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시작하며
고고학은 1485년 4월, 로마의 유명한 아피아 도로 중간에서 발견된 대리석 석관의 출토로부터 탄생했다는 설명도 있지만 대개는 18세기 이탈리아 폼페이에서의 발굴을 본격적인 고고학적 발굴의 기원으로 꼽는다.
문명을 파헤치는 열쇠, 문자 해독
현대적인 발굴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세람은 <고곡학의 역사>에서 1485년 4월, 로마의 유명한 아피아 가도 중간에서 발견된 대리석 석관의 출토를 꼽았다. 세람이 이 사건을 고고학의 시초로 간주한 것은 고대 유물이 보석이나 재화가 아니더라도 사람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첫 사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후 고대 유물은 간헐적으로 유럽인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본격적인 유물 발굴작업은 1748년으로 내려온다. 폼페이는 땅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랴야 무덤에 지나지 않는다는 일반 사람들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 놓은 일대 사건이었다. 폼페이와 같은 거대한 도시가 땅 속에 묻혀 있다면 다른 고대의 문명도 땅 속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러베 할 수 있었고, 이는 사람들의 관심을 고대 문명의 발굴로 이어지게 했다. 그러나 이들 발굴도 그 유물이 무엇 때문에 만들어졌는지를 알지 못하면 중요성이 떨어지게 된다. 그런 면에서 발굴의 최종적인 성과는 그 문명이 사용하던 문자의 해득에 좌우된다고도 볼 수 있다.
유럽인들이 고대 문명 발굴의 열풍에 휘말리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1798년 5월 나폴레용의 이집트 원정이었다.
중세 유럽인들이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 있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여행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황폐하고 메마른 땅일 뿐 아니라 당시의 정치적 상황도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이들 지역을 방문했는데 그 이유는 단 하나 <성서> 때문이었다. 성서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진실임을 믿는 유럽인들에게 메소포타미아는 신비의 땅이었다.
[1장] 발굴의 황금시대를 열다 - 거대한 무덤 건축물의 상징이 된 마우솔레움
당시 영국과 프랑스, 독일 정부는 자신들의 대사관에 가능하면 돈이 많은 재력가들을 외교관으로 임명했다. 그들의 힘을 통해 주재국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게 한다는 목적이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들 재력가들이 필요한 일이 있을 때 자신의 재산을 동원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19세기에는 발굴이 과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고고학자라는 직업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유럽인들이 발굴에 매달렸던 것은 역사의 진실을 밝히려는 학술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개인적인 목적으로 유물을 수집하거나 큰 박물관에 팔 것을 찾기 위해서 발굴 작업을 행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더구나 발굴에 소요되는 엄청난 비용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발굴 당사자가 모두 부담해야 했으므로 값나가는 유물을 찾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2장] 알렉산드로스의 청도 거절한 자존심 - 고대인의 마지막 도피처, 아르테미스 신전
아르테미스 여신을 위한 행사는 지금의 카니발처럼 진행되었다. 에페수스에는 아르테미스 신전을 인간들의 최후의 피난처로 규정한 법이 있었는데 이는 신전의 명예를 높여주는 것은 물론 더 많은 재물이 신전에 모이도록 하는데 기여했다. 예로부터 에페수스인들은 신전의 기둥에 자신을 묶고 '성역이다'라고 외치기만 하면 모두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최강국이었던 페르시아의 군대가 이 도시를 공격했을 때에도 주민들은 신전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페르시아인들 역시 이 여신을 존경해 신전으로 피신한 사람들을 해치지 않았다. 이런 페르시아의 행동은 나중에 보상을 받았다.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왕이 그리스에 패한 후 자기 아이들을 아르테미스 신전에 보냈을 때 아르테미시아 여왕이 그들을 보호해 주었던 것이다. 아르테미스 신전이 고대 문명사에서 유명했던 것은 왕위에서 쫓겨난 사람들에게 합법적인 망명지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범인이나 탈주자들도 보호해 주었기 때문이다. 신전의 모든 땅은 신성하게 여겨졌으므로 새나 동물들도 같은 대우를 받았다. 고대의 아르테미스 신전은 인간과 함께 모든 생물들의 최후의 피난처였다. 물론 이러한 전통이 늘 지켜졌던 것은 아니다. 몇몇 예외는 있었지만 아르테미스 신전이 갖는 성역으로서의 위상은 흔들리지 않았다.
[3장] 고고학 발굴사의 기념비를 세운 슐리만 - 트로이 목마의 진실은 무엇인가?
[4장] 신화와 역사가 만나는 곳 -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를 찾아서
[5장]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를 찾아 - 니네베의 점토판에서 발견한 길가메시와 노아
[6장] 무와탈리와 람세스 2세 - 카데시 전투에 대한 두 가지 기억
[7장] 또 다른 메시아의 이름은 무엇인가? - 사해문서와 기독교인들의 딜레마
사해문서가 해득되었을 때 기독교인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놀란 이유는 기독교가 예수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예수보다 휠씬 전부터 기독교의 기본 이론이 정립되어 있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8장] 세계사를 움직인 공포 - 황금의 제국, 스키타이
[9장] 제국의 영원한 지배자를 꿈꾼다 - 지금도 시황제의 명령을 기다리는 병마용
[10장] 오빌의 전설과 인간의 탐욕 - 밀림 너머의 낯선 풍광, 대짐바브웨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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