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로자 룩셈부르크], 토니 클리프, 조효래, 책갈피, 1993, (220310)

바람과 술 2022. 3. 10. 22:54

머리말

 

"모든 것을 의심하라"는 좌우명을 가지고 있었던 과학적 사회주의자 로자 룩셈부르크는 무엇보다 자신의 저작을 비판적으로 평가해 주기를 바랄 것이다.

 

한국어판에 붙이는 저자 서문

 

로자 룩셈부르크는 스탈린주의와 사회민주주의 둘 다에 반대하는 아주 작은 혁명적 사회주의자 그룹을 내놓았다. 그것은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라는 사상, 즉 노동자들이 스탈린주의나 관료나 사회민주주의 의회의원에 의한 위로부터의 주도에 의지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투쟁을 통해서 스스로 해방시킨다는 사상이다. 

 

서론

 

로자 룩셈부르크는 자본주의가 중립화될 수 있고 노동자들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생각에 격렬하게 반대하면서, 1890년대에 개량주의자들에 대한 최초의 공격을 개시하였다. 그녀가 가장 크게 기여했던 바를 꼽는다면 아마도 대중 총파업이 사회적 혁명적 변화에서 점점 더 중심적 역할을 맡고 있으며 계속 그러할 것이라고 본 점일 것이다. 이 생각은 오늘날 사회주의자들이 당면한 몇 가지 주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1920년대 이후, 동구의 거대한 스탈린주의는 관료제 구조들과 서구의 공산당들이나 사회당들은 사회주의가 다수의 이익을 대변하는 소수에 의해 이룩된다는 견해를 낳았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맑스의 표현에 따라, "노동자 계급의 해방은 노당자 계급의 행동에 있다"라며, 이러한 경향에 반대하였다. 그녀는 사회주의 혁명이 노동자 계급의 자발적 행동들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강조하였다. 그녀의 사상은 그녀가 생존하던 시기, 이 책이 쓰려진 시기에도 완전히 낯선 것이다. 

 

스탈린주의 당들은 당이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고 그들을 위해 행동해야 할 것이라고 믿었다. 계급투쟁은 노동자 계급 자신의 활동으로 생각되지 않았다. 혁명가들은 노동자 계급의 활동을 혁명적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하여 그것에 개입한다. 행동은 당의 지도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할 것이었다. 자발적 투쟁은 결코 환영받지 못하였으며, 사물의 기존 질서에 혼란을 야기할 뿐이거나 흔히 그것에 도전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당시 그녀의 생각은 '자생주의적'이라고 규정되고 비판받았다. 그녀가 단지 노동자들의 자발적 투쟁의 꽁무니를 쫓고 있으며, 이 투쟁을 지도하는 데에서 사회주의자 조직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였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노동자 계급 자신이 스스로를 해방시켜야 하며 이러한 자기해방의 본성에 맞추어 미리 설계된 청사진은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시종일관 강조하였다. 사회주의 혁명은 단순히 어느한 집단에 의해 자본주의 체제의 접수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외관상의 정치적 형태들의 변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 체제를 강타하는 노동자들의 경제적 도전이었으며 그래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노동자들에게 정치권력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서 그녀는 사회주의자 당들 내부의 관료제화를 공격하였다. 내부 관료제화는 당을 지배계급의 사상과 싸우는 것을 목표로 하는 매개자가 되기는 커녕 오히려 이러한 사상들을 반영하게 된다. 그러한 정치적 논쟁들은 또한 점점 더 일반 평당원들로부터 당은 분리되게 되었다. 

 

001. 로자 룩셈부르크의 간단한 전기

 

002. 개혁이냐 혁명이냐

 

혁명가임을 자처하는 어떤 사람들뿐만 아니라 개량주의자들 가운데에서도 배고픔만이 노동자들로 하여금 혁명의 길을 따르도록 만들 것이라는 이론이 퍼져 있다. 그리하여 개량주의자들은 중서부 유럽의 잘 사는 동종자들은 굶주리고 짓밟힌 러시아 노동자들로부터 거의 아무 것도 배울 수 없으리라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굶주린 배는 반란을 조장하기도 하지만 항복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003. 대중파업과 혁명

 

대중 파업은 프롤레타리아의 광범위한 계층들을 동원해서 행동으로 이끌어 갈 수 있고 혁명적으로 만들며 조직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방법이 되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그것은 자본가의 착취를 억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국가권력을 약화시키고 전복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노동자 계급이 직접적인 정치적 행동에 대거 참여하기 위해서는 우선 스스로를 조직해야 하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노동자 계급이 공장과 수공업 작업장 사이, 광산과 주물공장 사이의경계를 제거한다는 것, 노동자 계급 사이의 분열을 극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중 파업의 논리적이고도 필수적인 절정은 "공공여난 봉기인데, 이것은 일련의 불완전한 봉기들-터전을 닦으며, 그래서 당분간은 부분적인 '패배'처럼 보이는 것으로 끝나게 되기 쉽고 또한 그 각각은 '시기상조'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는-의 정점으로서만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대중 파업의 결과, 얼마나 높이 계급의식이 고양되는가, 가장 지속적이기에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프롤레타리아의 정신적 성장이다. 또한 얼마나 높은 이상으로 노동자들이 도약하는가.

 

004. 제국주의와 전쟁에 반대한 투쟁

 

005. 당과 계급

 

인간은 자기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역사를 만들지는 않지만, 자기 자신의 역사를 실제로 만든다.

 

<공산주의자 선언>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역사적 운동은 소수의 또는 소수의 이익을 위한 운동이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의 운동은 압도적인 다수의 압도적인 다수의 이익을 위한, 자각적이고도 독자적인 운동이다."

 

엥겔스는 "각성되지 못한 대중의 선봉에 선 각성된 소수에 의해 혁명이 수행되던 시기는 이미 과거가 되어 버렸다. 사회조직의 완전한 변혁이라는 과제가 있는 곳에서는, 대중 스스로가 변혁 과정에 참가하여 그들 스스로 과제가 되는 것이 무엇이며 그들이 몸과 마음을 바쳐 행동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비슷한 논조로 다음과 같이 썼다.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각성된 의지와 행동이 없다면 사회주의란 있을 수 없아."

 

혁명 정당은 자신의 지도적 역할을 인식하고 있어야 하는 한편으로, 노동자 계급은 자발성 없는 수동적 대중으로 남아 있지만 당은 무오류의 사상과 행동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경계해야 한다. 사회민주주의 당이 존재하더라도 인민 대중은 세계사의 생생한 내용으로 계속 남아 있다. 조직화된 중핵과 인민 대중 사이의 혈액순환이 있을 때에만, 그리고 하나의 심장고동이 이 양자에게 생명을 주고 있을 때에만 사회민주주의 당은 자신이 위대한 역사적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게 된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1904년, "사회민주주의 투쟁 전술의 중요한 특징은 '발명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 기본적인 계급투장이라는 일련의 위대한 창조적 행위의 산물이다. 여기에서는 무의식이 의식에 선행하고 객관적인 역사발전의 논리가 그 담당자의 주관적 논리에 앞선다." 결국 로자 룩셈부르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진정으로 혁명적인 노동운동에 의해 저질러인 오류가 최정예의 중앙위원회의 무오류보다 역사적으로 보아 훨씬 값지고 생산적이다."   

 

사회주의 운동의 민주주의적 성격에 관한 맑스의 주장과, 혁명적 사회민주주의는 "프롤레타리아의 조직과 굳건히 결합한 자꼬뱅 당"을 표방해야 한다는 레닌의 주장은 명백히 서로 모순된다. 조직되지 못한 인민 대중의 선봉에 선 의식 있고 조직화된 소수는, 결국에는 소수의 이익을 위한 혁명이 되어 버렸던 부르주아 혁명에 어울린다. 자각한 소수와 자각하지 못한 다수의 분리, 정신 노동자 육체 노동자 분리, 그리고 한편으로는 경영자 및 십장과 다른 한편으로는 순종하는 노동자 대중이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 등은, 설사 사회주의에 접목된다 하더라도,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운명을 집단적으로 통제한다는 사회주의의, 정수가 제거된 자칭 '사회주의' 일 따름이다.  

 

006. 로자 룩셈부르크와 민족문제

 

007. 권력을 장악한 볼셰비키에 대한 로자 룩셈부르크의 비판

 

로자가 쓰고 말했던 모든 것이 그러했듯이, 러시아혁명에 관한 그녀의 팜플렛의 핵심은 노동자에 대한 믿음과 오직 노동자들만이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아무렴, 독재고 말고! 그러나 이 독재는 민주주의를 적용하는 방식이지 민주주의를 제거하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부르주아 사회에서 확립된 여러 권리들과 경제 관계들을 강력하게, 가차없이 공격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사회주의적 변혁은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나 이 독재를 수행하는 것은 계급이어야지, 계급의 이름을 내건 소수의 지도자여서는 안 된다."

 

사회주의의 원리들을 경제와 법과 모든 사회관계에 도입하는 데 필요한 크고 작은 수많은 구체적·실천적 방책들의 본질 문제에 이르면, 어떤 사회주의자 당의 강령이나 교과서에서도 해답은 없는 것이다. 이것은 단점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과학적 사회주의를 다양한 변종의 공상적 사회주의보다 우월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사회주의적 사회체제는 살아 있는 역사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발전하여 얻어진 사회체제는 살아 있는 역사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발전하여 얻어진 결과로서, 그 실현 과정으로부터 탄생하여 그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하나의 역사적 산물이어야만 하고 또 그럴 수밖에 없다. 

 

008. 자본의 축적

 

로자 룩셈부르크는 자본주의가 제한적인 시장이라는 축적의 절대적 장애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는 요인은 자본주의적 산업이 비자본주의적 영역으로 침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다른 어떤 맑스주의자나 비맑스주의 경제학자보다 비자본주의 영역이자본주의에 미치는 영향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009. 로자 룩셈부르크의 역사상의 위상

 

맑스에게는 사회주의가 '진정한 인본주의'이고, "모든 개인의 완전하고 자유로운 발전이 지배적인 원리가 되는 사회"였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이 인본적 열정의 화신이었다. 비천하고 억눌린 사람들과의 공감은 그녀의 삶의 중요한 공기였다. 인간의 비극이 엄청나게 클 때에는 울어 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로자 룩셈부르크는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좌우명은 아마도 스피노자의 그것처럼 "울지도 말고, 웃지도 맑라. 다만 알려고 하라"였을지도 모른다. 비록 그녀 자신은 눈물도 많고 웃음도 많기는 했지만, 노동자 계급에게 사회 생활의 발전 경향을 드러내보여 그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객관적인 발전과의 결합 속에서 가능한 한 최고로 발휘하도록 돕는 것이 그녀의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