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Thing 1 - 자유 시장이라는 것은 없다
자유 시장처럼 보이는 시장이 있다면 이는 단지 그 시장을 지탱하고 있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여러 규제를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 뿐이다.
자유 시장도 일단 특정 규제의 정당성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나면 그 규제의 존재 자체를 의식하지 못하게 된다.
특정 시장을 구분하는 신성불가침의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경계를 변경하고자 하는 시도 역시 그 경계를 지키고자 하는 시도만큼이나 정당한 것이다. 실제로 자본주의의 역사 자체도 시장의 경계를 둘러싸고 벌어진 끊임없는 투쟁의 역사였다. 오늘날 시장 바깥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은 시장 과정 자체가 아니라 정치적 결정에 의해 시장에서 제외되었다. 특정 거래를 시장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혹은 밖으로 몰아내려는 움직임은 항상 양방향으로 진행되어 왔지만 후자인 탈시장화의 경향이 더 강하다. 시장에서 계속 거래되는 상품도 시간이 지날수록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시장의 경계가 모호하면 객관적으로 결정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면, 경제학이 물리학이나 화학 같은 과학이 아니라 정치적 행위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Thing 2 - 기업은 소유주 이익을 위해 경영되면 안 된다
주주들이 법적으로는 기업의 주인일지는 몰라도 그들은 기업의 이해 당사자 중에서 가장 손쉽게 빠져나갈 수 있고, 따라서 기업의 장기 전망에 가장 관심이 없는 집단이다. 소액 주주들이 장기 투자를 줄여 이윤을 극대화하고 그 이윤에서 주주에 대한 배당을 극대화하는 단기 수익 극대화 기업 전략을 선호하는 것도 바로 그래서이다. 이렇게 되면 재투자에 필요한 유보 이윤이 줄어들게 되므로 해당 기업의 장기 전망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주주들을 위한 기업 경영이 결국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유한 책임의 중요성을 가장 먼저 알아차렸던 사람 중 하나가 흔히 자본주의의 가장 큰 비핀자로 알려져 있는 카를 마르크스였다는 사실이다. 마르크스는 유한 책임이 개인 투자자들의 리스크를 줄임으로써 새로 등장하는 중화학 공업에 필요한 대규모 자본 동원을 가능케 하리라는 것을 간파했다. 마르크스도 자유 시장론자들과 마찬가지로 유한 책임으로 말미암아 경영자들이 리스크를 과도하게 떠안으려는 경향이 있음을 인정했고, 그를 비판했다. 그러나 이를 유한 책임이라는 제도 혁신이 가져올 엄청난 물질적 진보의 부작용 정도로 간주했다. 마르크스는 공동 자본회사가 경영으로부터 소유를 분리해 낸다는 점, 그리고 이를 통해 자본주의가 성취한 물질적 진보를 해치지 않고도 (이미 기업 경영에서 손을 뗀) 자본가들을 제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전환점'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유한 책임 제도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걸쳐 자본 축적과 기술 진보를 엄청나게 촉진시켰다. 유한 회사를 둘러싸고 오랫동안 우려를 낳았던 경영상의 인센티브 문제, 즉 다른 사람의 자금으로 경영하는 경영자는 리스크를 과도하게 떠안을 것이라는 우려는 처음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 듯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전문 경영인이라는 새로운 계급이 출현하여 카리스마 넘치는 기업가들을 대체해 나갔다. 기업 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어느 한 사람이 상당한 지분을 보유하는 것도 점점 더 어려워졌다. 이런 변화 속에서 전문 경영인들이 경영권을 장악해 나갔고, 주주들은 기업의 경영 방침을 결정하는 데 점차 소극적이 되었다. 1930년대가 되면서 경영자 자본주의의 탄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비판자들에 따르면 전문 경영인들은 이윤을 극대화하기보다는 매출 극대화를 통해 회사 규모를 키우고, 그를 통해 자신들의 명성을 높이려 한다거나 회사에서 받는 특전을 최대화하려 했다. 그 뒤로 수십 년 동안 사유 재산 제도를 철저하게 옹호하는 사람들은 경영자들이 기업 이윤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경영자 인센티브가 설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980년대에 이르러 마침내 성배가 발견되었다.바로 주주 가치 극대화 원칙이었다. 이것은 주주들에게 얼마나 큰 이익을 안겨 주느냐에 따라 전문 경영인들의 보수를 정해야 한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아이디어는 주주들은 물론이고 대다수 전문 경영인들에게도 널리 지지를 받았는데, 전문 경영인들과 주주들 간에 결성된 이 '비신성 동맹'은 기업의 기타 이해 당사자들을 착취한 자금으로 유지되었다. 그 결과 소득 불균형은 극심해졌고, 그런 속에서 미국과 영국 국민 대다수는 전례 없는 규모의 빚을 지지 않고서는 겉만 번드레한 번영에 동참할 수 없게 되었다. 노동자를 비롯하여 다른 이해 당사자들에게 돌아가던 소득 중 많은 부분이 이윤으로 재분배된 것도 문제였지만 1980년대 이후 국민소득에서 이윤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속적으로 증가했음에도 그것이 투자 확대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주주의 이익을 위해 기업을 경여하면 (그에 따른 상류층으로의 소득 재분배 문제를 무시한다고 해도) 경제 전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최악의 문제는 주주 가치 극대화가 심지어 해당 기업에도 전혀 이롭지 않다는 것이다. 고용 삭감은 단기적으로는 생산성을 높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게다가 미국을 비롯한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기업 투자의 주요 재원은 사내 유보 이윤이다. 그런데 배당금을 높이고 자사주 매입을 늘릴수록 사내 유보 이윤은 줄어들고, 그에 따라 투자도 감소된다. 투자 위축은 그 효과가 단기적으로는 드러나지 않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기술력을 후퇴시켜 기업의 생존 자체를 위협한다. 주주들이야말로 기업에서 가장 손쉽게 손을 뗄 수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가망 없는 회사의 주식을 무작정 붙잡고 있지 않을 정도로만 눈치 있는 주주라면, 필요할 때 약산의 손실을 감수하고 보유 주식을 내다 팔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유한 책임은 주주들이 손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출구를 제공하여 투자에 따른 리스크를 완화해 주었다. 하지만 바로 그렇게 손쉽게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에 주주들은 기업의 장기적인 미래를 책임질 만큼 믿음직한 후견인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Thing 3 - 잘사는 나라에서는 하는 일에 비해 임금을 많이 받는다
잘사는 나라와 못사는 나라의 임금 격차는 개인의 생산성이 달라서가 아니라 각 정부의 이민 정책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자유 시장 경제학에서는 어떤 상품이 그와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상품에 비해 값이 비싼 것은 그것이 더 나은 상품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말은 자유 시장에서는 노동을 포함해서 모든 상품이 제값을 받는다는 의미이다. 일부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은 (물론 다는 아닐 것이고) 사람들이 유행 같은 것 때문에 상품의 가치에 맞지 않는 지나친 값을 지불하는 현상이 단기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기도 한다. 자국 정부의 이민 통제 정책 덕에 스웨덴 노동자들은 인도를 비롯한 가난한 나라의 노동자들과 직접 경재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부자 나라에 사는 대다수 사람들의 생활수준은 자국 노동 시장에 대한 엄격한 정부 통제, 즉 이민 제한 정책에 따라 결정적으로 좌우된다.
많은 사람들이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것은 그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산술저그로 계산하면 가난한 나라의 평균 국민소득을 끌어내리는 것은 빈곤층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가난한 나라의 부자들이 모르는 게 있다. 바로 자기 나라가 못사는 이유가 빈곤층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들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간단히 말해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 나라의 동일 직종 종사자들과 붙여 놓아도 지지 않는다. 정작 자기 몫을 하지 못하는 것은 가난한 나라의 부자들이다. 상대적으로 낮은 그들의 생산성 때문에 나라가 가난하다는 말이다. 자신들의 높은 생산성 덕에 자국의 가난한 사람들이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부자 나라의 부자들이 너무 의기양양할 것에 대비해 한 가지 경고를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부자 나라의 어떤 개인이 비슷한 일을 하는 가난한 나라의 개인보다 실질적으로 생산성이 월등히 높은 분야에서조차, 그 격차는 개인의 능력 차라기보다는 시스템의 차이에서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개인이 받는 임금은 그의 가치를 완전히 반영하지 못한다. 부자 나라든 가난한 나라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는 임금은 이민 제한 정책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정해진 것이다.
Thing 4 -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
가사 노동자의 숫자가 크게 줄어들면서 여성의 고용 구조 역시 극적으로 달라졌다. 여성들의 노동 시장 참여가 늘면서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들의 지위도 확실히 높아졌다. 그 결과 남아 선호 사상이 약해지면서 여성에 대한 교육 투자가 늘어났고, 이것이 다시 여성들의 노동 시장 참여를 촉진시켰다. 더욱이 자녀 양육을 위해 직장을 포기하고 주부로만 지내는 여성의 경우에는 가정 내에서 지위가 올라갔다.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남편 곁을 떠나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위협이 설득력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여성들이 경제 활동에 나설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면서 자녀 양육에 따르는 기회비용이 높아졌고, 그에 따라 자녀 수가 줄어들었다. 이런 모든 것이 전통적인 가족 내의 역학관계를 바꾸었다. 세상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피임약을 비롯한 피임술의 발달로 출산 시기와 빈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된 것도 여성들의 교육과 노동 시장에 참여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일부 선진국들, 특히 미국과 영국에서는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정보통신 기술 혁명에 마음이 팔려 이제는 '구닥다리' 제조업은 필요 없고 아이디어만 있으면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했다.
Thing 5 - 최악을 예상하면 최악의 결과가 나온다
이기심은 대부분의 인간이 지닌 가장 강력한 본성 중의 하나지만, 유일한 본성도 아니고 많은 경우 인간 행동의 가장 중요한 동기도 아니다.
Thing 6 - 거시 경제의 안정은 세계 경제의 안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은 시장 가격을 의미 없는 소음에 불과한 것으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자본주의를 기초부터 뒤흔든다. 인플레이션이라고 모두가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되는 건 아니다. 제때 손을 쓰지 않으면 인플레이션이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변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증거가 어디에도 없다. 1980년대 이후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은 0%를 지향하는 극도로 낮은 인플레이션을 경제 안정의 바로미터로 정의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전 세계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적당히 낮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경제에 나쁘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여기에 더해 과도한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이 실은 경제에 해롭다는 증거도 있다. 인플레이션을 2~3% 이하로 끌어내리기 위해 사용하는 정책들이 실제로는 투자를 저해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1980년대 이후, 특히 1990년대에 들어선 이후 많은 나라에서 인플레이션을 잡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각 나라는 정부 지출을 줄여서 재정 적자로 말미암아 인플레이션이 촉발되지 않도록 하고, 중앙은행을 정치적으로 독립시켜야 한다는 충고를 받았다.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최근 들어 대다수 나라들이 인플레이션이라는 이름의 맹수를 길들이는 데 성공했다. 인플레이션과의 투쟁에서 특히 큰 성공을 거둔 나라는 주로 부자 나라들이었다. 세상이 더 안정적이 되었다는 말은 사실 경제적 안정성을 측정하는 데 낮은 물가상승률을 유일한 척도로 사용했을 때에만 성립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느끼는 것은 안정과는 거리가 있다. 지난 30년 사이에 세상이 더 불안정했다는 느낌을 주는 또 하나의 원인은 이 기간에 고용이 크게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인플레이션 억제에 초점을 맞춘 긴축 정책 때문에 (1950년대~1970년대에 비해) 늘어난 실업이 그 주요 원인이었다. 원인은 여러 가지이다. 첫째, 일부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엄청난 규모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단기 고용의 비중이 높아졌다. 둘째, 해고되지 않은 사람들이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기간은 1980년대 이전 노동자들과 비슷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미국을 비롯한 일부 나라에서는 비자발적 고용 종료, 다시 말해서 노동자가 원하지 않는데도 직장에서 떠나야 하는 비율이 늘었다. 셋째, 특히 미국과 영국에서는 1980년대까지는 상당히 안정적이었던 관리, 사무, 전문지 일자리들이 1990년대 이후 불안해졌다. 넷째, 고용 자체의 안정성은 유지된다 해도 일의 성격과 강도에서 더 빈번하고 심한 변화를 겪게 되었고, 이 변화는 대부분 노동자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다는 아니지만 많은 부자 나라들이 1980년대 이후 복지 예산을 삭감했기 때문에 실직힌 확률이 객관적으로는 높아지지 않았더라도 사람들이 느끼는 블안감은 더 심해졌다. 믈가 안정(즉 낮은 인플레이션)과 잦은 금융 위기, 고용 불안 증대 등 물가로 표시되지 않는 경제 불안 요소들이 공존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신자유주의 정책 패키지로도 알려진 자유 시장 정책 패키지들의 일련의 정책들은 낮은 인플레이션, 자유로운 자본 이동, 그리고 (노동 시장 유연성이라는 미사여구로 표현되는) 높은 고용 불안정성 등을 중시한다. 인플레이션이 낮아져 경제가 안정되면 투자를 불러일으켜 결과적으로 경제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과는 정반대로, 인플레이션을 아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려는 시도는 투자와 성장을 위축시켰다.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을 주요 목표로 하는 자유 시장 정책 패키지의 근간을 이루는 자본과 노동 시장의 자유화는 금융 불안과 고용 불안정을 초래해서 불안정한 세상을 만들었고, 설상가상으로 이 정책이 약속했던 이른바 '성장 촉진'마저 실현하지 못했다.
Thing 7 - 자유 시장 정책으로 부자가 된 나라는 거의 없다
Thing 8 - 자본에도 국적은 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외국인 투자가 많은 경우 새로운 생산 시설을 설립하는 그린필드 투자가 아니라 기존 기업을 인수하는 브라운필드 투자라는 사실이다. 최근 들어 사모펀드들이 기업 인수 부문에서 점점 더 활동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특정 산업에 관한 전문가를 보유한 것은 아니지만 이론적으로는 사모펀드가 장기 투자를 계획하고 회사를 인수하여 외부에서 전문가를 영입하고 경영진을 앉혀 그 기업을 발전시키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펀드들이 장기적인 기업 발전을 계획하고 회사를 인수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구조 조정을 통해 수익성을 높인 다음 3~5년 사이에 되팔 목적으로 기업을 인수하는 것이 관례이다. 이 때 벌어지는 구조 조정은 시간적 제약 때문에 대개 기업의 역량 강화보다는 직원들을 해고하고 장기 투자를 줄이는 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에 생산성 향상 능력을 약화시켜서 기업의 장기 전망을 어둡게 하는 결과에 이른다. 최악의 경우 사모펀드는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자산 수탈'을 목적으로 기업을 살 때도 있다.
Thing 9 - 우리는 탈산업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탈산업화가 되어 간다고 느끼는 작지만 무시할 수 없는 원인은 '착시 현상' 때문이다. 실제 상황의 변화가 아니라 단지 통계 처리의 변화 때문에 탈산업화가 많이 진행된 것처럼 느끼게 되었다는 말이다. 아웃소싱 효과 외에도 제조업의 쇠퇴가 실제보다 더 부풀려져 보이는 원인은 이른바 재분류 효과가 있다. 부자 나라들의 국민총생산에서 제조업 비중이 줄어든 주원인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제조업 제품에 대한 수요가 상대적으로 하락했기 때문이 아니다. 중국이나 다른 개발도상국 제조업 제품의 수입이 대거 늘어나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이런 수입 제품으로 상당한 타격을 입는 것은 몇몇 부문에 국한되어 있다. 이른바 탈산업화 현상은 제조업 부문의 급속한 생산성 향상에 따라 제조업 제품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하락하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탈산업화 시대 경제의 또 다른 모델로 간주되는 미국의 경우 지식 기반 서비스의 수출에서 발생하는 국제수지 흑자액이 국내총생산의 1% 미만이다. 이는 국내총생산의 4% 규모에 달하는 제조업 무역 적자를 메우기에는 어림없는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미국이 이럭저럭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해외에서 엄청난 규모로 돈을 빌려 적자를 메웠기 때문이다.
서비스 상품은 교역 가능성이 떨어지는 만큼 서비스 생산에 특화된 나라는 제조업 제품 생산에 특화된 나라보다 국제수지에서 심각한 문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Thing 10 -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가 아니다
다른 회폐를 쓴다 하더라도 결국은 같은 양의 돈인데 나라마다 살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의 양이 이렇게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차이는 단기적으로 환투기에 따라서도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시장 환율이라는 것이 주로 국제적으로 거래되는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수요 공급만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국제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비교역재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택시운전이나 레스토랑의 서빙처럼 사람을 직접 상댕하는 노동 서비스이다. 다시 말하면 스위스 택시나 노르웨이 식당이 비싼 것은 그 나라의 노동자 임금이 높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이다. 노동자 임금이 싼 멕시코나 태국 같은 곳을 가면 이런 서비스 또한 싸진다. 반면 국제적으로 교역되는 TV나 휴대전화 같은 상품들은 부자 나라든 가난한 나라든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비슷한 가격을 지불해야 살 수 있다. 나라마다 다른 비교역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을 반영하기 위해 경제학자들은 국제 달러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다. 특정 통화가 서로 다른 나라에서 일련의 공통적인 소비품을 얼마나 살수 있는지를 측정하는 방법인 구매력 평가지수라는 개념에 근거를 둔 이 가상 통화를 이용하면 서로 다른 나라의 소득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서 생활수준을 직접 비교하는 것이 가능하다. 각 나라의 소득을 국제 달러로 환산해 보면 잘사는 나라의 소득은 시장 환율로 계산한 소득보다 더 낮아지는 반면에 가난한 나라의 소득은 더 높아진다.
소득 분배가 불평등한 나라일수록 평균 수득으로 그 나라 국민의 삶을 짐작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Thing 11 - 아프리카의 저개발은 숙명이 아니다
Thing 12 - 정부도 유망주를 고를 수 있다
고르는 주체가 기업이 되었든 정부가 되었든 유망주는 항상 선별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가장 성공적인 경우는 기업과 정부가 협력해서 선택했을 때이다. 민간기업의 유망주 선택만이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에 묻혀 그 너머를 보지 못하면 결국 우리는 정부가 주도하는 혹은 정부와 민간의 협력으로 추진할 수 있는 경제 발전의 거대한 가능성을 모두 놓치고 말 것이다.
Thing 13 -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오늘날의 자유주의 경제학자들과 달리 자본주의 경제가 '개인'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지 않았다. 그들은 자본주의 경제가 자본가, 노동자, 지주라는 세 계급으로 구성되며, 서로 다른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은 행동하는 방식도 다르다고 보았다. 자본가들은 벌어들인 소득의 거의 전부를 투자하는데, 노동자나 지주들은 소득을 거의 소비한다는 것이다. 지주 계급에 대해서는 학파 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리카도 같은 사람들은 지주를 소비만 하면서 자본 축적을 방해하는 계급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토머스 맬서스 등은 지주 계급의 소비가 자본가들이 생산한 상품에 추가 수요를 발생시켜 자본가들을 돕는다고 여겼다. 하지만 노동자 계급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했다. 리카도 같은 열렬한 자유 시장론자와 프레오브라젠스키 같은 극좌파 공산주의자가 둘이 많이 다른 것 같아 보이지만 그들은 모두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을 극대화하려면 투자 가능한 잉여 생산물을 '투자자'의 손에 집중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둘 사이에 다른 점은 이 '투자자'가 자유 시장론자의 경우에는 자본가 계급이었고, 극좌파 공산주의자의 경우에는 계획 경제 당국이었다. 오늘날 "부를 재분배하기 전에 먼저 부를 창출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궁극적으로 잉여 생산물을 집중시켜야 한다는 의미에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Thing 14 - 미국 경영자들은 보수를 너무 많이 받는다
Thing 15 -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자 나라 사람들보다 기업가 정신이 더 투철하다
우리는 기업가 정신을 너무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 마치 기업가 정신이란 탁월한 비전과 굳은 결의를 지닌 영웅들에게만 있다고 착각을 하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누구나 열심히 노력만 하면 성공적인 사업가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여기서 나온 발상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기업가 정신을 개인적 차원에서 보는 견해는 옳고 그름을 떠나 점점 구식이 되어 가고 있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기업가 정신이라는 것은 점점 더 공동체적으로 함께 이루어 내지 않으면 불간으한 것이 되었다.
Thing 16 - 우리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도 될 정도로 영리하지 못하다
우리가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자 할 때 흔히 맞닥뜨리게 되는 중요한 문제는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정보를 처리한느 우리 능력의 한계이다. 사이먼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제한된 합리성을 극복하기 위해 규칙을 도입한다.
규제의 효용성은 행위의 복잡성을 제한해서 피규제자들이 보다 나은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한다는 데에 있다.
Thing 17 - 교육을 더 시킨다고 나라가 더 잘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교육이 생산성 향상을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자
교육은 소중하다. 그러나 교육의 진정한 가치는 생산성을 높이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잠재력을 발휘하고 더 만족스럽고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있다.
Thing 18 - GM에 좋은 것이 항상 미국에도 좋은 것은 아니다
Thing 19 - 우리는 여전히 계획 경제 속에서 살고 있다
기업들은 사업 계획을 세운다. 그것도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말이다. 마르크스가 경제 전반을 중앙에서 계획한다는 아이디어를 얻은 것도 바로 기업들이 세우는 사업 계획에서였다. 마르크스가 계획을 이야기하던 당시는 경제 계획을 세워서 실행하는 정부는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그 시대에는 오직 기업만이 계획을 세웠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기업이 회사 내부 경영에 활용하는 '합리적' 계획 방식이 결국 시장의 소모적인 혼란 상태보다 우월하다고 입증될 테고, 이 방식은 결국 기업 내부에서 경제 전체로 확산되리라고 예언했다.
Thing 20 - 기회의 균등이 항상 공평한 것은 아니다
복지 정책이 잘 된 나라일수록 계층 이동이 더 활발하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특히 미국의 경우 계층 이동성이 전반적으로 낮은 이유가 주로 최하층에서의 이동성이 낮아서인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는 가난한 집안 아이들이 기회의 균등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 최하 기본 소득을 제대로 보장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반증하고 있다.
Thing 21 - 큰 정부는 사람들이 변화를 더 쉽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Thing 22 - 금융 시장은 보다 덜 효율적일 필요가 있다
금융 부문은 건물과 기계 같은 비유동성 자산을 대출금, 주식 등의 유동성 자산으로 전환할 수 있게 해 줌으로써 기업이 성장하고 사업 영역을 다각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금융 자산이 나머지 경제 전체에 잠재적으로 부정적인 작용을 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 유동성 때문이다. 이는 금융 자본이 '기다리는 것을 싫어하는' 자본으로 단기간에 이익을 챙기려는 속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장기적인 부작용이다. 금융의 높은 유동성은 생산성 상승을 약화시킨다. 기업(산업)의 생산성을 높이려면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자금을 조달해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자금을 제공하는 금융 자본은 '기다리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장기 투자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기가 어려워진다.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면 어디든 재빨리 옮겨 갈 수 있는 바로 이 효율성 때문에 금융이 경제의 다른 부문에 해로운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다.
Thing 23 - 좋은 경제 정책을 세우는 데 좋은 경제학자가 필요한 건 아니다
결론
자본주의 경제를 운용하는 데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하되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 자유 시장주의라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에 대한 맹목적 사랑에서 눈을 떠, 더 잘 규제된 다른 종류의 자본주의를 해야 한다. 흔히 투명성만 높이면 대규모 금융 위기가 또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인간의 정보 처리 능력의 부족이기 때문이다.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는 인간이 '착한' 일을 하게 하려면 금전적인 보상을 하거나 벌칙으로 위협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믿음이 비대칭적으로 적용되어 부자는 더 많은 금전적 보상이 약속되어야 더 열심히 일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하게 될 것을 두려워해야 더 열심히 일한다는 이상한 주장으로 탈바꿈한다는 것이다. 물질적 자기 이익 추구가 인간 행동의 강력한 동기임은 확실하다. 우리는 물질적 부를 중요시하되 유일한 목표가 되지 않는 경제 시스템을 건설해야 한다. 또 기업이든 정부 부처이든 모든 조직은 구성원들 간의 신뢰, 상호 연대, 정직성, 협동 등을 장려하는 형태로 설계되어야 한다. 단기적인 자기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게 되면 우리는 전체 시스템을 파괴하게 될 것이고, 이는 장기적으로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 많은 사람이 진정한 기회의 평등을 누리지 못해 가난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고 해서, 기회의 평등만 제대로 보장되면 가난한 사람은 가난해 마땅하다는 말은 아니다. 어느 정도 결과의 평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특히 모든 아이가 최소한의 영양과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다면 시장이 제공하는 기회의 평등 정도로는 진정으로 공정한 경쟁을 보장할 수 없다. 우리가 시장의 결과에 대해 과감하게 문제를 제기할 때만이 더욱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물건 만들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탈산업화 지식 사회는 신화에 불과하고, 제조업은 지금도 경제에 필수적이다. 금융 부문과 실물 부문의 더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현대 경제가 생산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건강한 금융 산업이 필수적이다. 금융 부문이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가 바로 투자를 하고 나서부터 그 투자가 결실을 맺을 때까지의 시차를 메워 주는 것이다. 더 크고 더 적극적인 정부가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더욱 활력 넘치고 안정적이며 더 평등한 경제 시스템에서 정부가 어떻게 해심 요소가 될 수 있는지를 더 창조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더 좋은 복지 국가, 더 나은 규제 시스템(특히 금융 부문에 관한), 더 우월한 산업 정책 등이 필요하다. 세계 경제 시스템은 개발도상국들을 '불공평하게' 우대해야 한다. 대부분의 부자 나라들에서는 민주주의 제약 때문에 완전히 자유시장주의에 맞는 개혁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런 사정들로 인해 자유 시장 정책이 실험된 곳은 주로 개발도상국들이었다. 특히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에 있는 많은 가난한 국가들은 자유시장을 맹신하는 (IMF,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나 (IMF와 세계은행을 사실상 지배하는) 부자 나라들로부터 돈을 빌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유 시장 정책을 채택해야 했다. 따라서 세계 경제 시스템은 개발도상국들이 자국에 적합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정책 공간'을 넓혀 주는 방향으로 완전히 개편되어야 한다. (사실 선진국들에게는 국제 규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왜곡하거나 심지어는 무시할 수 있는 여지가 휠씬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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