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로댕, 그의 모더니티], 박숙영, 창조문화, 2003, (220403)

바람과 술 2022. 4. 3. 12:15

1. 들어가는 글

 

19세기의 서구 미술계에서 회화 영역은 인상주의자들의 등장과 활동으로 전통적인 회화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여 새로움을 향한 격동과 흥분 상태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러나 조각은 대부분 여전히 건축물에 예속되어 조각 고유의 가치를 찾기는 어려웠다. 조각에 대한 뚜렷한 미학적 강령을 갖지 못한 채 아카데믹한 관습 속에서 조각 예술이 침체되어 있을 때, 로댕이 나타나 새로운 구성과 표현, 그리고 매체 자체의 고유한 특질 등을 강조함으로써 당시의 조각을 기존의 전통과 관례로부터 해방시키고 조각 세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로댕의 작품은 과거의 것과는 분명히 다른 혁신성을 띠고 있다. 이것은 동시대의 인물인 샤를르 보를레르의 미적 모더니티로 설명될 수 있다. 당시에 일어난 새로운 개념인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의식과 더불어 모더니티의 구체적인 예술적 성취는 조각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보들레르의 예술 비평에서 비롯되어 회화와 문학 영역에서 옥타비오 파츠가 주창한 것으로, 그 동안 색채, 선, 소리, 움직임이 재현을 위해 사용되었다면, 이제는 표현 매체와 제작 기술 그 자체가 미적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로댕의 조각은 로댕 이전의 조각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종교적, 신화적, 문학적 주제에 근간을 둔다. 당시 조각은 전통적인 주체를 서술적이거나 사실적으로 재현하여 형식적으로 완성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로댕은 소장가들이나 미술 시장에서의 유통을 위한 작은 크기의 조각에서, 그리고 공공의 기념비 조각에서도 과거와는 뚜렷이 단절된 몇 가지 특징들을 보여준다. 일화적 주제에 대한 서술적 묘사와 탈피, 완성이 아닌 과정으로서의 작품, 하나의 조각과 또 다른 조각의 결합을 통한 새로운 의미의 생성, 기념비적 조각의 장소성의 문제, 받침대의 사라짐 등이 그 예들이다. 이러한 것들은 현대 조각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조각 분야에서 논의되고 있는 많은 미학적 문제들과 관계하는 것들이다.   


2. 전통적 재현의 해체

2-1. 물질적 인체에서 심리적 인체로

 

일반적으로 로댕 이전의 시대의 조각은 일정한 규범이나 성상학적 체계에 따르는 장식적, 종교적, 정치적, 기념비적인 기능을 하는 조상들이었다. 로댕 역시, 특히 경제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이러한 조각을 많이 만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로댕은 그러한 과정을 거친 후, 결정적 기능을 하는 조각이라 하더라도 특정한 인물이나 사건을 서술적으로 재현하는 조각의 전통적 개념에서 벗어나, 자신의 정신적이고 독창적인 해석에 따라 작품을 제작함으로써 조각에 자율적 창조라는 위상을 부여하였다. 

 

로댕의 조각은 인간의 형상을 돌로 조각하거나 주물 기법을 사용하는 등의 전통적인 재료와 기법에 의해 이루어져 있다. 형태들 역시 전통적인 것으로서 특정한 실재 인물이거나 종교나 문학 작품, 신화에 나오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로댕의 인물상들은 그 구성이나 표현에 있어서 전통적인 조각과 연결할 수 없는 특성들을 지니고 있다. 로댕은 인간상이라는 구체적인 형태 안에서 자신의 내면적 비전이나 추상적 사고를 나타내기 위해 전통적인 주제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방법으로 재현하기를 멈추고 정신적이고 시각적인 조형적 형태로 번안한 것이다. 한편 로댕이 낭만주의 세대가 성취한 자유로부터 혜택을 입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상징주의 외에도 사실주의, 표현주의, 원시주의 등 다양한 미술 운동과 경향의 미학적 표현들이 내재되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2-2. 과정으로서의 조각

 

종교나 문학 작품, 또는 신화와 같은 특정한 주제 아래 만들어진 미술 작품의 경우,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주제를 일관성있게 엮어나가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 인물은 한 이야기 내에서 자신의 고유한 의미를 수행하면서 작품의 요소로서 그 위치를 분명히 한다. 그러나 그 인물이 한 작품에서 이탈되어 여기저기 다른 작품에 다시 등장할 경우, 관람자들은 그 인물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게 되고, 그 인물이 전에 등장했던 작품의 논리적 인과성이 무너짐을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작품을 서술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2-2-1. 새로운 형상을 향한 단편 조각의 증식

 

2-2-2. 마코타주에 의한 새로운 의미 형성

 

2-2-3. 제목의 임의성

3. 방랑하는 기념비적 조각

4. 받침대의 소멸

조각의 받침대는 재현이라는 허구의 세계를 나타내기 위해 현실 속의 관람자를 작품으로부터 분리시킨다. 그리고 조각에 시공을 초월한 항구적 가치를 부여한다. 20세기 조각의 가장 커다란 혁신은 전통적인 받침대의 소멸과 더불어 작은 크기의 '테이블 조각'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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