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의 원형을 찾아서], 최자영, 살림, 2005, (160213).

바람과 술 2016. 2. 13. 11:12

그리스 정치의 이해 

고대 그리스 정치사는 원시 혈연사회의 고대 후기 로마제국 사이의 과도기적 정치형태를 보여준다. 시민사회라고 하면 흔히 노예와 대조적인 사회계층으로 이해하곤 하는데, 이것은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민이란 국가의 의무부담과 권리행사의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시민의 국가에서는 정치권력기구나 조직권력기구나 조직적 수세제도 같은  것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서 흔히 시민단체 자체(민회)나 그 대표단(의회나 그 대표행정위원들)들이 국정 결정의 주체가 된다. 이 같은 사회는 권력행사의 정치기구와 사회의 조직화가 진전된 오리엔트나 중국 등 동방이 왕국과는 다르다. 자유시민의 가장 큰 특징은 자체무장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렇다할 정치권력이나 무력집단이 따로 없었던 폴리스에서 무장한 시민들의 불만은 곧 사회불안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빈부 간에 갈등이 생기면 어떤 식으로든 시민들 간의 합의를 통하여 해결해야 했다. 무력으로 반대편을 누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폴리스에서 가진 자들은 토지재분배나 부채말소의 개혁가능성에 대해 끊임없이 경계하였다. 그리스의 정치적 갈등은 바로 도시국가의 시민들 간, 즉 한편으로 배타적 자기중심의 이익과 다른 한편으로 공익 사이의 대결이었던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기원전 6~4세기경에 이르러 그리스 도시국가 간에는 군사 동맹에 체결되고 용병제가 발달되었는데, 그 결정적 계기는 기원전 5세기 초 페르시아 전쟁 및 그에 대항하여 결성된 아테네 중심의 델로스 해상동맹이었다. 무력의 발달은 시민사회의 온갖 특징을 말살시켜 갔다. 군사력 증강과 함께 폴리스 안팎으로 정치권력 및 사회적 억압도 진전되었다. 혈연 및 시민 사회의 공동체성은 파괴되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눈덩이 같이 켜져 갔다. 폴리스 사회는 헬레니즘이나 로마제국 시대보다 훨씬 단순하다. 개인이 각기 무장을 갖추었던 그리스 시민사회는 사회적 불평등, 무력을 전유한 계층에 의한 사회적 억압 등이 후대에 비해 덜하였으며, 사회적 불평등을 상호 간 욕구타협의 방식으로 해결하였다. 초기 시민사회는 어떤 상투화된 도덕이나 원칙이 아니라 인간적인 욕구총족 위한 기회의 균등과 공동체성이 강했다고 하겠다.   


초기 그리스 정치의 개관 

크노소스, 미케네, 트로이 등의 에게 해 문명은 '미니' 왕국 시대의 것으로, 근동 사회같이 왕이 있었으며 왕은 주변 촌락에세 세금을 걷었다. 그러나 이 왕국들은 그 규모나 권세에 있어 근동이 전제왕권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았다. '미니' 왕국 시대의 문화에서는 정치권력이나 위정자들보다 서민들의 생활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고대 그리스에는 독립된 도시국가가 많았다. 이것은 기원전 8세기경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여 마케도니아의 세력하에 편입되던 기원전 4세기 말까지 계속된다. 초기에는 독립적인 도시국가들이 유대관계를 돈독하게 하기 위해 종교적 성격의 인보동맹을 결성하였다. 교역이나 그 포괄 범위는 델포이나 올림피아와 같이 전 그리스에 걸친 넓은 것도 있고, 또 한 지역에 국한된 작은 것도 있다. 종교 동맹은 최소한의 유대를 다지되 정치·경제적으로 상호 간섭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군사력에 의한 도시국가의 독립 상실은 기원전 338년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의 그리스 침공이 그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각 폴리스의 영역은 언제나 고정된 것이 아니고 가변적이었다.


폴리스, 즉 도시국가는 오늘날의 도시나 국가의 개념과는 다르다. 우선 폴리스에는 전문직 공무원, 경찰, 군대 등이 없었고 필요에 따라 시민들이 공무, 재판, 국방 등 국가의 온갖 사무를 맡아보았다. 대개의 경우 그에 대한 보수도 국가에서 지급하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시민 자신의 경제적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했고,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자연히 완전한 시민권을 가질 수가 없었다. 즉, 국가에 대한 시민의 의무는 권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도시의 많은 시민들이 상공민이 아니라 농민(혹은 지주)이었다는 점에서 폴리스는 오늘날의 도시와도 다르다. 말하자면 고대도시는 농촌의 연장으로 경제적 생산이 아니라 정치활동 및 소비·문화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아테네 정치사


아테네인들은 너무 영악해서 인간을 신임하지 않았다. 부자는 물론이지만 학식 있는 인간이나 도덕적인 인간이라 해도 남을 위해 희생하기보다 쉬 자신의 이익을 우선한다는 것을 그들을 잘 알고 있었다. 뻔히 누가 결정하는 줄 알고 있는데 객관적 잣대를 들이댄답시고 친척이나 친구를 외면했다 하면 그만 인간 꼴이 같잖게 되어버리고 원한을 사게 되기도 한다. 반대로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또 제 잘난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한편, 그 혜택을 본 사람은 고맙기도 하고 또 훗날도 생각하여 '고양이 앞에 쥐' 같이 되기 십상이다. 공권력을 가지고 사적인 시혜-수혜 관계가 형성되어 한 쪽에서는 뻐기고 다른 쪽에서는 쥐같이 되니 양쪽 모두 팔푼이 같다. 그런데 어느 정도의 자격자 가운데서 추첨으로 관직을 뽑거나 재판을 하는 데 있어 재판관을 무작위로, 그것도 '로비'가 미리 들어가지 않도록 당일 재판정 앞에서 추첨으로 선정하는 방식이라면 그와 같은 인간적 유대에 의한 부작용 및 기회의 불평등을 최소화하는 길이 될 것이다. 행운의 여신이 어느 쪽을 보고 미소를 지을지 모르는 상황이 되면 독선이 줄게 된다. 힘이 있어 잘났다고 뻐기는 사람도, 연줄을 찾아 잔머리를 굴리는 사람도 적어질 것이다. 그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모두 다 같이 한편으로 겸손해지고 또 한편으론 당당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