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이야 정말 많지. 그런데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악마를 지어내 거칠 것 없는 상상을 펼칠지라도 필자는 필자일 뿐이지 않을까. 악마야 못할 게 없겠지만 말이야. - 아만두스 고트프리트 아돌프 뮐너, [시와 산문에 나타난 악마의 활약상], 1788년 中
1. 계몽의 그늘 아래서 : 인쇄 혁명과 미신과 주술과 마술
저승과 같은 암흑의 세계야말로 상상의 낙원이지. 여기서 상상은 그야말로 내키는 대로 거침없이 아무 것이나 지어내거든. 우울증 환자가 지어내는 헛소리든 옛날 이야기이든 혹은 수도원의 기적이든 아무튼 재료는 넘쳐나니까. - 임마누엘 칸트, [영매의 꿈, 형이상학의 꿈으로 풀어보다], 1776년 中
"저승과 같은 암흑 세계얄말로 상상의 낙원이다." 임마누엘 칸트가 1766년 이렇게 말할 때, 유럽 사람들은 마침 '저승'에 등을 돌리려하고 있었다. 자연 과학은 우주와 자연의 법칙에 관한 새로운 지식들, 곧 검증된 지식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발명 가운데 하나인 활자 인쇄는 계몽주의 시대가 열리기 휠씬 이전부터 근대 유럽의 역사를 주도하고 있었다. 지식을 표준화한 형태로 저장하고 전파할 수 있는 이상적인 조건이 마련된 셈이다. 그 효과는 정말 놀라웠다. 이는 곧 지식의 발달을 표준이라는 합리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갈 수 있는 능력을 우리 사회가 갖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18세기에 그 합리적인 방향이란 이성을 기치로 내건 세계의 완성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결정적인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도시든 시골이든 하루가 다르게 늘어만 가는 독자들은 칸트의 저서나 성경만 읽는 게 아니었다.
토끼를 낳은 처녀
: 잉글랜드 입스위치의 시골장터 한 구석에 위치한 인쇄소로 눈길을 돌려보자. 1726년 그곳에서는 말 그대로 기적과 같은 이야기가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그것도 단돈 2펜스라는 헐값으로! 입스위치의 토박이 입쇄업자 존 백널이 동종업계의 동료들에게 뒤질세라 한 충격적인 뉴스를 찍어낸 것이다. 기사에 따르면 처녀(메리 토프트)는 놀랍게도 한 무리의 토끼들과 발이 세 개 달린 고양이 한 마리를 낳았다고 한다. 이야기는 무서운 속도로 번져나갔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말인즉 임산부의 생각과 정서가 신생아의 모습에 그대로 새겨진다는 주장이었다. 의혹을 누를 길리 없던 런던의 의학 교수들과 한 자연과학자가 진상을 확인한다며 앞 다투어 먼지를 일으키며 나타났다. 속임수의 정체는 명확했다. 하지만 도시든 농촌이든 사람들의 상상력은 고삐 풀린 말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신문들은 연일 소식을 퍼 나르느라 바빴다. 18세기가 지나는 동안 이 이야기를 다룬 책들이 수없이 많은 판본들을 펴냈다. 이후에도 출판업계는 이 소재를 즐겨 다루었다. 그러나가 한동안 이 사기꾼 하녀의 이야기는 잠잠한게 잊힌 것만 같았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가 마침내 자취를 감춘 것일까? 천만의 말씀, 거의 200년이나 지난 다음, 기적과도 같은 토끼 출산은 다시금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20세기에 메리 토프트는 영국에서 백과사전에 오를 정도로 유명세를 누렸다. 이는 무엇보다도 그녀를 다룬 많은 책들과 인터넷 사이트들이 1900년에서 2006년 사이에 앞 다투어 등장한 탓이다. 이 모든 것은 그저 오보, 즉 사람들을 속이려는 짓궃은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소동은 저 입스위치의 인쇄공이 몇 쪽 안 되는 지면에 허튼 소리를 찍어내면서 일파만파로 퍼져나갔을 따름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보면 대개 17세기와 17세기 종교적 기적을 다룬 수많은 글들에서 따왔음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다만 종교를 이용해 도덕을 강조하고 있던 옛글의 분위기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뭐 신기한 거 없나 두리번 거리는 선정적 욕구에만 맞춘 엽기적인 사건들이 판을 쳤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읽을거리에 관한 욕구는 하루가 다르게 커져만 갔다. 갑자기 어디서 그 많은 이야기들을 찾아낸단 말인가. 결국 옛 이야기들이 빠르게 고쳐 씌어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과 한 세계의 몰락
: 이런 기막힌 소재가 몇몇 나라와 지방에만 머무르겠는가. 소재는 곧장 신비와 비술 등 희한한 이야기에 목말라하는 대중의 욕구를 겨냥한 미디어 시장의 상품으로 포장되어 유통되었다. 이성적인 설명을 추구하는 노력은 미신과 우상이 던진 그늘과 뗄 수 없이 맞물리고 말았다. 빛이 밝으면 그만큼 어둠도 짚은 것일까. 18세기 모든 지식을 백과사전에 담겠다는 노력과 동시에 오컬티즘이라는 가상의 백과사전도 고개를 비죽 내밀기 시작한 것이다. 묘한 것은 떠도는 풍설 속에 등장하는 요물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갈수록 덩치가 작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디 그뿐인가? 숲과 오지에 나타나는 놈들은 이전과 달리 꼭 홀몸이었다. 게다가 책 시장에는 아주 오래된 것이라고 포장된 마술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이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새로운 현상에 지나지 않았다. 옛날부터 있던 재료를 교묘하게 새것과 엮어서 독자를 혹하게 만드는 기막힌 솜씨를 발휘한 것이다. 이런 책들이 목표로 잡은 것은 부유한 영주나 도시 시민, 특히 머리에 먹물깨나 든 식자들이 타깃 독자층이었다. 사람들의 교육수준이 높아지면서 독서능력이 향상되자 오컬티즘의 수요도 급속도로 늘어난 것이다. 이는 갈수록 커져 가는 미디어 시장이 낳은 당연한 결과다. 노골적인 상품이 된 책은, "시장 경제라는 유통망의 형성을 이끌었다. 그리고 이런 유통망은 그것만의 독특한 법칙 속에서 움직였다."
개구리 쫓기와 불의 축복 - 구전에 의한 호들갑
: 근대 초에 엄청나게 쏟아져 나온 마법 책들은 아주 다양한 원전들을 보고 베낀 것이었다. 물론 원전을 밝히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근대의 오컬티즘이 갖는 특징 가운데 하나이며, 무엇보다 민중의 입에서 입으로 떠도는 마법적 상상들을 글로 옮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글이라는 게 무엇인가? "글이란 변화하는 가운데서도 지속적인 힘을 유지하는 것이라야 한다. 변화에서 걸러져 응축된 변화하지 않는 것, 이게 글의 특징이다." 반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구전의 전통은 다르다. 구전되어온 민간 요법은 표정이나 몸짓, 과장괸 연출, 상대로 하여금 밎이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만든느 흘림 등에 의해 힘을 얻는 게 아닌가. 하느님의 신통함을 경건하게 섬기는 독실한 신심도 구전 전통의 좋은 사례를 보여준다. 여기서도 '악령을 내모는 일'은 언제나 요란뻑적지근한 연출에 의존했다. 이런 전통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으로 지켜져 내려왔다. 글로 써서 기록으로 남길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다.
개구리 왕의 왕관 - 기록의 표준
: 18세기에 들어 출현한 비문학 실용서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별의별 희한한 비법이 읽는 사람을 혹하게 만든다. 이 새 시장은 신학자 과학자 혹은 교육자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가운데 출현했다. 그리고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기 버거울 정도의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당시 얼굴을 들이민 미신과 우상과 신비를 다룬 책들도 최신 자연과학 이론이라는 탈을 쓰고 있었다. 희한하게도 과학과 미신은 번갈아가며 서로 보강해주는 결과를 낳았다. 게다가 종교가 갈수록 힘을 잃어가면서 의미 있는 위로를 주지 못하자 사람들의 공허함은 더욱 커겼다. 이런 분위기를 읽은 출판시장이 각종 미신과 신비와 마법을 담은 책들을 쏟아내며 허전한 마음을 헤집고 들어온 것이다. "미신에 목을 매는 사고방식"을 비판적으로 다룬 책이 나온다. 다시 더욱 놀랍고 신비로운 오컬티즘 책이 등장한다. 이런 식으로 순환구조를 이루면서 신비주의 사고도 미디어 시장의 한 부분을 당당하게 차지하는 혁혁한 성과를 올렸다.
신비주의와 고대 - 성경을 대신한 비밀스런 책들
: 19세기 유럽 오컬티즘의 또 다른 장을 쓰기 시작한 것은 고대의 신비주의를 본뜨는 작업이었다. 유구한 세월을 두고 전수되어 내려온 고대의 신비주의 전통 혹은 이교도 전통은 오늘날 특히 페미니즘 안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결국 고대를 신비주의로 재해석해 받아들이자는 주장은 19세기에서 20세기로 바뀌던 세기말에 생겨난 민족주의 운동들이 내세운 이데올로기와 같은 것이었다.
진자 마법에서 사이버 오컬티즘까지
: 20세기에 들어서도 오컬티즘의 새로운 장르들은 속속 고개를 내밀었다. 1950년대에 나온 각종 오컬리즘 서적 목록을 보고 있노라면 너무나도 노골적인 상업성에 실소를 금치 못할 지경이다. 게다가 여기에 미국의 사이비 정교들도 한몫 단단히 거들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자 뉴 에이지라는 이름의 신비주의 운동이 더욱 거센 바람을 일으키며 온갖 책들을 쏟아냈다. 오늘날 미디어의 막강한 권력은 근대의 오컬티즘을 변주하여 다양한 상품을 생산해내고 있다. 디지털 혁명으로 글로벌 사이버 망이 구축되면서 미디어 자체가 신비주의적인 성격을 띠게 된 탓이다.
미디어 시대의 오컬티즘
: 이 책에서 특히 주목하는 것은 오컬티즘과 미디어 권력 사이에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 하는 문제이다. 우리는 흔히 미디어 역사를 정보와 교양 수준의 향상 그리고 이성의 승리와 결부지어 바라보곤 한다. 하지만 중세 후기 이후 그 그늘 아래서 각종 미신과 마법과 신비는 비약적으로 늘어난 출판물에 힘입어 더욱 더 널리 퍼져왔다. 모든 이야기의 시작을 장식하는 것은 연금술이다. 또 다른 사건은 14세기 중반 유럽을 휨쓴 페스트였다. 계몽의 시대는 이미 싹이 트기 시작한 교양 수준 향상 및 이성 중심의 계도 운동과 함께 진행되었다. 이런 운동의 목표는 일반 대중의 사고방식과 습관에서 어리석음과 미신을 몰아내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장은 전체 흐름을 조망하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페스트와 같은 역병과 마찬가지로 전쟁도 오컬티즘에 전파에 한몫 단단히 거들었다. 출판사들은 '비소설 실요서'라는 애매모호한 장르를 신설해가며 싸구려 책들을 마구잡이로 찍어냈다. 동시에 역사의 지평선에서는 민족주의의 출현을 알리는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한사코 대고적으로 거슬러 대코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자기네가 가장 우수한 민족이라는 자다가도 벌떡 깰 주장을 뜬금없이 내세운 것이다. 기술이라는 또 다른 신화와 더불어 민족주의는 1960년대 이후 망상에서 깨어난 독자들을 고대 외계인 출현설이라는 사이비 과학으로 사로잡았다. 구켄베르크 이후 빚어진 출판시장의 혁명과 마찬가지로 20세기 말에 일어난 미디어와 시장의 근본적인 변화는 디지털이라는 기술적 여건과 유통망으로 오컬티즘을 키우기에 딱 맞는 토양이 되어주고 있다. 현재의 미디어 시장에서 오컬티즘이라는 그늘은 더 이상 지울 수 없는 흔적이다. 미신과 신비와 마법이 곧 정보사회의 일부이며,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떠받드는 기둥이다.
2. 철학자들의 돌과 페스트 : 중세와 근대 초의 은총과 치유
인쇄술의 발명은 근대 초의 사회를 꾸준히 바꿔 놓았다. 교양과 학문이 대중에게 차근차근 파고들었고 이렇게 해서 쌓은 지식은 유럽인의 자부심을 한껏 높여주었다. 하지만 16세기에 벌어졌던 종교전쟁이나 30년 전쟁은 장기간에 걸쳐 사람들의 일상을 음울하게 물들였다. 이미 14세기부터 페스트는 유럽 사람들을 끈질기게 따라다닌 고질병이었다. 짧은 잠복기와 함께 강한 전염력을 갖는 이 역병은 오컬티즘에 묘한 방식으로 힘을 실어줬다. 페스트는 중세의 연금술과 근대의 미디어 시장이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자매결연을 하는 뜻하지 않은 결과를 몰고 온 것이다. 다시 말해서 페스트로 인해 출판시장에는 온갖 희한한 주문과 비법을 담은 책들이 출현했다. 과학적인 근거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이런 책들은 한결같이 '의학서적'이라는 소제목을 달고 있었다. 이른바 '비소설 실용서적 시장'의 활로가 활짝 열렸다. 한때 인간과 자연과 우주 사이의 전체 관계를 조망하려던 연금술의 야심찬 이상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바로 이 시점에서 현대 신비주의가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연금술이란 무엇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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