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아렌트의 정치], 권정우/하승우, 한티재, 2015, (151229)

바람과 술 2015. 12. 28. 05:04

추천사 - 한국사회의 폭력성을 비추는 거울 김상봉 

서문 - 아렌트, 수용소와 전체주의에서 탈출할 방법을 찾다


아렌트가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는 다섯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한국사회에서 정치는 항상 부정적인 것으로 묘사되고 이해되는데, 아렌트에 따르면 정치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아렌트는 권력도 부정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다. 아렌트는 권력과 폭력을 구분하면서 서로 자유롭게 만나는 사람들이 권력을 구성하고 사람들이 흩어지면 권력도 사라진다고 봤다. 즉 권력은 다수의 모여 있는 존재에서 생기고 이 권력은 특정 개인의 폭력을 막는다. 둘째, 아렌트의 사상은 지금 현재의 한국을 분석하는 데 도움을 준다. 셋째, 한국의 많은 정치인이나 시민들은 자신과 반대되는 입장을 다르다고 보지 않고 틀렸거나 악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런 입장을 '의견'으로 이해하지 않고 그 사람의 '의지'로 이해하기 때문에 사람을 통제하려고 한다. 넷째, 주권자 없는 정치는 불가능하다? 주권은 함께 결합한 다수의 사람들이 만든 것이고 그렇기에 집단으로 행사되는 권리이다. 나라를 세우고 주권을 확립하는 과정은 정치공동체를 세우고 자유의 공간을 만드는 중요한 과정이다. 다만 문제는 이렇게 혁명 과정에서 구성되는 주권이 혁명 이후에도 지속될 방법을 찾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주권을 반복해서 요구하고 주장하는 것보다 우리 삶에서 내 옆의 사람과 손을 잡고 정치를 활성화시키는 과정이 중요하다. 다섯째, 거짓말을 하는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나? 부패한 정부가 시민을 속이고 헌법을 파괴한다면, 현 권력에 대한 시민들의 암묵적 동의가 철회될 것이기에 나라를 바로 세우려는 시민불복종이야말로 헌법정신을 실현하는 과정이다. 결국 아렌트가 주장하는 정치는 '인간'과 다양한 인간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Ⅰ부 수용소와 공론장 

수용소와 무슬림 

수용소는 전체주의 권력이,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인간을 완전하게 지배하기 위한 장치였다. 전체주의는 이러한 인간들이 돌발적인 말과 행위를 통제하길 원했다. 그들은 사람들을 '전체'라는 단일한 틀 안에 가두고 싶어했다. 수용소는 '총체적 지배'를 위한 전체주의의 실험실이었고, 수용소에 갇힌 자들은 실험 대상이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근본적인 조건을 빼앗겨 버린다.  


인간에 대한 완전한 지배는 가능한가?


전체주의는 하나의 완결된 이론이라거나 세세하게 정의할 수 있는 체제가 아니라 전체주의 '운동'으로 생명력을 이어나갔다는 점에서 특이한 것이었다. 운동은 조직이나 공동체가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취하는 방식이다. 운동은 철저하게 그 과정 안에서 작동하며 목표를 이루는 순간 사라진다. 전체주의는 마치 절대로 멈추지 않을 것처럼 운동에 집착했고 운동의 영역을 넓히는 데에만 관심을 가졌다. 사람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전체주의운동의 에너지에 열광했다. 전체주의는 정권의 안정보다는 운동을 계속하는 것을 선택했다. 


수용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나? 

'위험한 생각'들에 대한 통제가 전체주의의 욕망이자 오늘날 우리의 욕망이기도 하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인간이 가진 가장 인간다운 조건인 다원성, 개성, 자발성은 인간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대에 아주 우연적인 장소에서 불현듯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완전히 지배하기 위해서는 다원성, 개성, 자발성이 발휘되는 것을 막아야만 했다. 이러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전체주의가 고안해낸 것이 수용소였다. 전체주의와 강제수용소가 추구하는 총체적 지배의 가장 중요한 골자는 '인간'의 조건, 근거, 형식을 완전히 지배(혹은 파괴)하는 것이다. 삶과 죽음의 근본적인 조건을 빼앗긴 수인들에게 마지막으로 행해진 것은 개성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시스템의 승이'가 아무 곳 어느 시간대에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수용소라는 실험실에서 자행된 완전한 지배에 대한 실험은 수용소 밖과 연결되어 있다. 특히 근대 정치는 우연적이고 불확실한 것들을 배제하고, 인간의 합리성을 끝까지 밀고 나갔다. 정치가 결국은 지배의 논리라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인간의 본질에 대한 해석은 지배하기 수월한 방법들을 마련하기 위한 지식-권력의 작용일 뿐이었다. 전체주의는 근대와의 단절이 아니라 근대가 낳은 최악의 이데올로기이자 장치이다. 인간에 대한 완전한 지배는 결국 인간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왜 인간은 제 발로 가스실에 들어갔나?


누가 아이히만인가? 

아렌트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없애고 흔히 인간성이라 불러온 인간다운 것, 인간적인 것들을 단절시키는 것을 근본적인 악, '절대악'이라고 보았다. 


INSIDE BOOK 『전체주의의 기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대중과 안전 

대중은 누구인가?


왜 대중은 통제되어야 하나? 

아렌트에게 공적인 것은 무엇이며 공통감각은 무엇인가? 아렌트에게 공적인 것은 '세계'이며 공통감각은 이 세계를 인지하는 감각이다. 두 번째로 공적인 것은 공동의 것을 의미한다. 아렌트는 서구 사상이 이러한 정치의 박탈을 오래 전부터 정당화해 왔다고 말한다. 정당화의 근원은 바로 '인간사의 취약성'으로 인한 무질서, 혼란이다. 모든 인간들에게 정치를 허락한다면 세계는 무질서해지고 혼란해질 것이라는 말이다. 아렌트는 그 취약성을 보완하려는 노력이 플라톤 이래 모든 정치철학들의 과제였고 그 해결책은 다름 아닌 '지배'였다고 말한다. 결국 모든 정치공동체가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이뤄진다는 생각은 인간의 말과 행위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며, 인간들의 정치 참여를 불안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대중에게는 먹고사는 문제가 정말 중요할까?


아렌트는 노동을 '노동하는 동물'의 활동이라고 말한 바 있다. 첫 번째는 노동이 동물적인 필요와 필연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필요하고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만을 추구하면 동물과 다를 바가 없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노동만을 반복하며 그 결과물인 여가 생활과 풍요로움만을 추구한다면 인간은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에 비해 '작업'은 인간 존재의 비자연적인 것과 상응하는 것이다. 즉 필연적으로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나 자연이 아닌,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인공적인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작업'은 작업인의 몫인데, 작업인의 제작은 자연적인 것을 인공의 것으로 만든다. 원래 있던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산물을 만들어내는 작업은 노동의 반복 활동과 달리 자기확신과 만족을 준다. 또한 작업에 의한 산물은 만든 이로부터 상대적인 독자성과 객관성을 부여받는다. '노동'은 세계를 잃어버렸지만, '작업'은 세계를 만드는 활동이다. 


왜 정치가 중요한가? 

아렌트는 오히려 용서의 매개물이 사랑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아렌트에 따르면 사랑은 세계를 잃어버리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 말은 용서가 무작정, 아무에게나, 어떤 죄에든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사랑은 한편으로 대상에 대해 맹목적이며 이유 역시 애매모호할 때가 많다. 그런 점에서 아렌트는 오히려 사랑보다는 존중이 용서의 매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존중은 일종의 정치적 우정이며 사람에게만 관계되는 인격적인 것이기에 인간이 행한 것을 용서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또한 존중은 일정한 거리감을 가진다. 나는 그를 존중하지만 그와 일체가 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존중받을 만한 자이기에 그를 인정할 수 있고 용서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뿐이다. 근대 사회계약론자들의 계약은 지배하는 자, 명령하는 자와 이루어진다. 반면 아렌트에게 약속은 자신을 지배하고 나아가 타인을 지배하는 데에만 의존하는 오래된 정치형식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었다. 약속은 지배에 의존하지 않는다. 약속을 한 이후에도 인간은 여전히 자유롭다. 약속은 타인이 자신을 지배할 수 있도록 사전에 이루어지는 계약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배를 받지 않겟다는 선언이다. 행위는 늘 예측이 통하지 않는 방법으로, 돌이킬 수 없는 잘못으로, 이 세계에 위해를 가한다. 그것은 인간의 행위가 지배당하지 않고 자유롭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대가이다.   


INSIDE BOOK 『인간의 조건』 

공론장과 자유 

자유란 무엇인가?


아렌트는 자유=안전의 논리에서 다시 자유를 안전에서 분리하는 데 관심을 쏟았다. 안전의 논리는 결국 공간을 분리하는 데 있다. 타인에 대한 불신을 기반으로 안전은 사람들 사이의 간격을 설정하고 확대한다. 안전만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타자와 교감하고 접촉할 수 있는 장소를 잃게 된다. 이렇게 타자와 만남의 장소가 상실되면 사람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공동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된다. 타자의 문제는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것이 되고, 안전은 결국 나 아닌 누구간의 자유를 빼앗는 결과로 이어진다. 문제는 안전을 위해 타인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 단지 나 아닌 다른 누군가의 상실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타자의 자유를 빼앗는 것을 묵인하는 것은 나의 자유 상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아렌트는 자유를 안전과 동일시하는 것, 내적인 안식처에 가둬두는 것에서 벗어나려면 몇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첫 번째, 자유에는 인간들 간의 만남의 장소, 물리적인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렌트는 이 점에서 자유와 해방을 구분한다. 이 말은 자유가 해방 이후에나 가능한 것이며 해방이 자유와 동일한 의미일 수 없다는 점을 뜻한다. 그리고 이미 해방된 자들에게는 자신과 평등한 타자들을 만날 수 있는 공통의 장소인 세계가 필요하며, 공통의 장소에서 인간은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므로 자유는 철저히 외부 세계와의 문제이며, 정치영역에서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고 아렌트는 강조한다. 자유는 정치라는 현상 없이는 드러나지 않는다. 두 번째, 자유롭게 되는 것과 행위한다는 것은 동일하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인간은 행위하는 동안만큼은 자유롭지만 인간의 행위를 촉발시키고 지시하는 힘은 자유가 아니다. 즉 인간은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행위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공동세계의 원칙이 그의 행위를 불러일으킨다. 세 번째, 자유는 기교로 나타난다. 이 말은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악기 연주와 같은 기교가 필요하고, 공동체는 마치 무대처럼 기교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함을 뜻한다. 네 번째, 자유는 주권·지배·명령이 없는 곳에서 가능하다. 아렌트는 현실에서 자유의 문제가 주권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자유와 자유의지가 동의어라면 자유는 인간의 내면에서 가능하는 것일 뿐이고, 자유는 자기위안이 될 뿐이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주권이 없는 상태에서만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다는 아렌트의 말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인민에게 주권이 있다는 것은 근대 정치의 절대원칙인 것 같지만 실상 인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루소가 말한 것처럼 대표자를 뽑는 날뿐이다. 나머지 모든 날들에서 우리는 주권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주권이 자유를 의미한다면 우리는 대부분의 날들을 자유 없는 상태로 지내고 있다. 아렌트는 주권은 결국 지배/명령의 관계만을 양산한다고 보았다. 아렌트는 현실의 비극은 주권과 자유를 동일하게 여기는 데서 온다고 보았다. 인간의 행위능력은 인간이 주권을 가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 주권이 없기에 가능하다. 주권이 없어도 자유는 가능하며 인간은 자유롭기 때문에 비주권적이라고 행위할 수 있다. 자유는 행위를 통해 인간이 얻게 되는 것이지, 선천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행위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문제는 주권이 없다면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는가, 즉 결정이 권위를 가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권력이 생성을 이야기하기 전에 공적 영역은 어디에 있는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사실 권력이라는 말은 구태의연하다. 권력을 가진다는 것은 폭력을 수반하고 지배한다는 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권력은 주권의 행사로 여겨지며, 이런 의미로 통용되는 순간 지배와 피지배 관계는 공고해진다. 아렌트는 여기서 권력의 의미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다. 권력은 서로 소통하는 이들이 동의할 때 생기는 힘이다. 말과 행위라는 인간들 사이의 교류가 권력을 만들어낸다. 아렌트는 또한 권력이 발생에 있어 유일하게 필수적인 요소는 복수의 인간이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이라고 밝히고 있다. 즉 인간들에게 행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을 때만 권력은 발생한다. 또한 아렌트는 사라질 인간들의 말과 행위를 지금 여기에 머물게 하며 유지하게 만드는 것도 권력이라고 보았다. 권력은 세계를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 주권 권력이 아니라 잠재적인 권력을 통해 지속성을 얻고 말과 행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공동세계는 정치적 인간이 머무르는 공론장이다.  


자유와 평등이 다를까?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의 언어를 쓰고 인간과 섞여 산다고 다 인간인 것은 아니다.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 무언가는 바로 '정치'이다. 정치적인 인간이 된다는 것은 제2의 탄생을 경험하는 것이며 자유를 경험하는 것이라고 아렌트는 말한다. 정치는 자유인 셈이다. 또한 정치적인 인간은 특정한 장소에서 존재한다. 정치적인 공간, 공적인 영역, 공론장이다. 공론장에서만이 인간은 정치적인 인간이며, 자유의 존재가 된다. 그 안에서 인간은 권력을 만들고, 권력을 행사하며, 말하고 행위하는 존재가 된다. 즉 공론장의 존재가 누가 인간인지를 판별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를 통해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문제는 인간이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 필멸의 존재하는 데 있다. 반면에 공적인 것, 공동의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불멸성을 인식하도록 만든다. 


왜 정치에서 용기가 중요한가? 

INSIDE BOOK 『전체주의의 기원』, 『인간의 조건』, 『과거와 미래 사이』 

II부 전체주의와 풀뿌리 

전체주의와 종북 

사실 전체주의는 독재와는 다른 말이다. 강력한 힘을 가진 독재자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독재라 불리지 전체주의라 불리지는 않는다. 전체주의는 특정한 상대와 경쟁하거나 다투는 예측가능한 정치체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전의 정치질서와 다르다. 더구나 전체주의는 다름 아닌 권력 자체를 없애려 한다는 점, 득 시민들이 공적인 장을 구성할 가능성 자체를 봉쇄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정치체제와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전체주의의 공포는 시민들이 발 딛고 있는 공통의 세계를 파괴하는 반 정치의 원리이다. 


어떤 상황이 전체주의를 불러오는가?


전체주의는 무엇을 파괴하나? 

왜 우리는 아직도 박정희에 갇혀 있나? 

우리는 전체주의의 조건에서 벗어났을까? 

INSIDE BOOK 『전체주의의 기원』, 『과거와 미래 사이』 

정치와 권력 

전체주의를 막을 힘은 민주적인 지도자를 뽑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정치력에 달려 있다. 


소크라테스는 왜 독배를 받았나?


플라톤과 달리 소크라테스에게 정치행위는 대화로 시작되고 대화 자체의 진리성보다 이런 대화로 맺어진 우정이 정치를 활성화시킨다. 대화는 단순히 내 생각을 드러내고 다른 이의 생각을 듣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 공감하고 타자를 인식하며 하나로 합쳐질 수 없는 이질성를 느끼고 본다. 


정치란 무엇인가? 

한국처럼 평등이 아니라 위계질서가 지배하고 신분과 재산의 경계선 넘어선 만남이 불가능한 사회에서 정치는 힘을 얻기 어렵다. 


왜 정치에서 권력이 중요한가?


한국 정치에도 가능성이 있나? 

INSIDE BOOK 『정치의 약속』, 『정신의 삶 1: 사유』 

혁명과 풀뿌리 

자유로서의 혁명은 왜 어려웠을까?


아렌트의 시선으로 본다면, 혁명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권력을 잡았는가 하는 것이 아니다. 혁명은 새로운 정치행위자가 계속 등장할 수 있는 정치의 기본틀을 만드는 과정이다. 아렌트의 시선으로 1960년 4월항쟁과 1987년 6월항쟁을 살핀다면,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이 지적될 수 있다. 첫째, 대안적인 정치세력이 구성될 수 없는 상태에서 공명선거와 직접선거를 외쳤다는 점이다. 두 번째 공통점은 개헌을 주도하는 세력이 철저히 기성 정치세력이었다는 점이다. 세 번째 공통점은 항쟁 과정에서 드러났던 정치행위자들이 이후에는 사라졌다는 점이다. 네 번째 공통점은 각 지역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잘 서술되지 않고 시간이 흐를스록 서울 중심성, 국가 중심성이 강화되었다. 결국 아렌트의 시선으로 본다면 한국사회의 다양한 사건들은 혁명이 되지 못하고 기성질서를 일부 고치고 연장시키는 수준에 머물렀다. 


고난과 슬픔의 정치는 가능한가? 

우리 시대에 정치를 부활시킬 방법은? 

INSIDE BOOK 『공화국의 위기』 

참고 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