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미국 여성사], 이창신, 살림, 2004년, (070417).

바람과 술 2008. 6. 15. 05:02

미국 여성사의 등장

 

1960년대에 시작된 여성해방 운동은 미국인들의 여성의식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으며, 여성사 연구에도 큰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여성사 연구는 1960년대 이후 사회적으로 무르익어 가고 있던 여성운동의 결과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의 여성 사학자인 거다 러너는 기존 미국 여성사의 발전과정을 4단계로 설명하였다. 1. '보충사(compensatory history)'로서 유명한 여성들의 정체성과 그들의 활동을 낱낱이 기록해 놓은 것을 의미한다 2. '공헌사(contribution history)'로서 여성과 관련된 중요한 이슈나 주제 등을 정리해 놓은 것을 의미한다 3. 이미 연구된 여성들의 공헌에 대해 전통적인 해석을 벗어나 재해석하는 단계로 1970년대와 1980년대 중반까지 시도되었던 많은 여성 사학작들의 연구들을 가리킨다 4. 1980년대 중반기 이후 여성가가 '젠더'라는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역사 분석의 패러다임이 바뀌게 되는 시기를 의미한다.

 

1960년대 미국의 사회운동과 여성운동

 

1960년대, 우드스턱과 히피문화 : 1960년대의 미국 사회는 혼란과 동요의 시기로 암살과 폭력, 시위가 만연하였고 대학생 중심의 반전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으며, 많은 젊은이들이 미국의 전통적인 가치를 거부하였다. 일반적으로 여성운동도 광범위한 사회적 변화의 소요 속에서 출현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여성들 나름대로의 집단적인 정체성을 발전시키고 그들만의 공유의식을 함양할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하였다. 미국의 여성운동은 크게 제1기와 제2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시기 구분은 학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제1기는 19세기 중엽부터 참정권 획득기인 1920년대까지를 말하고, 제2기는 미국의 사회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기 시작하고 베티 프리단의 [여성의 신비]가 출판된 1960년대를 일컫는다. 1930년부터 1950년대 말까지의 시기는 미국 여성해방 운동의 잠재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제1기 여성해방 운동은 남성과 다른 차원에서 여성을 강조했다기보다는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 것에 주력하여 여권운동이 전개되어 왔다는 한계점이 있다. 또한 여성해방 운동 이념으로서 여성이 남성과 동일하게 가정과 가사노동에 참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에 반해 제2기 여성해방 운동의 특징은 성에 대한 생물학, 심리학, 문학적 측면을 강조하는 한편, 여성문제, 여성운동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까지 관심을 확대하고 증진시켜나간 시기로 실천적으로 상당한 발전을 보여 주었음을 알 수 있다. 1930년대 들어 미국에도 경제 공황의 바람이 불어 닥쳤고, 많은 기혼여성들이 그들의 직장에서 쫓겨나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 무렵 기혼여성이 가정 밖에서 일을 하는 것은 남성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라는 인식이 전반적인 사회적 분위기였다. 그러나 1940년대 들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함에 따라 상황은 역전되었다. 특히 정부의 정책이나 대중매체에 의한 이미지 형성 과정 등은 젠더의 문제, 계층의 문제 등과 연관되어 아주 복잡하게 진행되어 갔다. 일반적으로 1950년대 전체적 분위기는 사회 안정의 보루로서 중산층 여성들이 가정을 꾸려가도록 유도하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맞벌이 부부' 또한 필요로 하는 복합적인 양상을 띠고 있었다.

여성해방 운동의 시발점 : 1963년 [여성의 신비]를 내놓아 당시 여성운동의 활력소 역할을 담당한 베티 프리단은 제2기 여성해방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책의 내용에 따르면 '여성의 신비'라는 용어는 여성들의 삶의 현실과 여성들이 맞추어 살려고 애쓰는 이상 사이의 불일치를 의미한다. 1960년대 또 다른 변화는 케네디 행정부에 의해 운영된 '여성지위자문위원회'의 활약이었다. 이와 동시에 국회에서는 1963년 동등 임금법과 1964년 인권법을 통과시켰다. 이 두 법안은 여성의 입장을 어느 정도 함축하고 있었지만, 여성들의 평등권을 위해서는 여전히 수정을 해야 할 부분이 많았다. 연방저부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개선의 여지를 보이지 않았고, 1966년 베티 프리단과 에일린 허나데스는 여기에 항거하는 의미로 전국여성동맹(NOW)를 공동 창설하여 제1대 회장을 역임하였다. 전국여성동맹은 새로운 여성운동 조직으로, 전국 규모로서는 최초였다. 이 조직의 목표는 미국 여성들을 미국 사회 내 주류로 이끌어냄과 동시에 남성과 동등한 파트너로서 그 능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여성동맹 창설자들은 이 조직이 여성해방 운동과 여성들의 권리확보를 위한 정치적 로비기수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리라고 기대했다. 여기서 무엇보다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여성들의 재생산권과 관련된 '낙태의 합법화' 문제였다. 그 외 새로운 여성 단체로는 여성형평실천연맹과 전국여성정치위원회가 있다.

여성학 연구의 확산 : 1960년대 이후 여성사의 활발한 연구는 여성학의 등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여성학은 1960년대 후반 새로운 여성운동의 물결 속에서 탄생되었다. 당시 여성들은 모든 전통적 가치에 도전하는 남성들이 유독 남녀 관계에 대해서만은 전통적 가치를 고집하는 데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다. 여성들은 이제 계급문제나 인종문제가 사라진다 해도 여성문제는 고스란히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따라서 여성문제는 여성들 스스로 주체가 됨으로써만 풀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여성운동의 이론적 뒷받침을 위한 학문연구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 것이다. 여성학의 성립 근거는 근본적으로 남성과 여성은 차이 있는 존재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대학에서 여성사를 공부한 여성 사학자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여성사 연구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고, 그 결과 여러 조직들이 생겨났다.

 

미국 사회가 연구의 등장

 

1960년대 사회운동을 배경으로 역사학계에도 변화의 물결이 일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미국 역사학의 풍조는 소위 합의사학으로 대변된다. 이들은 특히 미국의 역사, 사회, 문화, 정치 그리고 경제의 위대함과 특수성을 강조했다.

신좌파의 등장 :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합의학파는 '신좌파'에 의해 도전받게 된다. 신좌파 사가들은 이전 합의사가들이 묘사한 미국에 대한 밝은 과거상이나 현재상은 모두 허위의식이라고 주장하면서 미국 사회의 현재와 과거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듯한 안정, 조화, 풍요의 이면에는 불안, 갈등, 폭력이 깊이 도사리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1960년대의 사회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은 신좌파 사가들은 그때까지 미국 역사에서 소외되었던 집단에 대한 연구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들의 주장은 일반 대중들의 역사를 연구하지 않고서는 역사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미국 사회사 연구는 역사관이나 방법론 면에서 여성사 연구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여성이 남성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그동안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던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내리게 되었다. 미국 사회사 연구방법은 또한 여성사 연구방법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 사회사는 1.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여러 가지 자료들을 통한 계량적 역사 분석방법을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했다(학문과 학제 간 연구의 가능성 시사) 2. 사회사를 통하여 정치조직,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들을 연구했으며, 새로운 조직이나 기관으로서 가족에 대해 눈을 돌리게 되었다 3. 사회사는 거시적 관점을 통해서 그동안 백인 남성이 중심이 되었던 정치사의 서술적 접근에 대응할 수 있었고, 인간의 삶을 분석하는 데 보다 다양한 접근을 시도할 수 있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의 여성사 연구의 경향

 

보충사적 역사서술 : 초기 미국 여성사 연구는 유명한 여성들의 정체성과 그들의 활동을 낱낱이 기록해 놓는 보충사(compensatory history)적인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이러한 종류의 보충사적 연구는 여성들의 활동이 미국 사회 전반에 끼친 영향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지는 못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충사적인 여성사 연구는 남성 중심의 역사서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공헌사적 역사서술 : 공헌사(contribution history)적 역사서술로서 이러한 경향은 어느 정도 개념화된 여성사 단계로 설명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서술을 통해 사가들은 여성들의 관점에서 역사상 주요한 이슈나 주제 등과 관련된 운동에 대해 기록해 놓았다. 주로 공헌사적인 서술에서는 여성들의 참정권 운동, 노동운동 그리고 도덕개혁운동이 미국 전체의 도덕 개혁운동이나 노동운동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를 분석하였다. 또한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들이 어떠한 방법으로 억압에 대해 저항하였는지에 대한 공헌도 분석되었다. 이 시기에는 여성사 자료들의 방대한 수집품이 생겨났으며, 이는 '여성사 자료집'이라는 주제로 미국 각 주의 고문서 자료리스트에 올라 있다. 이를 계기로 여성사는 성격을 달리 해 집단 여성들의 자각, 공동체와 조직에서 그들 작업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생기게 되면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문서화 태도가 나타났다. 더 이상 여성들은 유명한 인물이라든가 지도력의 찬양에만 매달리지 않게 된 것이다. 공헌사는 여성운동, 특히 참정권 운동의 조직과 그 지도자들에 대한 여구 성과면에서 큰 기여를 앴다고 볼 수 있다. 여성 참정권의 역사가 상징하는 욕구는 서술체 여성사를 쓰려는 최초의 노력이며, 또 역사의 시기마다 다양한 사회에서 여성들이 차지한 지위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이다. 이 책은 여성사 연구에 큰 공헌을 했지만 여러 가지 한계점 또한 안고 있었다.

비판적 역사서술 : 비판적 역사서술은 그동안 활발히 진행되어 오던 공헌사를 바탕으로 이전의 전통적인 접근을 비판, 재해석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연구들을 살펴보면 그동안의 여성들의 공헌에 대한 서술들은 여전히 전통적인 역사해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여성의 입장에서 그들의 경험을 재해석한 시도들이 눈에 띈다. 이처럼 1980년대 중반까지의 여성사 연구는 보충사나 공헌사를 중심으로 꾸준히 진행되어 왔으며,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역사 해석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계속해 왔다. 하지만 그 주제나 연구방법에서는 여전히 많은 한계점을 안고 있다. 이후 여성사 연구는 1980년대 들어 새로운 패러다임이 도입되면서 큰 변화가 발생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젠더 개념의 도입과 여성사의 재해석이다.

 

젠더의 개념과 새로운 역사학의 패러다임

 

젠더 개념의 도입 : 과거의 여성사 연구가 주로 위대한 여성들에 대한 단편적인 연구 내지는 계층이나 인종 간의 차이를 둔 여성들의 경험을 연구해 왔다면,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사회화된 성을 의미하는 '젠더(gender)'의 개념이 도입되었다. 생물학적 성에 기초한 여성사 연구는 많은 한계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회구조를 포함한 사회적 영역에 걸친 권력구조 연구를 통해서만이 통찰력 있는 여성사를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물학적 성과 사회.문화적 젠더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남성과 여성의 역사적 경험의 차이를 이해하는 단초가 되었다. 또한 이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인 의미의 '성성(sexuality)'에 대한 논의도 제기되었다. '성성' 역시 사회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역사적으로 볼 때 성에 대한 선호도는 사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젠더에 기초한 역사적 접근을 살펴보면 남성과 여성 사이의 역사적 경험은 큰 차이를 두고 발절해 왔고, 특히 이것은 정치적.경제적 관계뿐만 아니라 법적 관계에서도 남성과 여성의 경험 차이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여성의 역사를 연구함에 있어 단순히 여성들과 관련된 사실들을 밝힌다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다. 즉, 역사적 주제로서 그동안 도외시되었던 여성들을 역사의 중심에 오도록 하기 위해서는 여성을 역사연구의 주제로 만들어야 할 뿐만 아니라 역사를 구성하는 범주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젠더라는 것은 인간의 성적 차이에 관한 지식이며, 지식이란 문화와 사회에 의해 생겨난 인간에 대한 이해라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젠더라는 것은 오랜 기간에 걸쳐 발전되어 온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사회구성 요건으로서 젠더 간의 관계가 곧 권력관계이며, 즉 젠더와 지식은 사회적으로 형성된 것임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패러다임은 역사학의 역할이 사회조직 과정에 함축되어 있는 한 분야로서 연구되어야 함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마녀사냥과 젠더 : 젠더 관계를 권력의 문제로 볼 때 뉴잉글랜드 지방의 마녀사냥에 대한 연구의 변화과정은 큰 의의를 지닌다.

남북전쟁과 젠더 : 젠더를 중심으로 역사연구를 시도한 분야 중 최근 들어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전쟁사에 관한 연구를 들 수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미국 남북전쟁에 관한 연구이다.

 

제2차 세계대전과 여성의 경제 참여

 

리벳공 로지(방위산업체에 종사하는 여성을 상징하는 이미지)  : 젠더와 관련하여 많은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분야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야기된 여성의 경제 참여하고 볼 수 있다. 역사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 미국 여성들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리고 있다. 특히 전쟁의 영향으로 4년동안 6백만 명의 여성이 유급 노동력으로 편입되었다는 사실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는 매우 상반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여성학에 대한 다양한 접근들 : 1990년대 여성사 연구에서 나타난 또 다른 특징은 학제간의 연구 성과를 들 수 있다.

 

가족사 연구

 

가족사와 성의 역사가 분리되어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로 이 분야에서 새로운 의문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우선 가족사에서는 그 초점이 전통적인 가족형태, 즉 대가족의 가부장제에서 근대적인 핵가족이나 동반자적 관계의 가족으로 옮겨왔다. 이 분야의 학자들은 이러한 가족의 변화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설명하였고, 결혼 연령의 변화와 가족의 규모, 상속의 형태 및 이혼이나 혼외 출생률 등에 대해서도 연구하기 시작했다. 특히 가족 사가들은 산업화와 인구이동 등이 가족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또는 이러한 과저에서 가족은 어떠한 역할을 담당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미국 원주민의 가족사 :

미국의 가족사 :

 

재생산권과 정책에 대한 논쟁

 

일찍이 성의 역사에 대한 연구는 의사나 성직자들과 같은 엘리트에 의해 씌어진 글을 중심으로 한 이데올로기 연구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러한 연구는 인간의 성해방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성에 대한 억압을 주 내용으로 하는 빅토리아 시대의 성에 대한 관념이 그 대상이었다. 그러나 학자들은 점차적으로 성적 행위에 대한 사회사적 증거를 추적해 나가기 시작했다. 전반적으로 역사가들은 성이나 가족사에 대한 지나친 일반화는 피하면서 지역적인 차이, 문화적 유형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최근의 연구에서는 가족과 성의 역사에서 인종이나 계층의 변수들, 또한 재생산권과 관련된 논쟁의 양상, 마지막으로 동성애와 이성애를 둘러싼 정체서으이 문제 등이 폭넓게 논의되고 있다.

의무에서 낭만으로 : 

성적 자유주의와 피임 및 낙태 :

여성의 재생산권에 대한 담론들 :

 

동성애와 이성애의 정체성 문제

 

오늘날 여성사 연구에서는 젠더 개념의 도입과 더불어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동성애에 대한 연구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몇몇 학자들에 따르면 1940년대와 1950년대는 남성 동성애자와 여성 동성애자의 정체성과 운동이 발전하는 시기였다. 또한 성의 역사 측면에서 동성애자들의 사회와 문화는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고, 주류 문화와는 어떠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가에 대한 연구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20세기 중반까지 동성애에 관한 연구는 소수의 학자들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주로 그 정체성에 관한 서술에 그쳤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 폭이 매우 다양해지면서 이성애를 포함한 성의 역사적 형성 과정을 통해 분석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연구들의 특징은 성이라는 것이 경제 또는 가정 생활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성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권력이 성을 통제해 온 방식을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성에 대한 생물학적 접근이나 심리학적 원론주의에 반한 사회구조적인 접근은  성적인 개념이라는 것이 역사적 산물로서 지적 또는 사회.역사적 연구의 흥미로운 주체임을 보여 주었다.

동성애에 관한 인식 변화 : 결론적으로 보면 그동안의 가족이나 성에 대한 역사연구는 전통적인 형태로부터 근대적인 가족 형태를 중심으로 한 단순한 접근을 시도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학자들은 다양한 형태의 가족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 볼 때 인종, 계층, 그리고 가족 규범은 정치적이나 사회적 체제를 강화시키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다시 말해서 가족이나 성의 역사에 대한 논쟁은 단지 개인적인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닌 정치.사회적안 정책 논의의핵심을 이루어 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가족이 정치적 그리고 사회적 질서의 이상을 대표하던 식민지 시대의 시작으로 해서 '성의 정치'나 '가족의 가치'가 보수적 또는 자유주의적 의제가 되었던 20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미국인들의 가장 사적인 삶의 성격이 어떻게 사회를 구성해야 하는지에 관한 담론의 핵심이 되어 왔다.

 

역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

 

미국 여성사 연구는 1960년대 여성운동의 직.간접적인 영향으로 활기를 띠게 되었다. 여성 사학자들은 여성들의 활동에 대해 서술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이 겪었던 정치, 경제 및 교육적 경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신문화사의 영향을 받은 1970년대 후반의 여성사 연구는 방법론, 주제, 대상 그리고 깊이 등의 여러 측면에서 기존의 여성사 연구와는 큰 차이를 보였다. 1980년대 후반에는 '젠더'라는 개념이 여성사 분석에 새로운 구조로 등장하게 된다. 젠더라는 것은 사회적이나 문화적인 차이에 의해 형성된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남녀 사이에 나타나는 생물학적 차이뿐만 아니라 역사 속의 권력 관계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여성사 연구에 새로운 기본 틀을 제공해 주었다. 여성사 연구는 학문적 성격과 운동의 실천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 제일 큰 과제이다. 여성사와 관련하여 가족이나 성에 대한 연구들은 사회구조적 이론의 적용에 의해서 좀더 광범위한 역사적 분석에 기여할 수 있다. 여성 사학자들이 당면한 과제는 그동안의 여성사 연구를 통해서 여성들을 하나의 독립된 정체성으로 범주화시킨 점을 토대로 이제는 여성들의 역사를 일반 역사 속에 편입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편입은 여성들의 역사를 찾아줄 뿐만 아니라 온전한 역사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여성사 연구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여서으이 사회적 역량의 확대와 새로운 공적 영역의 창출과 참여를 역사적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를 파악하는 데에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현 시점에서 여성사 연구의 가장 큰 문제는 전문화된 기존의 역사학계에서 무리 없이 자리매김을 해나가는 일이다. 역사란 궁극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를 그 목표로 한다고 할 수 있다. 여성사 또한 남의 역사가 아니라 나 자신의 역사, 더 나아가 우리의 역사이다. 따라서 여성사 연구야말로 그동안 한쪽 면만을 고집해 왔던 인류의 역사를 온전히 볼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새로운 역사 접근임을 깨달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