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조선인의 유토피아], 서신혜, 문학동네, 2010, (100420).

바람과 술 2010. 4. 20. 11:59


머리말 - 옛사람들이 꿈꾸던 세상, 지금 우리가 꿈꾸는 세상


1. 안평대군이 꿈꾼 세계 <몽유도원도>


키워드 속 키워드 1 - 한유의 [제도원도시(題桃源圖詩)]


키워드 속 키워드 2 - 안평대군의 꿈에 동행한 사람들, 역사 속 그들의 실체


키워드 속 키워드 3 - <몽유도원도> 뒤에 붙인 당대 최고 문인의 찬문들


2. 옛사람들이 그린 이상향의 모태, 도연명의 [도화원기]


안평대군이 꿈에 가본 별세계가 왜 하필 도원일까?  그 이유는 조선 문인들이 그리는 이상향이 도연명의 [도화원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험한 진입로를 똟고 그 안에 감춰진 무릉도원에 이르고 보니 그곳에는 무슨 금은보화가 쌓인 것이 아니었다. 오직 깨끗하고 고요하며 평온했을 뿐이다. 그저 다같이 땀 흘려 뽕나무를 심어 가꾸고 농사도 지어서 그것으로 밥을 먹으면서 닭이나 개 등의 가축을 기르고 이웃과 나란히 함께 조용히 살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이었다. 그런 세상이야말로 세속에서 꿈꾸던 이상향인 것이다. 이 공간은 특히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축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권력의 횡포 때문에 백성들이 행복을 빼앗기고 있다는 인식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3. 이상향, 그 다양한 이름들


조선시대 선비들도 늘 현실과 다른 세상을 그리워하며 그곳을 찾고 싶어해 머릿속으로나마 그 공간을 구체적으로 그려보기도 했다. 그들이 찾고 싶어하고 구현하고 싶어한 공간도 도연명이 [도화원기]에서 그린 무릉도원의 모습과 비슷했다. 한마디로 말해 동양문화권의 정신사적인 면에서 볼 때 이상향에 대한 공통된 인식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말이다. 우리 옛 선조들의 문집이나 각종 설화에서 이상향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한 말들은 옥야(沃野), 승지(勝地), 복지(福地), 동천(洞天), 낙토(樂土), 부산(富山), 선경(仙境)등 이루다 세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다. 옥야는 비옥한 땅을 나타내는 말이니 뛰어난 생산력을 강조한 용어이고, 복지는 아름다운 계곡이나 동굴속 세상을 나타내는 말이다. 낙토는 낙원이라는 말에서볼수 있듯이 세상 힘든 것이 없는 즐거운 땅이라는 의미이며, 부산은 물자가 풍족하여 가난이 없다는 의미를, 선경은 신선이살 만큼 깨끗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그중에서도 동천에 대해서는 조금더 이야기해볼까 한다. 동천은 본래 도교에서 신선이 모여 사는 땅을 의미하는데 속세의 때가 미치치 않은 깨끗한 공간임을 강조한 단어였다. 그러나 시대가 흐를수록 도교의 종교색은 탈색되었다. 본래 불로장생하는 '신선'은 도교적 사상을 대변하는 인물이었지만 후대에 '신선'은 종교색 없이 그저 풍채 좋고 오래 살며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깨끗한 인물을 대표하는 일반명사가 되었던 것과 비슷하다. 동천 역시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깨끗하고 아름답고 조용한 공간을 통틀어 부르는 말로 쓰인 것이다. 무릉도원 같은 이상향을 나타내는 용어를 마을 이름에 붙였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서양 사람들이 세상이 '없는' 꿈의 공간이라는 의미를 강조하며 '유토피아'라는 용어를 정착시킨 것과 달리, 우리 선인들은 가까운 곳에서 이상향을 찾았다. 자신들이 사는 공간이 바로 이상향이라는, 보다 적극적이고 자부심 어린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사람들은 현실에 어떤 불만을 갖고 있으므로 현실과 다른, 또다른 세상을 꿈꾸게 마련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꿈꾸는 또다른 세상은 나름대로 현실의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지니고 있기 십상이다. 서양의 이상사회는 크게 코케인(Cockaigne), 아르카디아(Arcadia), 천년왕국(Millennium), 유토피아(Utopia)로 나뉜다. 코케인은 꿀과 포도주등 먹을 것이 넘쳐나고 누구나 노동에서 해방되어 환희 가운데 세월 가는줄 모르고 사는 세상이다. 한자로 표현하면 환락국형이라 할 수 있다. 아르카디아는 아름다운 풍경과 순박한 인정을 함께 갖춘 목가적 이상향으로 동양에서는 낙원국형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이곳 역시 풍요로운 곳이지만 코케인과 달리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인간의 '절제'가 있는 공간이다. 천년왕국은 [성경]의 '요한계시록'에서 유래한 것이다. 앞으로 올 세상을 꿈꾸기 때문에 미래자향적이라는 면에서 아르카디아와 구별된다. 유토피아는 인간의 물질적 욕구를 최대한 만족시키면서도 사회제도를 통하여 인간의 본성을 통제함으로써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이룩하는 이상사회를 말한다. 동양의 이상사회는, 모든 것이 천부적으로 충족된 신화적 이상공간인 산해경형, 도교적 이상공간이되 인간이 거주할 수 없는 신국인 삼신산형, 인위적 권력을 배제하여 현실 속에 이룬 이상공간인 무릉도원형, 현실 속에 이룩한 유교적 이상공간인 대동사회형으로 나뉜다. 산해경형 이상사회는 완전한 신선만이 살 수 있는 곳이므로, 인간이 그런 곳을 만들거나 그곳에서 살 꿈조차 꿀 수 없는 환상적인 공간이다. [산해경]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신화서로, 이 책에는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신비한 생물이 나와 노래하고 춤도 추며, 아무리 잡아도 고기가 줄지 않는 환상적인 연못에 대한 이야기 등이 나온다. 그러므로 산해경형 이상사회는 산물이 넘쳐날 정도로 풍요로우며, 모든 생물은 죽지 않는 생명력을 갖고 있고, 생물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라고 하겠다. 서양의 코케인이나 아르카디아의 특징을 함께 갖추었다고 보면 된다. 삼신산형 이상사회는 인간이었다가 불사의 경지에 도달한 신선 같은 존재들이 사는 공간이므로 신들의 나라라고 부르기도 한다. 본래 삼신산이란 신선이 산다는 세 산인 봉래산과 방장산과 영주산을 말한다. 이 산들은 바다 가운데 있고 그 주위의 바다는 가벼운 새털조차도 가라앉아버리는 약수(弱水)이므로 배를 타고 오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곳은 오직 새처럼 날 수 있는 신비한 존재들만 갈 수 있는 곳이다. 삼신산에 있다는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진시황이 서불과 동남동녀 삼천 명을 보냈지만 이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이상사회의 유형을 구분할 때, 삼신산형 이상사회라는 것인 이 세 산뿐만 아니라 바다나 산속, 또는 천상이라는 모든 공간까지를 포함한 뭇 신들의 거처를 말한다. 죽지 않는 신들의 나라이므로 이곳은 젊음을 간직한 신들이 사는 생명력 넘치는 풍요로운 공간이다. 그러나 이곳도 옥황상제를 정점으로 신들의 관료조직이 있는 불평등한 사회이다. 또 사람은 살 수 없는 공간이므로 이곳은 잠시 엿보았다는 사람만 있을 뿐 여기에 살았다는 사람은 없는, 실체 없는 이상공간이다. 무릉도원형 이상사회는 보다 현실적인 공간으로 노자의 [도덕경]에 드러나는 '인위적인 행위 없이 하는 다스림' 사상에서 유래한 공간이다. 노자의 '무위이치(無爲而治)'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당시 혼란한 동주 사회의 정치적 현실에서 노자는 전쟁이나 무거운 세금, 권력의 과도한 간섭과 압박, 심각한 빈부격차 등을 반대한 것이다. 이런 현실관을 반영해, 국가와 정치를 강력하게 비판하는 뜻을 담은 말이 바로 '무위이치'이다. 무릉도원형 이상사회에서는 자연의 풍요로움을 누리며 그것과 조화를 이루면서 사는데, 다만 이런 사회가 산해경형처럼 천부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이를 적극적으로 추구한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대동사회형 이상사회는 앞의 셋과 다르게 유교적인 바탕에서 이룩한 사회이다. 공자가 [예기]의 '예운'에서 "대도가 행해지면 천하가 공평해진다"고 말한 것에서 유래한 이 사회는 궁극적으로 요, 순 등 선대의 성군이 다스리는 사회를 모델로 하기 때문에 복조적인 성향이 있다. 이런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각기 자기 능력에 맞는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고 모든 젊은이는 모든 노인을 자신의 부모처럼 대접하고, 모든 어른은 모든 아이를 자기 자식처럼 기른다. 이렇듯 대동사회형 이상사회에서는 재화나 제도 등이 모든 것이 인간의 노력에 의해 바람직하게 다듬어진다. 이 밖에도 불교적인 수행을 통해서 개인이 서방의 정토라는 이상공간에서 살 수 있다는 미타정토 사상, 우리가 사는 지상에 이상사회가 도래할 수 있도록 현실 사회를 개혁하려는 미륵정토 사상 등이 있다. 


키워드 속 키워드 4 - 이상향의 또다른 이름들은 어떤 이야기에 나오나?


4. 바라는 세계, 그 구체적 메커니즘


키워드 속 키워드 5 - 허생이 꿈꾼 유토피아


5. 실제로 새 세상을 건설한 사람들


6. 꿈꾼 데에서 나아가


어떤 시기였느냐에 따라 이상세계의 모습에 특별한 점이 부가되기는 했다.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등으로 인하여 전국이 반복적으로 전쟁에 휩싸였던 조선 중기에는 자신들의 목숨을 보존할 수 있는 보신처를 이상세계로 여겼다. 조선 후기에는 폐허가 된 전국을 일으키기 위해 궁궐 등을 다시 세우는 공사를 많이 해야 했다. 신분 제도의 문란으로 양반의 수가 기형적으로 증가하면서 양민들이 부담해야 할 부역과 세금 부담이 커졌다. 그래서 그때에는 국가 권력의 수탈이 없는 세상이 이상세계로 그려졌다. 서양의 문물과 제도가 들어오기 시작한 개화기 무렵에는 각종 편의시설과 기계를 적절히 이용해 덜 고생하면서 더 많이 생산하는 세상이 이상세계라 생각했다. 이런 것들은 '소국과민'의 기본 바탕에 각 시대의 특징이 가미되어 나타난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