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결혼이라는 이데올로기], 현실문화연구, 1993, (220511)

바람과 술 2022. 5. 11. 22:41

서문 : 결혼이라는 이데올로기

 

낭만적인 사랑과 결혼이라는 이데올로기

 

여성이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이 어려운 사회일수록 여성에게 결혼이외의 인생의 성공이란 있을 수 없게 된다. 

 

자유주의 여성해방론은 가족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핵가족을 논의의 기본 단위로 전제하고 있다. 이들은 여성이 결혼을 '선택'하고 아이를 낳기로 결정하는 것의 여부는 자유로운 개인의 선택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일단 아이를 갖기로 한 사람은 아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본다. 여성의 권리란 개인으로서의 선택의 권리와 자기 의지의 실천이 가능하게 되는 것을 말하며, 신체적 차이와는 관계가 없다고 본다. 따라서 자유주의 여성해방론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목표는 엄마 역할과 아이키우는 일을 해야하는 조건에서 여성이 자기 의지를 실현시키려고 할 때, 필요한 물질적 조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자유주의 여성해방론은 성별노동분업을 가부장제 가족에서의 여성억압 문제로 보고 있으며, 완전한 남녀평등을 향한 물적 조건을 조성한다면 성별 노동분업이 사라져서 종국에는 여성성과 남성성의 특성들이 구성원 개개인들에게 모두 나타날 수 있는 양성성의 사회가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그 사회에서는 더 이상 신체적 차이에 의해서 개인을 구별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 개인간의 구별은 개인 간의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로 나타날 것이라고 본다.

 

급진적 여성해방론의 가장 핵심적인 정치적 주제는 여성이 진정한 의미에서 자신의 몸을 소유하고 통제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급진적 여성해방론은 여성 억압의 뿌리를 모성에 대한 여성의 신체적 능력이나, 강간에서 분명히 나타나는 것과 같이 여성과는 위험할 정도로 다른, 신체적으로 타고난 남성의 공격성에서 찾곤 한다. 가부장제 하에서의 여성 억압의 근원을 신체적 성차에 둠으로서, 급진적 여성주의자들은 새로운 의미의 여성의 본질을 제시해야 하는데, 이들은 그 여성의 본질을 가부장제적 가족 구조를 벗어난 영역에서 찾는다. 이들은 여성의 본질은 여성간의 동성애적 성과 모성애의 양 쪽에 걸쳐 있다고 본다. 급진적 여성해방론자들은 특히 모성을 경험할 수 있는 여성의 신체적 능력을 찬양하는데, 여성의 출산능력과 특정한 심리적 자질들을 연결시킴으로서, 여성의 본질이 있으며 그것이 현대의 가부장제 사회에서만 특수한 것이 아님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심리적 자질들은 여성의 성과 출산능력을 남성이 지배하고 있는 한 현재의 구조안에서는 실현될 수 없다.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은 본질적인 인간 본성이라는 것은 없으며, 그것은 사회적으로 생산되는 것이며 변해 가는 것이라는 맑스주의 가설들을 여성에게 확대 적용한다. 이들은 동일한 유형의 가부장제는 없다고 보며, 억압의 형식은 시기마다 다르게 구체화된다고 생각한다. 이들 사회주의 여성주의자들은 자본주의, 가부장제, 인종차별주의에서 어느 하나를 가장 억압적인 구조로 취하지 않으며, 가족의 경우에 있어서처럼, 대개는 서로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자들은 여성의 몸에 대한 설명이 필요함은 강조하지만 그 의미는 역사적이고 사회적이어야 한다고 본다. 이들은 여성은 우선적으로 성적인 존재이거나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모습들은 여성을 구성하고 있는 많은 면들 중에서의 두 가지 면일 뿐이라고 본다.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자들의 정치적 목표는 가족의 삶에 심오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들의 목표로서는 첫째, 성별 노동분업의 폐지와 육아에 있어서의 남성의 완전한 참여, 둘째, 여성에게 출산권을 주는 것, 즉 아이를 낳을지 낳으면 언제 어떤 상황에서 낳을지와 여성이 실제로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이 가능한 조건을 마련해 주는 것, 셋째, 이성간의 연애관계만 특전을 주는 것의 폐지, 자신의 성을 규정할 수 있는 자유, 여성 동성애자들이 아이를 입양하여 키울 수 있는 권리, 넷째, 궁극적으로는 '여자'와 '남자'라는 범주화를 폐지시키는 것 그리고 모든 사회적 존재방식이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게 하는 것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자유주의, 급진주의, 그리고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은 모두 가족을 설명하는 데 있어 문제들을 진정으로 설명하고 있지는 못하다. 여성들이 왜 기꺼이 아내와 엄마 역할을 맡으려고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으려면, 좀 더 세밀하게 여성이 취할 수 있는 입장들의 범위와 각각의 입장에 주어진 권력과 무기력함의정도 간의 관계들을 설명해 주는 이론이 필요하다. 

 

탈산업사회의 시대적 배경에 페미니즘이 분리주의로 대응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대한 수동적 대응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분리주의는 남성들의 침입의 염려가 전혀 없는 안전지대를 꿈꾸고 있는데, 문제는 남녀간의 팽팽한 긴장은 아마도 어떠한 경우에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데 있다. 목표의 설정은 그 긴장을 아마도 어떠한 경우에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데 있다. 목표의 설정은 그 긴장을 철폫려고 할 것이 아니고 오히려 더욱 세련된 형태로 그 긴장과 함께 지내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어야 한다. 

 

자본주의에서의 성모순 : 결혼을 전제로 하는 가족을 중심으로 

 

물질생산 영역에서 자본주의의 생산력(생산의 사회화)이 생산관계(생산수단의 사유화)와의 모순으로 빈곤과 기아, 부의 불균등 분배를 해결하지 못하듯이, 발전된 생산력이, 수 천 또는 수 만 년 이상 여성이 일차적 인간 생산자일 수밖에 없었다는 역사적 성별 분업관계를 당장 불식시키지는 못한다. 요컨대 자본주의의 생산력을 갖게 된 인간생산이 당장 가져온 것은 성별 분업의 불식이나 해방이 아니라 자본주의 특수한 성모순에 불과하다. 

 

자본이 가사노동을 사회화하지 않아 여성이 불완전 노동자가 되며 여기에 더해 노동시장에서는 자본가가 성차별 이데올로기를 수용함으로써 차별적 저임을 받는다는 것이다. 생산력의 성별화는 곧 성별분업이기도 하다. 생산력의 성별화가 양성 노동력의 물리적 차이를 말해준다면, 성별분업은 양성 간의 노동에서의 분업을 매개로 하는 사회관계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요컨대 성별분업은 단순한 일의 분업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임금차, 위세와 통제 정도 등 노동관계 속에서의 권력관계 또는 지위관계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가사노동은 '일반적으로 사회적인 노동'이다 일반적 또는 초역사적으로 사회적인 노동이란 타인을 위해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을 말한다. 

 

모순으로서의 가사노동은 이 모순을 어머니로 하는 두 자식, 즉 전업주부와 취업주부를 낳는다. 전업주부에게는 유적 존재로서의 삶에서 차단되는 살림의 소외로, 취업주부에게는 이중노동의 문제로 부각된다. 

 

인간 생산력의 내부 모순을 기반으로 하는 성별분업과 그에 조응하는 기존의 핵가족은 전업주부, 취업주부, 남성 모두를 소위시키고 있다. 자본은 가사노동 사회화의 경비를 부담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최대한의 이윤 추구를 위해서, 노동력이 과잉인 상태에서는 가사노동을 사회화하면서까지 기혼 여성을 고용하지는 않는다. 여성의 불완전 고용은 서구의 에에서처럼 생산과정의 자동화, 합리화를 실행하거나 준비하는 거대 자본 측에서 노동자를 보다 탄력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의 하나로 시간제 노동을 위시한 불완전 고용을 선호하는데서 비롯된다고 보인다. 

 

생산성의 향상은 생산력의 문제이고 지식노동자와 하급 육체노동자와 단순 서비스, 사무직 노동자 간의 계층 갈등은 생산, 소비, 분배 조직과 관련된 사회관계의 문제이다. 노동의 유연화는 여성에게는 삶의 풍요나 자율적인 삶과는 전혀 상관없는 오히려 아이, 남편, 고용주 모두가 효율적으로 여성을 부려먹을 수 있는 기묘한 방안으로 작용하고 있다.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과 탈자본주의 사회가 가져올 잉여를 과학과 기술 발전 일변도로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노동을 사회화하는 자금으로 돌릴 수 있는 사회 틀이 요구된다. 그 전환의 중심 축에는 여성과 남성의 삶의 동질적 가치에 대한 자각이 놓여야 한다. 

 

육체에 남겨진 결혼의 흔적들

 

결혼증명사진

 

새로운 관계 만들기

 

사진첩 속의 결혼들

 

사랑의 공동체 : 대안은 있는가?

 

어머니되기의 환상과 실제 그리고 적응

 

명화감상 : 아담과 이브는 매우 슬펐습니다

 

결혼과 이혼의 변증법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그들이 가진 문제는 해결할 방법 없이 쌓여 간다. 그들은 대화를 나눌 시간도 없고 말해도 서로 그 말의 의미가 뭔지 잘 모르고, 무엇보다 대화의 기본조건인 평등한 관계가 아니다. 부부 간의 대화란 처음부터 지극히 어렵고 힘든 과정이며 불균형한 힘의 노출과정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극히 사적인 공간, 사회와 분리된 따뜻한 은신처라고 생각해온 가족은 사실 이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축소된 폐쇄 공간 속에서 그대로 다 겪는 공간이 아닌가?

 

주머니 속의 행복

 

신세대 결혼이야기

 

'결혼에 어울리는 여자'가 되려면?

 

엄마의 합동 결혼식

 

아주 오래된 연인들

 

나는 나의 기억 속의 모든 시간들을 되돌려 보고 있다

 

결혼 사진은 누구를 찍고 있는가 : 결혼 사진의 신화와 상징

 

새로운 욕구를 창출하고 새로운 형태의 인간을 만들어 낸다. 

 

사진이라는 가상적 표현을 통한 상위계급으로의 진입은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한 문화적 헤게모니로의 자발적 종속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사진과 문화적 헤게모니의 관계에 대한 가장 구체적인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은 영국의 미술평론가 존 버거이다. 

 

날개 : 갇혀진 비상

 

결혼 속의 사랑과 권력

 

여성이 배우자를 선택할 때 남성의 직업이나, 학벌 혹은 장래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서 이미 경제적인 능력이 남성의 중요한 매력의 원천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매력을 유지시키는 원천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은 취업 여성이라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망정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여성이 경제력을 가지기 어렵다는 사회적인 사회적인 조건도 작용하지만 결혼 안에서 부양받을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가 여성들을 스스로의 미약한 경제력의 기회나마 자원으로 활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남녀가 평등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 우리 세대는 억압적이지 않은 남자를 만나려고 했고, 그런 남자만을 사랑하고 결혼하리라 마음 먹었다. 그러나 우리 세대가 유행시킨 사랑 속에서도 우리는 구제되지 못했다. 우리가 사랑한 남자와의 결혼 생활에서도 우리는 경제력이 없어서, 육아 때문에 시집 갈등 때문에 더 많이 참고 자기 주장을 펴지 못 했다. 우리가 가부장적이지 않은 배우자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그의 경제력을 바란 것이 유죄였다. 그러나 시야를 넓혀 보면 그것은 비단 우리만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사회구조와 문화 풍토 전반이 가지고 있는 함정이기도 했다. 

 

미미의 하루

 

신세대의 결혼 이데올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