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모던 경성의 시각문화와 일상], 한국미술연구소, 한국미술연구소, 2018, (181224).

바람과 술 2018. 12. 24. 04:59

책을 펴내며

연구논문

개화기 경성의 신문물과 하이칼라 이미지 | 홍선표

'문명'의 상징에서 '유행'의 표현으로, 광고로 만나는 경성의 의생활 | 김지혜

복제 이미지 속 일제 말기 경성인의 의생활 | 조유경

세련된 근대식 옷차림을 하고 미모의 재덕을 갖춘 신여성의 정체성에는 점차 허영으로 가득찬 여성, 개인의 욕망을 추구하는 자유주의적인 여성이라는 기호가 확산되었다. 이에 근대 문물을 일찍 수용하여 서양식 의복 차림을 한 여성들은 소비를 일삼는 사치의 행위자이자 유행만을 좇는 이로 매도되기에 이른다. 192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이러한 현상은 실직과 경제적 궁핌을 겪던 지식인 남성의 불만과 증오가 경제력 있는 소비가 가능했던 여성에게 향하면서 생겨난 현상이었다. 


일제는 의생활의 사치를 비판하고 검박한 차림을 갖출 것을 요구하는 데 이어 더욱 구체적인 의복 규제를 위해 1940년에 '국민복령'을 공포했다. 몸빼가 아닌 바지는 '미영적'이라는 이유로 허용하지 않고, 몸뻬에 '일본정신의 상징'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여성들이 입도록 요구했다. 1941년에는 몸뻬를 여성의 복장으로 자연스럽게 정착시키고자 여학교, 전문학교의 여학생 교복을 몸뻬로 정했으며 1942년에는 '부인 표준복'을 제정하며 일반 여성들에게 '간단복'과 '몸뻬'를 착용할 것을 강조했다. 몸뻬의 도입 초기에는 방공 연습할 때 입는 비상복으로서 권장되었다. 몸뻬는 애국반원을 중심으로 착용이 시작되어 점차 일반 여성들에게 확산되었다. 애국반 활동이 강화되면서 방공훈련과 같은 때에 활동성이 있는 복장인 몸뻬의 착용이 필요해짐에 따라서 몸뻬 착용이 공식적으로 강제되기 시작했다. 


의복 통일의 대상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위의 기사에서는 '전시체제 하의 국민'들에게 '절약과 근검을 요구'하기 위해 의복의 '개조 통일을 단행'한다고 밟혔다. 또한 국민복은 "최소한의 가공으로 바로 군복이 되고 그것을 착용하여 소집에 응할 수 있도록"하기 위한 옷이었다. 학생 복장의 경우에는 1938년에 학생들의 교복을 통일시키기 위해 구체안을 만들며 조선식의 교복은 양복의 형식으로 바꾸게 했다. 1939년에는 중등학생, 전문학교생, 대학생의 교복 자체를 통일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자 교복의 색을 국방색으로 하도록 했다. 이와 같이 국민복은 관공서의 직원들과 학생들의 교복으로서 착용의 강제가 시작되었으나 1940년대부터는 그 대상을 일반 경성부민 전체에게로 확대하고자 했다. 일제는 '국민복'을 식민지 민중에게 입혀 '국민의 제복'으로 만들고자 했고, 조선 민중을 '국민'으로 포섭하고자 했다. 복장을 통일시키는 것은 균일화, 단순화, 몰개성화를 통해 전통적으로 중시해왔던 친족 공동체주의에서부터 확대시켜 국가적 공동체 단위로 집단 정체성을 형성시키고, 국민적 공통 행동을 형성하려 한 것이다. 이렇듯 일제 말기의 경성인의 의복은 정치화되는 존재로서 국민들의 옷차림은 복장의 정치로 인해 규정되고 강제되었고, 국민의 복장은 국가의 욕망이 투사되는 대상이 되었다. 


194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 일제가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져감에 따라 국민을 전쟁에 동원하려는 선전은 노골화되었고 군수공장에서 일하는 여성의 도상이 인쇄매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1943년 >매일신보>에는 '싸우는 나라의 여성들'이라는 제목 하에 전쟁 중인 여러 국가의 여성들이 군수 공장에서 노동하는 이미지를 소개했다. 남성 노동자가 입는 작업복을 입은 채 남성의 빈자리를 대신하여 노동하는 여성의 이미지는 당시 경성인에게 생경했을 것이나. 먼저 해외의 사례를 소개하며 경성에도 이러한 여성의 활동을 정착시키기 위한 의도였다. 이러한 이미지는 인쇄매체를 통해 배포됨으로써 지속적인 노출을 통해 경성인의 각성을 유도하기 위해 생산되었다. 당시 식민 정부는 전쟁이라는 시국 인식과 후방의 활동에 경성인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 전국으로 유포되는 인쇄매체 지면상에서 간소한 복장의 합리성에 대한 논의를 지속적으로 전개하며 선전했다. 국책에 호응하는 의생활을 해야만 자랑스러운 국민이라 호명했고, 이를 따르지 않는 자는 일제와 대적 중인 나라인 미·영과 같은 자유주의적인 인물이라 비난하거나 또는 '전쟁하는 나라의 국민'답지 않은 '부끄러운 인간상'이라는 정체성을 투입시켰다. 일제 말기 경성인의 실체는 식민 권력의 요구에 부응하지 않으면 '경멸을 받게'되는 이질적인 존재로서 유폐되는 존재였던 것이다. 1940년대의 경성인은 사회의 권력이 일방적으로 모범을 규정하여 제작한 의생활을 지켜야했다.  


만화《멍텅구리》로 본 근대 도시 경성의 식생활 | 정희정

한국 근대기 전시주택의 출품 배경과 표상 | 이성례

자료와 해설

Ⅰ. 의생활로 본 경성

패션 시대의 도래

모던 유행 스타일

Ⅱ. 식생활로 본 경성

대발견, 신식품과 영양

미각의 꽃다발

Ⅲ. 주생활로 본 경성

다양한 주거 공간, 신주택

문화인의 거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