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남양도호부의 시간을 거닐다], 양정석, 화성시, 2017, (180323).

바람과 술 2018. 3. 23. 00:36

프롤로그 : 남양도호부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


풍수론에서 양이라는 지명은 주로 산의 남쪽이나 물의 북쪽에 마을이 만들어졌을 때 사용된다고 한다. 


1장 남양도호부의 자취


첫번째 이야기, 내아, 가마니 창고 그리고 풍화당


사람의 나이가 70이 되면 기라고 하고, 80이 되면 노라고 하였다. 이렇게 연로한 사람을 일컫는 기로라는 말에 장소를 뜻하는 소가 하나로 합하여 만들어진 용어인 기로소는 조선시대 연로한 고위 문신들의 친목 및 예우를 위해 설치한 관서로 잘 알려져 있다. 신하로서 이 기로소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임직이나 무관이 아닌 문과출신의 문신으로 정이품의 실직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으로 나이가 70세 이상이 되어야 하였다. 그만큼 조건이 까다로워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700여 명만이 기로소에 적을 둘 수 있었다. 왕의 경우에는 태조, 숙종, 영조, 고종 이렇게 4명만이 기로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두번째 이야기, 언제부터 남양도호부라 불렀을까?


세번째 이야기, 읍지를 통해 본 남양도호부의 모습


네번째 이야기, 옮겨진 향교, 변화된 남양도호부


2장 남양더호부의 사람들


첫번째 이야기, 남양도호부의 부사들


두번째 이야기, 남양부사를 자원한 정도전


세번째 이야기, '명불허전, 허임' 남양도호부사가 되다


네번째 이야기, 병자호란의 또 다른 영웅 윤계


다섯번째 이야기, 남양도호부의 사람들


제강량의 19대손 제강공순이 신라로 귀화하여 제갈씨의 시조가 되고 그 후손들 중 일부가 고려 고종 때 남양을 본관으로 하는 남양 갈씨가 되었다. 


여섯번째 이야기, 도호부의 그림자 병인박해와 성모성지


3장 남양도호부를 다시 그리다


첫번째 이야기, 유적을 통해 본 남양도호부와 그 주변


현재 남양지역으로 옮겨오기 전까지 이 지역의 중심지는 당성이었다고 한다. 현재 당성은 신라가 대중국 통로를 확보하기 위하여 점령한 당항성으로 비정되는 중요한 유적이다. 따라서 당성지역의 획득은 이 지역의 신라 영역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두번째 이야기, 남양도호부 읍치의 범위


세번째 이야기, 남양도호부 관아의 재구성


네번째 이야기, 지적도에서 확인된 남양도호부의 자취


에필로그, 남양도호부의 옛 영화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