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 거기, 고목나무가 있기에 달려간다
1 역사의 현장의 나무
역사의 격변을 묵묵히 지켜보다 - 헌법재판소 백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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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운동도 피해간 신령스러운 숲 - 원주 성남리 성황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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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리들의 희로애락 - 평창 옛 운교역 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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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큰 일을 예언하라 - 영월 하송리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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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기던 임금도 쉬어가다 - 울진 실직국왕 굴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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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베어 팔아 마을을 지키다 - 예천 금당실 솔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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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가 의연하게 머물러 있는 것 같은 ... - 안동 진성이씨 종택 뚝향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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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에 살다간 자인 넑인 듯 - 울릉도 통구미 향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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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은 썩 물러가라 - 창원 신방리 음나무
: 음나무는 원래 요사스런 귀신을 물리칠 수 있다는 '벽사나무'다. 험상궃게 가시가 듬성듬성 나 있는 음나무 가지를 기신이 싫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저승사자가 검은 도포자락을 펄럭이고 다닌듯이 잡귀도 도포를 입고 다닌다고 상상한듯하다. 음나무 가시는 도포 입은 귀신이 신경 쓰이는 부분, 즉 도포자락을 걷어 올려야 하는 불편함을 감소해야 하니 좋아할 리 없다. 귀신이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를 하는 셈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귀신이 싫어하는 나무에는 음나무를 비롯해 무환자나무, 복사나무 등이 있다. 반대로 귀신이 좋아하는 나무에는 느티나무 등의 정자나무와 버드나무 종류가 있다.
선견지명을 가진 관리의 백성 사랑 - 하동 송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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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하다 - 광양 유당나무 이팝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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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황칠을 탐하다 - 완도 보길도 황칠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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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로부터 마을을 보호하다 - 제주 납읍 난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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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 시를 읊다 - 제주 안덕계곡 상록수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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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 - 제주 천지연 난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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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문화유적의 나무
왕과 벗하다 - 창덕궁 회화나무·향나무·다래나무·뽕나무
: 궁궐과 회화나무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옛날 중국 궁궐 건축은 [주례]라는 책을 기준으로 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면삼삼괴삼공위언(面三三槐三公位焉)'이라 하여 회화나무 심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즉 궁궐의 외조(外朝)는 왕의 삼공과 고경대부 및 여러 관료와 귀족들을 만나는 장소인데, 이 중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의 삼공자리에는 회화나무를 심어 특별석임을 나타내는 표지로 삼았다고 것이다. 창덕궁의 돈화문 안은 바로 외조에 해당하는 곳이다. 회화나무는 이렇게 꼭 외조의 장소만이 아니라 차츰 고위 관직의 품위를 나타내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리고 궁궐을 비롯해 관아의 앞뜰, 고관대작의 사저에도 회화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옛 선비들은 회화나무를 통해 자신의 벼슬과 학문을 은연 중 뽐내는 수단으로 삼은 것 같다. 조선왕조가 건국 초기에 혼란을 수습하고 기틀을 잡아갈 즈음인 태종 9년(1409) 임금은 직접 궁궐 안에 뽕나무를 심으라는 명을 내린다. 이는 중국의 주나라 성왕 때 실시한 공상(公桑)제도를 본뜬 것이었다. 공상이란 함은 옛날 천자와 제후는 뽕나무 밭을 의무적으로 갖게 하고 여자들은 누에를 쳐서 옷감을 짜는 일을 말한다. 한편 10여 년 뒤인 세종 5년(1423) 잠실을 담당하는 관리가 임금께 올린 공문에 '경복궁 안의 뽕나무 3,590주와 창덕궁 안의 뽕나무 천여주, 밤섬의 뽕나무 8,290주로 누에 종자 2근 10냥을 먹일 수 있습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기록을 보아 조선 전기의 정식 궁궐인 경복궁은 물론 별궁으로 이용되던 창덕궁에 이르기까지 궁궐이 온통 뽕나무밭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에 반하다 - 서울 문묘 운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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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의 두 번째 왕비, 엄귀비의 무덤 앞 - 서울 영휘원 산사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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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쟁기를 잡다 - 서울 선농단 향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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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문화의 자존심 - 여주 효종왕릉 회양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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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자가시, 적군의 발목을 노리다 - 강화 갑곶돈대 탱자나무
: 돈대(墩臺)란 일종의 방위시설로서 성곽이나 방어 요지에 구축한 진지를 말한다. 외적을 막는 기본적인 수단으로 성을 쌓아야했으며, 탱자나무는 성을 튼튼히 해주는 보강 재료로 널리 쓰였다. 그래서 성 아래에 탱자나무를 촘촘히 심어 가시 울타리를 만들었다. 그랫 이런 성을 '탱자성'이란 뜻으로 '지성(枳城)'이라 불렀다.
그 어머니에 그 아들 - 강릉 오죽헌 율곡매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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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임금의 눈물을 보다 - 영월 청령포 관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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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멋에 취해 흥얼거리다 - 안동 하회마을 만송정 솔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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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람들의 만병통치약 - 경주 독랑당 조각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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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 둥! 둥! 왜적의 침입을 막아라 - 의령 곽재우 장군 생가 현고수·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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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아들을 묻다 - 함양 학사루 김종직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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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병사들의 아픔 - 부산 좌수영 터 곰솔·푸조나무
: 아류(들놀음)란 이름 그대로 넓은 들판에서 놀이를 한다는 뜻이다. 오광대는 전문 연예인들의 공연인데 비해, 야류는 비전문적인 마을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놀이이다.
"뒷산의 바위가 드러나면 마을이 가난해진다" - 해남 녹우단 비자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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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을 사랑했던 목민관의 발자취 - 제주 산천단 곰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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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길 따라 옛길을 걷다 - 제주 옛 정의현청 느티나무·팽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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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통사찰의 나무
대웅전 부처님과 만나는 설레임 - 서울 조계사 백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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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여왕님의 시주를 받다? - 영동 영국사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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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품송 납시오! - 보은 법주사 정이품송·정부인송·망개나무
: 나무에게 벼슬을 내린 전례는 중국의 진시황이 처음이다. 황제가 천하를 통일한 후 태산에 돌라 하늘에 제사를 올리려 할 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미처 준비할 겨를이 없어 모두들 당황했는데 마침 인근에 큰 소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그 밑에서 비를 피하며 무사히 제사를 마치게 됐다. 이를 가상하게 여긴 황제는 소나무에 대부(大夫)라는 벼슬을 내렸다. 세조도 이런 고사를 따라 쉼터에 자라는 근사한 소나무 한 그루에 정이품이란 파격적인 벼슬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갓 머리감은 소녀의 삼단 같은 머리결 - 청도 운문사 처진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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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예쁘지도 곱지도 않은 것이 ... - 남해 화방사 산닥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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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고기가 오류구름을 타고 노닐듯 ... - 부산 범어사 등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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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의 절을 말없이 지켜오다 - 진안 천황사 전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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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겨울의 푸른 청춘 - 정읍 내장사 굴거리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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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산 아래 3형제의 우정 - 고창 선운사 송악·동백나무숲·장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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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들이 숨어 살던 곳 - 고창 문수사 단풍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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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이룬 사랑의 증표 - 영광 불갑사 참식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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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남도 '오메 취하겠네' - 장성 백양사 비자나무숲·매화나무
: 백양사 이외에도 고흥 금탑사·장흥 보림사·영광 불갑사·화순 개천사·정읍 내장사등 남부지방절 주위에는 흔히 비자나무가 자란다. 대부분 사람들이 일부러 심은 것들이다.왜 하필이면 이렇게 절 주위에 비자나무가 많을까? 이유는 촌충, 심이지장충등 사람의 몸속에 기생하는 벌레들을 없애는데 비자열매가 특효약이기 때문이다. 따라서스님들은 비자나무를 심어그 열매로 백성들을 구제코자 했다. 수확한 비자열매는 구충제로 나누어주고, 나머지는 기름을 짜서 절의 살림에 보탤 수도 있었으니 일거양득이다. 비자나무는 열매 쓰임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한아름이 넘게 자라고 재질이 좋기로 이름난 나무이므로 죽어서는 '몸체 보시'로 이어진다. 또 절에서는 불상을 새기는 데 최고급 나무로 대접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비자나무로 만든 불상이 알려진 바 없지만, 백제의 영향을 받은 일본의 많은 불상들은 비자나무로 만들었다.
어떤 그리움이 저리도 붉더냐! - 강진 백련사 동백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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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별초의 최후를 지켜보다 - 진도 쌍계사 상록수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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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흔들지 마라! - 순천 송광사 천자암 쌍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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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감추지 못한 수백년 세월의 매향(梅香) - 순천 선암사 매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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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분홍 꽃비 내리는 낙화의 진한 감동 - 구례 화엄사 올벚나무·매화나무
: 벚나무는 지금처럼 꽃구경에 넋을 빼앗기는 '꽃놀이 나무'가 아니었다. 껍질을 벗겨 군수물자로 이용하는 무기산업의 첨병이었다. 활에다 감아 손을 아프지 않게 하는 재료로 쓰였기 때문이다.
남도 끄트머리에 숨겨놓은 보석 - 고흥 금탑사 비자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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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선비와 장군의 나무
천 년 역사를 말없이 지켜보다 - 서울 신림동 강감찬 장군 굴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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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亡國)을 심다 - 양평 마의태자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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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산한 마음을 달래다 - 예산 추사 김정희 백송
: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백송은 대부분 조선왕조 때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 온 사람들이 가져와서 심은 것이다.
내가 호두의 왕이로소이다! - 천안 류청신 호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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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잃은 왕과의 슬픈 인연 - 삼척 공양왕 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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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의 정승이 태어날 명당터 - 의성 류성룡 가로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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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묵객이 쉬어간 '천년 향림(香林)' - 대구 서거정 측백나무숲
: 선비의 곧은 기품을 이야기 할 때 흔히 쓰는 송백(松柏)의 '백'은 측백나무와 잣나무에 같이 쓰이고 있는 글자이다. 대체로 중국 사람들이 송백이라면 소나무와 측백나무를 가리키고, 우리나라 자연을 노래한 시에 나오는 송백은 소나무와 잣나무로 볼 수 있다. 중국 본토에는 잣나무가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천 년 숲에서 길을 묻다 - 최치원 함양 상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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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을 지켜보았다오! - 남해 이순신 장군 왕후박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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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삶, 꽃다운 그 이름, 논개 - 장수 논개 의암송(義岩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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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500년을 열다 - 이성계 느티나무·청실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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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목민관의 가슴 아픈 백성 사랑 - 담양 이도령 관방제림(官防堤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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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달 가듯이 ... 방랑 시인의 추억 - 화순 김삿갓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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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아무에게도 이곳을 알리지 말라 - 도선국사 동백나무숲·반룡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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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세상을 알리다 - 강진 하멜 은행나무
: 조선 효종 4년(1653) 네덜란드인 헨드릭 하멜은 동인도회사 무역선 서기로 일본 나가사키로 항해하고 있었다. 8월 중순 타이완을 출발한 배는 태풍을 만나 제주도 대정읍 해안으로 떠밀려온다. 그는 이후 정확하게 13년 28일간 서울·강진·순천·여수 등으로 끌려다니면서 억류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현종 7(1666) 9월, 여수에서 일본으로 탈출해 고국으로 돌아간다. 하멜은 억류기간 밀린 월급을 받기위해그 동안 조선생활을 기록한 [하멜 보고서]를 쓴다.
부록 1 우리 문화재 나무 화보
부록 2 문화재로서의 천연기념물
천연 기념물의 역사
: '천연기념물(天然記念物)'이란 말은 독일의 자연과학자이자, 탐험가인 알렌산더 폰 훔볼트 남작이 [신대륙 열대지방 기행]이란 책에서 처음 사용했다. 그는 서기 1799~1804년에 걸쳐 남미의 적도 부근 여러 나라를 여행했다. 어느 날 그는 베네수엘라 북부의 쓰루메토라는 마을을 지나다가 엄청난 크기의 고목나무 한 그루를 발견한다. 홈볼트는 이 나무를 본 순간, 위대하고 장엄함에 한 동안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크게 감명을 받은 그는 고목나무를 비롯한 자연에 대해 깊은 애정과 경외감을 갖는다. 여행에서 돌아온 그는 감명 깊게 본 나무를 떠올리면서 기념비적인 자연물이란 뜻의 '천연기념물(natural monument)'이란 말을 처음 쓰게 됐다. 마침 이때는 산업혁명 이후 급격한 자연파괴와 공해, 생활환경 오염이 심해지고 있었다. 이에 따라 자연보호의 필요성을 차츰 느끼기 시작했으며 그 상징으로 유럽 사람들은 천연기념물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 1803년 독일을 시작으로 1827년 프랑스, 1843년 영국에 이어 덴마크와 네덜란드 등의 유럽 국가들은 천연기념물을 지정하기 시작하다. 이처럼 천연기념물은 처음에는 크게 자란 고목나무에서 출발해 차츰 동물, 광물 등으로 지정 대상을 넓혀 나갔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인 1913년 처음으로 일부 고목나무를 조사하면서 비로소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할 기초를 닦았다. 이어서 1919년에는 전국에 걸쳐 일제히 조사를 하고 고목나무가 보존돼 있는 사유에 따라 명목(名木)·신목(神木)·당산목(堂山木) 등으로 나누었으며, 64종 5,330그루를 확인했다. 고목나무 보호를 위한 법의 뒷받침도 이루어져 1933년 '조선 보물 고적 명승 천연기념물 보존령'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광복 후에도 오랫동안 일제의 보존령을 그대로 이어오다. 1962년 1월 10일 법률제961호로 문화재보호법이 새로 만들어지면서 천연기념물이 비로소 우리 손에 의해 보호 받게 됐다.
식물 천연기념물의 종류
: 식물 천연기념물은 고목나무와 숲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문화재청에서 공식적으로 구분하는 세부 분류는 고목나무(노거수)·회귀식물·자생지·수림지(樹林地) 등이다. 고목나무는 수백 년에서 천 년을 살아오고 나무로서 대부분 전설을 안고 있다. 희귀식물은 우리나라에만 자라거나 멸종 위기에 있는,말 그대로 '드물고 보배로운 식물'이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밖에 자라지 않는 미선나무, 자람터가 중부 산악지방에만 한정되는 망개나무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자생지는 한정된 지역에만 자라는 것으로 울릉도 향나무, 단양과 안동및 대구의 측백나무숲 등이 자생지로 지정돼 있다.또 담팔수·참식나무·후박나무·꽝꽝나무 등 주로 따뜻한 난대지방에 자라는 식물은 북쪽으로 추위를 이기고 자랄수 있는 한계지역을 자생북한지(自生北限地)로 지정했다. 수림지는 성황당 주위에 섬겨진 성황림, 홍수때 물이 넘어오는 것을 막아줄 나무댐 역할을 하는 호안림(護岸林), 바람이 심한 곳에 줄로 심은 방품림, 바닷가에 심어 짠 바람이 넘어오는 것을 막고 고기가 모여드는 환경을 만들어줄 어부림(魚付林), 풍수지리설에 따라 지형을 보완해주는 비보림(裨補林), 역사적인 전설을 가진 역사림 등이 있다.
천연기념물 현황
: 쳔연기념물로 지정되면 사람의 주민등록번호처럼 평생 변하지 않는 고유번호를 나라로부터 부여받는다. 지정순서대로 번호가 정해지며, 나무가 죽어서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돼도, 다른 나무가 그 번호를 다시 부여받는 일 없이 그대로 둘 만큼 번호는 권위가 있다. 고유번호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는 순간부터 나무에 대한 대접이 달라진다. 연간 수천만 원의 관리 예산이 주어지고 돌보는 사람이 붙으며, 주위에는 담장이 처지고 근사한 소개 간판이 세워진다. 함부로 나뭇가지 하나라고 꺽었다가는 문화재보호법의 적용을 받아 경을 친다.
천연기념물 선발과정
: 나무라도 최고 품계인 천연기념물이 되기까지는 몇 가지 단계가 있다. 맨 아래 단계로서 마을 사람들의 편의상 붙이는 '마을나무'를 시작으로 행정 단위를 따라 '면나무', '군나무'로 올라간다. 이들은 이름만 붙였을 뿐 별 다른 조치가 취해지는 것은 아니다. 고목나무나 숲이 정부로부터 공식 인정받는 첫단계는 보호수다. 몇 년전까지는 산림청에서 직접 지정하고 관리만 지자체에 맡겼으나, 지금은 지정과 관리 모두 각 지자체가 하고 있다. 보호수는 이름 그대로 정부의 보호를 받고 있는 나무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행정기관의 보호만 받을 뿐 문화재 반열에 들지는 못한다. 보호수 보다 한 단계 위인 '시도 기념물' 혹은 '문화재 자료'라는 이름으로 지정을 받아야만 비로소 국가가 이정하는 문화재가 된다. 여기서 이름이 더 알려지면 나무나라 최고의 영예인 천연기념물 나무로 올라간다. 물론 반드시 단계를 밟아서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보호수가 시도 기념물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천연기념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천연기념물 지정과 해제
: 문화재보호법 시행규칙 1조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할 수 있는 기준은 다음과 같이 정해두었다. ① 한국 특유의 식물로서 이름난 것 및 그 서식지와 생장지 ② 특수지역이나 환경에 자라는 특유식물 ③ 진귀한 식물로서 보존이 필요한 것 ④ 학술상 가치가 큰 명목·거수·기형목 ⑤ 대표적인 원시림이나 고산식물 ⑥ 진귀한 식물의 자생지 ⑦ 저명한 식물분포의 경계가 되는 곳 ⑧ 유용식물의 원산지. 내용을 흝어보면 너무 포괄적이라 구체적인 기준을 알기 어렵다. 따라서 실제 지정 유무를 결정하고 판단할 주체가 필요하다. 문화재위원회는 천연기념물의 지정과 해제를 비롯해 보호·관리 규정까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행정절차가 까다로워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이 나고도 실제 지정은 1~3년이 걸린다. 이상, 지정과정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이나 근본적으로 큰 하자가 있다. 원칙적으로 우리나라 전체 고목나무를 먼저 조사한 후에, 지정 신청이 들어오면이 자료를 놓고 천연기념물로서 적합한 나무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지금은 지정신청 나무만을 대상으로 현장조사 위원들의 주관적인 판단에 거의 의존하고 있다. 고목나무 전체 조사 자료를 확보해야할 산림청에서는 아예 구체적인 자료를 갖고 있지 않으며, 문화재청과 유기적인 관계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지정돼 있는 천연기념물을 보면 나무의 크기나 역사성·문화성등 지정조건 어디에 비추어 봐도 보호수나 시·도 기념물보다 오히려 품격이 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천연기념물의 해제는 지정과 똑같이 과정을 밟는다. 그러나 해제가 지정보다 더 어렵다. 여러 가지 사유로 천연기념물로서의 값어치를 재평가 받아야 할 천연기념물이 훼손마저 됐다면 해제가 당연하다. 이런 '저급 천연기념물'에도 매년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의 예산이 들어간다. 하지만 책임문제가 있는 탓인지, 오래 두면 회복이 된다는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담당자들은 좀처럼 해제하려 들지 않는다. 고목나무가 완전히 죽었다는 판정이 나기 이전에는 결코 해제하지 않는 것이다.
고목나무 크기와 나이
: 고목나무의 나이는 아는 방법이 마땅치 않아 애매하고 부정확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학적인 정확한 방법은 생장추(生長錐)라는 기구로 나무의 속고갱이를 뽑아내 나이테 숫자를 직접 세어보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목나무는 거의 속이 썩어버리니 이런 방법을 쓸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두번째는 고목나무 주위에서 속이 썩지 않은 어린나무를 찾아내 생장추를 나이테 넓이를 측정한 후 서로 비교 분석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며 주위에 같은 수종의 나무가 자라야 하는 등 제약조건이 많다. 세번재는 누가 심었다는 기록이 있는 경우다. 가장 정확하고 확실하게 나이를 아는 방법이나 믿을 수 있는 기록을 가진 고목나무는 극히 드물다. 네번재는 고목나무와 관련된 전설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전설은 어디까지나 전설일 뿐, 정확성을 말하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 다섯번째는 굵기와 나무의 자람 정도를 감안해 나이를 추정하는 것이다. 같은 수종이라도 자람 환경에 따라 한해 동안의 나이테 지름이 1cm이다가 1mm가 되기도 하며, 과거에는 잘 자라다가 지금은 상태가 나쁠 수도 있으며, 그 반대도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추정이 어렵고 부정확하다.
보존관리 문제
: 나무는 일정한 수명을 가진 생물체이니 영구 보존이 될 수 없다. 아울러서 생명체는 자연수명이 있다. 천연기념물을 포함한 노거수의 보존관리에 걸림돌은 나무외과수술, 흙덮기, 땅눌림, 생활공간의 협소와 오염 등을 들 수 있다. 외과수술은 고목나무의 가운데가 썩어 커다란 구멍이 생긴 안쪽에다 우레탄 수지로 채워 넣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 고목나무의 대부분은 썩은 부분을 박박 긁어내 버리고 우레탄으로 메워 넣기도 한다. 이런 단순한 메워 넣기를 '외과수술'이란 그럴싸한 이름으로 포장해버린다. 고목나무 공동 메워 넣기는 생장에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도 판명돼 우리나라 이외에 외국에서는 거의 시행하지 않는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고목나무 구멍 메우기는 거의 불필요하다. 메움 처리는 고목나무를 자연 상태 그래도 손을 대지 않는 것보다 휠씬 못하다. 흙덮기는 나무 밑에다 흙을 덮어주는 것을 말한다. '복돋우다'는 우리말이 흙으로 나무뿌리를 덜어주는 것에서 기원했듯이, 나무를 잘 자라게 하는 데는 흙덮기가 곡 필요한 과정처럼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고목나무는 흙덮기가 오히려 나무를 죽이는 지름길이다. 굵은 뿌리가 울퉁불퉁 노출된 상태 그대로 놔두는 것이 원칙이다. 나무 뿌리가 실제로 영양분을 흡수하는 것은 땅 밑 10~20cm에 주로 뻗어있는 수많은 잔뿌리들인데, 이들은 지상의 잎과 마찬가지로 숨을 쉬어야 한다. 흙덮기는 통풍을 방해해 숨쉬기를 못하도록 숨통을 조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런 공사는 뿌리가 숨을 못 쉬게 해 고목나무가 서서히 죽어가게 만든다. 그렇다고 고목나무가 당장 죽는 것은 아니다. 죽는데 짧게는 수년, 길게는 20년이 걸리기도 한다. 나무가 죽을 때쯤에는 공사업자도 담당공무원도 책임질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최근 이런 문제를 인식한 문화재청에서는 천연기념물의 복토 제거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보호수 등 다른 고목나무들은 복토 제거는 고사하고 지금도 여전히 흙덮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땅눌림은 나무 밑으로 길이 나 있거나 쉼터로 개방되면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출입해 땅이 다져지는 현상이다. 흙덮기와 마찬가지로 공기가 잘 통하지 않아 뿌리의 숨쉬기를 어렵게 한다. 천연기념물의 또 다른 문제점은 주어진 생활공간이 너무 좁다는 것이다.
부록 3 식물 천연기념물 주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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