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의 글 왜 ‘피자의 지구사’인가? 5
1978년 5월 3일자 <매일경제>에는 어린이날을 앞두고 별식 몇 가지를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다. 그 가운데 '식빵 피자'도 들어 있다. 캐럴 헬스토스키는 일본의 오코노미야기를 피자의 세계적 변형이라고 보았다. 한국인에게 낯설었던 피자가 2010년 가을, 신문 사설에까지 등장할 정도로 사회적 문제의 주인공이 되었다. 대형 마트에서 피자를 싼값에 판매하면서 중소 피자업체를 죽인다는 비판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피자는 밀을 주식으로 하는 민족집단이 발표시킨 넓적한 빵을 화덕에서 구워낸 데서 출발한다. 하지만 중국, 인도, 서아시아 등지에서 먹는 빵과는 다르다. 토마토가 토핑으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토마토의 고향은 아메리카 대륙이다. 이 채소가 왜 시칠리아 빈민들의 빵 위에 올라갔는지 궁금하지 않는가? 최근 역사학계에서 주목하는 지구사는 "인류를 하나의 역사 단위로 바라보면서 인류의 역사를 상호교류와 상호의존의 역사로 파악"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0. 서문 13
1835년 프랑스 소설가이며 여행 작가, 음식 전문가인 알렉상드르 뒤마는 이탈리아 나폴리로 여행을 떠나 나폴리 빈민의 풍속과 삶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마차여행>을 썼는데, 이 책에서 그는 오명이 난 나폴리 빈민의 모습을 그렸다. 나폴리 빈민들은 라차로니로 묘사되었는데, 그들의 누추한 몰골이 라자루스(신약성서에 나오는 인물로 예수가 죽음에서 되살렸다)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뒤마는 라차로니가 두 가지 음식으로만 근근히 살아간다고 단언했다. 여름에는 수박, 겨울에는 파지였다. 나폴리 사람들이 살기 위해 먹었던 음식이 나중에는 도시의 신화적 역사에 속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까지도 지역 특산물로 남아 있던 피자가 남부와 북부, 부자와 빈민, 젊은이와 늙은이를 아우르는 전 이탈리아 국민의 전통식이 된 것은 이민과 관광의 물결 덕분이었다. 빵과 토마토, 치즈를 조합하여 피자를 처음 만들어낸 공은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돌려야겠지만, 피자의 제2의 고향은 미국이다. 파지의 역사적·문화적 의미는 세월이 흐르고 지리학적 경계를 넘어가면서 계속 바뀌어가지만, 이탈리아와 미국만을 대상으로 피자가 인기를 얻는 과정을 살펴보면 공통된 경제적 패턴을 찾아볼 수 있다. 먼저 피자는 값이 싸기 때문에 도시 빈민이 사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게다가 기본 재료를 여러 가지 방시으로 어우러지게 하여 다양한 맛을 낼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주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이탈리아와 미국에서 피자의 인기가 한창 높아가던 가운데 1945년 이후에는 중류층 사람들이 (그리고 나중에는 상류층에서도) 새로운 여가생활을 즐기게 되면서 그에 걸맞은 음식인 피자의 인기도 따라서 높아졌다. 뒤마의 말이 맞다. 피자는 단순한 음식이었고, 여전히 그렇다. 다른 많은 음식과 마찬가지로 기원이 단순했으며, 나폴리나 뉴욕에서 빈민층과 노동자층의 음식이었다. 피자는 이런 변화무쌍함 덕분에 편리한 음식이 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피자의 토핑으로 쓰지 못할 재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피자라는 말이 꼬집는다는 뜻의 피치카레(pizzicare)에서 나왔다고 믿는다. 즉 피자의 모양과 크기를 잡고 토핑을 올려 지탱할 수 있을 만큼 질기에 만들기 위해 반죽을 꼬집어야 했다는 것이다. 물론 피자라는 말이 그리스어나 아라비아어, 히브리어로 둥글납작한 빵을 가리키는 말에서 나왔다고 믿는 사람도 있고, 이와는 달리 라틴어로 '치대는(of pitch)'에 해당하는 피케아에서 나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1. 역사 수업 한 판 피자의 출발점, 이탈리아 33
나폴리의 빈민문화에서 피자 소비는 서의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나폴리 주민들 대다수는 집에 적당한 요리시설이 없어 거리에서 '패스트푸드'를 사 먹어야 했다. 1889년 마르케리타 피자의 탄생을 계기로 피자는 국민 음식의 반열에 들어섰다. 1989년 마르게리타 피자 탄생 100주년 기념식을 치른 VPN(정통나폴리피자협회) 회원들은 기본적으로 와인과 치즈에 흔히 적용되는 지리적 표시제도인 DOC(지역 진품 인증) 규정을 나폴리 피자에 적용시키기 위해 열띤 논의를 시작했다. VPN은 정통 피자를 결정하는 요건을 확립하는 데 앞장섰다. 피자에 대한 VPN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요리 보수주의, 곧 18세기와 19세기 나폴리의 '정통' 문화를 엘리트식으로 또는 자신들의 방식으로 변화시키려는 태도가 보인다. 기술도 전후 미국에서 피자가 인기몰이를 하는 데 한몫 했다. 집에서 만드는 피자 도구와 냉동 피자는 소비자들이 집에서 이 새로운 음식을 맛볼 수 있게 해주었다. 피자 도구가 처음 등장한 때는 1948년이고, 냉동 피자 기술 특허가 나온 것은 195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하지만 최초의 냉동 피자는 1950년대 초에 등장했다.
2. 피자 아메리카나 피자의 두 번째 고향, 미국 79
3.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간단한 음식 피자의 세계 정복 117
4. 둥글납작한 빵의 끝없는 진화 피자의 미래 161
특집 피자, 한국 정복의 역사 173
1980년대만 해도 피자는 결코 한국인의 일상적인 음식이 아니었다. 한국 땅에 피자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때는 미군의 주둔과 관계 있다. 피자의 본격적인 미군 부대 진입은 1970년대 시작된 미국 본토에서의 냉동 피자 등장과 관련이 있다. 냉동 피자는 세계 각지의 미군 주둔지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전기 오븐에 구워졌다. 미군 주둔지가 있던 일본과 한국에서는 피자를 '피자 파이'라고 불렀다. 1975년만 해도 피자가 무엇인지 별도로 설명해야만 일반인들이 알 수 있을 정도로 피자는 흔한 음식이 아니었다. 1980년대 초반 강남이 개발되고 신시가지가 조성되면서 피자는 경제성장과 함께 식당에서 판매되는 메뉴로 자리를 잡아갔다. 1980년대 4월 서울 서초동 제일생명빌딩 옆에 '맘마미아'라는 이탈리아 식당이 개업했다. 가수 패티김이 개업한 이 식당에서는 피자와 스파게티 등 이탈리아 요리를 팔았다. '피짜리아멜라'를 필두로 피자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피자가게'가 1984년에 새로 문을 연 여의도백화점의 식당가에 자리를 잡았다. 이런 의미에서 1984년은 한국에서의 '피자가게' 탄생의 원년이다. 1980년대 초반까지도 피자는 한국인에게 술안주, 과자, 간식, 간단한 끼니 대용식이기도 했다. 그만큼 한국인의 식탁에서 피자의 위치는 애매했다. 피자의 애매한 위치는 1985년 미국의 피자 패스트푸드점 피자헛과 피자인이 서울에서 개점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샐러드바를 갖춘 피자헛의 피자는 더 이상 술안주, 간식이 아니라 독자적인 끼니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피자헛은 미군 부대와 가깝고 미군의 유흥지로 알려진 이태원에 첫발을 내딛었다. 빈대떡을 한국식 피자라고 주장하지만, 빈대떡은 결코 피자와는 다르다. 그보다는 미국식 피자가 한국식으로 변모하여 대한민국을 장악했다는 말이 더 옳을 것이다.
다양한 피자 요리법 187
부록
ㆍ감사의 말 213
ㆍ본문의 주 214
ㆍ참고문헌 218
ㆍ이미지 출처 219
ㆍ웹사이트와 관련 단체 221
ㆍ찾아보기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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