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

[우리가 정말 인간일까?],아카넷,2006,(061025).

바람과 술 2008. 6. 15. 05:08

서문 - '인간됨'의 각축장

'인간'이라는 용어에 일관성이 없다면 '인간의 가치'라는 말은 어떻게 될까? 여섯 개의 주요 분야에서 이의가 제기되고 있다. 1. 영장류 동물학에서 다른 영장류가 인간과 얼마나 유사한지 보여 주는 많은 증거가 축적되었다 2. 동물 보호 운동은 우리가 다른 동물들에 비해 특별 대우를 받을 만한 권리를 부여받을 이유가 무엇인지 의심해 보게 만들었다 3. 스스로를 인간으로 정의하는 일의 윤리적 의미에 관한 논쟁이 고고인류학의 문제와 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4. 지난 반세기 동안 생물학은 종이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특성을 띤 자연스러운 분류인가, 아니면 편의에 따라 생물들을 구분해 놓은 집합, 즉 범주에 지나지 않는가 하는 해묵은 철학적 문제의 균형을 깨뜨려 놓았다 5. 인공지능 연구는 인간이 스스로를 정의하는 데 핵심적 요소로 내세웠던 의식, 이성, 상상력, 도덕적 감수성 같은 개념을 철학적으로 재고하도록 자극했다 6. 유전학 연구는 우리 종의 성원이 될 수 있는 기준과 함께 우리가 다른 종들과 얼마나 많은 공통점을 가졌는지를 정확하게 알려 주는 기준도 제공해 주었다.

20세기에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포괄적으로 자신을 정의했다. 그러나 20세기 말에 인간 개념에 새로운 두 가지 문제가 포함되면서 더 복잡해지고 고민스러워졌다. 1. 낙태 허용에 대한 사회적 압력으로 사실상의 하위 인간 범주가 새로 만들어졌다 2. 인공지능과 유전공학 연구가 인간의 미래를 과거만큼이나 의심스러운 것으로 만들었다.

인간 개념의 확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인간이 무슨 뜻인가'에 대해 과거와 다르게 대답하고 다른 문화권 사람들과 다르게 대답하지만, 이 물음에 대답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1. 인간과 동물의 경계 - 인간의 자기 정의 문제

 

우리는 스스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언제부터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을까? 언제부터 사람들이 다른 공동체 성원들을 자신과 같은 부류에 포함하기 시작했을까? 언제부터 사람들이 인간으로 인정되는 존재와 다른 등급, 대체로 '더 낮은' 등급으로 격하할 존재를 근본적으로 구분하기 시작했는가? 인간 정체성에 관한 논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인간과 다른 동물의 경계에 관한 문제였다.

 

동물 왕국의 백성들 : 자기 추방의 불가능성

우리 종과 다른 종을 구별 짓는 것이 나머지 생물과 자신을 별개로 분류하고자 하는 우리의 강박적 충동이라고 생각해보는 것은 솔깃한 일이다. 유사 이래 인간의 인간됨을 증명해 주었던 특성이나 비인간으로 분류된 다른 생물들과 인간을 구별해 준다고 여겼던 특성 거의 모두가 틀렸거나 오도하는 것임이 드러났다. 가장 흔한 오류는 인간만이 도구를 만들어 사용한다는 생각이다. 인간의 특성에 대한 대단히 완고하면서도 아주 일반적인 주장은 인간만이 언어를 가진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을 문화의 문제로 보아야 하는지 '본능'의 문제로 보아야 하는지, 만약 본능의 문제라면 그 본능이 진화를 통해 생겨났는지 아니면 진화론의 용어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특수한 속성인지는 격렬한 논쟁거리이다. 사실 인간이 아닌 종이 자신을 표현하거나 소통하는 방법을 우리가 모르기 때문에 언어 사용 측면에서 인간이 특별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불을 이용하는 것도 예술처럼 인간만이 해낸 일이지만 다른 동물들도 잠재적으로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예전에는 인간에게만 있는 것으로 여겼던 '협동 사냥과 족벌주의적 먹이 분배, 마키아벨리식 사회 책략, 영아 살해, 생식이 아닌 유대를 위한 성교, 집단 간 전쟁'이 침팬지들의 행동에서도 관찰된다. 인간을 정의하는 데 이용할 수 있는 문화적 요소가 있다 하더라고 인간이 아닌 동물에게도 실제로 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에 문화로 인간을 정의하는 것은 실패하게 된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문화가 있는 집단에서 그 문화는 분명 발전하고 변화한다. 자기 인식과 그 밖의 다른 인식이 인간에게만 고유한 것이 되도록 정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이 유일하게 인식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은 근본적으로 설득력이 없다. 다른 종의 입장에서도 얼마든지 비슷한 주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종의 인식의 증거를 다른 종의 의사소통 체계로 바꿀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주장은 증명될 수 없다. 인간이 불멸의 영혼을 가졌거나 신의 섭리로 신성한 책무나 특별한 지위를 부여받거나 기독교도들이 생각하듯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날 만큼 신에게서 선택받은 종일 가능성은 있으나, 인간에 대한 종교적 위엄 때문에 다른 동물들이 신에게 덜 사랑받는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동물'의 도덕성이 인간적인 것이든 인간의 도덕성이 동물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든 이것을 구별하는 것 자체를 같은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과학이라고 할 만한 지식의 한계에세 인간과 다른 종의 차이와 인간이 아닌 종들 간의 차이는 서로 비슷하다고 말하는 것이 공평할 것 같다. 인간은 특이하지만 인간만이 특이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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