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행복하다

[도련님의 시대 : 나쓰메 소세키 편], 다니구치 지로 그림, 오주원 역, 세미콜론, 2014, (210706)

바람과 술 2021. 7. 6. 18:35

소세키 선생 맥주에 취하셨을 때의 행색에 대해 - 9

 

소세키는 신경증말고도 주사가 있었다. ··· 일본의 불안한 시대가 막을 올렸다. ··· 메이지 38년 11월, 소세키 <도련님>을 구상하고 그 단서를 얻다. 

 

도련님에 대한 소세키의 초기 구상 - 33

 

메이지 37년 6월 혼고구 센다기의 소세키 저택에 고양히  한 마리가 들어왔다. ··· 런던에서 앓게 된 신경증이 더욱 심해져 소세키는 당시 심리가 극도로 불안한 상태였다. 

 

소설은 말이야. 체넘했던 일에 거창하게 미련을 부리거나, 머리로 뀌는 방귀 같은 거야. 

 

소세키는 다른 사람과 시선을 맞추는 걸 두려워했다. 소세키는 타인이 자신을 감시하고 훔쳐보고 있다는 망상가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런던 유학시절 이후 '창문'을 두려워했다. 커튼 너머에 있는 누군가가 자신을 훔쳐보고 있다고 믿었다. 일본의 개방적인 가옥에서도 소세키는 창문을 싫어하고 툇마무를 좋아했다. 

 

술버릇이 고약한 소세키에게 소설을 쓰는 것은 강박신경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당시 연재하고 있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는 딱히 정해진 줄거리가 없었다. 그것이 그야말로 지적인 병자의 자기관찰일기이며 치료일기이기도 했다. 

 

소세키의 병은 근대사회에서 비로소 자아에 눈뜨게 된 일본인의 고민, 또는 서구를 증오하면서도 서구를 배워야 했던 일본지식인의 딜레마와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었다. 

 

메이지 38년 가을의 일본 - 53

 

영문학자 소세키는 서구를 싫어했다.

 

거울에 비친 소세키 - 73

 

사라지는 건 어차피 가을 모기처럼 사라지죠. <도련님>이 화를 낼 만한 건 따로 있지 않을까요?

 

메이지의 군상 - 93

 

메이지 38년 <고양이>의 성립

 

소세키의 신경증은 당초 좀처럼 낫지 않았다. 소세키는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다면 난 평생 영국 땅에 한 발짝도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라고 깨알 같은 글씨로 <문학론>을 위한 노트에 기입한 적이 있으며, 이미 자신의 신경을 강박해온 문화가 낳은 문학을 학생에게 강의하는 의의를 잃어버렸지만 가계를 지탱하기 위해선 달리 방도가 없었다. ··· 그의 신경증이 구체적으로 발현된 것은 감시공포증이었다. 그 뿌리는 청소년기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병증으로까지 발전된 것은 명백히 영국에서의 체험 때문이었다. 영국에서 그는 항상 자신이 감시 당하고 있다는 불안을 안고 있었다. ··· 메이지 37년, ··· 그 해 러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연달아 들어오던 전황보고는 소세키의 정신을 활성화시킨 요인 중 하나이기도 했다. 당시의 지식인은 일본의 국권확대를 자아의 확대와 겹쳐보는 경향이 있었고, 러시아라는 유럽문화의 한 축에 대항하여 일본군이 러시아 군을 격파했을 때, 그들은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고양감에 휩싸였다. 소세키는 이 기회를 틈 타 정신 치료를 위해 소설을 썼다. 당시 상식으로 보자면 소설이라기 부르기 어려울 만큼 너무나도 참신한 스타일이었고, 당시 큰 조류로 부상했던 자연주의문학과는 전혀 무관한 작품이었다. 소세키에게 문학적인 야심은 없었고 그저 자신의 정신 해방과 위안이 목적이었기에, 이것은 매우 당연한 결과였다. ··· 서구와의 갈등, 가장으로서의 속박, 이 신구의 압력과 질곡이 양쪽에서 소세키를 괴롭혔는데,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강한 희망이 소세키가 소설을 창작하는 데 근원적인 동기가 되었다. 


마돈나와 기여 - 119

 

여기에도 또 한 사람 서양을 배우면서도 서양에 거리를 두는 지식인이 있다. 나만 적응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고립된 것이 아니다. 

 

풍소소 묵수한 - 139

 

역사는 때로 극적인 연출을 좋아한다. 그 날 오후 신바시 역 중앙과장의 지붕 밑에 다수의 역사적인 인물들이 본인들은 알지 못한 채 한자리 모여 있었다. 소세키가 부딪힌 인물은 안중근이라는 조선인으로 몇 년 후에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의사다. 또 소세키의 책을 주워준 젊은 육군 소위의 이름은 도조 히데키라고 했다. 메이지 38년 섣달 그름의 혼잡 속이었다. 

 

또 한 사람의 ‘도련님’ - 159

 

소세키뿐만 아니라 메이지 지식인들에게 아시아는 돌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들은 서구를 규범으로 삼은 근대화의 파란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요동치는 자아의 확보에 매달렸다.  

 

춘풍일진 - 179

 

소설가 소세키의 탄생 - 199

 

메이지 39년의 벚꽃 - 221

<도련님>은 고작 열하루 만에 쓰였다. ···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청년들인 이미 근대를 질주하는 일본사회의 주름에 흩어져서 스며들었다. 

 

메이지 38년 고양이의 성립 - 113

 

우리들은 어떻게 『도련님의 시대』를 만들게 되었나 - 245

 

참고문헌일람 - 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