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한국 직접 참여민주주의의 현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9.

바람과 술 2010. 1. 13. 12:12

책 머리에

 

우리나라에서 직접/참여민주주의는 여전히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단어이다. "민주주의=선거'라는 인식은 시민들 사이에도, 정치인들 사이에도, 그리고 심지어 정치학자들 사이에도 퍼져 있다. 선거제도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관대한 사람들이 직접/참여민주주의에 대해서는 공격을 서슴없이 가한다. 정치인들이나 관료들은 직접/참여민주주의 제도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감추지 않는다. 그러나 직접/참여민주주의에 대한 평가절하는 시민참여에 대한 평가절하이고, 주권자인 유권자들에 대한 평가절하이다. 오히려보다 많은 시민들이 참여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더 좋은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한다. 물론 직접민주주의나 참여민주주의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문제들은 수정되고 보완되어 가면 되는 문제들이다.

 

1장 직접/참여민주주의와 한국 사회

 

1.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와 직접/참여민주주의

 

대한민국 헌법에서는 '주권재민' 원리를 선언하고 있다. 즉 헌법 제1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주권재민' 원리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기본적으로 대의제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한민국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방식은 선거제도를 통해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 헌법은 대의제 민주주의를 골자로 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대한민국 헌법의 태도는 주권재민 원리를 실현하는 방안으로는 매우 소극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대의제 민주주의가 '주권재민' 원리를 제대로 실현시키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대의제 민주주의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논리인 탁월성의 논리(the principle of excellence)에 대해서도 문제제기가 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자질이라기보다 오히려 정보와 권한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시민들에게 정보와 권한만 주어진다면 시민들은 선출된 대표자들보다도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문제점과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 대의제 자체를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도 시민들의 직접 참여권을 보다 강화함으로써 '주권재민' 원리를 실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순수한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 소수 정치 엘리트들에게 독점되어 있던 주요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 정치적 의제의 설정권, 실질적인 결정권을 시민들에게 분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시민들은 실질적 주권자가 될 수 있다.

 

2. 한국 직접/참여민주주의 관련 흐름

 

현대 한국사회에서는 군사독재정권이 이어지면서, 민주화운동의 핵심 과제가 대의제 민주주의라도 제대로 실현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1987년 이후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한국에서도 다양한 시민운동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민사회의 성장은 시민들이 단지 대표자를 선거로 선춣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참여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1990년대는 시민들의 참여가 제도적으로 보장된 수준이 매우 낮앗다. 선거를 제외하고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의사결정에 반영할 수 있는 직접 참여 제도가 없었다. 지방자치가 부활했지만, 주민들의 직접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는 전혀 도입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제도적으로 보장된 것은 아니지만, 시민들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영향력을 미치려는 시도들은 계속되었다. 이런 시도들은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은 참여를 통해 정책결정과정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이었다. 그러다 1990년대 후반부터 제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1998년부터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었는 데, 이는 시민들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었음을 의미한다. 정보 없이는 참여가 있을 수 없기에, 정보공개제도 도입은 시민들의 참여를 확대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또한 지방자치 영역에서 주민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들이 점차 도입되기 시작했다(2003년 주민감사청구제, 주민발의제도 / 2004년 주민투표제 / 2006년 주민소송제도 / 2007년 주민소환제). 그러나 이러한 제도 변화는 주로 지방자치 영역에서 일어났다. 국가 차원의 큰 제도적 변화는 없었다.

 

3. 지방자치 주민참여 제도 도입 현황

 

한국 지방자치에 도입된 주민참여제도는 다음과 같다. '주민감사청구'란 주민들의 집단적 서명에 의해 법령에 위반되거나 공익을 현저히 해한다고 인정되는 사안에 대해 감사를 청구할 수 있는 제도이다. '주민발의'란 지방자치단체의 조례 입법과정에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주민투표'란 지방자치단체의 중요한 정책 결정 사항을 주민 투표에 부쳐 결정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주민소송'이란 지방자치단체의 위법한 재무회계행위에 대해 주민이 소송을 제기하여 그러한 행위를 예방 또는 시정할 수 있도록 한 제도이다. '주민소환'이란 일정 수 이상 주민의 집단서명으로 선출직 지방공직자의 해임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 실시를 청구할 수 있고, 실시된 투표에서 투표자 과반수가 찬성할 경우에는 선출직 공직자를 임기 중에 해임시킬 수 있는 제도이다. '주민참여예산'이란 지방자치단체 예산편성과정에 주민들의 참여하여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러한 제도들의 도입 그 자체만으로 직접/참여 민주주의가 활성화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보다는 이러한 제도들이 실제 어떤 내용과 절차로 설계되었은가, 그리고 이 제도들이 시민들의 참여를 얼마나 활성화시켰으며, 실제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가의 여부 등이 직접/참여 민주주의의 황성화와 발전에 더욱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2장 한국 직접/참여 민주주의의 현황

 

1. 주민발의

 

1)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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