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류학

[은밀한 몸], 한스 페터 뒤르, 박계수, 한길사, 2003, (211123)

바람과 술 2021. 11. 23. 22:23

책을 펴내며

 

나는 전근대적인 사회와 이른바 미개인 사회 구성원들의 '감정구조'가 오늘날보다 덜 '조형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할 뿐이다. 또한 '서구를 다른 지역과 구별해주는 동시에 우월함을 나타내주는 특징'으로 현대의 '충동조형'을 찬양하는 엘리아스의 이론이 옳지 못하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이이서 인간이 육체를 수치스럽게 느끼게 되는 '벽의 높이'가 문화적·역사적으로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것이 문화 고유의 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생활양식 전반에서 특징적인 현상임을 납득시키려 한다. 또한 일반적인 '수치를 모르는 언행'과 그것을 통한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의 융합이 인간들이 모이는 형태의 변화를 전제로 한다는 것을 밝혀둔다. 

 

"하나의 이미지가 우리를 사로잡고 있다" - 비트겐슈타인 

 

서문_'나체와 수지'에 대한 이론적 항변

엘리아스의 생각처럼 실제로 오늘날의 문명화된 인간들이 무엇보다 "장기적인 목표와 만족을 위해 순간적으로 충동을 억제"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고 규정한다면, 이 비평가들은 문명화 과정에 아주 주변적으로만 포함되는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모든 인식은 필연적으로 비교하며 추론이다. 그리고 모든 사물은 그것이 아닌 것이다. 

 

내 주장은 역사에서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아니라 이러한 변화가 - 장기적으로 볼 때 - 진화 곡선의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1. '남자 조산술'과 여자 의대생 반대 논쟁

 

그레고리 시대 이전에는 의학자들 대부분이 여성들의 의학 공부를 반대했다. 그것은 경쟁 상대로서의 여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9세기에 여학생은 남학생과 같은 강의실에 앉아 있는 것을 '여성스럽지 못한' 것으로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의학 강의 시간에 더 완고하게 적용되었다. 상당히 명망이 높은 다른 의학자들은 여자들에게 벌써 의학협회 가입을 허용한다면 곧 흑인에게도 허용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2. 조산원과 검경의 사용

 

3. 18세기외 19세기의 산부인과 검진

 

여환자가 누워 있는 자세를 취할지라도 조산원의 가난한 '윤락녀'나 공식 창녀가 아니라면 의사들은 대부분 아주 엄격한 예의를 지켜야 했다. 그것은 무엇보다 여성의 성기 부분을 가리고, 의사가 어디를 만져야 하는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디를 만지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아주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4. 바로크 시대의 의사와 여성들의 수치심

 

5. 중세의 의사와 여성의 생식기 부위

 

6. 여체의 검사

 

7. 고대와 아랍인, 비서구 민족들의 조산과 '내'진

 

8. 출산과 임신의 은밀함

 

'전통적인' 사회에서 남자 의사의 산부인과 진단 및 출산시 입회가 극도로 다루기 힘든 문제였다면 현재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인 사회를 제외하고도 엘리아스의 문명화 이론의 시각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출산의 전 과정은 수치와 곤혼스러움으로 가려져 있으며, 사적인 영역으로 밀려난 문화권도 적지 않다.  

 

9. 20세기의 산부인과와 '성적 흥문 상태'

 

10. 비서구 사회 여자들의 성기에 대한 수치심

 

11. 여자의 앉는 자세에 대한 예절 규칙

 

12. 음순의 봉쇄

 

13. '새로운 키테라 섬' 또는 티히티 섬 여인들의 외설스러움

 

14. 추한 외음부

 

15. 아름다운 외음부

 

16. 육체의 수치에 대한 '이론'

 

이방의, 이른바 덜 문명화된 사회와 근세 이전의 사회에서도 유럽과는 다른 방식이라 할지라도 이런 두 영역 사이에 날카로운 분리선이 그어져 있었다. 배타성은 사랑의 본질에 속한다. 우리가 모두를 동일하게 사랑했다면 '사랑'이라는 개념은 그 의미를 잃게 되며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듯이 '아무것도 돌리지 못하는' 톱니바퀴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 삶의 특정한 영역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통제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에 속한다. 이런 영역을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많이 접근할 수 있게 허용한다면, 단순히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범주를 확장시키는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이런 영역을 변화시키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인격의 본질까지 변화시키는 것이다. 

 

부록 : '나체와 수치'에 대한 '경험적' 항변

 

어원학에 따르면 '유곽(Bordell)'이란 단어는 'borde'의 축약형으로 시내에 있는 집의 반대말로 대부분 원형 성곽 밖에 위치한, 외따로 서 있는 집을 가리켰다. 

 

원숭이는 중세에 사치, 쾌락, 간통, 맹목적인 탐욕, 뻔뻔스러움의 상징으로 잘 알려져 있다. 

 

중세의 방랑 악사들은 특히 불안전하고 탐욕스러운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을 묘사할 때 그들 위에 금성 표시를 했다. 

 

개는 억압받지 않는 성욕의 상징이다. 

 

 

비트겐슈타인의 '본질주의 비판'은 사물들이 하나의 본질을 갖는다는 것을 반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여기서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오히려 그것은 본질이라는 특정한 상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려는 시도이다. 

 

중세가 시작된 이후 무거운 음란죄에 대한 처벌은 오히려 약화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간통, 매춘 알선 등과 같은 가벼운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은 강화되었다. 그것은 틀림없이 결혼관계를 강화시키려는 종교개혁적인 노력과 관계가 있다.

 

남성들이 19세기 여성의 성적 감각을 병적인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으며 이런 믿음을 확고히 하기 위해 '몇 명의 의사들'은 '매번' 여환자들의 클리토리스와 가슴을 성적으로 자극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증거가 없는 하나의 가정일 뿐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런 가정으로 빅토리아 시대의 산부인과 의사들이 얼마나 '돼지처럼 무례한자'였는지가 명백히 드러났다고 말한다. 

 

유대인과 기독교도 사이의 성적 관계는 일종의 변태로 간주되었다. 1276년 아우크스부르크의 도시법에는 이렇게 규정되어 있다. "어떤 유대인이 기독교도 여자 옆에 누워 있고 그들이 실제로 관계를 맺은 것이 밝혀지면 그들은 화형당해야 한다". 게다가 1473년 로프레히트 폰 프라이징의 '첫째 법전'에는 이렇게 규정되어 있다. "어떤 기독교도 남자가 유대인 여자 옆에 누워 있거나 아니면 유대인 남자가 기독교도 여자 옆에 누워있다면 매춘의 죄를 지은 것이다. 그 두 사람을 포개어 놓고 화형시켜야 한다". 그러나 그들을 화형시킬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다. 중세 후기의 다른 규정에 의하면 그런 경우에는 유대인의 '음경을 자르고' 눈을 찔렀다. 

 

옮긴이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