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독자들에게
인간은 권력을 획득하는 데는 매우 능하지만 권력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그리 능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역사연대표
제1부 인지혁명
1.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
역사의 진로를 형성한 것은 세 개의 혁명이었다. 약 7만 년 전 일어난 인지혁명은 역사의 시작을 알렸다. 약 12,000년 전 발생한 농업혁명은 역사이 진전 속도를 빠르게 했다. 과학혁명이 시작한 것은 불과 5백 년 전이다. 이 혁명은 역사의 종말을 불러올지도 모르고 뭔가 완전히 다른 것을 새로이 시작하게 할지도 모른다. 같은 조상에게서 진화한 각기 다른 종들을 묶어서 '속(genus)'이라 부른다. 속이 먼저 나오고, 종은 그 뒤에 쓴다. 속의 상위에 있는 것이 '과(family)'다. 같은 과에 속하는 모든 동물은 동일한 선조의 후손이다. 호모 사피엔스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과에 속한다.
1만 년간 우리 종은 지구상의 유일한 인간 종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를 유일한 인류라고 생각하는 데 익숙해 있다. 하지만 '인간'이란 말의 진정한 의미는 '호모 속에 속하는 동물'이고, 호모 속에는 사피엔스 외에도 여타의 종이 많이 존재했다. 몇만 년 전의 지구에는 적어도 여섯 종의 인간이 살고 있었다. 여기에서 이상한 점은 옛날에 여러 종이 살아다는 사실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딱 한 종만 있다는 사실이다.
고인류는 뇌가 커지면서 두 가지 대가를 지불했다. 첫째, 식량을 찾아다니는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 둘째, 근육이 퇴화했다.
먹이사슬의 최정점으로 올라서는 핵심단계는 불을 길들인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불이 하는 최고의 역할은 음식을 익히는 일이다. 익히는 요리법 덕분에 인간은 더욱 다야한 종류의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식사 시간도 줄일 수 있었다.
2. 지식의 나무
과학적 연구 결과 뒷담화로 결속할 수 있는 집단의 '자연적' 규모는 약 150명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호모 사피엔스는 어떻게 해서 이 결정적 임계치를 넘어 마침내 수십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 수억 명을 지배하는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은 아마도 허구의 등장에 있었을 것이다.
3. 아담과 이브가 보낸 어느 날
4. 대홍수
제2부 농업혁명
5. 역사상 최대의 사기
대략 1만 년 전 달라졌다. 이때부터 사피엔스는 거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몇몇 동물과 식물 종의 삶을 조작하는 데 바치기 시작했다. 인간은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씨를 뿌리고 작물에 물을 대고 잡초를 뽑고 좋은 목초지로 양을 끌고 갔다. 이런 작업을 하면 더 많은 과일과 곡물과 고기를 얻게 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인간이 생활하는 방식의 혁명, 즉 농업혁명이었다. 농업혁명 덕분에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이 확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분의 식량이 곧 더 나은 식사와 더 많은 여유 시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집채렵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그것은 누구의 책임이었을까? 왕이나 사제, 상인은 아니었다. 범인은 한 줌의 식물 종, 밀과 쌀과 감자였다. 이들 식물이 호모사피엔스를 길들였지, 호모 사피엔스가 이들을 길들인 게 아니었다. 고대 유골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농업으로 이행하면서 디스크 탈출증, 관절염, 탈장 등 수많은 병이 생겨났다. 농경사회는 극히 최근까지도 대부분의 칼로리를 극소수의 작물을 통해 섭취했다. 밀은 인간 사이의 폭력에 대한 안전망을 제공하지도 않았다. 농촌 마을이 강력한 적의 위협을 당할 경우, 후퇴는 곧 목초지와 집, 곡물창고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많은 경우 이런 피난민들은 굶어 죽었다. 그러므로 농부들은 그 자리에서 버티면서 최후까지 싸우는 경향이 있었다. 많은 인류학자, 고고학적 연구는 부락이나 종족을 넘어서는 정치적 틀이 없는 단순 농경사회에서 사망의 15%가 인간의 폭력 탓임을 시사한다. 시간이 흐르고 도시, 왕국, 국가 등 보다 큰 사회적 틀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폭력은 통제받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크고 효율적인 정치체제를 구축하는 데는 수천 년이 걸렸다. 최초의 농부들은 마을에 사는 생활양식 덕분에 야생동물이나 비, 추위로부터 보호받는 등 어느 정도 혜택을 누렸다. 하지만 평범한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익보다 손해가 더 컸을 것이다. 기원전 13000년경, 사람들이 야생식물을 채취하고 야생동물을 사냥하면서 먹고살던 시기에 팔레스타인의 여리고 오아시스 주변 지역이 지탱할 수 있는 인구는 기껏해야 1백 명 정도의 건강하고 영양 상태가 비교적 좋은 방랑자들이었을 것이다. 기원전 8500년 야생식물이 밀에게 자리를 내어준 뒤, 이 오아시스에는 1천 명이 사는 마을이 생겼다. 마을은 크지만 집은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과거보다 많은 사람이 질병과 영양실조로 허덕였다. 어느 종이 성공적으로 진화했으냐의 여부는 굶주림이나 고통의 정도가 아니라 DNA 이중나선 복사본의 개수로 결정된다. 한 종의 진화적 성공은 그 DNA의 복사본 개수로 측정된다. 만일 한 종이 많은 DNA 복사본을 뿜낸다면 그것은 성공이며 그 종은 번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1천 벌의 복사본은 언제나 1백 벌보다 좋다. 농업혁명의 핵심이 이것이다.
역사의 몇 안 되는 철칙 가운데 하나는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수렵채집인들이 야생 및 채취에서 집약적인 밀 경작으로 전환한 목적은 정상적인 식량공급을 늘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원의 건설과 운영에 필요한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기존에 우리는 개척자들이 처음에 마을을 세우고 이것이 번영하면 그 중앙에 사원을 건설했을 껏이라고 보았지만, 괴베클리 테페가 시사하는 바는 그 반대다 . 먼저 사원이 세워지고 나중에 그 주위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6. 피라미드 건설하기
진화는 평등이 아니라 차이에 기반을 둔다.
자연의 질서는 안정된 질서다. 설령 사람들이 중력을 믿지 않는다 해도 내일부터 중력이 작용하지 않을 가능성은 없다. 이와 반대로 상상의 질서는 언제나 붕괴의 위험을 안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화에 기반하고 있고, 신화는 사람들이 신봉하지 않으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상상의 질서를 보호하려면 지속적이고 활발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이런 노력 중 일부는 폭력과 강요의 형태를 띤다. 하지만 상상의 질서는 폭력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다.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 일부 있어야 한다. 인간의 모든 집단행동 중에서 가장 조직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가 폭력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기독교나 민주주의, 자본주의 같은 상상의 질서를 믿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그 질서가 상상의 산물이라는 것을 결코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사람들을 철저히 교육시켜야 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조직화하는 질서가 자신들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만드는 주된 요인은 세 가지이다. ① 상상의 질서는 물질세계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다. ② 상상의 질서는 우리 욕망의 형태를 결정한다. ③ 상상의 질서는 상호 주관적이다.
7. 메모리 과부하
불행히도 인간의 뇌는 제국 규모의 데이터베이스를 저장하는 장치로서는 훌륭하지 않은데, 주된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용량이 부족하다. 둘째, 인간이 죽으면 뇌도 같이 죽는다. 셋째, 인간의 뇌는 특정한 유형의 정보만을 저장하고 처리하도록 적응했다. 하지만 농업혁명에 뒤이어 유달리 복잡한 사회가 등장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정보가 중요해졌다. 바로 숫자다. 이 정신적 한계는 인간 집단의 크기와 복잡성도 심각하게 제한했다. 특정 사회의 구성원과 재산의 양이 특정한 임계치를 넘어서면, 대량의 수학적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할 필요가 생겼다. 인간의 뇌는 그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시스템은 무너졌다. 농업혁명 이래 수천 년간 인간의 사회적 네트워크는 상대적으로 작고 단순한 상태로 머물러 있었다.
8. 역사에 정의는 없다
사회적 차별이 형성되는 데는 타고난 능력의 차이도 한몫하지만, 능력과 성격의 다양성은 보통 상상의 질서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첫째이자 가장 중요한 점은, 대부분의 재능에는 육성과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둘째, 다른 계층에 속한 사람들이 정확히 같은 능력을 개발했더라도 이들이 똑같이 성공할 가능성은 적다.
모든 사회는 상상의 위계질서를 기반으로 한다.
1958년 미시시피 대학교에 지원한 흑인 학생 클레넌 킹은 정신병원에 강제 수용되었는데, 판사가 미시시피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 흑인은 제정신이 아니라고 판결했기 때문이었다.
많은 법 체계는 강간을 재산권 침해로 다루었는데, 달리 말해 강간의 피해자는 강간당한 여성이 아니라 그 여성을 소유한 남성이란 뜻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법적 제재의 내용은 소유권 이전이었다.
근력을 강조하는 데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남자가 여자보다 강하다'는 진술은 평균적으로만, 그리고 특정한 종류의 힘에 대해서만 옳다. 게다가 이 이론의 가장 큰 문제는 역사를 통틀어 여자는 육체적 노력이 거의 필요 없는 직업(사제, 법률가, 정치인)에서 대체로 배제되어 왔으면서도 들일이나 수공예, 가사노동처럼 힘든 육체노동에 종사했다는 점이다. 만일 사회적 권력의 분할에 육체적 힘이나 지구력이 직접 관련되었다면 여자는 실제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었을 것이다. 이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인간의 경우 육체적 힘과 사회적 권력 사이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점이다.
또 다른 이론은 남성의 지배가 힘이 아니라 공격성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세 번째 유형의 생물학적 설명은 완력이나 폭력성은 덜 중요하게 보고, 대신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를 통해 남녀가 각기 다른 생존 및 번식 전략을 발전시켰다고 설명한다.
제3부 인류의 통합
9. 역사의 화살
농업혁명 이래 인간사회는 점점 더 규모가 크고 복잡해졌다. 그동안 그런 사회질서를 지탱하는 상상의 건축물 역시 더욱 정교해졌다. 그럼으로써 수백만 명이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게 해주는 인공적 본능을 창조했다. 이런 인공적 본능의 네트워크가 바로 '문화'다.
10. 돈의 향기
11. 제국의 비전
제국이란 정치질서는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을 지닌다. 첫째, 그런 명칭으로 불리려면 서로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지니고 서로 떨어진 지역에 살고 있는 상당히 많은 숫자의 서로 다른 민족이나 국민을 지배해야 한다. 둘째, 제국의 특징은 탄력적인 국경과 잠재적으로 무한한 식욕이다. 제국은 자신의 기본구조와 정체성을 변화시키지 않은 채 갈수록 더 많은 국가와 영토를 집어삼키고 소화할 수 있다. 두 가지 특징 덕분에 제국은 다양한 소수민족과 생태적 지역들을 하나의 정치 체제하에 묶어낼 수 있었고, 그럼으로써 인류와 지구에서 점점 더 큰 부분을 하나로 융합했다. 강조할 점은, 제국이 그 기원이라든가 정부 형태, 영토의 범위, 인구의 크기에 의해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문화적 다양성과 국경의 탄력성으로만 정의된다는 것이다. 크기 역시 실제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제국은 왜소할 수도 있다.
제국 자체가 의도적으로 아이디어와 제도, 관습과 규범을 퍼뜨린 일도 빈번했다. 하나의 이유는 그들 스스로가 편하기 위해서였다. 하나의 제국 내에 있는 작은 관할 구역들이 저마다 별개의 법과 서식과 언어와 화폐를 지니고 있으면 지배하기가 힘들다. 표준화는 황제에게 대단히 유용했다. 제국이 공통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전파한 이유로 첫 번째 못지않게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정통성을 얻기 위해서였다.
12. 종교의 법칙
오늘날 종교는 흔히 차별과 의견충돌과 분열의 근원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실상 종교는 돈과 제국 다음으로 강력하게 인류를 통일시키는 매개체다. 모든 사회 질서와 위계는 상상의 산물이기 때문에 모두 취약하게 마련이다. 사회가 크면 클수록 더욱 그렇다. 종교가 역사에서 맡은 핵심적 역할은 늘 이처럼 취약한 구조에 초월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있었다. 따라서 종교는 '초인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규범과 가치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일신론자들은 다신론자들에 비해 훨씬 더 광신적이었고, 전도에 헌신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 2천 년간 일신론자들은 모든 경쟁상대를 폭력으로 말살시킴으로써 자신들의 힘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다신교 내에서 애니미즘이 계속 살아남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일신교 내에서 다신교 역시 살아남았다. 기독교 성인들은 옛 다신교의 신과 단순히 닮기만 한 게 아니었다. 바로 그 신들이 변장한 경우도 흔했다.
다신교는 일신교만 낳은 것이 아니라 이신교도 낳았다. 이신교는 서로 반대되는 두 힘의 존재를, 즉 선과 악을 믿는다. 일신교와 달리 이신교에서 악은 독립적인 힘이다. 이신교는 이른바 악의 문제에 간명한 해답을 주기 때문에 매우 매력적인 세계관이다. 이신론자의 견해에는 나름의 단점이 있다. 악의 문제를 풀어주기는 하지만, 질서의 문제 앞에서 당황하게 된다. 만일 세상에 두 대립되는 힘인 선과 악이 있다면, 둘 사이의 싸움을 관장하는 법칙을 정한 존재는 누구인가? 요약하면, 일신론은 질서를 설명하지만 악 앞에서 쩔쩔맨다. 이신론은 악을 설명하지만 질서 앞에서 당황한다. 오늘날 우리가 '일신교'라고 부르는 것의 가장 기본적 사상 일부는 사실 그 기원이나 정신이 이신교적이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모순을 믿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사실 일신론은 역사에서 나타났듯이 일신론과 이신론, 다신론, 애니미즘 유산이 하나의 신성한 우산 밑에 뒤섞여 있는 만화경이다. 보통 기독교인은 일신론의 하느님만이 아니라 이신론적 악마, 다신론적 성자, 애니미즘적 유령을 모두 믿는다. 종교학자들은 이처럼 서로 다르고 심지어 상충하는 사상을 동시에 인정하는 행위와 각기 다른 원천에서 가져온 의례와 관례를 혼합하는 행위에 대한 명칭으로 '제설혼합주의'를 썼다. 실제로 제설혼합주의야말로 단 하나의 위대한 세계 종교일지 모른다.
우리가 논의한 모든 종교는 하나의 공통된 특징이 있다. 모두가 신을 비롯한 초자연적 실체에 대한 믿음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집착은 항상 불만을 낳는다.
우리는 세상의 신념들을 신 중심의 종교와 자연법칙을 기반으로 한다고 주장하는 신 없는 이데올로기의 두 종료로 나눌 수 있다. 유신론적 종교는 신에 대한 숭배에 초점을 맞춘다. 인본주의적 종교는 인간, 좀 더 정확하게는 호모 사피엔스를 숭배한다. 인본주의는 호모 사피엔스에게 특유의 신성한 성질이 있고 이 성질은 다른 모든 동물이나 다른 모든 현상의 성질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믿음이다. 인본주의자는 호모 사피엔스 고유의 성질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믿고, 그것이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의미를 결정한다고 믿는다. 모든 인본주의자는 인간성을 숭배하지만 그에 대한 정의는 각기 다르다. 기독교의 경쟁 분파들이 신의 정확한 정의를 두고 다투는 것처럼, 인본주의는 '인간성'의 정확한 정의를 두고 다투는 세 개의 경쟁 분파로 나뉘었다. 가장 중요한 인본주의 분파는 자유주의적 인본주의다. 이 사상은 '인간성'은 개별 인간의 속성이며 개인의 자유는 더할 나위 없이 신성하다고 믿는다. 자유주의자에 따르면, 인간성의 신성한 성질은 모두 개별 사피엔스의 내면에 갖춰져 있다. 개개인의 내면은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며, 모든 윤리적, 정치적 권위의 원천이 된다. 만일 우리가 윤리적, 정치적 딜레마와 마주친다면, 우리는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내면에서 울리는 목소리-인간성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자유주의적 인본주의의 주된 계명들은 이런 내면의 목소리가 지닌 자유를 침입이나 손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자유주의적 인본주의는 인간을 신성시하지만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사실 일신론적 신앙에 근거를 두고 있다. 개인의 자유롭고 신성한 본성에 대한 믿음은 자유롭고 영원한 개인의 영혼을 믿었던 전통 기독교에서 직접 물려받은 유산이다. 그런데 영원한 영혼과 창조주 하나님에 의지하지 않을 경우, 자유주의자로서 사피엔스 개개인이 뭐 그리 특별한지를 설명하기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어려워진다. 또 다른 중요한 분파는 사회주의적 인본주의다. 사회주의자들은 '인간성'이 개인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집단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이들이 신성하게 보는 것은 개별 인간의 내면의 목소리가 아니라 전체 호모 사피엔스 종이다. 사회주의자에 따른 불평등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최악의 모독이다. 인간의 보편적 본질이 아니라 주변적 속성에 특권을 부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적 인본주의는 자유주의적 인본주의와 마찬가지로 일신론적 토대 위에 건설되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사상은 모든 영혼이 하느님 앞에 평등하다는 일신론적 확신의 개정판이다. 전통적 일신론의 속박에서 벗어나 유일한 인본주의는 진화론적 인본주의로, 가장 유명한 예는 국가사회주의, 즉 나치다. 나치가 다른 인본주의 분파와 구별되는 점은 '인간성'에 대한 진화론에 깊이 감화된 좀 색다른 정의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나치는 다른 인본주의자들과 달리 인류를 보편적이고 영원한 무엇이 아니라 진화하거나 퇴화할 수 있는, 변화기 쉬운 종으로 보았다. 인간은 초인으로 진화할 수도, 인간 이하로 퇴화할 수도 있었다. 나치는 인간을 혐오하지 않았다. 나치가 자유주의적 인본주의, 인권, 공산주의와 싸운 것은 그들이 오히려 인간을 찬양하며 인류의 위대한 잠재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다윈의 진화론에 따라 자연선택이 작동하게 내버려두어서 능력 없는 자들을 도태시키고 가장 우수한 자들만 생존하고 번식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는 약자를 원조함으로써 적응하지 못한 개인의 생존을 허용할 뿐 아니라 번식할 기회를 주어 자연선택을 약화시켰다는 것이다.
13. 성공의 비결
역사는 이른바 '2단계' 카오스계다. 카오스계에는 두 종류가 있다. 1단계 카오스는 자신에 대한 예언에 반응을 하지 않는 카오스다. 가령 날씨는 1단계 카오스계다. 날씨는 무수히 많은 요인의 영향을 받지만,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요인을 고려하는 컴퓨터 모델을 만들어 점점 더 정확하게 예보할 수 있다. 2단계 카오스는 스스로에 대한 예측에 반응하는 카오스다. 그러므로 정확한 예측이 불간으하다. 시장이 그런 예다. 정치도 2단계 카오스계다.
역사가 인류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증거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그런 이익을 측정할 객관적 척도가 없기 때문이다.
제4부 과학혁명
14. 무지의 발견
현대 과학은 과거의 모든 전통 지식과 다음 세 가지 점에서 결정적으로 다르다. ① 무지를 기꺼이 인정하기. ② 관찰과 수학이 중심적 위치 차지. ③ 새 힘의 획득. 과학혁명은 지식혁명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무지의 혁명이었다. 과학혁명을 출범시킨 위대한 발견은 인류는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모른다는 발견이었다. 고대의 전통 지식은 오로지 두 종류의 무지만을 인정했다. 첫째, 한 개인이 뭔가 중요한 것에 대해 무지할 수는 있었다. 둘째, 하나의 전통 전체가 뭔가 중요치 않은 것에 대해 무지할 수는 있었다. 오늘날의 과학은 지식의 전통으로서는 독특하다.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집단적무지를 공개적으로 인정한다는 점이 그렇다. 또 다른 경우에는 끊임없이 나타나는 새로운 증거를 기반으로 서로 경쟁하는 과학이론들이 큰 소리로 논쟁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경우에는 이용 가능한 증거들이 특정 이론을 너무나 일관성 있게 지지하는 나머지 다른 대안들이 이미 오래전에다 밀려났다. 현대 과학은 무지를 기꺼이 받아들인 덕분에 기존의 어떤 전통지식보다 더 역동적이고 유연하며 탐구적이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선조 대부분이 대체할 필요가 없었던 심각한 문제를 하나 제기하기도 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하며 지금의 지식도 잠정적인 것이라는 가정은 우리가 공유하는 신화에까지, 즉 수백만 명의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협력하게 만들어주는 신화에까지 적용된다. 정치사회적 질서를 안정시키려는 현대의 모든 노력은 다음의 두 가지 비과학적 방법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① 하나의 과학이론을 택해서 통상의 과학적 관례와는 반대로 그것이 궁극적인 절대진리라고 선포하는 것. 이것은 나치당원과 공산주의자들이 사용한 방법이었다. ② 과학은 내버려두고 과학과 무관한 절대인리에 따라 사는 것. 이것은 자유주의적 인본주의 전략이었다.
15. 과학과 제국의 결혼
16. 자본주의 교리
자본주의는 '자본'을 단순한 '부'와 구별한다. 자본이란 생산에 투자되는 돈과 재화와 자원을 말한다. 반면에 부는 땅에 묻혀 있거나 비생산적 활동에 낭비된다.
17. 산업의 바퀴
대서양 노예무역이 아프리카인을 향한 증오의 결과가 아니었던 것처럼, 현대의 동물산업도 악의를 기반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그 연료는 무관심이다.
18. 끝없는 혁명
오늘날 지구상에는 70억 명이 넘는 사피엔스가 살고 있다. 이 모든 사람을 한데 모아 거대한 저울 위에 세운다면 그 무게는 약 3억 톤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가축화한 모든 농장 동물-암소, 돼지, 양, 닭-을 더욱 거대한 저울 위에 세운다면 그 무게는 약 7억 톤에 달할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현재 살아 있는 대형 야생동물-호저에서 펭귄, 코끼리에서 고래에 이르는-의 무게를 모두 합쳐도 1억 톤에 못 미친다.
중국의 명 제국은 백성들을 보갑제로 조직했다. 열 개의 가족이 하나의 '보'가 되었고 열 개의 보가 하나의 '갑'을 이루었다. 보의 구성원 한 명이 범죄를 저지르면 보의 다른 구성원, 특히 연장자들이 그를 처벌할 수 있었다. 세금도 보에 부과되었다. 개별 가정의 상황을 평가해서 각자 내야 할 세금의 액수를 결정하는 책임도 정부 관리가 아니라 보의 연장자에게 있었다. 제국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시스템에는 막대한 장점이 있었다. 제국은 수천 수만 명의 세무 공무원과 세금 징수원을 유지해서 개별 집안의 소득과 지출을 조사하는 대신, 이런 업무를 공동체의 연장자에게 맡기는 쪽을 택했다. 연장자들은 촌민들의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고 있었고, 제국의 군대를 개입시키지 않고도 보통 세금 납부를 강제할 수 있었다. 산업혁명은 시장에 막대한 새 힘을 주었고, 국가에는 새로운 통신 및 수송 수단을 제공했으며, 정부로 하여금 사무원과 교사, 경찰과 사회복지사의 군단을 쓸 수 있게 해주었다. 처음에 시장과 국가의 진로는 외부 개입을 꺼리는 전통적 가족과 공동체에 가로막혔다. 세월이 흐르면서 국가와 시장은 점점 커지는 권력을 이용해 가족과 공동체의 전통적 결속을 약화시켰다. 국가와 시장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접근했다. 낭만주의 문학은 곧잘 개인을 국가와 시장을 대상으로 투쟁하는 사람으로 묘사한다. 사실 이보다 진실에서 먼 이야기는 없다. 개인의 해방에는 대가가 따른다. 현대의 많은 사람이 강력한 가족과 공동체를 상실한 데 대해 슬퍼하며, 인간미가 없는 국가와 시장이 무리 삶에 미치는 영향력 때문에 소외되고 위협당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소외된 개인으로 구성된 국가와 시장은 강력한 가족과 공동체로 구성된 국가와 시장에 비해 그 구성원들에게 훨씬 더 쉽게 개입할 수 있다. 국가와 시장과 개인 간의 거래는 쉬운 일이 아니다. 국가와 시장은 서로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 의견이 다르며, 개인은 국가와 시장이 둘 다 너무 적게 주면서 너무 많인 요구한다고 불평한다. 많은 경우 개인은 시장에서 착취당한다.
상상의 공동체가 부상한 사례 중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국민과 소비 공동체이다. 국민은 국가가 만든 상상의 공동체다. 소비 공동체는 시장이 만든 상상의 공동체다.
19.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
주관적 느낌이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는 생각은 기독교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기적 유전자 이론에 따르면, 자연선택은 사람들로 하여금 유전자으 복제에 좋은 행동을 선택하게 만든다. 설사 그 선택이 개체로서의 자신에게는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고 해도 말이다. 사람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그렇다.
20.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
지금도 자연선택을 지석설계로 대체하는 일이 진행 중일 수 있다. 그 방법은 세 가지인데 첫째가 생명공학, 둘째가 사이보그 공학(사이보그는 유기물과 무기물을 하나로 결합시킨 존재다), 셋째가 비유기물공학이다.
생명공학은 생물학의 수준에서 인간이 계획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말한다(예컨대 유전자 이식). 인간이 신의 역할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반대론을 펴는 것은 독실한 일신론자들만이 아니다. 수많은 확고한 무신론자들도 과학자들이 자연의 역할을 대신하려 한다는 점에서 그에 못지 않은 충격을 받는다.
생명의 법칙을 바꿀 수 있는 또 다른 기술이 있다. 사이보그 공학이다. 사이보그는 생물과 무생물을 부분적으로 합친 존재로, 생체공학적 의수를 지닌 인간이 그런 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거의 모두가 생체공학적 존재다.
생명의 법칙을 바꾸는 제3의 방법은 완전히 무생물적 존재를 제작하는 것이다. 대표적 예는 독립적인 진화를 겪을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과 컴퓨터 바이러스다.
현대는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평등하다는 사실을 인정한 시대이며, 사람들은 이사실을 자랑스러워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역사상 유례없는 불평등을 창조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미래 기술의 진정한 잠재력은 호모 사피엔스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단순히 수송 수단과 무기만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과 욕망까지 말이다.
후기_ 신이 된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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