』, 대전에서 편고까지
<경국대전>은 조선조 제7대 임금인 세조 6년(1460년)부터 시작해 성종 16년(1485년)에 이르는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경국대전』과 정부조직법
헌법과 역사성
<경국대전>에 헌법적 요소가 다분히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의 정통성이나 국민의 기본권과 의무 등을 규정한 헌법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점을 상기하자.
거주 이전의 자유
예치와 법치
전환에 대한 어떤 해석
헌법과 경
강상이란 말
조선시대에 '헌법'의 특징을 지닌 규범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예치의 특성, 경의 차이, 그에 따른 인간관의 차이가 정치제도의 운영에서 요즘과는 다른 원칙과 실제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경'만으로 정치규범이 완결된 것이 아니라, 일부는 <경국대전> 등에 포함되기도 하고, 일부는 <오례의>나 <가례>도 국가와 가문의 의례 절차이면서, 성리학의 의리론까지 구현하고 있다. 게다가 성문법보다는 관습법적 요소가 많은 법 현실도 법이나 규범의 명료한 구분을 어렵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경'이자 '헌법'의 지위를 가진 규범이 있었으니, 그것이 곧 '강상', '삼강오륜'이었다. '강'은 '벼리'로, 원래 그물이 제대로 퍼지고 끌어올려지게 하는 역할을 하는데, 기준이나 표준 정도로 새기면 된다. 바로 '삼강'의 준말이다. '상'은 '경'과 같은 뜻인데, '오상', 즉 '오륜'의 준말이다. '윤'은 질서란 의미인데, 마찬가지로 기준이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누군가는 가슴 뜨끔할 본의
어리석은 아들
답답한 이유
강상의 회복
예의 자기화
4장 대동법, 혁신하는 시스템
오래된 궁금증
둘 다 공론입니다
외삼촌의 숭어
공물 변통의 두 방향
연산군에서 율곡으로
실은 200년
왜곡된 대동법 추진 주체
광해군과 방납커넥션
좌절된 대동법 시행
가타가이의 웃음
다시 시작된 대동법 논의
삼도 대동청의 실패
비전과 여건의 마련
호서대동법
구조의 재조정
그럼 우리도
연해에서 신군으로
공안개정론의 아쉬움
긴 여정과 기억
5장 오래된 미래, 조선 성리학
태동기의 현실
유가 르네상스
재역전의 기획
송대 유학자들은 윤회의 굴레에서 헤매는 육신을 정신 수행으로 벗어나려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 자신의 훈련을 통해 이 세상에서도 얼마든지 '극락정토(대동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맹자>의 사단이론을 현실의 어려움과 혼란을 극복할 인간의 내재적 가능성으로 재해석하고, 그 체계를 <중용> 첫 장의 우주론으로 체계화한 다음, <대학>을 통해 인간세상의 평안을 위한 근본 조건인 수신의 근거로 삼은 것이, 송대 성리학자들이 불교의 인간관에 대응한 철학적 전략이었다.
유한자의 두려움
안티노미
사상의 구체성
학문 센터의 이동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새 왕조는 과전법의 실시와 세동대 공법을 기점으로 안정적 국면에 들어섰다. 정치제도의 정비는 <경국대전>의 완성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그런 경제·정치제도를 이끌어갈 정치세력의 형성은 그리 쉽지 않았다. 집현전에서 키운 인재들은 세조의 찬탈로 도륙되고, 성종대에 다시 등장한 사람파는 세조의 구신과 연산군에 의해 좌절을 겪었다. 중종 때 기묘사림은 다시 기득권층이 된 중종반정의 공신들에 의해 제거되었고, 그 난맥상은 선조가 즉위하는 전후까지 이어졌다.
조정에서 쫓겨나고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통상 조선 정치사에서는 현실주의를 '탁론', 이상주의를 '청론'이라고 불렀다. 이는 조선 정치사를 당색의 대립보다는 오히려 청론/탁론의 구도로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 주목할만한 사실은, 청론이 형성되지 못하는 당색은 도태된다는 점이다. 자기 혁신 능력이 결여된 것이다.
이젠 끝장인가보다
퇴율의 대비
전습록 독후감
딛고 선 땅이 다르기에
훈련된 인격이 필요하다
일찍 일어나기
체계성과 문제의식, 농담 하나
대개 어떤 사상 체계는 두 가지 경로로 구성되어 간다. 첫째, 이론은 체계성을 지향한다. 둘째, 이론의 완결성이 지닌 방향은 시대나 세계에 대한 사상가의 문제의식이 결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단칠정논쟁
시냅스와 경
논쟁, 긴장의 힘
주리와 주기
사문난적에 대한 오해
윤휴가 <중용>과 <대학>을 중심으로 주자와 다른 해석을 낸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이른바 '탈주자학'의 선구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의 사고에서 중시되었던 것은 사회구성원 개개인이 아니라 왕정과 그를 대표하는 군주였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즉 통상 성리학에서 '성학'이 군주나 사대부는 물론, 일반 서민들도 달성할 수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했던 데 비해, 성학의 주체를 군주에 한정시킨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또한 존비귀천으로 계서화된 사회구조를 그 이념 속에 담보하고 실현하는 것이 예법이므로, 예법의 실천이 학문의 핵심이 된다는 논리였다. 송시열은 이런 윤휴의 학설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왜 그랬을까? 송시열은 '성학'을 군주의 특수 학문이 아니라, 보편 학문으로 생각했다. 즉 인간 누구나 성취할 수 있는 자질이 있고, 닦을 수 있는 훈련 과정으로 본 것이었다. 이는 주자에서 퇴계와 율곡을 잇는 조선 성리학의 연장이었다. 따라서 예법도 군주라고 해서 특별하게 취급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천하동례의 원리에 따라야 하는 것이었다.
식민주의 이데올로기를 넘어
6장 부활하는 광해군
혹세무민
왕대비 교서
'백성들에게 은택을 입힌 임금'이 되다
형, 임해군
동생, 영창대군
어머니, 인목대비
짓고 또 짓고, 끝없는 궁궐 공사
국방비를 초과하는 공사비용
거두고 또 거두고
대명 관계
소심한 제국
강홍립에게 내린 지시
기회주의 외교
사료의 왜곡, 해석의 왜곡
내정과 외교
몰개념성
왜곡과 축소
결과론과 패배주의
식민주의 프레임
내면화와 미래
사대와 사소
광해군을 제자리로
7장 당쟁과 기에 대한 오해
거울과 대화
부정적 접근과 불임의 논법
적극적 접근의 전망
질투의 화신 선조는 못 말려
점입가경
또 다른 희생자 , 선조
사라진 침략과 전쟁
불쌍한 전근대
기철학과 주기론
가상의 팥쥐를 만들고
부활!
왜 조심해야 하는가
8장 역사 바로 세우기 - 단종과 사육신
청령포 단상
궁금해진 상식, 노산군과 단종
반성의 실마리
연도, 그 시간 구획
합수부장과 9사단장
선위의 명분
그 어려운 첫걸음
찬탈은 간신을 낳고
중종반정 이후
거스를 수 없는 대의
끊이지 않는 문제제기
군에서 대군으로
'단종'으로 '충신'으로
냄비근성은 유전자가 아니다
고운 님 여의옵고
에필로그
첫째, 적어도 사실을 왜곡하지는 말 것. 둘째,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서 애기할 것.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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