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다방과 카페, 모던보이의 아지트], 장유정, 살림, 2008, (110603).

바람과 술 2011. 6. 3. 23:35

근대 유흥 공간 출현하다


호텔식 다방에서 음악다방으로


다방의 역사는 바로 커피의 역사와 그 시작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 처음으로 창업하였던 다방은 1927년 봄에 영화감독 이경손이 화와이에서 데려온 묘령의 여인과 종로구 관훈동에 개업한 '카카듀'였다. 근대 문물을 먼저 경험하고 돌아온 해외 유학파 출신과 이른바 문화인을 자처한 일부 사람들은 서로의 지식을 나누고 자연스러운 토론도 하는 유럽식의 살롱 문화를 다방을 통해서 실현해 보고 싶었다. 뒤에 살펴 볼 카페와 달리 주로 문화·예술인들이 다방의 경영에 손을 대었던 데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다방은 당시에 끽다점, 찻집, 티룸 등으로 불렸으며, 그 상호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외래 문물의 표상이었다. 호텔식 다방에서 시작한 다방은 차를 마시며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으로 인식되었다. 

 

카페, 서양식 술집의 성쇠(盛衰)


유럽에서의 카페가 간단한식사와 더불어 커피나 차를 제공하는 곳이었던 것과 달리, 1920~1930년대 우리나라의 카페는 기본적으로 술을 파는 곳이었다. 사실상, 유럽의 카페가 하던 역할을 우리나라에서는 다방이 대신하였는데, 이처럼 카페가 서양식 술집으로 변모한 것은 일본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카페는 일본을 거쳐서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그 모습이 변형되었고, 일본과 마찬가지로 여급이 손님을 접대하는 형태로 운영되었던 것이다. 
 
다방, 문화 공간 혹은 무기력한 인텔리의 집합소

당시의 다방은 '차만 파는 곳'보다는 '차를 마시며 기분을 파는 다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주로 거주하였던 북촌에 형성된 다방들은 대부분 이러한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차를 마시는 기분을 파는 다방'은 귀족적이고 폐쇄적이고 고답적이며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등의 고전음악을 들려주는 대신에 찻값은 비쌌다. '차를 파는 다방'에 상인, 관리, 회사원 등이 출입한 것과 달리 이들 '차를 마시는 기분을 파는 다방'에는 주로 예술가, 길거리의 철학자, 실업자, 유한마담, 여급, 대학생들이 드나들었다. 다방별로 주 이용객이 달랐던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어떤 사람들과 어떤 곳에서 어울리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의 정체성이 규정되기도 한다. 장소가 사람을 규정하며, 1930년대의 다방에서도 그러한 현상을 목도할 수 있다. 사람들은 무리를 형성하고 그들만의 아지트를 만들어서 교감하고 소통하였던 것이다. 당시에는 이른바 '다점 순례'가 일종의 취미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다점 순례가 일종의 취미로 여겨질 정도로 보편화되어 다방을 전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벽화'나 '금붕어'와 같은 표현도 등장하였다. 
 
카페, 퇴폐와 환락의 전당

카페에 출입하는 사람들도 대체로 회사원, 은행원, 관리, 신문기자, 문사, 학교 교원처럼 경제적인 여력이 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서민들의 술집이었던 선술집과 비교할 때, 카페의 술값은 매우 비쌌다. 당시에 학생들의 카페 출입이 당연하거나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카페가 우리나라에 들어선 초창기부터 학생들의 카페 출입이 문제가 되었으며 카페를 출입하는 학생을 불량학생으로 간주하였던 저간의 사정을 엿볼 수 있다. 
 
순수와 관능의 간극, 다방걸과 카페걸
 
카페걸, 천사이자 악녀인 야누스

카페걸, 그들의 진실과 항변
 
도시의 판타스마고리아를 나오며

많은 사람들에게 근대 도시는 기계가 마술을 부리는 장소로 여겨졌고 도시는 그러한 마술이 다채롭게 펼쳐지는 마법의 장소였다. 이러한 마법의 장소에서 많은 것들은 꿈과 환상이라는 외피를 쓰고 도시에 범람하였다. 당시의 다방과 카페도 도시인들의 불안과 꿈과 욕망을 표출하는 환상의 장소로 기능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식민지 시기 다방과 카페라는 환상 공간은 좀 더 복잡한 양상을 드러낸다. 환상이 다양한 이국적인 정취와 만나면서 다방과 카페는 국적불명과 정체불명의 모호한 공간이 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당시의 다방과 카페는 도시의 환상 공간이었다. 때로 다방과 카페는 이른바 별천지의 유토피아의 공간이었으며, 현실이 고되고 괴로울수록 사람들은 더욱더 다방과 카페라는 환상에 빠져들고 중독되었다. 이 두 공간의 문화적 위상을 살펴보면, 다방은 이른바 '살롱 문화'를 지향하면서 문화 예술인들의 문화 공간으로 기능하였다. 이와 달리 카페는 감정의 공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카페에서 여급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욕망을 표출하고 감정을 발산하면서 환락과 쾌락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1950~1960년대까지도 여전히 도시의 오아시스이자 문화 공간으로 기능하였던 다방은 이제 촌스러움의 대명사로 여겨지게 되었다. 반면에 여급과 더불어 술을 마시던 술집으로서의 카페라는 의미는 오늘날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오늘날에 카페라고 하면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먼저 떠오라는 것이다. 이렇게 카페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이후로 추정된다.