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

[민족이란 무엇인가],에르네스트 르낭,신행선 역,책세상,2002년,(061016).

바람과 술 2008. 6. 15. 05:05

들어가는 말

프랑스 민족주의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1870~1871년의 프랑스와 독일(프로이센)의 전쟁 1914~1918년의 1차 세계대전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이 두 전쟁으로 인하여 모든 계층의 프랑스인들이 자신들의 민족 감정을 결정적으로 표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르낭은 우선 독일과 프로이센을 구별하고 있다. 일관되게 독일을 비판하면서 무조건적으로 응징해야 한다고 유도하기보다는 프로이센의 편협한 군국주의와 봉건성이 독일의 발전을 저해함으로써 그것이 프랑스는 물론이고 유럽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유럽의 평화와 발전을 위하여 유럽강대국들의 공동체로 구성된 유럽연맹을 구상한다. 또한 르낭은 민족성의 기본 원칙을 인종과 언어에 두고 거의 1세기 이전에 이미 프랑스에 흡수, 동화되어버린 알자스, 로렌 지역의 독일 병합이 정당하다는 독일식 민족주의의 원리가 틀렸음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르낭이 민족성의 원칙으로 강조하고 있는 '지역 구성원들의 소속 의지'는, 민족주의와 민족국가 개념의 기본 원리 가운데 하나를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결국 르낭이 민족주의자로서 프랑스인이면서 동시에 유럽인임을 잊지 않고 있는 19세기의 전형적인 유럽인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음을 말해준다.

 

제1장 프랑스와 독일의 전쟁

 

나는 늘 프랑스와 독일 사이의 전쟁을 문명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불행으로 간주해왔다. 유럽의 지적, 도덕적 위대함은 프랑스, 독일 그리고 영국 사이의 동맹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 동맹을 파기하는 것은 진보의 조종(弔鐘)이 될 것이다. 특히 전혀 과장해서도 안 되고 너무 과소평가해서도 안 될 또 다른 세력인 러시아에게 그 나라가 가야 할 방향을 결코 거역하지 못할 방법으로 제시할 것이다. 유럽의 나머지 국가들이 어쩌면 있지도 않은 러시아의 독창성이라는 것을 오인하여 러시아를 버릴 때에만 러시아는 비로소 하나의 위험 세력이 된다. 미합중국은 유럽의 분열이 이 나라들로 하여금 오만한 혈기와 모국(영국)에 대항하려는 옛 감정을 불러일으킬 때에만 위험하다. 프랑스, 영구 그리고 독일의 답합으로 구대륙은 그 균형을 유지했다. 구대륙은 신대륙을 강력하게 통제했으며, 과장된 기대를 품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위험할 수도 있는 거대한 동방 세계를 감시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되었다(프랑스와 독일의 전쟁). 우리의 기대를 품고 있던 구조가 무너지고, 세계를 모든 위험과 탐욕과 난폭함에 노출시키는 데는 한순간이며 충분했다.

 

1.

독일의 역사적 발전 법칙은 프랑스와 전혀 닮지 않았다. 독일의 운명은 많은 점에서 이탈리아와 유

사하다. 프랑스는 경우가 다르다. 10세기부터 프랑시아는 전적으로 민족적이었다. 프랑스 대혁명까지만 해도 독일에게는 굳게 뭉쳐 하나의 민족을 형성한다는 생각이 없었다. 독일은 30년 전쟁이 있고 나서야 독일이라는 조국을 자각하게 되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프랑스 대혁명은 독일로 하여금 통일에 대한 생각을 품게 만든 사건이었다. 사실 독일이 프랑스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처럼 대혁명과 프랑스도 독일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역사에서 합당한 운동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독일이 60년 전부터 전개해온 하나의 민족국가를 이루려는 운동이다. 어쨌든 프랑스에게는 불평할 권리가 없다. 왜냐하면 독일은 단지 우리를 본보기 삼아 이러한 추세에 참여한 것이며, 동시에 17세기와 나폴레옹 제국의 통치하에서 프랑스가 독일에 가했던 억압에 저항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민족성이라는 표제, 그것은 '민족의 영광'인 천재들이 어떠어떠한 민족 감정에 독창적 형태를 부여하고, 애정을 가지고 찬양하며 자부심을 가지는 어떤 것, 즉 민족정신의 거대한 원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독일의 민족자결주의는 이제 역사의 필연적 요구이다. 그러므로 프랑스는 독일이 형성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훌륭한 정치는 불가피한 것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소용이 되는 것이다. 프랑스와의 상당한 우호 관계에서 형성된 위대한 자유 독일은 유럽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으며, 프랑스, 영국과 더불어 무적의 삼위일체를 이루어 세계를, 특히 러시아를 이성에 의한 진보의 길로 끌어들였다. 프랑스에 대한 투쟁 수단으로 인정된 프로이센의 패권은 그와 같은 투쟁이 존재 이유를 상실할 때에만 약해질 것이다.

 

2.

누가 전쟁을 일으켰는가? 그러면 이제 평화를 가져올 사람은 과연 누글일까? ...... 전쟁의 가장 끔찍한 결과는 바로 전쟁을 원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무능력하게 만들고, 상식이 비겁함이나 반역으로 규정되는 치명적인 악순환의 길을 열었다는 것이다. 프랑스가 없는 세계는 독일이 없는 세계와 마찬가지로 훼손된 세계일 것이다. 각자의 다양한 사명을 완수하도록 자신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 평화는 한 민족이 다른 민족에게 반발할 수 없을 만큼 우월할 때에만 보장될 수 있다는 주장 역시 옳지 않다. 패권을 행사하는 모든 민족은, 자신에게 대항하는 다른 모두의 단결을 가져옴으로써 자신의 파명을 준비하게 된다. 평화는 유럽의 공통된 이해에 의해서만, 나아가서는 위협적인 태도로 넘어가고 있는 중립국들 간의 동맹에 의해서만 확립되고 유지될 수 있다. 나중에 각국의 인민이 인류를 위해서 이룩한 것을 명시하고, 어느 특정한 시기에, 다른 나라들보다 몇 가지 우월한 것들을 가질 수 있었던 나라들을 지적하는 것, 그것은 바로 역사의 몫이다. 프랑스가 독일에 관심을 적게 가질 수록 독일은 통일을 이루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독일은 단지 대비책으로서의 통일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프랑스는 곧 프로이센에게 강력한 힘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민족자결주의하는 원칙에 유럽 연방의 원칙, 즉 모든 민족들에 우선하는 집단의 원칙을 결합시킬 때에야 비로소 전쟁의 종말을 보게 될 것이다. 정의의 수호자로서의 연방이라는 원칙은 인류의 기반이다. 바로 이것에 의해 모든 사람들의 권리가 보장된다. "정복자에게 불행이 Vae victoribus!"

 

제2장 민족이란 무엇인가

 

종족을 민족과 혼동하고 있으며, 종족 집단이나 오히려 언어 집단에다 실제로 존재하는 민족집단과 비슷한 절대적 지위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1.

로마 제국이 몰락한 이래로, 더 구체적으로는 샤를마뉴의 제국이 붕괴한 이래로 서유럽은 민족국가로 분열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와 같은 식으로 이해되는 민족국가라는 개념은 역사에서 매우 새로운 무엇입니다. 고대는 민족국가라는 것을 겪지 않았습니다. 로마 제국의 경우는 하나의 조국이라는 형태에 매우 근접해 있었습니다. 이후에 민족의 존재 기반을 제공했던 원칙을 세계에 도입했던 것은 바로 게르만족의 대이동이었습니다. 그후, 원칙적으로 베르� 조약은 계속되는 분열의 길을 제시한 셈이었습니다. 그때부터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은 때로는 우회적은 길을 통하여, 또한 수많은 모험을 겪으면서, 바로 오늘날 우리가 그 개화를 목격하고 있는 완전한 민족적 실체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 다양한 국가들을 특징짓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 국가들을 구성하고 있는 주민들 간의 융합입니다. 현대의 민족은 한쪽 방향으로 모아지는 일련의 사건들에 의해 야기된 역사적 결과물입니다.

 

2.

몇몇 정치 이론가들에 따르면, 우선 민족은 하나의 왕조입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법칙이 과연 절대적인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스위스나 미국은 끊임없이 추가되는 집단들로 형성되었는데, 거기에는 어떠한 왕조적인 기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민족은 왕조라는 원칙없이도 존재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왕조에 의해 형성되었던 민족들도 왕조 때문에 존재를 멈추는 일 없이 그 왕조와 분리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과연 어떠한 명백한 사태가 그러한 민족적 원칙이 생겨나게 한 것일까요? 1. 많은 사람들이 종족에서 유래하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오류이며, 이러한 오류가 지배적이게 된다면 유럽의 문명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민족의 원칙이 옳고 정당한 만큼, 종족들의 기본적인 권리에 대한 원칙은 편협하며 진정한 진보를 위해서도 상당히 위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족적인 고려는 근대 민족국가들을 구성함에 있어서 상관이 없습니다. 결국 진실은, 순수한 종족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종족적인 분석에 정치의 근거를 두는 것은 공상에 기초를 두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종족에 대한 논의의 끝이 없는데, 그 이유는 종족이라는 단어가 문헌학자, 역사가와 생리학자, 인류학자에 의해서 전혀 다른 의미로 파악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지도를 형성시키는 본능적 의식은 종족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며, 유럽의 중요한 민족들은 본질적으로 혼혈민족입니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종족이라는 것이 중요했지만, 그 중요성은 계속해서 약화될 것입니다.  2. 우리가 종족에 대해서 방금 말한 것을 언어에 대해서도 말해야만 합니다. 언어는 강요하지 않고도 화합을 이끌어냅니다. 인간에게는 언어를 초월하는 무엇인가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의지입니다. 사람들이 언어에 부여하는 정치적 중요성은 언어를 종족의 표식으로 간주하는데서 온 것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잘못입니다. 언어는 역사적인 부산물로,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혈통에 대해서는 말해주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어쨌든 언어라는 것이 우리가 영원토록 함께 할 집단을 결정하는 문제에 있어서 영원토록 인간의 자유를 속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언어에 대한 이와 같은 편협한 생각은 종족에 대한 지나친 주목과 마찬가지로 위험성과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저러한 언어 안에 몰아넣기 전에, 이러저러한 인종의 구성원이 되기 전에, 이러저러한 문화의 지지자이기 전에 인간은 무엇보다도 우선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존재라는 기본적인 원칙을 포기하지 맙시다. 3. 종교 또한 근대 민족의 확립에 충분한 기반을 제공하는 것일 수 없습니다. 원래 종교는 사회적 집단의 존재 자체에 집착하는 것이었습니다. 사회적 집단은 가정이 확장된 것이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국가 차원의 종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제 종교는 개인적인 것, 각자의 양심에 관계되는 것이 되었습니다. 4. 이익 공동체는 인간들 사이에 강력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해 관계가 하나의 민족을 만드는 데 충분할까요? 예컨데, 관세동맹은 조국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5. 지리, 사람들이 이른바 국경선이라 부르는 그것은 확실히 민족을 구분하는 데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종족이 하나의 민족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듯이 영토 역시 민족을 만들지 못합니다. 민족은 토지라는 외형에 의해 결정된 집단이 아니라 역사의 깊은 분규의 결과로 생긴 정신적 원칙이며 영적인 가족으로서의 집단입니다.

 

3.

하나의 민족은 하나의 영혼이며 정신적인 원리입니다. 과거에 공통된 영광을 누렸던 것, 현재의 공통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 다시 말해 위해란 일을 함께 이루었고 여전히 그것을 함께 하고자 하는 것이야말로 한 인민이 되기 위한 본질적인 조건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족은 이미 치러진 희생과 여전히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 희생의 욕구에 의해 구성된 거대한 결속입니다. 한 민족의 존재는-이러한 은유를 사용하는 데 개의치 않기를 바랍니다-개개인의 존재가 삶의 영속적인 확인인 것과 마찬가지로 매일매일의 인민투표입니다. 인간의 의지는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입니까? 민족은 영속적인 그 무엇인 아닙니다. 민족은 새롭게 생겨났고, 언젠가는 종말을 고하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유럽연맹이 민족들을 대체하게 되겠지요. 인간은 인종의 노예도, 언어의 노예도, 종교의 노예도, 강물의 흐름의 노예도, 산맥의 방향의 노예도 아닙니다. 인간들의 대결집, 건전한 정신과 뜨거운 심장이야말로 민족이라 부르는 도덕적 양심을 창출합니다. 이 도덕적 양심이 공동체를 위해서 개인을 버린 그 희생들을 바탕으로 하여 자신의 힘을 증명하는 한, 그것은 정당하며 존재할 권리가 있습니다. 미래에 옳은 편에 서는 방법은, 특정한 때에 시류에 뒤떨어진다는 평가를 인내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입니다.

 

해제-에르네스트 르낭 읽기

1. 에르네스트 르낭은 어떤 인물인가?

르낭은 정치적으로는 좌파로 인정받지만, 사실 그는 본질적으로 보수주의자이다. 르낭에게 중요했던 것은 공화정이냐 제국이냐 하는 체제의 문제가 아니라 자유주의를 토대로 하여 학문과 문화의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르낭이 공화주의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것은 그가 교회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생각, 즉 비성직자주의적 입장 때문이었다.

2. 에르네스트 르낭의 생애

3. 프랑스와 독일의 전쟁에 대해서

4. 민족과 조국

민족 개념에 대한 논의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진다. 1. 민족의 영속성을 강조하는 논의가 있다. 이것은 이른바 독일식 개념으로 인종적 공동체가 가지는 항구적인 특징에 주목한다. 즉, 인종적 경향을 강조하는 민족주의이다. 2. 민족을 근대화의 부산물로 간주하는 논의가 있다. 이른바 프랑스식 개면으로 '계약적 형태'이고, 정치적 실재이다. 이에 따르면, 민족주의란 결코 영원한 실체가 아니며, 근대화와 도시화라는 특정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발현한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민족 공동체에 기꺼이 귀속되고자 하는 민족 성원의 주관적 의지, '함께 하고픈 의지'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민족 공동체에 기꺼이 귀속되고자 하는 민족 공동체에 대한 인민들의 자발적 귀속 의지를 불러일으킨 역사적 계기가 프랑스 대혁명이었다. 결국 르낭의 민족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랑스의 패전과 그에 따른 영토 상실이 중요한 맥락을 차지하고 있으며, 르낭에게 프랑스의 패전의 기억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았다.

5. 민족과 인종

6. 르낭과 인종, 그리고 유럽

유럽은 공통된 문명을 가지고 뭉쳐진 여러 국가들의 공동체라는 것이 르낭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각각의 민족은 인종, 언어, 역사, 종교 등에 의해 구성되기는 했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가장 쉽게 인지할 수 있는 것, 그것은 함께 살려고 의지, 동의였다. 여기에서 르낭은 이제 불가능해진 프랑스와 독일의 화해, 그 자신에게는 유럽 문명의 개화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양국의 화해를 위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 방법은 유럽연맹이었다. 물론 이는 각 민족국가의 개체성을 인정하는 결합이다. 르낭의 독특한 인종주의는 생물학적 인종주의에서 강조하는 인종적 우열이 아니라 문화적 차이를 강조하는 '인종 없는 인종주의(신인종주의)'의 원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