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류학

[신의 발명 - 인류의 지와 종교의 기원], 나카자와 신이치, 김옥희, 동아시아, 2005, (141023).

바람과 술 2014. 10. 23. 01:40

머리말 - 카이에 소바주에 대해서


서장 스피리트가 밝히는 신의 비밀 

근대 일본어에는 두 종류의 '신'이 있는 셈입니다. 하나는 God이나 Dieu와 같은 단어의 번역어로서, 주로 클리스트교와 함께 일본어 안으로 들어온 신입니다. 이 신은 인간으로부터도 그리고 다른 신들로부터도 초월해 있는 존재로 간주됩니다. 인간이 감각을 통해 파악하고 사고를 통해 인식하고 행위를 통해 만드는 세계의 모든 것으로부터 초월해 있으며, 그 세계를 창조하고 거기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 바로 이 신입니다. 이 신은 감각으로부터도 초월해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이미지로서 파악할 수도 없으며, 본래는 그 형상을 묘사할 수도 없을 정도로 고도의 추상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또한 이 신은 모든 정령들을 포함한 스피리트들을 초월해 있습니다. 그런데우리는 또 다른 종류의 '신'을 알고 있습니다. 이 신은 본래 자연현상과 결합된 구체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요컨대, 이런 신들은 본래는 정령과 유사한 성질의 것이었는데, 점차 다듬어져 지금 남아 있는 것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스피리트 세계와의 밀접한 관계를 상실한 것은 아닙니다. 이 신은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초월적인 측면도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과는 달리 인간의 감각이나 사고가 만드는 세계 밖으로 완전히 초월해버리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신은 스피리트들의 그룹에서 탄생한 것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신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료였던 스피리트 그룹에서 빠져나와 어떻게 해서 단독으로 신으로서 자랍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에 대해, 스피리트 세계의 내면으로부터 이해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져야만 할 겁니다. 이제까지 많은 인류학자와 종교학자들은 스피리트가 신으로 진화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이런 사고에는 커다란 난점이 있습니다. 애니미즘의 사고가 지배적이던 사회에서 유일신으로 착각할 만한 신에 대한 사고가 공존하는 경우를 적잖이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시점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스피리트에서 신이 이탈한 일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그 과정에서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진화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저의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즉 수장에서 왕으로의 변모는 사회 진화의 필연이 아니며, 왕과 국가가 출현해도 좋을 모든 여건이 갖추어져 있는 사회에서도 현명한 수장들은 자진해서 왕과 같은 존재가 되려 하지는 않았다는 거지요. 스피리트들 중에는 언제 유일신으로 변신해도 상관없을 정도로 매우 훌륭한 스피리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피리트들의 그룹에서 이탈해 초월자의 위치로 진출하기를 거부해온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 위대한 스피리트들은 스피리트들의 왕이 되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왕과 국가의 발생은 인류가 만든 사회에 회복 불가능한 결정적인 변화를 초래했습니다. 유일신으로서의 신의 발생에 대해서도 같은 표현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 두 프로세스, 즉 국가의 발생과 신의 발명은 내면에서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스피리트는 인간의 사고나 의지나 욕망으로 가득찬 '현실' 세계에서는 멀리 떨어져 닫힌 공간 속에 숨어 지내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멀리 떨어져 닫힌 공간 속에 숨어 지내지만, '현실'과 완전히 차단되거나 격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밀폐된 공간을 덮고 있는 얇은 막 같은 것을 통해 출입을 반복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막이 있는 장소에서 스피리트의 힘이 '현실' 세계와 접촉할 때, 물질적인 부나 행복의 '증식'이 일어나는 셈입니다. 이런 현상은 전부 다양한 형태의 '경계'에서 일어납니다. 완전히 이쪽 세계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저쪽 세계로 분리되어 버린 것도 아닌 '경계'를 통해서, 스피리트의 특성을 가진 존재는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일을 반복해왔습니다. 따라서 스피리트가 모셔져 있는 장소도 자연히 그런 '경계' 지대에 모여 있습니다. 


제1장 뇌의 숲의 아침


남아메리카의 선주민이나 구석기 시대에 그런 문양을 벽화에 그린 사람들, 그리고 신석기 시대 이후에도 일종의 신성도형으로서 집 장식을 위해 사용해온 사람들은 환각성 식물을 비롯한 다양한 방법에 의해, 자신의 마음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눈에 비친 유동하는 빛의 패턴을 스피리트와 접촉이 실현된 증거로 해석하려 합니다. 그에 비해서 서구의 생리학자들은 그런 빛의 패턴을 뉴런의 발화현상이나 시신경의 흥분으로 환원하여 이해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 근본은 서로 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둘 다 '내부시각'이라는 현상을 의식과 물질의 경계면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고대인이나 선주민들은 환각성 식물로 인한 '내부시각'을 스피리트는 존재와 연결시킵니다. 스피리트는 인간의 사고나 의지 밖에서 활약하는 것으로 제어가 불가능한 존재입니니다. 한편 서구의 과학에서는 내부시각의 문제를 정신활동의 '기본과정'으로 환원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도 역시 '내부시각'을 마음의 작용 가운데 가장 물질적인 것에 가까운 '기본과정'인 뉴런의 발화과정과 연결해서 이해하려고 합니다. 결국 두 관점 모두 '내부시각'이 마음의 활동의 '밑바닥'에 맞닿아 있다고 하는 점에서는 일치합니다. 이 '밑바닥' 부분에서 마음은 물질적인 과정과 접촉을 합니다. 그런 장소가 예전부터 스피리트와의 접촉 장소이자 스피리트의 힘의 원천인 '은하'의 공간으로 인식되어왔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즉 인간의 의식을 뛰어넘은(초월한) 스피리트는 동시에 물지로서의 본질을 갖습니다. 


스피리트는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장소에 살고 있으며, 거기서는 마음의 작용과 물질의 과정이 혼연일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내부시각'의 문제는 이 점을 크게 클로즈업해서 보여줍니다. 스피리트로 인해 인류는 처음으로 '초월'이라는 것과 접촉하게 된 셈인데, 그것은 일신교의 입장에서 보변 그야말로 기묘한 '초월'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스피리트는 인간의 통상적인 능력을 뛰어넘는 영역에서 오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그곳은 물질의 근원이 나타나는 장소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제2장 최초의 '초월'


유동적 지성의 이동에 의해 '어떤 대상에 대한 사고'라는 것이 발생하는데, 유동적 지성은 어떤 대상에 대해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 자체를 사고하면서 여러 영역을 횡단합니다. 어느 영역에도 소속되지 않는 사고, 어떤 대상에 대해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 자체에 대해 사고하는 사고, 사고가 탄생하는 곳 여기저기서 발견되면서도 발생한 사고를 항상 뛰어넘어버리는 사고, 한마디로 말해서 '사고 자체'라는 것이 유동적 지성과 함께 싹트기 시작합니다. 사고를 초월한 것이란 사고와 별개의 것은 아닙니다. 


'순수증여'는 구체적인 물질성을 가진 선물을 상대방에게 건네는 것을 부정했습니다. 물질적인 형태를 갖고 있지 않은,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유동하는 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동해가기 위해서, '순수증여'는 물질을 제공하는 증여를 초월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그것은 증여에 대한 답례를 부정합니다. 이런 특징은 전부 '순수증여'가 '초월'과 관련이 있음을 나타냅니다. 순수증여는 증여의 원리 안에서 출현해 증여의 고리를 절단하는 신의 작용입니다. 증여는 가장 오래된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한 형태입니다. 결국 증여 역시 유동적 지성으로 가능해진 '인간적인 행위'의 한 형태인 셈입니다. 


'초월'이라고 하면 어딘가 인간 밖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인양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사실 '초월'은 마음의 내부를 관통해 일어나는 것입니다. 생물은 주위 환경의 변화에 영향을 받기 힘든 '내부환경'이라는 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확보된 내부환경의 안정(호메오스타시스, Homeostasis)을 지키기 위해, 외부로부터 다른 의지나 기구를 가진 생명체가 들어오기 어렵게 하는 면역 시스템도 발달시켰왔습니다. 그럼으로써 생명체는 내면적인 '자유'를 획득하려 해왔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초월적인 것'에 대해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현생인류는, 지상에 출현한 이후 2만여 년 동안 이 관념이라는 능력을 자기 밖에 있는 자연을 향해 확대해, 자연을 뇌 안에서 짜인 '계획'에 따라 대폭적으로 개조해버리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은 스피리트 가운데서 신이라는 존재가 출현한 이후의 일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스피리트에 의지해 살아왔던 인류는, 유동적 지성이 개척한 '초월'의 영역에 일어나는 것(그것은 마음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과 외부에 펼쳐져 있는 자연 사이에 일종의 통로를 만들어, 내부와 외부를 잇는 효과적인 방법을 고안해냈습니다. 


성서나 물리학은 마음(의식)의 내적 체험과 외부세계의 현실을 하나로 통합해가는 노력을 거의 거부합니다. 


'세계는 스피리트로 충만해 있다'라는 사고는 보통은 '애니미즘'으로 치부되곤 합니다. 하지만 스피리트가 인간의 마음속에,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뇌 안에 살고 있으며, 마음 내부의 체험과 외부의 현실을 잇는 통로로 자유롭게 왕래하던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렇게 간단히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스피리트가 살 장소를 상실한 세계야말로 비정상적으로 편협해져 시야가 좁아진 세계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제3장 신이 되지 않은 그레이트 스피리트


1920년대에 빈의 민족학자 슈미트신부는 신 관념의 발달을 둘러싼 진화론적인 학설을 완전히 뒤엎는 다음과 같은 가설을 제시했습니다. '유일신의 관념은 진화론적인 인류학'이론에서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애니미즘, 다신교, 샤머니즘 등의 단계를 거치며 점차 진화한 인류의 신 관념의 마지막 단계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인류의 마음에 발생해 있던 것이다. 그 증거로 전세계의 민족신을 둘러싼 오래된 사고 가운데서 '지고신(지극히 높은 신)'에 대한 사고를 발견할 수가 있다. 이 '지고신'은 그 어떤 스피리트보다도 뛰어난 단 하나의 신이므로, 유일신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즉 인류의 마음속에 구석기 시대부터 이미 일신교가 싹터 있었던 셈이다.


슈미트 학설의 절반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학설은 '그레이트 스피리트'에서 유일신으로 전개되는 도중에 건널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도랑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일신교가 성립할 때까지 그런 '지극히 높은 신'의 관념이 잊혀 있었다는 것도 신용할 수 없는 주장입니다.  

 
제4장 자연사로서의 신의 출현


똑같은 지적 능력을 갖고 있을 터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계기로 인해 인류의 마음(정신)이 만들어지는 방법과 위상에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나, 각자의 마음이 포착하는 세계는 제각기 다른 모습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초월'의 영역을 마음속 어디에 배치하느냐에 가장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차이는 스피리트밖에 없는 세계에는 국가가 없지만, 신이 있는 세계에는 국가의 존재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데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스피리트들이 무리지어 있어 바로 그 부근이 '초월'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문을 의미한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자연의 다양한 장소에서 발견됩니다. 그러나 '초월' 영역으로의 출입구는 인간의 마음속에도 열려 있습니다. 마음의 내면에도 '초월'로 통하는 출입구는 열려 있으며, 마음 밖에 펼쳐진 자연 곳곳에서도 그것은 발견됩니다. 그 세계에는 특별한 '초월자'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은 채 '현실'과 '초월'이 하나로 이어져 있습니다. 


'대칭성이 높다'라는 의미는, 에너지의 유동체인 스피리트 세계 내부에서 스피리트나 그레이트 스피리트가 자유로운 방향으로 운동이 가능하고, 자유자재로 변형(변용, 변태)이 일어나, 고정이 불가능한 상태를 말합니다. 실제로 다종다양한 스피리트들은 변신을 특기로 갖고 있어, 그 위치나 성질이 수시로 뒤바뀝니다. 그런 스피리트의 세계에 어떤 '압력'이 가해질 때, 그래서 고차원의 대칭성 상태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신의 관념이 분리됩니다. 즉 비대칭성을 특징으로 하는 지고신의 관념, 그리고 자차원의 대칭성을 유지하고 있는 내방신의 관념, 이렇게 두 관념으로 나뉘지요, 지고신은 분명히 비대칭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고신은 인간이 거주하는 장소에서 멀리 떨어진 '지극히 높은 곳'으로 분리되어, 변화를 일으키기 힘든 순수한 빛으로서 그곳에 계속 머무른 채 인간 세계의 질서를 유지할 하기 때문이죠. 반면에 가변의 신으로서 출현하는 경우가 많은 내방신에게는 스피리트 세계와 똑같은 정도는 아니지만, 아직 대칭성이 어느 정도 유지되어 있습니다. 


스피리트 세계의 고차원의 대칭성이 내부로부터 깨져, 그것이 저차원의 대칭성을 가진 신의 세계로 변모하고, 그러면서 대칭성이 유지된 세계 밖으로 비대칭성을 특성으로 하는 다른 신(지고신)이 튀어나오는, 이런 과정이 발생한 것으로 이해해봅시다. 그러면 스피리트 세계의 해체를 거쳐 단 두 가지 유형만의 신의 세계가 출현하게 된 이유를 비로소 확실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스피리트 세계에는 도대체 어떤 '압력'이 외부에서 가해진 걸까요? 국가가 없는 사회에서는 모든 '권력'의 원천은 자연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 안에는 아무리 찾아도 권력의 원천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원천에 접근할 수 있는 샤먼이나 전사처럼 특별한 능력과 기량을 가진 사람들뿐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위험한 힘과 접촉한다는 점 때문에, 대개는 사회의 중심부에서 소외당했습니다. 샤면이나 전사의 능력을 가진 인물이 사회 중심부로 진출해서, 자신이 권력의 원천과 접촉하는 '주권자=왕'이라는 주장을 시작했을 때, 인류사회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 순간 자연은 더 이상 권력의 비밀의 원천임을 포기해야만 합니다. 권력의 원천은 주권자인 왕과 함께 사회 내부로 들어옴으로써, 스피리트들의 왕국이었던 자연은 그 후 점차로 단순히 개발이나 착취를 위한 '대상'의 위치로 전락해버립니다. 이때 마음(정신)의 토폴로지에 일어나 대이변에 가까운 변화는 스피리트 세계에 일어난 '자발적 대칭성 깨짐'에 의한 신의 출현 과정에서 일어난 변화와 유형이 똑같습니다. 왕의 발생과 신의 출현은 아무래도 서로 깊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5장 신들의 기본구조(1) - 뫼비우스 봉합형 

고차원의 대칭성을 갖춘 스피리트 세계가 안팎으로 압력을 받아 '찌그러지면=좌굴하면', 스피리트는 더 이상 그 모습 그대로는 인간들 앞에 나타나지 않게 됩니다. 그렇다고 스피리트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나 하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스피리트는 보다 저차원의 대칭성으로 모습을 바꿔 살아남아, 새로 형성된 신들의 세계에서 중요한 일원이 됩니다. 스피리트 세계는 '안팎으로 압력을 받아 찌그러졌다'라고 했는데, 그 압력이 내부에서 발생한 것인지, 외부의 '세속적'인 압력에 의한 것인지는 간단히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중에 유일신 발생의 모체가 된 이 지고신이 다신교 우주를 지배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지고신에게 나타나는 비대칭성의 원리는 내방신에게 나타나는 대칭성의 원리와 대등한 것으로서 다신교 우주 안에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일신교의 경우와 가장 다른 점일 겁니다. 


제6장 신들의 기본구조(2) - 토러스형 

제7장 지고신에서 유일신으로 

제8장 마음의 거대파충류 

지성은 스스로의 한계까지 나아가 거기서 '초월성'과 접촉하고 '초월성'에 대해 사고하는 것은 가능해도, '초월성'이 자기 자신의 근거를 이룬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는 권력이 되지 않았습니다. 권력의 원천은 어디까지나 자연 속에 깊숙이 숨겨져 있는 것으로, 인간의 지성이 권력을 자기 것으로 만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거지요. 그런 생각으로부터 이런 사회 특유의, 자연에 대한 조심성이나 윤리관이 형성되었습니다. 강력한 힘을 가진 '유일신'은 자신의 힘에만 의지해 인류가 이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조심성이라는 감각을 파괴해버렸으며, 인류가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든 '지구에 사는 모든 것에게 요구되는 윤리'를 망각 속에 빠뜨려버린 것이 아닐까요? 


종장 미래의 스피리트 

역자후기 - 인간의 마음이 유일신을 낳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