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제국의 탄생과 몰락], CCTV<제국의 흥망성쇠>, 김원동 편저, 퍼플카우, 2013, (160423)

바람과 술 2016. 4. 23. 23:09

들어가는 글_제국은 어떻게 탄생하고 몰락하는가 

1장 제국의 탄생 
 
1. 동양 역사상 최초 제국의 탄생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 진제국과 진 시황 


맹자의 대일통 사상과 황하를 둘러싼 문제의식 

최초로 중국이 통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은 유교의 아성 맹자였다. 그는 천하는 필히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제창했다. 천하가 하나가 되어야 비로소 평화를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때 맹자가 주창한 것이 '대일통' 사상으로, 대일통이라는 문구는 맹자로 인해 중국 역사책에 최초로 출현하게 된다. 맹자의 대일통 사상이라 함은 중국의 고대사회에 있어 종법의 근간이 된 것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여러 방면의 제도적 통일을 주장하는 사상이었다. 중화민족의 통일은 지리적 특성과 그로 인한 경제적 요구에 원인이 있다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배후에는 중화민족의 젖줄기로 중화 문명의 발상지이기도 한 황하가 천화 통일을 이룩하는 데 가장 큰 지리적 원인을 제공했다는 시각이 깔려 있다.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기 400여 년 전인 춘추시대에만 하더라도 중국의 영토에는 100여 개의 크고 작은 국가가 존재했다. 그렇게 여러 나라로 쪼개져 있는 실정이다 보니 물을 다스리는 통일된 치수 정책을 펼칠 수 없었기 때문에, 황하 유역의 국가들은 황하의 범람으로 인하여 매해 반복적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었다.  


2. 진나라 통일의 기초 

격동의 춘추전국시대를 마감하다


춘추오패는 제나라, 진나라, 진나라, 초나라, 오나라였다(오나라 대신 월나라를 포함시키는 견해도 있다). 기원전 453년 춘추오패의 강력한 패자로 위엄을 떨치던 진나라가 한, 위, 조 이렇게 세 나라로 분열된다. 이 분열된 해를 기점으로 학자들은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나눈다. 춘추시대에는 전국시대로 들어서면서 중국의 역사는 초, 연, 제, 조, 위, 한, 진의 이른바 '전국칠웅'의 시대가 된다.  

History Note ▶ 주나라 유왕과 포사 


제국 통일의 기초를 마련한 상앙의 변법


History Note ▶ 자신이 휘두른 칼날에 목을 베인 상앙 

3. 저물어가는 춘추전국시대 

소진의 합종과 장의의 연횡


원교근공의 전략으로 통일을 이룩하다


History Note ▶ 이사가 주도한 천하통일 작업 

4. 진제국의 몰락 

진제국의 통일과 지정학적 요인


진제국이 몰락의 길을 걷게 된 이유 

5. 민심을 거머쥔 유방의 등장 

반진봉기와 유방의 등장


유방, 관중을 평정하고 함양에 입성하다 

6. 초한전쟁과 한제국의 성립 

항우와 유방의 초한전쟁


History Note ▶ 반군의 실질적인 지도자 항우


유방, 두 번째 통일제국의 왕이 되다 

7. 유방이 만드는 새로운 제국의 역사 

인재를 활용할 줄 아는 유방의 리더십


History Note ▶ 평민 출신의 황제 유방


왕권강화가 절실했던 황제 유방


무엇이 제국의 흥망성쇠를 결정짓는가


진 시황과 한 고조 유방, 이 두 인물이 천하를 통일하고 제국을 탄생시킨 조건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흡사했다. 첫째, 치열한 전쟁을 통해 마침내 경쟁자들을 모두 물리치고 어렵게 천하를 통일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둘째, 행정제도를 개혁했다. 셋째, 즉위 내내 북방의 오랑캐 흉노와 전쟁을 벌였다. 넷째, 용인술에 있어 인재를 보는 안목과 적시적소에 배치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다섯째, 인성, 특히 사람을 다루는 데 필요한 인품을 가지고 있었다.     

2장 정치제도의 개혁 
 
1. 통일제국의 통치 방식 

유방은 왜 봉건제로의 회귀를 선택했는가


중국의 정치 역사에는 대표적인 두 가지 통치 방식이 대립을 이루며 등장하는데, 하나는 봉건제이고, 다른 하나는 군현제이다. 말하자면, 봉건제는 간접통치 방식이고, 군현제는 직접통치 방식이다. 봉건제는 제후들에게 영토를 분봉해주기 때문에 분봉제라고도 하며, 군현제는 중앙의 왕이 직접적인 통치권을 갖기 때문에 중앙집권제라고 한다. 


춘추전국시대의 발단이 된 봉건제


진 시황은 왜 군현제를 선택했는가


군현제를 둘러싼 논쟁과 분서갱유 

2. 중앙집권 강화의 여정 

봉건제와 군현제의 장점을 합친 군국제


토사구팽, 한신을 제거하다


History Note ▶ 한신은 누구인가


또 다른 이성왕, 팽월을 제거하다


회남왕 영포의 반역과 멸망


마왕퇴한묘에 감춰진 장사왕 오신의 비밀 

3. 평성지치를 낳은 흉노와의 전투 

한제국을 위협하는 또 다른 세력, 흉노


평성지치의 한제국, 드디어 흉노를 정벌하다 

4. 동성왕의 분봉 

조타의 교훈과 동성왕 분봉제


강력해진 동성 제후왕, 중앙을 위협하다


삭번정책으로 제후왕의 세력을 약화시키다 

5. 한제국의 위기, 오초칠국의 난 

오왕 유비와 오초칠국의 난


원앙의 복수와 조조의 죽음


중앙정부가 오초연합군을 진압하다


전한제국의 발전을 이끈 한 경제의 정치 개혁

3장 개혁의 원동력이 된 토지제도 
 
1. 세습을 타파한 진제국의 토지개혁 

진제국 통일 이전의 농업과 토지제도


권력과 부의 세습제를 타파하다


전공에 따라 토지를 수여하는 군공작위제도


작위제도를 통한 황제의 직접 통치 

2. 국력신장의 동력이 된 국가수전제 

흉노 선우에게 굴욕당하는 여태후


한제국 드디어 흉노를 무너뜨리다


토지사유화로 이어진 한제국의 국가수전제


한나라 초기 사회 상황과 토지제도의 관계


History Note ▶ 진 시황의 사검수자실전


문경지치, 농민들의 부에 대한 열망을 촉진하다 

3. 관리의 부패가 낳은 불안의 씨앗 

사마천의 경제철학


History Note ▶ 부와 관련된 사마천의 일화


매관매직의 역사 무엇이 문제인가 

제국의 자금 운용은 매우 영리했는데, 즉 군대의 경우에는 돈을 주되 권한과 지위를 주지 않았고 관원의 경우에는 반대로 아낌없이 권한과 지위를 주되 돈을 주지는 않았다. 


4. 문경지치, 제국의 번영 

마왕퇴한묘를 통해 본 한제국의 생활상


진한제국의 번영과 자유경제의 추진 

4장 상업제도와 재정정책 
 
1. 온난한 기후와 상업의 활성화 

흉노와의 전쟁, 무리한 대외원정의 후유증


History Note ▶ 반고의 《한서》


국가에 재산을 기부하길 거부한 부자들


상업으로 부자가 된 큰손들의 등장 

2. 한 무제의 상공업 정책 

전한제국 초기의 도시와 상공업


한대의 상인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도시의 시장에 점포를 열고 판매에 종사하는 부류이고, 둘째는 외지와 무역을 하는 상인이다. 이들은 시적이라 불리는 상인들만이 등재되는 호적에 이름을 오르는 한편, 시조라 하여 정기적으로 상업세를 납부했다. 한제국 때는 상인에 대한 신분적 차별과 억압이 다방면으로 시행되었는데 당시 중앙정부는 대다수의 일반 백성, 즉 소농민이 생업인 농업을 버리고 상업에 투신한다면 자칫 국가 기반이 흔들릴 수도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소농민들에게는 전쟁이 발발하면 군인이 되어 군역에 종사해야 하는 권리와 의무도 부여되었기 때문에 소농민들이 모두 농사를 포기하고 상인으로 나선다면 중앙정부로서도 매우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일찍이 전국시대 때부터 법가나 유가에서도 줄기차게 중농억상정책이 주장되어왔던 것이다. 


자유경제의 절정, 그리고 숨겨진 그늘 

3. 상인을 견제한 신재정정책 

제염 및 제철사업 중심의 신재정정책 시행


거대해진 상인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균수평준법


상인세력이 한 무제가 황제로 등극한 후 상홍양을 기용하여 시행한 많은 정책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특히 한 무제의 '이출일공', 즉 '이익과 녹봉, 상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농사를 짓고 전장에 나가는 것'뿐이라는 정책에 대하여 매우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상인들이 보기에 한 무제의 이러한 정책은 모든 경제활동을 국가권력에 집중시키려는 일종의 핑계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새로운 세금 개혁안 발표 및 시행 

4. 호족의 위상을 높인 염철회의 

한 소제의 즉위와 염철전매정책에 대한 비판


염철회의를 둘러싼 정책 논쟁과 권력의 역학구조 

5. 지방호족의 출현 

대토지 소유제의 양산과 부의 쏠림 현상


한 무제 때 상인들의 활동을 제한하는 균수평준법을 시행하여 한시적으로나마 민간자본이 상업에 재투자되는 환경을 억제하기는 했다. 그러나 자본이란 이윤이 몰리는 곳으로 이동하는 특성이 있다보니, 상인들의 돈은 정부 규제로 발전하기 어려워진 상업에서 비교적 안정적이고 이윤이 좋은 토지 투자 쪽으로 대거 옮겨가게 되었다. 정부의 오판으로 야기된 자본쏠림 현상은 토지를 단번에 가장 가치 있는 투자상품으로 둔갑시켰다. 그리고 토지 투기 열풍은 대토지 소유제를 가속화하여 대토지 소유자를 여럿 양산하게 되었고, 급기야 전한제국 중기 이후에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대규모 토지 불법 병합 병폐를 야기했다. 


정부의 지방호족 견제, 의종의 백색테러 

6. 대토지 소유의 폐해 

국가의 멸망으로 이어진 대토지 소유제


대토지 소유제는 후에 두 가지 결과를 낳는다. 첫째는 지방호족들의 대토지 소유 확장 및 소농민에 대한 영향력 확대에 따라 상대적으로 중앙집권적인 국가의 지배력이 약화되었고, 이로 인해 후한제국 말기의 지방군벌 난립을 야기했다. 둘째는 대다수의 소농민이 토지를 잃고 빈민으로 전락함에 따라 황건적의 난과 같은 대규모 농민반란을 유발시켜 종국에는 전한과 후한 모두를 멸망으로 이끌었다. 


정책의 실패가 낳은 뼈아픈 결과 

5장 제국의 몰락 
 
1. 전한제국 몰락의 징조 

정부 관리들의 토지 축적과 만연한 부패


호걸세력의 창궐, 협객 원섭


백성들이 도탄에 빠진 일곱 가지 이유 


History Note ▶ 애제와 동현의 금지된 사랑 

2. 왕망의 등장 

외척 왕씨의 대두


왕망, 드디어 벼슬길에 오르다


왕망, 성인군자로 이름을 떨치다 

3. 기울어가는 황실, 드러나는 왕망의 야심 

왕망의 하야와 재임


안한공 왕망, 야욕을 드러내다


전국의 백성들이 왕망의 섭정을 청원하다


왕망의 그칠 줄 모르는 권력욕


한 역사상 유일한 섭황제


왕망, 드디어 제위에 오르다


History Note ▶ 전국새 이야기 

4. 왕망의 이상주의적 개혁 

신제국 왕망의 새로운 토지개혁


왕망의 이상주의적 토지개혁


농민반란과 제국 몰락의 불씨


왕망 정권의 외교정책, 흉노 정벌 

5. 왕망의 몰락 

나라를 훔친 도덕군자 왕망의 최후


왕망의 이상주의적 개혁에 대한 평가


전한제국의 개혁이 갖고 있던 양면의 칼날 

■ 진한사 주요 연표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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