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의 말
젠킨스는 먼저 역사와 과거를 구분하라고 지적한다. 역사란 항상 단수가 아니라 복수이다. 즉 이를 통해 역사가 얼마나 과거와 상관없이 외부적인 강요와 압력에 의해서 쓰여져 왔는지를 검토할 것을 강조한다.
감사의 글
니체가 가장 명료히 인식했듯이 모든 학문에는 연구자가 반드시 준수해야 할 금기가 있는 듯하다. 이는 모든 학문이 사고와 상상에 대한 일련의 규제를 껴안고 있다는 말이다.
001. 서문
담론이란 용어는, 역사에 관한 사람들의 생각은 서로 다른 이해 또는 권력과 관계되어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곧 각자의 담론에 대해 (통제) 권력을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를 '힘의 마당'으로 이해해야 한다.
'역사연구'라는 것이 과거와 현재를 읽고 이해하는 방식과 관계되어 있다고 할 경우, 이 때 주로 '읽기'와 의미 형성에 관심을 가지는 담론들을 이용하는 것이 내게 중요해 보이기 때문이다. 역사가 간단하고 아주 명료한 것인 양 생각하는 태도를 과감히 버리고, 나아가 오로지 가시적인 연구대상인 '과거'를 다룬다는 점에서만 공통점을 갖는 다양한 역사유형의 복수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내 생각이 반드시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까지 '나'를 생산해 낸 시대가, 혹은 한 권의 책을 저술하듯 '나를 기술한' 시대가 마찬가지로 여러분을 저술해 왔고 이후에도 계속 여러분을 저술해 나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우리는 지금 포스트모던 세계에 살고 있다.
002. 역사란 무엇인가
이론
역사란 세계를 해석하는 여러 담론 가운데 단지 하나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과거'와 '역사'는 다른 것이며, 따라서 서로 동일시될 수 없다. 과거와 역사는 둘 다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며 시간상으로나 거리상으로나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어쨌든 과거는 사라지고 없다. 그리고 역사는 역사가의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과거에 대한 일종의 구성물이다. 즉 역사는 역사가 또는 역사가인 양 자처하는 사람들의 수고의 산물이다. 역사(역사서술)란 텍스트들 간의 상호관계를 통해 만들어진 언어적 구성물이다.
만일 '영국의 과거에 관한 엘턴의 읽기'가 선행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여러분의 '읽기'가 가능했겠는가?
우리가 대상 세계를 하나의 텍스트로 읽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이며, 결국 이러한 읽기는 끝이 없다. 이 결합작업, 즉 역사가가 과거를 어떻게 인식하려 하는가의 문제는 곧 역사란 무엇이고 또 역사는 무엇일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에 내포된 '역사의 가능성'을 결정하는 데 대단히 중요하다. 대개의 역사가는 자신이 일종의 허구를 만들어 내는 작가라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과 의미가 통한다.
사실과 가치를 구분함으로써 가능한데, 실제로는 아주 많은 역사가 공존해 왔다. 강조해야 할 것은 그것이 역사가 갖는 인식론 측면의 허약성과 관계가 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과거 사건들의 '내용'은 실제로 무한하기 때문이다. 과거는 단 하나의 기록이라기보다는 그 자체가 여러 가지 사건들과 상황들이기 때문이다.
(과거는) 역사가 자신이 과거에 관해 던진 질문 유형에 스스로 답변한 대답들의 집합이다. "보라, 과거가 나의 해석을 존경하는도다!" 지금까지 살펴본 인식론적 허약한 이유 세 가지는 모두 역사란 과거보다 그 범주가 작으며 역사가는 단지 과거의 관련들만 복구할 수 있을 뿐이라는 생각에 근거한 것이다.
당연히 각각의 방법은 모두 엄밀성을 갖추고 내적으로 논리적 일관성을 갖고 있지만, 그것은 그저 자기 암시일 뿐이다.
역사가는 특정한 사회구성들에 의해 특정한 입장을 전달해 줄 것을 요망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역사란 사람들이 부분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창조해 내는 방식이다.
실천
역사의 정의
003. 역사담론의 기본 문제들
○ 진실은 역사담론 안에서 어떤 위상을 가지는가? ○ 객관적 역사란 실제로 존재하는가(객관적 '사실'이란 실제로 존재하는가)? 만일 이것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역사는 고작 해석에 불과한 것인가?
진실
존재이유가 사라져 버린 후에도 지속적으로 남아 있는 습관적 훈계들을 우리는 그저 '상식'으로 이해한다. 진실은 결코 현상 세계에 접근할 수 없는 언어의 자기암시적인 얼굴이다. 다시 말해 말과 세계, 곧 말과 대상은 여전히 분리된 채로 남아 있다.
푸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명확하다. 바로 개념정의의 자의성이다.
미국의 실증주의자 리챠드 로티는 이 '단절'을 강조하면서, 약 200여 년 유럽인은 진실이란 결코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깨닫고 있었다고 논평했다.
푸코는 <권력과 의지>에서 바로 이점을 강조한다. 진실이란 권력과 무관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 진실은 오로지 다양한 형태의 구속에 의해 생산된다.
역사는 하나의 담론, 즉 언어게임이다. 이 진실과 물질적 이해들을 기능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바로 무질서(무질서한 사람들)에 대한 공포이다. 보다 노골적으로 말한다면 부자유한 사람들이 얻게 될 자유에 대한 공포이다.
사실과 해석
역사가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한 설명 안에서 사실들이 차지하는 각각의 비중, 위치, 결합, 의미작용의 문제이다. 과거에 대하여 하나, 오로지 하나의 가치평가만을 강요할 수 없다는 점을 주장하고 싶다. 다시 말해 소위 중심이라는 개념은 단지 틀에 박힌 관행적 해석의 결과물일 뿐이다. 즉 한 스펙트럼에서 단지 하나의 중심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위하지 않는 역사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항상 기억하라.
편견
실증주의는 자신의 상대적인 성공뿐만 아니라 자신의 실패도 보편화시킨다.
감정이입
결국 '모든 역사는 과거 사람들의 마음의 역사'가 아니라 '역사가의 마음의 역사'인 것이다.
1·2차 자료와 증거
말로써 표명되는 담론보다 앞서서 존재하는 증거란 없기 때문이다. 단지 존재하는 것은 흔적, 즉 과거뿐이다.
개념쌍 : 인과론 등등
역사 : 과학인가 예술인가?
결론
나는 도덕적 상대주의와 인식론적 회의주의라는 것을 다름에 대한 사회적 관용과 적극적인 인정으로 이해한다. 즉 반성을 통한 적극적인 회의주의이다.
004. 포스트모던 세계의 역사연구
리오따르가 표현했듯이, "근대성은 확률 높은 우연성을 받아들이고 순간의 연속을 만들어 내는 방식 … 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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