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행복하다

[도련님의 시대 : 무희 편], 다니구치 지로 그림, 오주원 역, 세미콜론, 2014, (210706)

바람과 술 2021. 7. 7. 10:20

제1장 인도양에서 눈을 감다

 

그는 자신이 한 일이 실패였다고, 아니 인생 자체가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묘하게 맑아져만 갔고 그 생애를 애처롭게 관통했던 불쾌감은 사라지고 있었다. ··· 그가 마지막에 쓴 글은 비통하게도 '가족 해산' 선언이었다.

 

오가이는 후에 오랜 친구의 죽음에 대하여 이렇게 썼다. "하세가와 다쓰노스케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는 일은 없었다." 

 

제2장 1888년 9월, 오가이 귀국

 

오가이는 이때서야 일본에 돌아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 땅에선 개인이 아닌 '가문' 그 자체가 사람대접을 받는다. 

 

제3장 독일 여인 엘리스 바이게르트

 

제4장 햇살 비치는 언덕길

 

로쿠메이칸 시대도 지나가버렸고, 이제 자유민권운동도 메이지 18년 오이 겐타로 등의 오사카 사건 발각 이래 급속하게 사라졌다. 여기에서 나란히 짐을 미는 장정들도 이 시대 들어 몰락한 무사나 방황하던 장사들이 대부분이었다. 

 

노르망튼 호 사건은 메이지 19년 10월 15일 기슈 오시마 앞바다에서 일어난 난파 사건이었다. 이 배에는 일본인 승객 22명이 타고 있었다. 일본인 선장과 승무원은 살았지만 일본인들은 모두 바다에 가라앉았다. 이 사건은 일본인들의 민족주의 감정에 불을 질렀고, 치외법권 철폐와 재판권 회복은 국민의 비원이 되었다. 일본의 서구에 대한 시각은 이 무렵부터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고, 오늘까지도 편파적인 애증으로 남아 있다. 

 

메이지 시대 도쿄의 언덕길은 다양한 인연을 낳았다. 

 

제5장 메이지 42년 7월, 고마코메 센다기쵸 21번지

 

제6장 독일 일기(1)

 

제7장 독일 일기(2)

 

자유로운 생명이란 '역할'을 연기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오. 

 

옛 일본에 말이 있었다 - 세키가와 나쓰오

 

사후에 후타바테이의 선실을 정리하니 유서가 나왔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내가 죽으면 아사히신문사에서 다소의 부조금을 줄 것이다. 이 돈을 받으면 여섯 가족이 나이와 상관없이 똑같이 나눈다. 이렇게 나누는 데 이의가 있다 해도 인정하지 않겠다." 또 고민한 기색이 역력한 '선후책'이란 메모도 발견되었다. 그것은 '유언이 아닌 의견'이라며 양해를 구하고 있었다. "겐타로와 세쓰(전처의 아이, 13세와 17세)는 즉시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찾아라. 어머니는 나고야의 친정으로 돌아가는 것이 순리이다. 도미쓰기와 겐조(6세와 4세)의 양육은 류코(현재의 처)에게 맡긴다. 류코는 그 둘을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가도록, 그리고 때를 봐서 재혼하길." 또 무슨 일이 있어도 머리를 깍고 출가하거나 하는 우는 범하지 말라고 끝에 덧붙였다. 이 유서와 선후책은 간결하다. 그리고 애절하다. 굳이 말한다면 이것은 가족 해산 선언이기 때문이다. 메이지 지식인은 싸워야 할 대상이 많았는데 그중 하나는 빈곤이라는 거대한 괴물이었다. 

 

메이지 36년 말, 훗카이도 유바리에서 '대일본노동지성회', 즉 전국적인 광부 연합을 조직하기 위해서 아시오(구리 광산)로 근거지를 옮기기로 결심한 나가오카 쓰루조는 가타야마 센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 이때 나가오카는 40세였다. "신념을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지는 것은 당연하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의 처분에 대해서 대략 다음과 같이 정했습니다." ① 네 살 된 아이는 양녀로 보낸다. ② 여덟 살인 아이는 두 살 아이를 돌본다. ③ 열 살인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와 과자를 판다. ④ 열세 살인 아이는 아침저녁으로 밥을 짓고 통학한다. ⑤ 열다섯 살인 아이는 낮에는 기계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감주를 판다. ⑥ 아내는 낮엔 정차장에 나가 화물을 운반하고 밤에는 감조를 판다. 나가오카 쓰루조는 다이쇼 3년까지 살았지만 이 편지도 사실상 유서이다. 

 

제8장 어찌 마음에 기댈 수 있으랴

 

제9장 슬픈 사랑 둘

 

제10장 도쿄의 모험

 

인간은 삶을 긍정하고 자신을 세계에 맡긴 뒤, 기꺼이 괴로움을 받아들이고 나서 구원을 기다려야 한다. (니콜라이 하르트만) 

 

제11장 모기처럼

 

제12장 에추지마 소나기

 

물론 이 여자의 자태에 들꽃을 보는 것 같은 아름다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 내 마음이 움직인 것은 아니다. 내 마음에 든 것은 실로 이 여자의 마음이다. 

 

제13장 쓸쓸한 인력거

- 옛 일본에 말이 있었다

 

- 「무희」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