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여는글 - 전쟁 없는 한.중.일을 위하여
'지도 확인'을 겸한 커피 한 잔의 휴식
:
커피 휴식, 계속 : 두 여인 이야기
:
커피 휴식, 마지막 : 오페라 휴식
: 북구의 오래된 신화에서 심지어는 이집트의 영웅 서사시까지 등장시킨 19세기 유럽의 오페라는 그야말로 현대적 스펙터클의 시작이기도 했으며, 요즘 1,000억 원 이상을 투입하는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국가의 총력을 기울여 만들던 국책사업 비슷한 것이었다. 물론 이렇게 독일.프랑스.이탈리아가 민족국가의 번영을 기원하며 오페라를 경쟁적으로 만들고 있던 시기, 이들보더 휠씬 뒤처져 있던 러시아와 동구에서는 국민음악파가 등장하여 슬라브풍의 비롯한 다양한 민족 색채를 만들고 있었다.
화(和)라는 글자에 대하여
:
촌놈들 ...
:
전쟁 없는 한.중.일을 위한 희망
: 가난할 때에는 먹고사는 게 큰일이다. 그러나 부유해질 수록, 평화라는 특수재에 대한 수요는 높아지게 되어 있다.
짧은 휴식을 마치며
:
제1장 세계화 시대, 촌놈들의 제국주의 - 식민지 없는 제국주의의 울분
제국과 식민지 국가, 그 소소한 차이에 대하여
: 한국인들의 마음은 고구려 제국의 노스탤지어에 깊이 빠져 있었다. 게다가 세계정부에 해당하는 UN의 사무총장이 바로 이 삼족오 인장으로 무수히 많은 국제문서에 도장을 찍게 될 것이라니 ... 국민들의 영광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작은 스캔들에 불과하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은 세계적 국가이며, 한국 국민은 '사실상' 제국의 국민이라는 것을 국제적으로 공인받는 또 다른 사런이 생겼으니, 이것이 바로 2007년 여름 한국을 강타한 아프가니스탄의 피랍자 사건이다. 이 기묘한 제국주의 의식은, 실제로는 외부식민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 공허한 메아리와 같다. 제국주의이고는 싶으나 미국 눈치를 살펴야 하고, 또 아무도 한국 같은 엉성한 나라에게 기꺼이 식민지가 될 턱이 없는 이 기묘한 현상을 우리는 '촌놈들의 제국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따져보면, 1990년대 후반에서 21세기 초 사이 어느 시점에서 한국은 이전의 제3세계(요즘 분류방식으로는 '개발도상국 developing country')에서 선진국('발전된 국가 developed country')으로 질적 변화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학'이라는 학문은 분명히 제국들의 식민지 관리와 관련된 학문의 특징을 강하게 갖는데, 한국은 OECD 선진국 중에서 다른 나라의 역사와 전통 혹은 경제나 의식구조에 대해서 연구하는 지역학이라는 특수한 연구분야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드문 국가 중의 하나이다.
'마음속 전선' 세 가지
: 이제 많은 한국인들은 심리적으로 적어도 세 개의 전선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독도'로 상징되는 일본과의 전선은, 정서적으로는 적어도 몇 번은 전쟁 직전까지 갔다. '고구려 역사'로 상징되는 중국과의 전선은 5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것인데(중국 쪽의 '동북공정'이라는 국책사업의 효과가 더 커서 그런지, 아니면 한국 내의 중국 수입품과 기업 유치와 같은 내부경제의 효과가 더 커서 그런 것인지 명확하게 판단하기는 쉽지 않지만), 어쨌든 많은 한국인들은 중국과도 냉랭한 '마음속 전선'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여기에 북한과의 전통적인 마음속 전선 한 개가 추가된다. 어쩌면 한국인들 마음속에선 이 '세 가지 전선'이 심리적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이런 마음속의 '세 가지 전선'이라는 흥행 요소와 함께, 영화나 음악 같은 대중문화가 점차 강화된 민족주의 혹은 아직은 덜 정제된 '쇼비니즘 마케팅'의 형태를 띠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제국주의로의 전환, 그 역사적 출발점
: 한 가지 확실한 것은, IMF 경제위기와 함께 1998년에 등장했던 김대중 정권 기간에 외환을 갚느라고 정신없던 한국이 제국의 속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는데, 그 뒤 등장한 노무현 정권이 끝나갈 때쯤 한국에 제국주의적인 담론과 문화적 상상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하는 뚜렷한 변화가 있었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권은 전통적 의미의 20세기 유럽식 좌파 정부와는 성격이 많이 달라서, 오히려 민족주의 정권에 더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식민 지배를 경험한 한국의 특수성도 작용했을 것이다. 사실, 미국에 대해 어느 정도의 독립성을 갖겠다는 민족주의 정서가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킨 주요한 사회적 동력이기도 했다. 노무현 정권은 이라크 파병 방침을 비교적 일찍 정하고 국민여론을 '조작'하기 시작했는데, 이 과정에서 한국은 '자신이 비용을 지불하는' 경제적 군사 파병을 한국 자본주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결정하게 된다. 본격적인 제국주의형 자원전쟁에 끼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 전에도 한국은 UN 평화유지군에 파병한 적이 수 차례 있었다. 이보다 휠씬 전인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사실상 용병'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받는 베트남 파병(1964~1973년)도 있었다. 물론 박정희 정권의 '파병'이란 선택에 대해 당시 국민적인 논의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좀 냉정하게 본다면 '미국의 용병'이었다는 게 사실에 휠씬 가까울 것 같다. 또한 그 당시 한미 관계 등을 복합적으로 살펴보면, 사실 박정희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단지 그런 독재자의 선택을 국민들에게 이해시키는 과정이 파병에 대한 논의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2004년 이라크 파병의 경우는, 사회경제적 조건 및 논의 과정의 특징상 그 이전의 파병과는 완전히 질을 달리하는 측면이 있다. 어떻게 그 효과를 치장하든지 간에, 이라크 파병을 결정지은 중요한 요소들은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경제적 이해관계이며, 이 파병이 방어적 의미의 전쟁이 아니라는 점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이 파병의 의미를 조금 냉철하게 규정한다면, 미국을 등에 업은 일종의 전쟁 연습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앞으로 경제적 이해가 존재하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파병을 통해 세계전쟁에 가담하겠다는, 일종의 한국 자본주의의 질적 전환에 대한 '암묵적 선언'인 셈이다. 물론 단순한 한 건의 파병이 한국 자본주의를 제국주의로 전환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절차적으로 이 사건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이미 내부적으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된 한국 경제가 절실히 해외 시장과 해외 자원을 갈망하고 있다는 것이 첫번째 의미이다. 두번째 의미는, 조금 더 우울한데, 한국이 전쟁에 참가한다고 할지라도 이것이 과거처럼 권위주의 정권이 일방적으로 행하는 게 아니라 대단히 민주적이며 절차적으로 하자 없이, 그야말로 '국민들이 원해서'-그것도 '경제적인 이유'로 원하기 때문에-행해진다는 점이다.
수출형 개발도상국에서 제국주의적 패권주의로
: 일반적으로 중남미 국가나 아프리카 국가들이 취하는 '수입대체 전략(주요한 수입품들을 국내 생산으로 하나씩 대체해나가면서 단계적으로 산업 단계를 고도화하겠다는 전략)과는 정반대로, 박정희 시절의 유신경제는 국내 소비재가 아니라 처음부터 전략적 수출품을 집중 생산하는 방식의 '수출주도형 전략'을 산업발전 방법론으로 택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당연하겠지만, 한국에서 수출은 그야말로 '국민경제의 무의식'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수출경제는 수출이 국내 경제와 제대로 연결되지 않을 때 내수가 급격히 위축되거나 기형적으로 전개되는 부작용이 생기게 된다. 경제학에서 사용하는 '균형'의 개념은 결코 가벼이 볼 게 아니다. 이는, 불균형이 오랫동안 계속되면 다른 시장이나 다른 부문에서 또 다른 불균형이 생겨나게 되고 그것을 시정하기 위한 정반대의 어떤 힘이 결국 작동하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전형적으로 한국은 외연 확대에 의해 움직여온 경제 시스템에 가깝다. 이렇게 외부의 힘을 원동력으로 작동하는 경제가 패권주의로 전환되는 것은 거의 시간 문제다.
잠깐 쉬어가는 '리카도 이야기'
: 지난 한 세기 동안 무역이론의 핵심부에는 리카도식 자유 무역 이론과 리스트식 보호무역 이론의 충돌이 자리하고 있으며, 어쩌면 시장에 의한 경제와 국제무역이라는 장치가 존재하는 한, 이들의 대립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전쟁에 대해서 근본적인 방지 장치가 어떤 것일는지 불행히도 리카도나 리스트 같은 위대한 경제학자들도 제시한 것이 별로 없다.
한국 제국주의의 첫 출발, '다이나믹 코리아'와 '동북아 중심국가'
: 김대중 정부는 2001년 겨울,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2002년 월드컵 아시아대회 준비상황 합동보고회'에서 이 결과를 정부의 공식 정책기조로 결정했고, 이듬해인 2002년부터는 공격적으로 '다이나믹 코리아'를 정부 의사결정의 제1원칙은 물론, 국정 운용의 기본 기조로 삼게 된다. 2002년의 한일 월드컵은 본래 공동 개최의 주요 목표 중 하나였던 두 나라의 평화와 협력과는 전혀 상관없이 한국을 그야말로 '쇼비니즘 코리아'로 이끌어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향후 5년간의 한국 자본주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될 국정 원칙 하나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동북아 중심국가'라는 개념이다. 그러나 별 내용 없이 잠깐 국민들 기분이나 좋으라고 만들어졌던 이 구호가, 김대중 정권보다 민족주의 성향이 몇 배나 강한 노무현 정권의 교양 없는 쇼비니스트들을 만나면서 한국 경제의 밑바닥을 위협하는 장애 요소가 되어버렸다. 동북아 중심국가 개념은 OECD 국가 중에서 사상 최고의 건설산업 의존도를 보이는 한국 경제의 특수 구조와 만남으로써 엄청난 현실적 힘을 갖게 되었다. 국민경제가 제국주의적 성향을 가지게 된느 가장 전형적인 패턴은 군수산업을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기본인데, 한국의 경우는 건설산업이 보조 역할 정도가 아닌 주요 주체로서 제국주의화를 직접 추진하는, 약간 특수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노무현 시대에 나타난 사회문화적 변화들
: 그 첫째는 이라크 파병이, 건설자본이 1998년 IMF 경제위기 이후 약간의 조정 국면을 맞다가 다시 한국 정치를 결정하는 가장 상위의 요소로 등극하게 된 순간이라는 점이다. 둘째는, '방어' 위주의 국방원칙이 방위산업 강화라는 또 다른 힘과 만나면서 처음으로 군사패권주의-1980년대까지의 '군사독재'가 아닌-로 방향을 잡은 순간이라는 점이다. 앞으로 더욱 강하게 한국 자본주의의 향후 방향을 좌우하게 될 이 두 요소가 이라크 파병에 대한 국민적 논의라는 공간에서 승리함으로써, 한국은 본격적으로 국가 내부 시스템을 제국주의로 전환하는 국면을 맞게 된다. 제국주의를 향한 이런 사회문화적 전환이 노무현 정권기 중 절정에 달한 때는 2005년이었다. 그 클라이맥스를 장식한 건 다름 아닌 '황우석 사건'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의 연장선 위에,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이라 할 영화 <디워>사건 또한 놓여 있다. 한국은 이제 상당히 강력한 쇼비니즘 사회로 전환되었다. 여기서 더욱 확실한 건 이러한 일련의 변화가 한국 자본주의에 상당히 강력한 '외향성'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이미 80%를 넘어선 한국의 대외 의존도가 싫든 좋든 외부의 시장을 찾아 나서게 만들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한미 FTA와 노무현의 '경제영토'
: FTA로 인한 개방과 제도 변화의 부정적 폐해에도 불구하고 과반수 이상의 국민적 지지가 가능했던 것은, 정부나 국민들이 이렇게 한미FTA를 일종의 '미연방' 가입과 유사하게 생각했던 측면이 있었다는 애기다. 물론 '비관세 무역장벽'의 철폐와 같이 수많은 유.무형의 의무사항과 매우 공격적인 국내 시장 재편을 요구하는 FTA와, 영연방이나 프랑코폰 같은 '외교적 우호 클럽'은 본질적으로 그 내용이 전혀 다르다. 그러나 이 근본적인 차이점을 지적해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여기에는 '한미FTA'의 특수한 성격이 드러난다. 식민지의 특징과 제국의 특징을 동시에 가지게 된 한국적 특수성 말이다. 한국 자본주의 내부에 누적된 다양한 불균형들이 이제는 감당할 수 없이 커져서 외부의 식민지 혹은 식민지에 준하는 '경제영토' 없이는 문제를 원활하게 풀기 어렵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극우사회의 출현과 파시즘으로의 전환 과정
: 이미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가 된 현재의 한국 자본주의가 오랫동안의 불균형 성장전략으로 인해 실업 문제, 자원 문제, 외부 시장 확보 등에서 내부적으로 누적된 모순들을 다소라도 완화할 수 있는 길이 달리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은 맹렬한 속도로 극우파 사회를 형성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그렇게 된 이유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한국 우파가 우파 쪽으로 더 이동했기 때문이 아니라, 소위 '좌파'로 분류되는-노무현 세력에서 민주노동당으로 대변되었던 진보정당에 이르는-세력이 급속히 오른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우파들은 대통령 직선제를 실시한 이래로 한 번도 달성하지 못한 사실상 일당독재 구도를 가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한국 내에서 제국주의형 전환 과정이 잘 포착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너무 뻔하지만 분단국가라는 태생적 비극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민족해방'과 '민족패권'이라는 두 가지 축이 뒤섞여 있는 상황에서, 미국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고전적인 주장과 미국의 힘을 빌려 제국주의로 전환하자는 또 다른 힘이 아직은 구분되지 않은 상태이다. 여기다 이 혼돈을 더욱 강화시키는 것은 분단이라는 상황과 북한의 정치적 미래가 아직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애매함이다.
제2장 북으로 향하는 한국 자본주의 - 내부식민지 전략의 강화와 건설자본형 제국주의
'오만과 편견'의 시대
: 첫째, 2007년 한국 대선 과정에서 이명박 후보가 청년실업 문제에 답하면서 "해외에 나가면 좋은 기회가 아직도 많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점이다. 15년 전 김우중 대우그룹 회자으이 "세계경영"이란 말은 한국 기업의 '다국적화'에 대한 애기였지만, 그 15년 후 이명박 대통령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을 때에는 그 맥락이 전혀 다른 것이다. 둘째, 한국의 이라크 파병 병력이 '경제적 보상에 의하여 스스로 선택한' 지원병이란, 일종의 모병 형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앞으로 전개될 한국식 제국주의가 도시빈민들과 청년 실업자 등 '먹고 살기 위해 돈이 필요한 사람들' 중심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보여준다.
'DJ 독트린'
: IMF 경제위기라는 일대 혼란기에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한국 외교사는 물론이고 한국 자본주의의 장기적 흐름에도 큰 영향을 준 사건이었음에 분명하다. 이데올로기적 주장들을 다 떼어내고 경제적인 시각에서만 DJ 독트린의 내용을 재구성해보자. 햇볕정책은 다음과 같은 두 개의 명제로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제1명제:한국은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지 않겠다. 제2명제:한국은 북한에 경제적 지원을 하겠다. 어쨌든 DJ 독트린은 최소한 한국 정부의 주도 아래 북한을 붕괴시키는-군사적이든 혹은 경제적이든-일종의 정책적 '작전'은 벌이지 않겠다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이 DJ 독트린이 계속해서 일정한 설득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북한의 저렴한 노동력과 한국의 자본과 기술이 결합되어 이루어낼, 그야말로 한국 자본주의의 '마지막 비상구(아니면 '히든카드 ?')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북한을 돕는다는 DJ 독트린의 두 번째 명제는 두 가지 차원에서 해석될 수 있다. 우선 소극적으로 본다면, 인권 차원의 식량.의료 지원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이 같은 민족이거나 혹은 역내의 이웃 국가가 아니더라도 세계시민으로서의 보편율에 맞춰 '이 정도는 해야 한다'가 DJ 독트린의 소극적 의미인 셈이다. 그러나 누구나 알고 있듯이, DJ 독트린의 매력은 이를 넘어선 적극적인 의미에 있다. 즉. 지난 10년 동안 한국 경제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 가운데 하나였던 '남북경제협력', 줄여서 '남북경협'이라고 부르는 개념이다. 이는 단순히 북한에 대한 인도적 차원의 배려를 넘어서 돌파구 없는 한국의 잉여자본이 북한이라는 배후지로 진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찬성과 반대 사이의 차이점을 굳이 찾자면, 지금의 북한 정권을 먼저 붕괴시키고 경제진출을 하자는 주장과 그렇게 되면 한국이 감당해야 할 통일비용이 너무 크니 북한 정권은 내버려두고 단계적으로 경제진출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 오히려 더 낫다는 주장으로 정리해볼 수 있다. 한국 자본주의라는 눈으로 본다면, 둘 사이에는 단지 이렇게 전술적 차이만 있을 뿐이다. 한국 자본주의에서 이제 북한이라는 존재는 지난 10년을 거치면서 경제적인 의미로 '식민지'에 더 가까워졌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다시 반복하자면, 북한을 내부식민지로 전환시키는 데에서 형식적으로 상대 정부를 그대로 두고 식민지 정책을 추진할 것인가, 아니면 상대 정권을 무너뜨리고 일종의 총독부처럼 직접 관리할 것인가에 있는 셈이다. 여기에 본질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언젠가 새로운 평화 독트린에 의해 대체되기 전까지 DJ 독트린은 그 패권적 속성이 더욱 강해질 것이다.
통일 근본주의와 이윤 중심주의의 결합 : 민족패권주의
: 북한이라는 거대한 건설물량은 이제 통일과 관련된 사회적 운동 차원에서의 동력이 아니더라도, 한국의 자본이 북으로 향하게 만드는 첫째 요소가 된다. 수많은 사회 과제 중 통일 문제라는 측면에서 특화하여 발생한 일종의 통일 근본주의화 자본의 식민지 진출을 위한 변화가 한 공간 안에서 서로 경쟁하고 질시하면서도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묘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통일 근본주의 시각에서는 북한과 힘을 합쳐 '우리 민족끼리 북방 개척을 하면 좋을 것 아니냐는 식이 되는데, 결국 이는 북한 말고는 별도의 식민지를 가지기 어려운 한국 자본주의의 제국주의적 비전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이렇게 DJ 독트린은 한편에선 통일 근본주의를 거쳐 쇼비니즘에 가까운 민족패권주의와 만나고, 다른 한편에선 이윤법칙들을 통해 자본의 민족패권주의와 만나게 되었다.
두 가지 시나리오 : 스위스형과 베트남형
: 발전경제학에서 상식적으로 애기되는 몇 가지 개념들을 가지고 북한 경제에 대해 간단히 짚어보자. 우선 북한은 ETI와 LDC라는 두개의 개념 중 하나에 해당할 것이다. ETI(Economy-In-Transition)는 '전환 중인 경제;를 의미한다. 또 하나, 북한에 해당하는 범주는 LDC(Least-Developed Country, 즉 '최빈국가')라는 것이다. 어쨌든 객관적으로 북한 경제는 ETI보다는 LDC에 가까운 상태라고 할 수 있는데, LDC라는 이 거북스러운 용어의 진정한 함의는 국제적 '지원' 혹은 '촉진' 프로그램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기아에 대한 국제 원조 프로그램이나 UN환경계획의 기금이 투입되는 일이 그래서 가능하다. 그러므로 북한의 경우는 일반적인 LDC국가들과 마찬가지의 접근과 정책이 적요된다고 할 수 있다. 규모가 휠씬 큰 경제가 다른 경제를 흡수하는 현상을 '블랙홀' 효과라고도 하는데, 물론 북한의 당국자들도 이런 현상이 벌어지게 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더 북한은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일종의 군벌정치 혹은 '정치 과잉 시스템'을 운용하게 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북한에 베트남식 개방은 한국이나 일본과 아무런 경제적 관계를 맺지 않은 채 일정 기간을 중국이라는 경로를 통해서만 개방을 하는 특수한 폐쇄적 구조를 유지하는 길이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10년 정도의 기간을 놓고 생각해보면, 현재의 북한 군부가 해체되거나 일종의 총족부와 같은 식민지 정부처럼 작동하는 정부로 존속되는 두 가지 가능성이 휠씬 더 현실성이 높아 보인다. 이밖에 조금 더 넓게 적정한 사례를 찾아본다면, 스위스를 들 수 있겠다. 물론 국민경제의 물리적 조건과 경제적 조건에서 북한과 유사하다 해도, 정치사회적인 맥락에서 스위스는 북한과 정반대에 서 있는 국가이다. 스위스는 극단적일 정도로 분산형 시스템인데, 공식 언어만도 네 가지이고 민족 구성은 더 복잡하다. 반면 북한은 가장 극단적인 중앙형 시스템으로 거기서 거의 모든 의사 결정이 이루어진다. 어쨌든 이러한 상이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위성경제 단계를 거쳐서 독자적 국민경제로 점차 전환하는 발전 방식이 북한 입장에선 선택할 수 잇는 최선이며 거의 유일한 시나리오라 할 수 있다.
서울 중심주의의 확대 : 2등국민과 3등국민 모델
: 한국 경제가 '촌놈들의 제국주의' 단계로 내몰릴 수밖에 없도록 내부에 불균형이 커진 이유는 나는 한국이 중남미형 경제로 전환되는 와주에 있다는 작업가설을 사용한다. 중남미형 경제에서는 카우디요(caudillo, 카리스마를 가진 사나이란 뜻으로 중남미 토호의 별칭)가 부동산을 매개로 한 일종의 '부등가 교환(경제학 교과서에서는 이를 가격 상승에 의한 '재산 효과'라고 부른다)'을 통해 거대 권력으로 작동한다.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들과 국회의원들은 토호들과 쉽게 결탁하게 되고, 특정 지역의 개발 계획으로 대토지를 소유한 사람들에게 국부가 거의 무상으로 이전되게 만든다. 이는 칠레.아르헨티나.멕시코 등에서 실제로 1980~90년대에 걸쳐 폭넓게 진행되었던 역사적 사실이다. 더 정확하게 애기한다면, 현재 한국 경제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불합리는 '양극화'라는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중남미화라는 복합적이며 비가역적인 변화라는 데 있을 것이다. 거기다 또 하나의 결정적 차이점이 있다면, 서울 중심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매우 특수한 불균형일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 위헤서 북한 경제가 한국 자본이 찾아낸 신천지요, '블루 오션'이 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조절되지 않은 이러한 경제통합 과정이 만들어낸 부작용이다. 즉, 서울과 지방 사이의 관계가 서울과 북한 경제 사이에서도 기계적으로 적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경제통합이라는 과정이 일단 시작되면, 북한의 국민경제가 위성경제의 형태로나마 재생산 구조를 갖추는 속도보다도 서울 중심주의 체제 아래 놓인 한국의 지방경제에서 익히 보아왔던 무의미한 건설 과정이 휠씬 빠르게 진행될 거이고, 이 과정에서 '진짜 돈'은 토지와 개발권을 매개로 한 개발사업에서만 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과저에서 북한이 가질 수 있는 안전판은 거의 없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이렇게 해서 생겨나는 민족패권주의와 팽창주의가 스스로 균형을 찾고 적절한 조화를 만들어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 과정은 결국 또 다른 패권주의 형태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은, 중국과 일본이라는 거대한 힘과 정면으로 만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현재와 같은 구조가 단순 반복되는 형태로 진행된다면 한.중.일 역내에 진짜 긴장과 위협이 탄생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미래를 위해 최소한 짚어봐야 할 것들
: 북한 주민의 인권, 아마도 한국 정치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북한 주민의 인권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것과 현실로 인식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실제로 남북 경제의 통합 과정이 북한 경제의 내부식민지화로 치달을 경우, 지금과는 다른 양상을 달리하는, 휠씬 다양하고 복잡한 인권문제가 생겨날 것이다. 게다가 남북이란 두 개의 정치적 실체가 조화를 이루거나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경제적 통합(혹은 공존)이 진행되면서, 노동 과정은 물론이고 강상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인권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국토의 생태적 관리 문제에 대해 한국이든 북한이든 개발도상국 수준 이상의 의식과 관리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런 두 나라가 만나면 국토를 어떻게 사용할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징이 바로 '금강산 골프장'이다. 이런 잘못된 선택들이 계속해서 이루어진다면, 그건 국토 생태의 특성상 '비가역적' 선택을 만드어낼 가능성이 높다. 하나의 국민경제를 구성할 때 그 안에 처음부터 생태적 관점의 다지인과 아키텍처를 포함해둔다면, 그렇지 못해서 나중에 생태적 경제구조와 국토 생태체계를 갖추려 할 경우보다 휠씬 비용이 저렴하게 든다는 기본 원칙은 우선 확인해두고 출발하자. 첫째, 생태도시와 생태건축이다. 둘째, 생태농업니다. 셋째, 자연생태의 보존이다. 사회의 어느 특정 부문에 많은 돈이 들어가게 되면, 어느 순간 그 부문은 본래의 임무보다 자기 활동 자체를 늘리기 위한 일들에 매진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자기 권익을 지키기 위한 일들로 이러지게 된다. 이게 '지대추구 이론(rent-seeking theory)'이다. 요즘 유행하는 '작은 정부'에 대한 주장은 이 이론 위에 서 있다. 정부의 각 부처가 너무 커지면, 그들은 공익을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자기 부처를 키우고, 또 순전히 자기들이 속해 있는 기관만을 위해서 일하게 된다는 것이다(약간은 극우파적 이론이긴 하지만, 정부 내의 각 기관이 작동하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이해하려고 할 때 도움이 된다).
제3장 한.중.일을 기다리는 위기들 - 극우파 블록의 확대와 생태적 위기
증오의 탄생
: 경로는 다양하겠지만, 많은 사회나 국가가 증오를 만드러내고 그 에너지를 활용해서 사회적 질서를 일궈가기도 한다. 증오는 아직까지는 개인들에게서 계속해서 탄생하고, 또 세대와 나이를 넘어 계속해서 재생산된다.
군인들의 '적대적 동업관계'
: 군인도 하나의 직업이고, 군인들이 모여서 하는 활동을 하나의 산업으로 본다면, 그들이 만들어내는 최고의 공공 서비스는 국가 안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국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주적' 혹은 '잠재적 적국'이 발생시킬지도 모르는 전쟁이야말로 이러한 서비스를 만들어 질 수 있는 원천인 셈이다. 이런 독특한 구조-한 편의 존재가 다른 편에게는 편익이 되고, 그 편익은 다시 다른 편에서의 편익이 되는 일종의 무한대의 '포지티브 프드백' 구조-를 가지고 있는 산업은 그야말로 군대라는 공공 서비스밖에 없다. 전쟁은 위협 중에서 가장 최상위의 위협이며, 다분히 가상적인 장치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국적의 군인들 사이에서 국가적 투자가 진행될 수 있도록 충분히 적대적이어야 한다. 전쟁이라는 특수현상으로 인하여 발생한 공공 서비스가 국방이라는, 국방산업과 군무원, 그리고 이와 관련된 일련의 상품들은 국방에 대한 파생상품인 셈이다. 한.중.일 이 세 나라 사이에서 군사비 지출의 확대를 통해 적대 세력들끼리 '적대적 공생관계'의 격발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주요 계기는, 첫째, 한국의 통일 혹은 북한의 몰락이고, 둘째, 국제 자원의 부족이다.
증오의 확대 재생산과 극우 블록의 다이내믹스
: 국가, 즉 민족국가라는 것은 그야말로 근대의 산물이요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이제부터 주로 다루게 될 경제의 구조적 속성에 대한 주요 요소들은 1. 국민소득 구조 2. 생태적 구조 3. 산업 구조 4. 공황과 호황, 주기적 경기 패턴이라는 네 가지이다.
이중국가로의 전환 : 마름모꼴 경제에서 8자형 경제로
: 대개 경제학자들은 GDP와 인구라는 두 가지 변수를 주변수로 하고, 여기에 몇 개의 보조변수들을 더해 경제의 지나온 모습들을 살피고, 그 산업 내부를 구성하는 수백 가지 구조변수들을 동원해서 미래예측 모델을 만든다. 방법론적으로 현재의 구조에서 또 다른 구조로의 극적인 전환 같은 게 발생할 가능성들을 모델 내에서 제대로 고려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편하게 마름모형과 8자형, 피라미드형이라는 세가지 소득분포도를 놓고 애기해보자. 일반적으로 자본주의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는 피라미드 형 경제였다. 상부에는 귀족이, 하부에는 농노들이, 그리고 그 중간계층으로 하급공무원이나 성직자 혹은 퇴역 군인들과 같은 소위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중산층이 존재했다. 8자형 경제로 전환된 때가, '자본주의의 계급위기'가 돌발하는 20세기 초반 무렵이다. 8자형은, 경제공황으로 인해 중간계층에 해당하는 중산층들이 급격히 몰락하고 자본가라 할 부자들과 노동자라 할 빈곤층이 위아래로 급격히 분리된 모양새를 의미한다.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들의 격차가 너무 벌어지면서 동시에 중산층이 붕괴될 때, 역사는 민주주의 절차를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도 그 사회가 파시즘으로 전환될 수 있고 제국주의 전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세번째 마름모형은 아랫부분이 상당히 줄어드는 대신 허리가 두툼해진 모양인데, 이런 상황은 대개 경제의 하단부에 있던 사람들의 형편이 나아지는 경우에 나타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경제 영광의 30년 동안 점차 그렇게 되었다. 이 마름모꼴 경제는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대에 나타나며, 갤브레이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풍요의 시대'라 할 수 있다. 국가형태로서야 피라미드형이 자연스럽지만, 이 시스템에서는 상부로 향하는 균형점이 오로지 하나만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마름모형 시스템에서는 세 개의 균형점이 형성되면서 시스템의 다양성이 극대화된다. 그렇지만 이 마름모형 경제는, '경쟁'이라는 고나점에서 보면 진화론적으로 안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특수한 시스템 구조 내부에는 언제든지 피라미드형 혹은 8자형 경제로 돌아가려는 힘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8자형 구조에서는 상층부의 원이 하층부 원과 완전히 분리된 경우, 단절 현상이 벌어질 때 아래쪽 원은 더 커지고 위쪽 원은 더 작아질 가능성이 높은데, 이렇게 완전히 단절된 국민경제는 사실상 두 개의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정확하게 일반 법칙으로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한 사회가 가지는 증오의 에너지를 총량으로 측정할 수 있다면 분명 8자형 경제가 마름모형 경제보다 증오의 에너지가 높을 것이다. 한.중.일이 아마도 8자형 구조가 점차 굳어지면서 이중국가의 덫에 빠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상황에 놓일 확률이 높다. 당연히 증오 지수 역시 높아질 것이다.
생태적 전환의 지체, 그리고 운명의 순간
: 한.중.일 세 나라는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등 주요 유전에서 잠정적인 경쟁자로 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사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에너지와 자원의 확보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소위 자원수송로다. 보통은 해상수송로와 파이프 라인 두 가지 형태로 자원수송로가 만들어지는데, 사실 한.중.일의 전쟁 개연성을 가장 높이는 것은 이 자원수송로의 확보를 둘러싼 군비 경쟁이다.
산업구조의 문제 : 군산복합체와 제국주의적 산업구조
: 전쟁과 관련된 산업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은 경제학 개념이라기보다는 정치학 개념인 군산복합체이다. 이 단어는 1961년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퇴임사에서 처음 등장했는데, 결국 40년 후 미국에서 군산복합체는 완벽하게 승리했고, 2001년 군산복합체의 대변인으로서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일본과 한국의 경우도 전체적으로 이런 군산복합체가 형성되어가는 과정에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구체적인 흐름으로는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MD 체제에 두 나라가 통합되는 과정 속에 '디펜스'라는 이름 뒤에서 좀더 적극적으로 무장하고 싶어하는 군산복합체의 희망이 숨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흐름의 어느 시점부터는 한국과 일본의 군산복합체를 사회적으로 제어하기 힘든 강력한 실체로 만들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이 군산복합체와 정유 및 석유화학 등 에너지 분야의 큰 형님들을 데리고 직접 전쟁으로 나서게 될 전쟁산업의 실질적인 모사꾼이자 간판 타자 역할을 하게 될 산업은 무엇일까? 한국과 일본의 경우는 이건 누가 보아도 건설산업이다. 결론적으로 산업구조 측면에서, 한.중.일 세 나라가 30년이라는 시간 지평에서 전쟁을 피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런 일련의 전쟁산업들 틈바구니에서 어렵더라도 평화산업들을 만들어내야 하고, 역내의 평화가 유지될 때 오히려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장기적으로 안정성을 지닌 직업들이 많아지고, 또한 이런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최소한 과반수를 넘어설 때 한.중.일 사이의 전쟁 발발 확률이 줄어들게 된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의 단파동과 장파동, 그리고 공황의 사회적 역할
: 피할 수 없는 것이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경기순환일진대, 이런 흐름 속에서 어떻게 사회의 연속성이나 통합성 같은 민주주의의 기조를 유지할 것인가는, 경제학에서는 잘 제가되지 않는 복잡하고 어려운 질문이다.
제4장 평화라는 이름의 공공재 - 대안은 있는가?
평화라는 궁극의 공공재
: 첫째, 평화란 '불안한 균형'이라는 사실이다. '전쟁 없는 상태'로 정의할 수 있는 평화는 고정되고 완료된 어떤 것이 아니라, 잠시 발생하는 불안한 균형과 같은 것이다. 둘째, 평화가 지닌 공공재로서의 속성이다. 평화는 개인에게 줄 수 있는 매우 특수한 서비스 중의 하나로, 많은 공공재 혹은 공공서비스들이 그렇듯, 이 서비스는 누군가 더 수혜를 누린다고 해서 비용이 더 들지는 않는다. 그런 만큼 '전쟁 없는 상태'를 지키는 데 비용이 더 요구될 때 이를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될 가능성이 적다. 또한, 아무리 국방비를 늘린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평화를 위해 사용된다는 보장은 물론, 전쟁 없는 상태를 기계적으로 만들어준다는 보장도 저혀 없다. 여기에 최근 나타나고 있는 또 다른 경향들이 위협 요소로 추가된다.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많은 공공재를 민영화하는 것처럼, 실제로 선진국들은 전쟁도 민영화 대상 품목에 넣으려 하는 중이다. 평화라는 것은 이렇게 근본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의 것인데, 정부가 이를 지킬 수 있는 동인과 잠재력은 갈수록 줄어든다는 게 문제이다 .
평화경제 유지의 현실적 조건
: 시장은 평화산업과 전쟁산업을 구분하지 않는다.
한.중.일의 경제통합
: 경제통합이란 개념은 원래, 세계 각국이 전후 복구 과정에서 전 세계의 무역 촉진을 위해 '관세 없는 무역'을 논의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한.중.일 사이에서도 어떠한 방식으로든 이러한 경제통합 논의가 등장할 것이다. 현재로서는 유럽 방식보다는 FTA 방식의 통합 논의의 갈 확률이 높기는 하다. 물론 어떠한 방식이라도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첫째는, 경제통합을 역내 평화 혹은 장기적인 평화체제의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양자 통합 방식, 즉 '한-중', '한-일'과 같은 두 나라간의 경제통합을 거쳐 3자의 통합으로 가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처음부터 세 나라 혹은 함께하기를 원하는 주변 국가들까지 포함한 포괄적 지역통합으로 가는 것이 좋을지를 검토하는 것이다. 따라서 근본적인 역내 평화체제를 만들어간다는 시각으로 처음부터 단계적이지만 포괄적인 역내 통합을 디자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서 이런 경제통합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역내의 경제사회 및 정치문화까지 포함하는 평화에 대한 일종의 '사회적 학습'을 만들어나가는 공진화 과정으로 디자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중.일의 평화 인프라 :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을 보라
:
파시즘 시대의 도래와 미래 세대의 문제
:
평화의 파토스 : 쇼비니즘을 넘어서는 길
: 파토스라는 단어는 뭔가 계산하거나 이해관계를 따져서 발생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차원의 행위를 지칭하는데, 철학에서 말하는 이성, 경제학에서 애기하는 합리성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무엇인가가 있다'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중세와 근대에는 이 파토스라는 단어가 비극적인 것과 많이 연계되었는데, 현대에 와서 파토스는 열정 혹은 자신의 즉각적인 경제적 이익을 벗어난 탈이익적 행위라는 의미를 더 많이 가지고 있다. 독특한 21세기 한국 자본주의를 규정하는 가장 큰 힘은 교육 파시즘과 쇼비니즘 마케팅이라는 두 축이다. 교육 파시즘과 쇼비니즘 마케팅이 만나서 만들어낼 미래의 1차적 모습이 제국주의이고, 2차적 모습은 전쟁이다.
닫는글 : 교육 파시즘의 시대, 학교 파시즘에 부쳐
'정치경제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불황의 경제학], 폴 크루그먼, 안진환, 세종서적,2009, (090706). (0) | 2009.07.06 |
|---|---|
| [괴물의 탄생], 우석훈, 개마고원, 2008, (081222). (0) | 2008.12.22 |
| [장하준, 한국경제 길을 말하다], 시대의 창, 2007, (081118). (0) | 2008.11.18 |
| [유한계급론 (축약본)],소스타인 베블런,한성안,지만지,2008,(081102). (0) | 2008.11.02 |
| [경제개방이 우리나라 노동시장에 미친 효과], 김대일, 서울대학교출판부. (0) | 2008.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