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류학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피에르 클라스트르, 홍성흡, 이학사, 2005, (141020).

바람과 술 2014. 10. 20. 01:21

제1장 코페르니쿠스와 야만인 9 

여행을 통해 아무것도 얻지 못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말에 소크라테스는, 아마도 그는 자기 자신을 짊어지고 갔다 온 모양일세라고 말했다. - 몽테뉴


먼저 주의를 기울여야 할 점은 이러한 전통주의적 견해가 민족학적 연구 정신, 즉 정치권력은 궁극적으로 강제에 의해 지탱되는 관계 내에서만 명료하게 드러난다는 의심할 바 없는 확신을 상당히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강제나 폭력 없이는 권력을 말할 수 없는지의 여부를 민족학이 자신의 본령-고대적 사회들의 영역-에서 확실하게 검증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강제와 종속이 언제 어디에서나 정치권력의 핵심을 구성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결국 다음 두 가지 중 한가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즉 고전적 권력 개념이 현실에 적합하다고 본다면 비권력이 발견되는 그곳에서 비권력에 대해 설명하거나, 고전적 권력 개념이 현실에 들어맞지 않는다면 그 개념을 폐기하거나 바꾸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생계경제의 개념은 사실판단이고자 하지만 동시에 생계경제로 분류되는 사회들에 대한 가치판단을 내포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가치 평가는 객관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객관성을 파괴하고 있다. 즉 정치권력을 대조하는 모델과 그것이 측정되는 단위가 서구 문명에서 발전되고 형성된 권력의 개념에 의해 이미 구성되어버린 것이다. 우리 문화에서는 애초부터 정치권력을 명령과 복종이라는 위계적이고 권위적인 관계 속에서 인식해왔다. 정치권력을 사고하는 데 필요한 조건은, 금욕적이라고 할 정도로, 고대적 세계가 이국적이라고 보는 견해를 버리는 것, 요컨대 고대적 사회에 대한 소위 과학적인 담론을 거시적으로 규정하는 견해를 폐기하는 것이다. 무문자 사회가 문자사회보다 덜 성숙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명령-복종 관계가 발견되지 않는 사회(즉 정치권력이 없는 사회)에서의 집단생활이 비정치적이라는 성격을 부가적으로 지니는 직접적 사회통제에 의해 유지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정치적인 것, 즉 그것과 대조되는 것으로서 비정치적인 것을 말할 수 있게 하는 이 정치적인 것의 준거는 도대체 무엇인가? 아마도 여기에 권력에 대한 고전적 사고의 핵심적 장애물이 높여 있는 것 같다. 즉 정치적인 것 없이는 비정치적인 것을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간접적 사회통제 없이는 직접적 사회통제를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권력이 없는 사회를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권력의 진정한 형태가 서구 문화에서 실현되었다는 확신을 지닌 채 권력에 대해 사고하고, 그 서구적 형태를 다른 모든 형태의 기준으로 삼아 다른 모든 형태가 도달할 목표로 상정한다면, 담론의 일관성은 사라지고 과학은 단지 하나의 의견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① 여러 사회들을 권력이 있는 사회와 권력이 없는 사회라는 두 범주로 분류할 수 없다. ② 강제로서의 정치권력(즉 명령-복종 관계)은 진정한 권력의 유일한 모델이 아니며 단지 하나의 특수한 사례, 예컨대 서구 문화(물론 이것만이 유일한 사례는 아니지만)의 정치권력이 구체적으로 실현된 것에 불과하다. ③ 심지어 정치제도가 없는 사회(예를 들어 추장이 없는 사회)에서도, 그런 사회에서조차도 정치적인것은 존재하며 권력의 문제가 제기된다.


제2장 교환과 권력 : 인디언 추장제의 철학 36 

세 특징은 남북 아메리카 모두에서 계속 발견되기 때문에 두 지역에서의 권력의 필수조건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그 세 특징은 다음과 같다. ① 추장은 '평화의 중재자'이다. ② 추장은 자기의 재화에 댛 집착해서는 안 된다. ③ 말을 잘하는 자만이 추장의 지위를 얻을 수 있다. 


여기서 분석하려는 현상은 집단이 스스로의 모델을 만들기 위해 행하는 무의식적 활동과 관련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애써 밝히려는 것은 바로 사회집단과 정치권력 간의 관계에 대한 구조적 모델이다. 이 모델은 처음에는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자료들을 통합할 수 있게 해준다. 우연이라고 보는 견해를 부정하는 것은 과정 자체에 내재하는 어떤 필연성을 가정하거나 결과의 궁극적 이유를 사회학적 지향성-모델을 형성한 장-의 수준에서 찾도록 유도한다. 결과와 그것을 만들어낸 지향이 부합된다고 가정하는 것은 그 결과가 본원적 지향 속에 내재하고 있다는 것, 즉 권력은 이들 사회가 바랐던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 외의 어떤 의미도 지나지 않는다. 인디언 문화는 자신들을 현혹시키는 권력을 거부하기 위해 고뇌하는 문화이다. 거기에서는 풍족한 추장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리고 역설적인 성격을 띤 권력이 그 무력함으로 인해 숭배된다는 것은 문화의 스스로에 대한 고뇌와 자기 자신을 초월하고자 하는 꿈을 표현하는 것이다. 


제3장 독립과 외혼 62 

제4장 아메리카 인디언의 인구론적 요소들 101 

제5장 활과 바구니 128 

제6장 인디언을 웃게 만드는 것 161 

제7장 말하기의 의무 190 

말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말하는 권력을 소유하는 것이다. 도는 권력의 실천은 말하기의 지배를 확실하게 하는 것, 즉 주인만이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신하들은 존경, 숭배 또는 공포로 인해 침묵한다. 말하기와 권력 사이의 관계는 한쪽의 욕구가 다른 쪽을 장악함으로써 실현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명령이라고 일컬어지고 명령을 실행하는 사람의 복종 이외에는 어떤 것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기와 권력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말하기와 권력의 결합 속에서 매우 명료한 동시에 매우 심오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즉 국가를 형성한 사회에서는 말하기가 권력을 지닌 권리인 데 반해 국가 없는 사회에서는 거꾸로 말하기는 권력의 의무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인디언 사회는 추장에게 그가 추장이기 때문에 말하기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추장이 되고자 하는 자에게 말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도록 요구한다. 추장에게 말하기는 강제적 의무이고 부족은 추장의 말을 듣고 싶어한다. 침묵하는 추장은 더 이상 추장이 아니다. 추장의 이야기가 공허한 것은 그것이 진정으로 권력이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추장은 권력으로부터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말하기로부터도 분리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말은 권력의 말, 권위의 말, 명령의 말이 될 수 없다. 명령은 정말로 추장이 내릴 수 없는 것이고 추장의 말은 그처럼 충만한 말이 될 수 없다. 자기 의무를 망각하고 명령을 시도한 추장은 복종의 거부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머지않아 추장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추장에게 부과된 말하기의 의무, 즉 그가 부족에 대해 지고 있는 이 공허한 말의 끊임없는 흐름이야말로 그의 무한한 부채이며 말하는 사람이 권력자가 되는 것을 막는 보증서인 것이다.


제8장 밀림의 예언자 196

 
제9장 여럿이 없는 "하나"에 대하여 210 

제10장 원시사회에서의 고문 219 

제11장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234


사실상 우리들의 생각 속에는 신앙을 가진자의 믿음과 같이 내면화된, 즉 사회는 국가를 위해 존재한다는 확신이 들어 있다. 그렇다면 원시사회의 존속 자체는 보편적인 인류 역사에서 제외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다른 모든 지역에서 이미 뛰어넘은 역사 단계의 시대착오적 잔재로밖에 생각할 수 없는것인가?


인간이 자기의 필요 이상으로 노동하는 것은 언제나 강제에 의해서이다. 그런데 그러한 강제가 원시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외부적인 힘이 없다는 것이 원시사회의 본질을 규정한다. 즉 어떤 필연적인 무능력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불필요한 과잉에 대한 거부이자 필요의 충족과 조화시켜 생산 활동을 저개하고자 하는 의지를 의미하는 한에서만 그렇다는 것이다. 과잉 노동을 하지않고 얻어진 이 잉여는 본래적 의미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정기적인 축제나 초대연, 외부인의 방문 등의 기회에 소비되어 소진된다. 


원시사회는 위신에 대한 욕망을 권력에 대한 의지로 대체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록 : 피에르 클라스트르의 저작 목록 271 

옮기고 나서 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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