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류학

[축제인류학], 류정아, 살림, 2003, (080518).

바람과 술 2008. 6. 15. 06:25

축제의 의미

 

천차만별의 기능

: 인류학적 전통에서 축제는 주로 광범위한 종교현상의 하나이거나 상징적 연행행위의 하나로 연구되었다. 축제는 인간의 기본적 속성의 흐름을 차단하는 것을 파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사회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듯이 축제도 변화하고 있으며, 비일상적 시공간을 구성하는 축제는 바로 이 현 사회의 구조적인 시공간과의 관계 속에서 분석되어질 때에만 그 근본적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축제의 종교적 기원

: 축제는 흔히 축(祝)과 제(祭)가 포괄적으로 표현되는 문화현상이라고 정의된다.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는 축제들은 민속이나 관습의 형태로 남아 있는 경우가 더 많지만, 고대 또는 전통 사회에서 축제는 종교를 중요한 토대로 삼아왔음이 분명하고, 비록 현재 이것이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축제를 이해하는데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는 측면인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축제는 성스러운 존재나 힘과 만날 수 있게 하는 의사소통 수단이 되는 것이다.

의례와 놀이로서의 축제

: 의례적인 관점에서 축제를 분석할 경우에는 축제와 의례와의 긴밀한 관계를 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의례는 한정된 시공간에서의 축제를 포함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축제 또한 의례적인 상황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흔히 발견되기 때문이다.

환타지의 추구 : 인간의 유희적 본성

: 놀이를 통해서 인간들은 기본적인 욕구충족의 충만함을 느끼는 것뿐만이 아니라, 동시에 '더불러 재미있기', '재주를 칭송받기', '슬리의 기쁨 누리기', '규칙 습득하기' 등을 습득한다. 이와 같이 놀이를 하는 '정신'은 높은 수준의 문화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지적 발달과 정신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 방향에서의 놀이란 현실적으로 진지함을 상실한 경박한 것으로 어떤 재화나 가시적인 업적도 남기지 않는 지극히 비생산적이고 때로는 낭비적인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 놀이란 여가시간에 행해지는 고도의 지적인 작업으로 간주되어 소위 상층귀족계급의 '특권'이었고, 중세시대에는 생산노동에 참여하지 않는 유한계층의 '소비적인 활동'이었으며,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진입하게 된 근대 사회에서는 보다 높은 생산성을 함양을 위해서 취하는 '휴식'에 불가한 것이었다. 그러나 거대한 현대적 대중소비사회에 접어들면서 이제 놀이란 인간의 삶의 질을 측정해주는 척도로까지 간주되어서 보다 더 잘 '향유'되어야 하는 인간의 '덕목'으로까지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과 생산성, 경제적 효율성만이 최고의 가치를 가지며, 이것이 궁극적으로 인간행복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된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지배해 왔기 때문에 인간의 유희적 본성의 중요성을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있어서, 놀이를 통해서 추구하는 환타지적 경험은 가능하면 피해야 하는 인간의 부정적인 측면으로 간주되었다.

코스모스와 카오스 : 생의 역설적 찬미

: 축제를 의례적 축제와 카오스적 축제로 구분하려는 경향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인류학적 시각에서 볼 때는 카오스적 축제도 결구에는 의례적 축제 속에 포함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카오스란 비일상적 상황이고 이것은 신성한 의례적 상황으로 규정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축제란 결국 다시 현실로 회귀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지, 현실을 뒤엎으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후자가 목적이라면 그것은 이미 축제르 넘어선 혁명이다. 역사학에서는 흔히 축제를 두 개의 상이한 모델, 즉 뒤르켐적인 모델과 프로이트적 모델로 구분해서 파악하고 있다. 뒤르켐은 종교를 개인적이고 신비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사실'로 보며, 축제를 "사회적 통합을 위해 기능하는 일종의 종교적 형태"라고 규정한다. 즉 그에게 있어서 축제 개념은 제의(rite)와 동일하다. 그에 반해서 프로이트는 축제를 공정성과 즉흥성, 디오니소스적인 부정과 인간 본능을 억압하는 것의 폐기, 해방을 향한 문화하고 본다. 즉 그에게 있어서 축제는 통합과 질서의 유지라기보다는 '금기의 위반, 과도함과 난장트기'이다. 제는 격식을 갖춘 금기의 파괴이며, 나장트기는 그 본질이라고 본 것이다. 

구조와 리미날리티 : 비일상성과 전도

: 축제에서는 흔히 비일상적인 전도현상이 발견된다(바흐친). 이렇듯 축제를 일상생활의 '단절', 즉 하나의 의례적인 상황으로 간주할 경우에, 축제는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의식이 치러지는 신성하고 종교적인 순간과 장소가 된다. 사회인류학자이자 상징인류학자였던 빅터 터너는 이러한 신성하고 종교적인 순간을 '리미날리티(Liminality)단계'라 칭하고 이러한 단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나 그들이 모여 있는 상황이나 공간을 '코뮤니타스(Communitas)'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러한 리미날리티 단계는 영원히 또는 장기간 지속되는 단계가 아니라 일시적으로 끝나는 단계이다. 따라서 대단히 압축적으로 비일상적인 상황이 표출되기 때문에 신성한 단계로 간주된다. 또한, 이러한 코뮤니타스적인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현상으로 자유, 평등, 동료애, 동질성 등을 지적하였다. 물론 이러한 코뮤니타스적인 시공간은 일시적으로 끝나지만 그 코뮤니타스를 경험하기 전의 우리와 경험한 다음의 우리는 분명 동일한 존재가 아니게 된다. 빅터 터너는 경계에 있는 이러한 '리미날'한 단계에 집중되어 있다. 이 단계는 의례를 통해 변화가 일어나기 전 과정에서 모호한 행동을 특징으로 하는 잠정적 단계, 즉 이전 상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데 새로운 단계는 아직 오직 않아 재분류가 일어나는 단계이다. 결국 이는 어떤 것도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무정체성의 단계이다. 이러한 무정체성의 단계에서는 사회적인 지위나 서열을 나타내는 어떤 지위나 재산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들은 곧 이어서 경험하게 될 새로운 사회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 새로운 힘을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초월적 에너지의 획득

 

현대 사회와 축제

 

축제의 상징성과 유사종교성 : 무용한 것에 대한 관심

: 넘쳐나는 문명의 혜택을 받고 있으며, 이윤의 극대화, 경제적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현대인이 추제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 자체는 일종의 모순이다. 왜냐하면 축제는 생산적인 것과는 관심이 멀고, 오히려 대단히 파괴적이고, 낭비적이고, 소비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스스로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차원에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아 헤매는 존재이다. 현대인은 삶을 특징짓는 대표적인 요소로 세속화, 탈종교화, 도시화 등을 들 수 있다. 축제 속에서 상징적으로 표현되는 성스런 영역은 일상적 삶의 세속적인 부분의 존재가치를 더욱더 부각시켜 주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현대 사회에서 연회되는 많은 축제들에서는 상징적인 성스러움과 상징적인 세속성이 의도적으로 구분되어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축제와 문화정체성 : 문명 속에 숨어있는 유토피아를 찾아서

: 엄청난 정보의 홍수 속에서 거대한 과학문명에 짓눌리고 딱딱한 언명 또는 이데올로기가 개인이나 집단의 자유로운 상상력보다 더 우세한 힘을 가지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끊임없이 '유토피아'를 동경한다. 우리는 축제 속에서 유토피아를 찾고자 하며, 이를 통해서 자신의 생존 의미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즉 자신의 정체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모든 인간의 고차원적 욕구라고 할 수 있고,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본적인 토대 중의 하나가 바로 문화정체성의 확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의 삶 속에 살아 존재하는 전통성의 확인을 통해서 삶의 정당성을 재확인하고, 그 속에서 문화적 정체성을 보다 견고히 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곧 자신의 삶의 존재 의미와도 직결된다고 볼 수 있고, 축제가 바로 이러한 과정의 중요한 매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축제와 여가 향유 : 호기심의 긍정적 실천

: 현대인들의 개인화 또는 원자화 경향은 더욱더 가속화되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 이외의 것에 대한 관심이 완전히 없어졌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와는 반대로 개인적 생활의 비중이 커지면 커질수록 타자의 삶에 대한 관심은 더욱 강도 높게 증폭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욕구를 보다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충족시키고자 하는 것이 바로 새로운 볼거리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축제의 현대적 의미와 내용은 그것이 본래 근원했던 사회.문화나 정치.경제적 배경과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축제의 대부분이 일종의 '스펙터클'이 되면서 수많은 전통적 요소들이 재창조되거나 재고안되었다. 실제로 축제에는 새로운 의미가 계속 부여되지만 그와 동시에 더욱더 민속적인 것이 되면서 항상 '전통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축제들은 참여하는 축제에서 관람하는 축제로 변해가고 있는데, 이러한 변화의 방향을 되도리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

 

소수민족들에게서 발견되는 다양한 축제 형태

 

소규모 원시 사회는 축제연희 형태 속에서도 다양한 정치, 경제, 종교적인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축제연희라는 것이 비일상적이면서 특별한 행위라기보다는 일상생활의 연장이거나 일상의 또 다른 표현인 경우가 많다. 특히 많은 경우에 원시적 소수민족들에게서 보이는 축제연희 형태는 사회구성원간의 호혜성의 재확인과정이면서 동시에 주변의 서구 사회와 교류할 수밖에 없게 되면서 겪게 되는 사회 변화에의 적응기재로 표현되는 경우를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축제 속에서는 단순히 먹고 마시는 것뿐만 아니라 신이나 인간에게 재물을 바치고 또 상호간 교환하면서 끊임없이 증여와 반대증여의 순환이 일어난다. 궁극적으로 이런 증여(don)와 반대증여(contre-don)는 보다 조화롭고 평화로운 일상적 삶을 영위하게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즉 모스는 이러한 문화현상 속에서 하나의 '전체 사회적 사실(total social fact)'로서 증여를 통해서 호혜성의 원리를 추출해낸다.

돼지 축제와 화식조 경연 : 재화의 순환을 통한 사회관계 재확인

: 뉴기니 사회에서 돼지는 중요한 부의 상징이며 잉여생산의 축적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잉여물은 계속해서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시기가 되면 도살되어서 마을사람들 간에 또는 이웃 마을사람들에게 공정하게 분배된다. 물론 분배되는 양은 이 돼지도살축제를 벌이는 당사자와의 친밀도와 의무 관계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이것과 유사한 것이 뉴기니 지역에서 발견되는 화식조 경연인데, 이것은 일종의 재물나눔을 통한 재정적 무장해제를 의미한다. 일종의 주고받고 되돌려주는 것을 되풀이하고, 자신의 재화를 없애고 덜어 내놓음으로써 마을 간에 생길 수 있는 분쟁의 씨앗을 미리 제거하는 것이다. 즉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에 비해 지나치게 부유해짐으로 해서 생길 수 있는 부의 불균형의 위험을 방지하고 하는 것이다. 물론 현재는 화폐경제가 도입되면서 무상으로 음식이 제공되기보다는 돈을 받고 음식물을 사고파는 과정 속에서 누가 더 많이 팔고 많이 살 수 있느냐를 경쟁하는 것으로 바뀌기는 하였지만, 재화가 끊임없이 순환되면서 사회적 관계가 재확인하는 과정으로서의 축제의 기능에는 변함이 없다. 

싱싱 비지니스 : 사회변화의 적응기재로서의 축제

: 60년대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축제를 공동체 내의 평등성과 부의 재분배 체계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그 후 많은 원주민 사회에서 빈부의 격차가 커지기 시작하면서 축제는 새로운 엘리트층의 향상된 경제적 지위를 확인시켜주는 수단이 되기도 하였다. 파푸아뉴기니의 고산지대에서 행해지던 돼지도살과 고기분배의례는 70년대 중반부터 '싱싱축제'라는 상업화된 축제로 바뀌었다. 이 축제가 일종의 사업으로 간주되면서 사회적 리더들에게는 정치적 영향력을 획득할 수 있는 새로운 기재가 되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싱싱축제는 마을 간에 돌아가면서 경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데, 그것의 목적은 지역의 화합이라기보다는 경제적 부의 축적과 집단 우월성의 확보이다. 그래서 축제에 성공했다는 것은 축제를 조직한 공동체에 대단히 많은 양의 돈이 유입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몇몇의 공직자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대 사회에서 제공되는 '보상'으로부터 제외되었고, 이들이 부를 획득하고 위세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만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전통축제를 변형시키는 것이었다. 싱싱축제는 결과적으로 파푸아뉴기니 고산지대의 농민적 자본주의를 형성하는 중요한 기재의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동일한 이름으로 전해 내려오는 축제라 하더라도 그것이 어떤 사회.문화.역사적인 맥락에서 연희되느냐에 따라 축제의 의미는 상당히 또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서구 사회에서의 축제

 

서구적 축제의 기원 : 사육제와 사순절

: 민중축제의 가장 대표적인 예이면서 서구적 축제의 기원으로 카니발 축제가 언급된다. 특히 절정을 이루는 시기는 사순절 전의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이다. 흔히 마르디 그라(Mardi Gras)라고 알려진 축제는 바로 이 화요일에 열리는 것을 말하고 기름기로 얼룩진(gras) 화용일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즉 질펀한 축제의 마지막 날을 즐긴다는 것이다. 즉 사순절이라는 금욕기에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벌이고 먹고 마시는 향연의 시기이다. 카니발의 어원은 보통 3가지가 전해 내려온다. 1. 'carrus navalis', 즉 '배 마차'라는 뜻으로, 이것은 로마력을 기준으로 한 해의 맨 마지막 달인 2월에 로마에서 행해지던 정화와 맹세의 의식에 사용되던 배 모양의 형태를 한 행렬의 마차에서 연유한 것이다 2. '고기를 걷어낸다'거나 또는 '고기를 삼켜버린다'는 뜻의 'carne(고기)'와 'leva(걷어낸다 또는 삼켜버린다)'의 합성어로 알려진 것이다 3. '고기(caro)'로  '잔뜩 배를 불린다(valens)'라는 뜻이 있다. 이와 같이 사육제 시기에 벌어지던 카니발이란 본래 일상생활의 흐름을 단절하고 평소에 금기시되었던 성직자의 위선에 대한 조롱, 외설 등이 용인되는 시기이며, 농촌사회에서는 비생산적이었던 겨울이 지나고 자연의 생산성이 증가하는 봄의 도래를 맞이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즉 일상에서 억압된 본능을 축제 기간 동안 해소할 수 있게 제도적으로 허용함으로써 정치적인 요소로 발전하는 것을 미리 방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축제는 인간의 공격 본능을 의례화함으로써 그것이 폭발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안전장치 역할을 하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가면을 통해 본 유럽 축제의 상징적 의미와 기능

: 가면은 주로 얼굴을 가리는 도구를 말하는 것이지만, 일반적으로는 얼굴과 온몸이 동시에 감춰지고 새로운 모습이 나타난다. 축제라는 비일상적 상황에서 가면이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실로 무궁무진하다. 즉 축제 속에서 '타자성'을 드러내는 것은 단순히 본래의 모습을 가린다는 것을 넘어서서 또 다른 차원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것은 문명의 발달 정도와 상관없이 모든 인간에게 내재된 또 다른 삶의 양태라고 볼 수 있다. 구체적이고 정확한 목적을 가지고 사용하는 가면과는 달리 축제 때 사용되는 가면은 분명한 의미를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다의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가면은 사회적 변화를 유도한다기보다는 변화를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가면은 일상의 전도를 통해서 기존 체계의 정당화가 아닌 상호성으로 사회적 이해의 상황에 들어가게 하는데 보다 효율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매개자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또한 가면은 정체성을 변화시키는 동시에 고정시키고 개인의 정체성을 감춤과 동시에 또 다른 정세성을 부여한다. 가면을 통해서 신화와 전설은 구체화되고, 역사성은 현실 속에 표현되며, 동물성과 인간성이 결�되며, 초자연적 존재와의 직접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다. 가면축제는 하나의 연행예술로 발전하기도 하고, 이 속에서 스스로가 연극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은 현대 자본주의적 사회의 상업화와도 자연스럽게 만난다. 현재의 연회되는 가면축제가 대단히 오래전부터 연회되어 왔거나 신화적 기원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과거의 신화성이나 종교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은 것의 없다. 가면의 상징성은 흔히 축제 속에서 세속적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변이된다. 대조적인 두개의 가면은 세상을 양극단으로 나누어 보려는 세계관의 표현이다. 간혹 이 두개의 양 극단을 동시에 가진 진 광대가 나타나 판을 뒤엎어버리기도 한다. 여기서 가면은 규범에 얽매이지 않은 또는 '규범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창조성의 발현체로 간주된다. 아놀드 반 제넵은 통과의례의 연구를 통해서 우주적인 이행과정인 계절의 주기와 사회적 이행과정인 세대교체 사이에 분명한 연관성이 있음을 규정하고 이 두 종류의 이행과정이 가지는 연관성을 '분리기', '이행기', '재통합기'라는 삼단계로 설명하고 있다. 현재 유럽 사회에서는 가면축제의 종교적이고 사육제적인 의미가 쇠퇴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현대의 문명화된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연회되면서 계속적으로 만들어지고 전수되고 있다는 사실은 과거 근원적인 사회에서는 갖지 못했던 새로운 의미와 기능을 획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면을 사용한 축제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고, 동시에 다양한 상징적 의미를 효율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진다. 많은 축제들이 과거의 삶의 연속선상에서 연회되기보다는 19세기 말 이후의 민족주의적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하나의 '민속화된' 축제의 성격을 띠는 것도 많기 때문이다. 현재 연희되는 많은 축제들은 '도시화된 사회'의 모델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축제가 연회되는 '사회적인 장소'는 더 이상 '공동체적인' 형태를 보이지 않고 있다. 준거 단위로서 선택된 전체적인 사회는 이 경우에 초도시적인 수준에 위치하게 되고, 여기서 도시는 '사회적인 기능'의 자율성을 잃어버린 '특수한 사회적인 틀'이 될 뿐이다. 따라서 현재의 축제의 시간이나 장소는 이제 이 '사육제적인' 특성에 들어맞지 않게 된 것이다. 따라서 '도시화된 사회'에 근거하고 있는 축제를 '사육제저인 것'과는 구별시켜 '민속화된 사육제' 또는 보다 일반적으로 '민속화된 축제'로 불러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현대 서구 사회의 축제 의미와 사례들

 

종교적 축제의 잔존

: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는 축제의 대부분이 그 기원에 있어서는 종교적인 의미를 가진 것이 많지만, 현재는 종교적 신성성보다는 세속적 여흥거리로 대부분 그 본래의 성질이 변화되었다. 대부분의 기성 종교들은 소위 구세(救世) 축제라는 이름의 축제를 가지고 있다.

종교성.역사성.유희성의 결합

: 적당한 종교성은 축제의 정당성의 근거가 되는 동시에 현대인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연희형태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최근에 올수록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사실 대부분의 축제들이 종합적으로 여러 다양한 복합적인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분명한 경계를 지어 구분하는 것에는 무리가 따른다. 

지역민의 화합과 문화정체성의 표현

: 지역주민들의 삶을 직접 반영하고 있는 축제는 지역주민의 실제적 삶(정치적, 경제적, 역사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면서 지역의 사회.문화적 특징들이 축제에 자연스럽게 스며있어 지역주민들의 여흥거리인 동시에 지역의 홍보 효과까지 낼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지역 홍보와 관광자원으로서의 축제

 

한국의 축제

 

한국 축제의 원류

: 제천행사는 힘든 농사일과 휴식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농경사회의 풍속이다. 농사일로 지쳐 있는 피곤을 풀며 모든 사람들이 마음껏 즐겼던 일종의 공동체적 축제이자 동시에 풍년을 기원하고 추수를 감사하는 의식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고대의 축제는 국가적 공의(公儀)와 민간인들의 마을굿이라는 것으로 나뉘어져서 전해 내려오게 되었다(조선 전까지는 팔관회와 연등회 등). 조선조에는 중국의영향을 받아 산대잡극이 성행했다. 즉 광대줄타기, 곡예, 재담, 음악 등이 연주되었다. 민간차원에서는 미을굿이나 두레가 축제적 고유 성격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현대로 들어오면서 우리는 우리의 이러한 축제적인 전통을 이어 내려오지 못하였다. 특히 일제하에서 고유의 민속놀이는 미신 행위로 간주되어서 버려야 할 것으로 강제되었다. 해방된 이후에도 조선조의 유교 개념으로 이단시된 놀이의 개념이 나태와 동의어로 전수되었으며, 이것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겨를도 없이 '지극히 낭비적인' 축제에는 관심조차 두지 못했다.

한국 축제의 현 실태

: 80년대 후반을 넘어오면서 축제의 수와 종류가 급격히 증가하게 되었다. 특히 1995년 지방자치가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각 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지역적 특성을 강화하여 정체성을 확고히 드러내면서 지역주민의 화합을 도모하려는 축제들이 관 중심으로 조직되어 상당한 예산이 소요되기도 하였다. 여러 축제들을 주제별로 나누어보면 다음과 같다. 1. '마을굿으로서의 축제'가 있다 2. '지역정체성의 강화'라는 것을 주 목적으로 하는 축제들이 있다 3. '관광과 여흥거리'로서의 축제가 있다 4. '도시적 성격'의 축제를 들 수 있다. 대부분의 축제는 1950년대 이후에 생겨난 것이다. 아울러 1994년 이후에 생겨난 축제가 현재 연회되고 있는 축제의 50%를 넘는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축제 수의 급격한 증가는 축제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의 증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며, 또한 자치단체에서는 지역축제의 육성과 지역 발전을 동일선상에서 보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축제의양이 이렇게 급격하게 증가하는 것은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있다.

단오제

한국 축제의 문제점과 해결방안

: 현대 한국 축제가 가지는 문제점으로 가장 흔히 지적되는 것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1. 관 주도형 축제의 남발로 인한 상부하달식 축제 거행의 문제 2. 일회성 이벤트성 행사로 인한 경제적.시간적 낭비 3. 지역주민을 비롯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부족과 참여 방식에 대한 논의 부족 4. 과도한 관광상품화에 따라 진정한 축제정신의 결여 5. 역사적.지역적.전통적 고유성을 담은 축제문화 전수 의지의 부족 6. 획일화의 문제. 이러한 결점들이 첨예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축제가 가지는 기본적인 속성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의 부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지적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염두해 두어야 할 몇 가지가 있으며, 단기간의 즉각적인 효과만을 원한다면 결코 이룰 수 없는 방안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1. 축제 참여자들간에 지역적.문화적 공감대를 마련해야 한다 2. 축제는 공동체의식의 표현이지 수단이 될 수 없다. 즉 축제는 단지 그것이 가지는 외면적 의미가 아무리 좋아도 존재하지 않던 공동체의식을 단번에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3. 관 주도적 이미지를 청산해야 한다 4. 마을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5. 축제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보다는 스스로의 자긍심과 자부심의 표현이어야 한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꾸미는 축제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매년 새로운 것을 새롭게 만들어 보여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전통적인 요소가 비록 즉각적인 효율성을 보여 주고 있지는 않지만, 장기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이것은 현재의 세속적인 일상에 가치를 부여하고 결국은 보다 나은 미래의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중요한 지침서의 역할을 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특히 이것은 정신적 구심점으로만 머물지 않고, 현대인이 일상생활에서 구체적으로 느끼는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현실적인 대안으로서의 실질적인 기능을 하기도 한다는 점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