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일상의 공간과 미디어], 최효찬,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7,(071203).

바람과 술 2008. 6. 15. 06:16

서장 - 문학을 매개로 '자본의 공간' 읽기

 

1. 어떻게 연구하고 분석했는가

 

르페브르에 의하면,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소비조작의 관료사회'이다. 이 사회는 노동과 상품, 화폐, 관료제 등에 의해 소외되고 일상생활이 체계에 의해 식민화되면서 억압이 일상화된 '테러리스트 사회'의 속성을 띠게 된다. 자본과 결탁한 관료제와 미디어에 의해 소비가 조작되면서 일상생활이 끊임없이 억압되고 강제된다. 그렇지만 개인들은 이데올로기적 장치에 의한 '믿음의 자동화'로 억압 체계 속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편입시킨다. 소비사회가 가속화되면서 파생실재, 즉 하이퍼리얼리티(hyper reality)가 지배하게 된다. 가짜가 진짜보다 더 리얼해지고 모사현실이 실재를 대체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미디어에 의해 파생실재가 소비되면서 일상에서는 미디어에 의한 자기재현이 일어난다. 미디어가 말하거나 보여주는 것이 아니면 말해지지 않는 것이다. 즉 미디어는 현실의 매개 도구가 아니라 형성 도구가 되는 것이다. 또 미디어가 말하고 보여지는 것을 소비하기 위해 노력할수록 소비의 '차이'는 사라진다. 차이가 사라질수록 사람들은 더욱 더 '차이의 욕구'에 집착하며 억압당한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전제조건을 가지고 있다. 1. 일상의 억압이 산업화가 진행된 근대뿐만 아니라 탈근대 '소비사회'에서도 개선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자본과 관료제에 의해 더 교묘하고 은밀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2. '소비사회'는 1960년대부터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탈근대적 현상으로서 전 지구적으로 동시성을 지니지 않는다는 점이다 3. 소비사회에서는 일반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생산이 아니라 소비라는 관점이다 4. 미디어와 정보사회에 대한 비판론적 관점이다.

 

2. 공간의 문화정치에 대하여

 

일상생활공간은 이제 단순히 공간개념으로서가 아니라 자본의 상품관계망에 포섭되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는 세계화라는 자본주의의 전지구적 확산과 궤를 같이한다. 공간의 상품화 과정을 통한 공간의 지배.통제 과정이 매우 정치적인 갈등과 투쟁의 과정임을 시사한다. 이는 곧 공간의 문화정치학의 관점에서 공간을 둘러싼 권력관계로 바라보아야 함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공간은 자본에 의해 단순 규정되지 않는, 집단간 경계긋기와 끼워주기와 밀어내기, 관료주의적 감시 등 다양한 정치가 벌어지는 다툼의 장이다. 누가 어떻게 특정 공간을 지배할지는 기본적으로 권력의 행방에 의해 결정된다. 공간이 생산되고 지배되는 메커니즘이 공간과 권력의 관계라면 그렇게 지배적으로 생산된 공간에 대한 대중주체들의 공간 소비, 즉 공간에 대한 의미부여와 공간의 전유.활용 과정, 주체에 의한 공간의 재현방식이 공간과 주체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제1부 일상의 억압과 미디어 미학

 

1. 도시 : 공간의 자본화

 

르페브르는 도시의 자본화가 진전된 1960년대 이후 서구의 후기자본주의 사회를 '소비조작의 관료사회'라고 규정하고, 여기서는 자본과 관료제에 의해 소비가 조작되는 사회라고 한다. 특히 소비이데올로기를 확산하는 미디어가 이미지의 소비를 만들어내면서 '차이의 욕구'에 따라 소비를 하게 되고, 향략과 여가마저도 강제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의 속성을 '테러리스트 사회'에서  찾을 수 있다며, 이 사회에서 각자는 '차이의 욕구'를 소비하기 위해 자기 자신에 벌을 주면서 자신을 테러리스트로 만든다고 한다. 도시의 자본화가 공간의 위계화를 가속화한다. 도시 공간은 임의적으로 분포하는 것이 아니라 위계화되면서 구조화되고 사회관계의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심화시키게 된다.

 

1) 과잉 억압의 '테러리스트 사회'

 

'테러리스트 사회'는 미시 물리적인 테러리즘이 일상적으로 작동되는 그런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르페브르의 '테러리스트 사회' 개념을 넓게 해석하면, '전유'보다 '강제'가 우세한 사회로, 예컨대 자신의 잉여가치를 자신의 소유하지 못하고 자본가에 착취당하는 상태와 같다. 르페브르에 의하면, 현대 서구사회의 소비를 통제하는 관료제사회는 기술의 발전, 특히 자동화설비가 기업체에 도입되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관료제 사회에서는 소비생활의 통제와 통제의 도구인 광고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관료는 정보나 지식을 통제하는 권력의 핵심으로서 생산증가나 이윤추구를 무엇보다 중요시 여긴다는 점에서 부르주아와 한 진영이다. 오늘날 소비사회에서 생산을 조직하는 사람들은 지불능력이 있는 수요만이 아니라 소비자들의 욕구와 욕망까지고 고려한다. 결국 소비행위는 조직된 합리성 속에 자리  잡게 된다. 소비사회에서는 관료제의 조직 합리성이 소비의 합리성으로 이어진다. 관료제는 국가뿐만 아니라 기업체 등 대부분 조직에서 발견되는 보편성을 지닌다. 르페브르의 소비조작의 관료사회에서는 소비가 이러한 조직의 합리성에 따라 보편적으로 이루어진다는데 기초해 있다. 소비가 합리성을 지닌다면 조직을 최대한 활용해 소비를 합리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르페브르가 억압적인 '테러리스트 사회'의 재생산 기제를 관료제에 두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관료제는 사람들을 관료로 만들면서 그들을 통합시키는 경향이 있다. 관료제는 자기 방식으로 개인의 생활을 합리화한다. 그리해서 마치 관료적 이성이 순수 이성과 동일시되고, 관료적 지식이 인식과 동일시되며, 마침내 설득이 강제와 동일시되듯이 관료적 의식은 사회의식과 동일시된다. 르페브르에 따르면 전후의 근대 자본주의는 노동현장에서 착취와 소외를 지속시켰다. 그러나 지금 소외는 일상생활 자체로, 작업장이 아닌 일상생활 속으로, 재생산과 여가에 까지도 깊숙히 파고들기 시작했다. 여기서 테러는 폭력적인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생활양식에 자발적으로 굴복하게 만드는 상태를 말한다. 르페브르의 테러 개념은 조직의 합리성과 억압적 현실에서 도입된 개념이라고 하겠다. 각자는 자기 자신을 고발하고 자신을 벌주기 때문이다. 이때 공포는 국지적이 아니고 전체와 세부에서 두루 생겨난다. 체계는 각 구성원을 붙잡아 그를 전체에 예속시킨다.

 

2) 도시의 자본화와 주택문제

 

르페브르가 명명한 '소비조작의 관료사회'는 세계대전을 거친 후 1960년대 들어 소비사회로 진입하면서 등장한 후기 자본주의 사회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소비가 수요-공급의 메커니즘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본과 관료기구에 의해 의도적으로 수요를 일으키며 자본주의적 모순을 해결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일상생활의 억압과 강제는 거대 도시화하고 지극히 복잡한 세계경제 속에 편입되고 있다. 그 경제는 지방 중심지가 지방 배후지를 장악하고, 보다 중요한 거대 도시는 저급 중심지를 장악하고, 종국에는 모든 국가가 북미나 서구 유럽의 중심 거대 도시지역에 예속되도록 계층적으로 질서화 되고 있다. 요컨대 궁합함은 돈의 위력이 증가함에 따라 극심해진다. 또한 현대자본주의 사회는 하나의 참된 필요, 하나의 새로운 힘, 그리고 소외된 권력을 지니며 모든 사람을 노예로 옭아매고 있다. 산업화와 함께 인구가 도시로 유입되면서 산업화의 문제는 도시화의 문제로 이행되었다. 도시화의 핵심은 도시로 몰려든 과잉인구에서 비롯하며 자본의 축적과정에서 노동빈민을 필연적으로 낳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본의 축적과정 그 자체가 자본의 크기뿐 아니라 '노동빈민(the labouring poor)의 수도 증가시킨다는 점이다. 자본의 착취.지배의 영역이 자본 자체의 크기와 자본에 종속되는 사람들의 수에 따라 확대된다. 중요한 것은 노동력은 구매자 자신의 개인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구매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구매자의 목적은 자본의 가치증식이며, 그가 지불한 것보다 더 많은 노동이 포함되어 있는 상품의 생산이다. 따라서 노동력의 판매조건은 노동력의 끊임없는 재판매의 필연성과 자본의 형태로 부를 끊임없이 확대재생산하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인구는 그들 자신이 생산하는 자본축적에 의해 그들 자신을 상대적으로 불필요하게 만드는, 즉 상대적 과잉인구로 만드는 수단을 점점 더 큰 규모로 생산한다. 이것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특유한 인구법칙이다. 자본가들이 언제나 마음대로 착취할 수 있는 과잉노동인구는 노동자들에게 노동의 소외뿐만 아니라 주택문제 등을 낳고 있다.   

 

3) 장소의 정치 : 공간은 새로운 계급투쟁의 장(場)

 

자본가에 의한 도시개발 방식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주거환경은 건축자본가들의 잇속으로 인해 더 열악해져갔다. 투기꾼들과 건축업자들은 오밀조밀한 집을 지어 임대수입 등으로 막대한 잇속을 챙길 수 있었던 것이다.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도시는 지배계급과 권력, 자본의 이해관계에 의해 권력화된 도시의 경향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는 또한 노동의 재생산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때로는 가난한 사람들의 거주지들은 자본과 권력에 의해 '위험요소'로 간주됨으로써 구역전체가 고의적으로 황폐화되기도 했다. 공간의 사회적 생산을 주창한 르페브르가 공간은 정치적이라고 주장한 것은 바로 이러한 자본과 권력의 이해관계 때문이다. 르페브르에 따르면, "공간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생산되는 것"이다. 도시화는 바로 공간화 과정의 중추적인 확장으로서 도시는 공간의 재현에 의해 압도적으로 강제되었고 권력화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간이 생산되는 방식과 이러한 생산과정이 야기하는 모순에 관한 이론이 요청되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에서 출발한 르페브르는 마르크스와 달리 '도시혁명'을 통한 자본주의 모순의 지양, 즉 자본주의 모순이 촉발되어 자본주의 체제가 붕괴되지 않고 공간의 사회적 생산을 통해 '지연'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공간이 상품화된다는 것은 자본의 끊임없는 이윤창출의 도구로서 공간이 이용된다는 것을 말한다. 자본주의적 공간생산의 점진적 확장의 효과는 주변부에 의존적인 식민지를 창출하는 반면, 의사결정 중심부는 집적시킨다. 자본주의는 공간착취를 통해 강화되는 반면, 이런 과정은 동시에 자본주의적 지배를 와해시키는 모순을 야기한다. 공간에 대한 지배가 일상생활을 넘어서 근본적이면서 널리 퍼져 있는 사회적 권력의 원천이라는 사고는 르페브르의 일관된 주장이다. 공간과 시간에 대한 지배는 모든 이윤 추구에서 결정적인 요소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화폐, 시간 또는 공간의 구체적인 실제, 형태, 의미를 정의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게임의 기본규칙을 정한다. 시간 지배뿐만 아니라 공간 지배에서도 노동자보다는 자본가에게 우월한 지배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모든 지배계급은 1848년이나 1968년처럼 혁명적 열기가 일어나면 공간지배의 우월성이 위협받기 때문에 공포를 느낀다. 이렇게 보면 계급투쟁은 공간지배력을 획득하기 위한 '장소의 정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공간과 공간조직은 다양한 이해관계와 계급투쟁을 반영하여 만들어지기 때문에, 공간의 생산과정은 곧 권력구조를 재배치하는 과정이다.

 

4) 욕망의 집,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준다."

 

지배계급이나 부르주아지들은 화폐 소유가 공간지배력 강화로 이어지면서 자본의 축적을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포스트모던한 조건에서 자본은 더 이상 '사물'의 형태로 축적되지 않는다. 자본은 정보, 금융서비스, 지식, 그리고 공간 등으로 축적된다.

 

2. 이데올로기 : 기호를 소비하는 껍데기의 사회

 

1) '냉소주의적 주체'라는 유령

 

지젝에 의하면, 오늘날 우리는 자신이 현실에 대한 왜곡된 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슬로터다익은 "그들은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을 잘 알지만, 여전히 그렇게 행동한다."는 냉소적인 공식을 제안한다. '냉소주의적 주체'는 현실에 대한 공식적인 전망이 이미 왜곡되어 있다는 것, 그런 왜곡된 전망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수용한 주체이다. `

 

2) 소비사회의 독송, "나는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소비란 자율적인 주체의 자유로운 활동이 아니라 욕구의 체계를 발생시키고 관리하는 생산질서와 또한 상품의 상대적인 사회적 위세 및 가치를 결정하는 의미작용의 질서에 지배 받고 있다. 보드리야르 이론의 핵심은 현대인이 상품의 구입을 통해 '사물'이 아니라 '기호'를 소비한다는 데 있다. 소비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불확정적인 주변적 영역이 아니고 적극적이고 집단적인 행동이며, 강제이고, 도덕이며 제도라는 것이 보드리야르의 소비사회에서의 소비에 대한 분석이다.

 

3) 시간기계가 된 길들여진 신체 : 감방속의 자유

 

규율에서의 기본단위는 서열 중심적이다. 서열은 어떤 분류.등급 속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위치이다. 규율은 서열의 기술이고, 배열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술이다. 그것은 여러 신체를 한 곳에 뿌리박게 하지 않고, 분배하여 하나의 관계망 속에서 순환하게 하는 위치 결정에 따라 신체를 개별화시키는 것이다. 도시에서 '단일 시간'은 새로운 문화적.경제적 질서의 승리를 알리는 것이었다고 랜즈(D. Landes)는 평한다. '시간 기계'는 자본주의 도시공간에서 개인은 대부분 욕망의 중력장과 권력의 중력에 이끌려 '절대적인 시간'을 갖지 못한채 속도의 강제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이게 바로 개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시간의 테러리즘'이라고 할 수 있다.

 

4) 대타자의 붕괴과 자발적 복종

 

자신이 타락한(?) 세계의 일원임을 인식하면서도 여기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냉소주의적 주체'는 앎과 실천이 분리된 자아를 형성한다. '냉소주의적 주체'는 또한 차이에 대한 소비를 끊임없이 추구하면서 잉여쾌락으로 삶을 이어가는 '소비인간'의 얼굴을 드러낸다. 이러한 '냉소주의적 주체'는 새로운 계급갈등의 핵심인 자본화하는 공간 속에서도 자본의 욕망에 이끌리면서 끊임없이 억압당하고 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화폐의 소유가 바로 공간과 시간에 대한 소유, 즉 사회적 권력의 원천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타자의 붕괴로 생겨난 자유가 실제로는 어떤 부담으로 다가와 규제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킨다는 데 지젝은 이를 '탈근대성의 역설'이라고 말한다. 대타자의 붕괴에 따른 또 다른 반응은 실재로 배후에는 사회를 조종하며 모든 것을 통제하는 어떤 사람이나 조직의 존재, 즉 '타자의 타자'를 믿는 편집증의 징후이다. 지젝은 이런 병리적 상황을 바꾸기 위해 정치적 행위, 더 나아가 혁명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지젝에 의하면, 탈근대적 주체의 곤경을 해결하려면 탈근대의 가능 조건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 소비사회에서 사물의 배후에는 텅 빈 인간관계가 있고, 엄청난 규모로 동원된 생산력과 사회적 힘이 물상화되고 돋보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난폭한 폭발과 붕괴의 과정이 시작될 수 있다고 보르디랴르는 강조한다. 이것이 보드리야르가 말하는 자본주의의 내파(implosion)이자 함열이다. 하비에 의하면, 신체를 마르크스의 이해에 비추어 볼 때 자본축적의 전략이 될 수도 있고, 정치적 저항의 중심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소비사회에서는 소비이데올로기의 재생산으로 '냉소주의적 주체'와 '소비인간'을 낳으면서 주체의 정치적 저항은 무력해지고 자본축적의 전략이 우세하게 되는 것이다.

 

3. 미디어 : 욕구와 억압의 재생산

 

미디어 비판론자들은 기술매체가 탈근대의 억압을 재생산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는데 대부분 의견을 같이한다. 특히 일부에서는 미디어가 더 이상 다양한 이해집단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매개' 도구가 아니라 의견을 주도하고 재현하는 '형성' 도구로서 기능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1) 미디어가 만드는 허위욕구

 

홀의 문화연구는 매체의 반영적 역할, 즉 매체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역할을 믿지 않으며, 언어는 중립적이라는 주장도 거부한다. 문화연구는 현실을 단순히 일단의 주어진 사실로 보지 않고 현실을 구성하는 특별한 방식의 결과로 본다. 말하자면, 매체는 현실을 단순히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모습으로 정의한다고 보는 것이다. 자본주의 도시공간은 점점 더 지배로 포위되고 자본의 욕망을 부추기는 광고가 도시를 자본화하고 있다. 사람드은 일상을 매개가 아니라 형성의 도구인 미디어가 지시하는 것만을 소비하고 미디어에 의해 노출되지 않는 소비는 소비의 욕망조차 일지 않는다.

 

2) 시뮬라크르 혹은 짝퉁 : 가짜가 진짜를 지배한다

 

 보드리야르에 의하면, 소비사회는 배려의 사회인 동시에 억압의 사회이며, 평화로운 사회인 동시에 폭력의 사회이다. 매스미디어에 의해 이미지가 현실이나 실재를 대체하고 지배하고 있다. 이미지는 모든 것을 삼키면서 실재를 사라지게 하고, 파생실재만 남게 한다. 보드리야르는 이게 바로 '이미지의 폭력'이라고 주장한다. 즉 오늘날 폭력을 산출하는 것은 현대성 자체이자 하이퍼모더니티라고 보드리야르는 말한다.

 

3) 시선의 우생학 : 눈길을 끌 수 있는 영상만 살아남는다

 

보드리야르에 의하면, 대중매체를 통해 재생산된 사물과 세계는 이전의 존재론적 의미를 상실한다. 사물의 세계는 자신의 구속력을 상실하고, 정보를 정보로서 생산하는 매개의 형식 속에서 의미를 지니는 기호가 된다. 다시 말해서 대중매체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사물은 내면적 실체성을 상실하게 된다. 반면에 대중매체에 흡수되는 사건들은 대중매체의 추상성 속에서 등가적이고 동질적인 기호가 된다. 다시 말해서 대중매체는 현실세계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서로 참조하게 하는 동질적인 요소를 만든다. 따라서 대중매체의 추상성은 모든 사건들이 지니는 고유한 성격들을 약화시키고 중성화한다는 데 있다. 근대이전에 문맹으로 인해 문자로부터 인간이 억압을 당했다면, 시각매체의 영상 미디어에 의해 억압을 당하고 있다. 영상미디어와 새로운 신종 기술매체가 등장하고 또 융합하는 지금에는 다시 시각적 합성 영상미디어에 의해 억압당하고 있는 것이다. 기술매체에 의해 수많은 영상이 합성되면서 영상세계에 대한 독서장애적 응시 또는 시선의 우생학에 의해서도 소외를 겪게 되는 것이다. 이는 대중매체의 시각적(청각적) 감응에 의한 억압에 이어 매체로부터 이중의 테러리즘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4) '신명나는 허무주의'를 넘어

 

제2부 욕망하는 자본과 공간의 시학

 

4. 공간의 시학 1 : 집으로부터의 불안

 

1) 근대적 노동의 재생산과 집의 문제

 

2) 욕망하는 자본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3) 생활세계의 식민화 : [이 지상에서 가장 큰 집]

 

5. 공간의 시학 2 : 미디어로부터의 불안

 

1) 미디어가 사건을 만든다?

 

2) 미디어중독과 시물라시옹 : [화이트 노이즈]

 

6. 마치며 : 희망의 공간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