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글 - 실패와 고통을 이겨내고 시대의 표준을 제시하다
1. 고불(古佛) 맹상성(孟思誠) - 두 왕조를 섬긴 자괴감을 문화예술로 꽃피우다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온유의 리더십
: 맹사성은 1438년(세종 20년) 10월4일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서울에서 신병을 치료하다가 죽었기에 그의 시신은 본가로 옮겨야 했다. 그런데 10월 5일 시신을 온양으로 운구하는 도중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어 상여 앞에 놓인 명정(죽은 사람의 관직과 성씨 따위를 적은 기)이 하늘 높이 떠서 광주군 광주읍 직리에 떨어졌다고 한다. 세종이 그 바람을 기이하게 여겨 그곳을 장지로 쓰라고 해 온양으로 옮기지 않고 그 자리에 묻었다는 일화도 남아 있다.
2. 동고(東皐) 이준경(李俊慶) - 급진 개혁의 부작용을 체감하고 조화를 꾀하다
시련을 통해 꽃피운 미래예측의 리더십
:
3. 퇴계(退溪) 이황(李滉) - 세상을 향해 선비정신을 외치다
선비의 자존심을 보여준 물러섬의 리더십
:
4.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 - 현장으로 달려가 해결사를 자처하다
정적들도 감싸 안은 관용의 리더십
:
5.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 한평생 시련과 맞서 싸우다
전란의 고단함을 웃음으로 달랜 해학의 리더십
: 정충신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한미한 집안 출신이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주 목사 권율의 휘하에서 종군했다. 당시 권율은 자신의 장계를 임금이 계신 행재소에 전달하기 위해 사람을 모집했으나 응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17세의 어린 정충신이 가겠다고 자청했다. 그는 왜군으로 겹겹이 포위된 길을 단신으로 뚫고 행재소에 도착했다. 병조판서 이항복은 정충신을 예쁘게 보고 아들처럼 대했으며 사서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머리가 총명한 정충신은 그해 가을에 행재소에서 실시하는 무과에 응시해 합격했다. 그는 후일 경상병마절도사가 되었으며, 이항복은 그를 기특하게 여겨 동서로 삼았다. 광주시 금남로는 정충신이 진무공신 1동에 책록되어 금남군으로 봉해진 것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6. 잠곡(潛谷) 김육(金堉) - 숯을 구워 팔며 삶의 실상을 깨닫다
한평생 대동법만 외친 집념의 리더십
:
7. 명곡(明谷) 최석정(崔錫鼎) - 이념을 던지고 실용을 택하다
비난을 이겨내고 터득한 실용주의 리더십
:
8. 환재(瓛齋) 박규수(朴珪壽) - 쇄국을 버리고 개화에 손들다
시대 흐름을 읽어낸 변화수용의 리더십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조선을 훔친 위험한 책들], 이민희, 글항아리, 2008, (100525). (0) | 2010.05.25 |
|---|---|
| [대역죄인, 역사의 법정에 서다], 배상열, 책우리, 2009, (100523). (0) | 2010.05.23 |
| [조선인의 유토피아], 서신혜, 문학동네, 2010, (100420). (0) | 2010.04.20 |
| [우리문화재 나무 답사기], 박상진, 왕의서재, 2009, (100411). (0) | 2010.04.11 |
| [1917 러시아 혁명], 니콜라 베르트, 변지현, 시공사, 1998, (100312). (0) | 2010.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