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우산의 역사], 매리언 랭킨, 이지민, 문학수첩, 2021, (220210)

바람과 술 2022. 2. 10. 01:12

서문 : 우산이라는 세계

 

1. 차별화의 징표

 

<제임스 스미스 앤드 선즈>는 1830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 우산 역사학자 T. S. 크로포드의 주장에 따르면 1830년은 우산 제조업이 어느 정도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으로 부상한 매우 중요한 해다. 1830년부터 1840년까지는 패션 업계에서 아주 중요한 시기였다. 패션 역사학자 아리엘 부조는 <빅토리아시대의 패션 액세서리>(2012)에서 영국 역사를 형성한 중요 요소 두 가지를 꼽는데, 확실히 자리 잡은 중산층과 그로 인한 소비 증가다. 우산이라는 사치품은 본래 극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고품질 유사품이 생산되자 중산층 역시 이 사치품을 누릴 수 있게 되었고, 우산은 신분과 세련된 취향을 보여 주는 일종의 상징물이 되었다. 중산층은 우산을 사용함으로써 자신들이 노동자 계급과 다름을 보여주고자 했는데, 보통 부인들이 남편의 수입을 자랑하기 위해 우산을 구입했다. 하찮은 제품에 돈을 탕진하는 행위는 한때는 (귀족의 또 다른 전유물인) 도덕적으로 타락한 행동으로 여겨졌으나, 우산을 구입하는 사람이 늘면서 생산이 증가하고 일자리가 창출되자 점차 사회에 기여하는 행위로 생각되었다.

 

이 같은 현상은 우산 관련 산업의 변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우산 수요가 급증하자 길모퉁이에 자리하던 행상인은 사라지고 가족 단위 기업이나 소규모 제조업체가 등장하시 시작했다. 기존에 사용되던 무겁고 부서지기 쉬운 고래수염 우산살은 (생스터에 의하면 "우산 업계 사상 최고의 발명품"인) 폭스의 파라곤 우산살로 대체되었다. 파라곤 우산살은 다리 건설 공법에서 영감을 받은 경량 철골 구조였다. 

 

사실 우산은 오랫동안 신분의 상징으로서 사용되어 왔다. 고대 이집트뿐만 아니라 고대 아시리아에서도 군주들은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 우산을 썼다. 에디오피아, 모로코, 서아프리카에서는 신분의 상징으로서 우산을 사용했는데, 특히 모로코에서는 수세기 동안 지도자와 그 직계 가족만이 우산을 쓸 수 있었다.  

 

2. 평판 안 좋은 사물

 

3. 피신처, 그늘, 방패

 

4. 우산에 담긴 남과 여

 

5. 손잡이 달린 모자

 

6. 잊힌 사물과 끔찍한 윤리

 

7. 우산의 초월성

 

종장 : 우산이 없다면

감사의 글

 

그림 및 사진 출처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